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
2020년 겨울 , 이 동네에 겨울이 왔음에도 눈이 안 내려 용평 스키장의 모든 슬로프들이
인공 눈을 사용하여 설질이 좋지 못했다
그러나 이곳은 얼마전 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가장 많은 눈이 내리고 ,
한번 내린 눈은 가장 오랫동안 녹지 않고 남아있는 ‘겨울왕국이었다
요즘은 기상상태가 일정하지 않고 뒤죽박죽이어서 , 작년 겨울만 해도
전북 고창이 가장 많은 눈이 내리고, 눈 피해도 많았다
이런 이상기후가 아니라면 , 적설량에 관한 한 대관령 횡계마을 명성은
연조가 꽤 오래됐다
산악회 선배들이 여기 처음 와 맹추위와 적설량에 놀랐던 때가 1962년이었고
나는 1968년이 초행이었으니 나와의 인연도 40년을 넘본다
여러 고등학교 산악부 출신들이 재수생을 합쳐 6-7명이나 대학 산악부에 가입했던
1961년 ,그해 겨울 선배들은 만만치 않은 신입생들을 환영할 겸, 그들의 기를 꺽어
기강을 잡을 요량이었는지, 예전에 없던 ‘한라산 적설기 극지법 훈련등반’이라는
타이틀의 겨울방학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신입생들을 설레게 하였다
지금이야 한라산 정상까지 기차가 다닐 정도로 등산로가 나 있고
하이힐을 신고도 오를 만큼 관음사 , 성판악, 돈네코, 영실 ,어리목등 여러 곳의 들머리가 있다
겨울 날씨도 춥지 않은 데다 적설량도 얼마 안되고 , 우선 제주까지 항공편도 다양하다
그때 선배들은 관음사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였는데 절 뒤는 원시림이었고
관음사를 들머리로 시작하는 등산코스는 여름에도 등산객이 없어
개미목의 대피소까지 눈이 쌓였을 때 대원 등반속도로 반나절 거리였다고 한다 ,
눈 위에서 스키를 벗으면 키가 넘도록 계속 몸이 빠져 스키를 양손으로 잡고
턱걸이하듯 몸을 빼내야 할 만큼 적설량이 많았고
원정대는 베이스캠프에서 정상사이에 세개의 전진캠프를 설치하고 스키를 이용해
5일만에 정상을 등정하고 전원이 베이스캠프까지 최단시간에 스키로 철수하는 훈련을
성공리에 마쳤다
하지만 하산 중 기록에 없는 사고도 있었는데
짙은 안개 속에 앞 사람의 슈프르를 따라 가다 방향을 잃고 헤메던 한 대원이
탈진하여 쓰러져 있는 것을 뒤따라오던 다른 대원이 발견했다. ,
실신한 동료를 부축해 내려 오면서 본인도 지쳐 조난자를 전담 선배의 위령비가
있는 곳에 남겨 두고 베이스 캠프로 겨우 하산
관음사 도착 즉시 스님들에게 구조를 요청하여 한밤중 스님들이 횃불을 들고 나가는
것을 확인한 후 기절해 버린 추억은 평생 잊지 못하는 어느 선배 아픔이 되었다
다음 날 평택호 철선으로 부산까지 20시간이 걸리는 야간항해 끝에
부산역에서 서울행 열차를 타곤 비몽사몽 헤메다 불광동 집에 도착하여
사흘 밤낮을 계속 잠만 자고서 깨어난 선배도 있고
원정대는 한라산에서 스키의 멋과 매력에 흠뻑 빠져,
이듬해 겨울부터 대관령에 장기적으로 캠프를 치고 캠프에서 눈오기를 기다리는
“겨울이면 대관령”이 대학산악부 전통이 되었다
당시에는 민박이라는 것이 없어 그저 수소문하여 알게 된 집을 골라
한겨울을 지내기로 약속하고 불 때는 거며 반찬 등은, 주인집이 알아서 해주는 대로
먹으며 지내다 오는 것이었다
그중 대관령에서 지내기 좋은 집이 ‘중대장집’이나 ‘미숙이네 집’이었다
주인아저씨가 예비군 중대장이었던 민박집은 힘 좋은 아저씨가 장작을 많이
비축하여 겨우내 방바닥이 절절 끓도록 군불을 때 주었고 ,
미숙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았다
민박 목적으로 지은 집이 아니고 살던 살림집 방을 비워 등치 큰 대원들을
여러 명씩 받다 보니 공간이 넉넉하지 않았다
대장은 독방, 신입들은 여덟 명이 한 방에 잔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 작은 산골방 하나에 ,머리를 반대로하여
대여섯명이 자야 했다
상급생만 한방, 하급생만 한 방 쓰는 게 아니라 방마다 상하가 섞이어 생활했는데 ,
작은 방에도 위치에 서열이 있어 윗목은 상급, 아랫목이 하급생의 차지가 된다
일단 아랫목에서는 뜨거워 잠을 잘 수 없다
초저녁에 불지핀 아름드리 장작불이 새벽이 되도록 윗목까지 따뜻하려면
아랫목의 장판지가 새까맣게 타도록 때야 하는데
그래서 말은 후배들에게 따뜻한 아래목을 양보한다
잠 뿐만 아니라 하급생들은 저녁을 먹고, 아무리 허리, 다리 종아리가 아파
녹초가 되어도 쉴 시간이 없었다
선배들의 군용 워커에 묻은 물기를 잘 닦아서 아래목에 정렬해두고 자야
다음 날 아침에 잘 말라 따뜻한 신발을 신을 수 있고 , 그래야 하루종일 발이
시리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걸 잊고 등산화를 밖에 내놓고 자면 , 아침에 얼음덩어리가 된
가죽 워커들을 장작불을 피워서 말려야 했다
등산화가 후배 것 여섯 켤레, 선배들 것 여섯 결레 모두 24짝을 닦아 물기를 없에고
하루 종일 눈에 젖은 합판 스키도 모두 물기를 닦아 방바닥에 늘어놓아 건조시켜,
왁스나 양초를 잘 발라 광을 내지 않으면 다음날 스키에 눈이 붙어 잘 미끄러지지
않는다고 종일 기압을 받아야했다
양말이나 내복은 빨아 입을 시간도 없고 빨래할 더운 물이 없어 1주일이고 보름이고
그냥 입고 신어야 했으니 잠잘 때 고약한 냄새에 코가 마비되고,
이불 바닥에 깔고 자는 양말들은 밤새도록 오징어 굽는 냄새가 진동했다
그래도 선배들은 코를 쿨쿨 골며 정신없이 잠을 잤다
하루 종일 들판을 누비며 무거운 스키를 어깨에 메고 30분, 한시간씩
산을 기어올라가 1-2 분 만에 내려오는 힘든 노동을 했기 때문이다
일과 후 술을 마시거나 (여름 훈련처럼) 트럼프할 심적 여유가 없었다
뜨거워서 도저히 발바닥도 댈 수 없는 온돌방 바닥에 등을 대고
초저녁부터 아침까지 지져야 지친 근육들이 다음날 아침에 말끔히 풀렸다
다음 날 아침에는 또 다른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나밖에 없는 야외 변소에 10명 넘는 대원들이 서로 순서를 다투어야 했으니
매일 아침마다 마당에서 치뤄야 하는 거북한 행사였다,
선배들 차례가 지나고 드디어 내 차례가 와서 들어가 널판지 위에 쭈그리고 앉으면
영하10도, 체감온도 영하 20도의 대관령 칼 바람이 엉덩이를 얼어붙는게
하는데 ,발 아래를 보면 바로 내 엉덩이를 찌를 듯이 날카롭게 솟아 있는
피라미드가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이런 열악한 상황이어도 겨울철 산악활동은 선후배 유대관걔를 두텁게 만들었다 ,
나만 겪는 게 아닌 ,으레 산악부대원이면 그래야 했으니까
군에 입대해서 겪어야 했던 통과의례처럼
언덕에 정해진 스로프가 어디 있겠는가?
승용차 타고 불빛 요란한 스키입구를 올라가거냐 잘 닦여진 슬로프와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서 내려오는 방식이 아니다
그저 힘 닿는 데까지 스키를 메고 걸어 올라가면서 눈(신설)을 다져 놓고
그 거리만큼 스키로 내려오는 것이어서,
길지도 높지도 않은 산등성이를 온종일 오르고 내리락 하는 것
그게 무슨 재미냐고 하겠지만 그때는 그렇게 힘들여 반복되는 일이
마치 숨이 차서 거칠게 입에서 뿜어 나오는 입김처럼 힘차고 즐거운
겨울행사이자 젊음의 특권였다
우선 눈이 많이 쌓여 있는 곳을 골라 스키를 타고 내려오지만
많은 식구가 올라가고 내려오기를 종일 뭉개고 나면 스로프가 없어져
이튿날은 다른 곳을 찾아야 하고
그러다 보면 자주 눈이 내려주지 않으면 이곳 저곳을, 먼 곳까지 찾아야했다
눈이 많지 않은 해는 가까운 진부나 하진부 또는 차항리에서 스로프를 만들었고
심할 때는 안쪽으로 들어간 내차항리까지, 어디든지 눈이 쌓인 곳을 찾아다녔다
이렇게 대학 산악부의 악명높은(?) ‘적설기 동계훈련’은 나중에 생긴 대관령 산장이
개장할 때까지 횡계에서 지속했다
첫댓글 다음 주가 추석이네
친구들 명절 잘 보내시기를
외진 현장 나가있던 감독관들도 집으로
흩어졌던 가족 부르고
소홀했던 친지들 찾아 뵙고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나같은 불우이웃 도와주시고 ㅋㅋ
염씨3부자 회의를 해 추석부터 차례를 생략하기로,
아들들이 지 엄마 차례상 준비하는게 힘들어보이는지?
모처럼 얻은 허전함을 2박3일 설악산 다녀왔습니다, 오색에서 일박후 이른아침 여관을 나서 대청봉을 오른후 희운각대피소에서 공룡능선을 거쳐 비선대로 내려와 다시 속초에서 일박후 귀경
홀가분히 혼자서 이생각 저생각 하면서,
몇년간 하루 15시간 이상 걷는 산행을 안해와서
다리 근육을 걱정했는데
무릎보호대와 사용안하던 스틱까지 총동원
오색부터 청봉까지 내내 비를 맞아 결국.
저체온증으로 중청 대피소에서 안정과 기력회복 한 뒤
오한과 근육마비가 풀리기를 기다려
공룡능선- 마등령을 거쳐 소공원에14시간만에 도착
이런 강행군을 견딜만한 체력이 안되는데
무리를 했어요
특히 오색에서 출발하는 4시간 오르막 길은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도 내겐 체력 안배가 안되는 길, 해발 400에서 17 00 m 를 곧바로 오르니,
보이 는 것은 앞사람 등산화 뒷굼치와 엉덩이뿐
다음부턴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한계령 휴게소로 올라야,
그 코스는 700m에서 시작하는 ,
우선 시야에 들어오는 조망이 있고,
쉬어도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해주는 능선길이어서,
휴유증으로 온 다리 근육이 굳어져 2~3일 걸려야
풀어질 듯
걸음 뗄 때마다 아이고 소리가 저절로 나오네
추석명절을 대청 봉에서 지낸 명호
멋지다!...
자랑스런 내 친구 보고싶네 ~~박정기
연령의 한계를 초과하는 무리한 강행군 같네요.
한편 부럽기도하고요. -노인환
너무 무리하지 말어.
20년전에 울산에서 무박으로 설악산에 갔다 왔는데
오색에서 대청봉거쳐 설악동까지 10시간 정도
걸린 것 같은데 지금은 꿈도 못꿔~김동수
명호 대단허이.
나도 언젠가 대청봉을 가야겠는데 갈수있으려나...?
아주옛날에 신흥사에서 범봉까지 간것이 설악산에서 제일 높은 곳에 간것이고-
지도 펴놓고 명호간곳을 추적해보면서 범봉을보니
그래도 1,134고지네
-울산바위3번 올라간후 내일을 기약한후론
아직 못갔으니 어렵겠지?
동수도 대단허구~ 강효석
나도 오늘 점심은 인천 차이나타운에서하고
인근 부두에 들렀시다.
모두 재미있게 보내시겨.....유승환
나는 오후내내 남자옛날 최고수옜던 이창호와
여자 최고수인최정과의 빅게임을 봤는데
얼마나 스릴있던지 결국 최정이 지긴 했으나
왠만한 남자 프로는 못당할듯 히히 ㅡ이상호
와우~대단한 체력입니다!
나도 몇년 전부터 화려한 차례상은 없애고
현실적으로 바꾸었슴
나도 그날 설악산에 있었는데..
.전부터 하고 싶었던 울산암 돌잔치코스 끝내고
차례모시려고 귀가하였습니다 ㅡ이창호
90년도에 관광버스를 타고 오색에서 대청봉을 오른후
한계령으로 내려온 적이 있습니다.
그 코스로 아니. ,다시 오색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한 번 가고 싶은데,
체력이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감히 시도를 못하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설악에 다녀 오신 것,
잘 하셨다고 생각합니다.ㅡ최 재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