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도서관에서 시간 잘가는 책만 읽고 있습니다. 뭔가 고민하게 하는 책이나 조금 어려운 책들은 읽기가 힘드네요.
<삼국지 같은 꿈을 꾸다>라는 책은 현재 우리나라에 살던 주인공이 갑자기 중국 삼국시대에 태어나 가후, 노숙, 육손, 제갈량, 방통 같은 기라성 같은 책사들과 여포, 위연, 태사자, 허저, 조운등 용장들을 지휘하여 조조, 유비, 원소등을 물리쳐서 중국을 통일하고, 꽃같은 여인 여섯 일곱명과 결혼하고 황제까지 되는 이야기인데 별로 재미가 없었습니다. 삼국지 내용을 참조하여 슬쩍슬쩍 내용을 바꾸면서 무려 10권이나 이야기를 전개했는데 지루하고 뻔해서 겨우 읽었습니다. 삼국지를 읽을 때의 흥분, 재미, 통쾌함, 안타까움등이 전혀 안느껴져서 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읽은 책은 일본의 젊은 작가 <아오시키 유고>가 쓴 추리소설 <체육관의 죽음>, <수족관의 죽음>, <도서관의 죽음>으로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게으르고, 건방지고 자기 현시적인 고교탐정이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인데, 범인의 기발한 트릭과 이를 해결하는 탐정의 논리적인 추론이 부딪치면서 재미를 이끌어냅니다.
국민학교 때 <셜록 홈즈>나 <괴도 루팡>등도 읽었지만, <검은 고양이>, <모르그가의 살인>, <황금충>등 <에드가 앨런 포우>의 추리소설이 제일 재미있었습니다. <검은 고양이>를 너무나 인상깊게 읽어서 괜히 고양이가 무서워져 있었는데, 그때 마침 마루에 앉아있던 나에게 옆집 고양이가 안기는 바람에 깜짝 놀라서 그 고양이를 집어 던졌더니 그놈의 고양이도 놀랬는지 발톱을 세워 내 손등을 할켜 상처가 나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고양이하고는 아예 상종을 하지 않았는데, 벌받는 건지 지금 고양이 3마리와 같이 살고 있습니다.
< 모르그가의 살인>에서 추리소설 역사상 최초의 탐정인 <듀팡>이 친구와 거리를 같이 걷다가 친구의 심리 상태를 논리적 추론으로 알아 맞추는 장면은 정말로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황금충>은 암호풀이가 나오는 소설로 암호문을 풀어가는 과정이 너무나 딱 들어맞어서 재미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로 나이가 들어서 <아가사 크리스티>나 <엘러리 퀸> 등 여러 추리 소설을 많이 읽었습니다. 특히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은 이삼십권 사서 읽었는데,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이 한권 두권 들고가서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한 아가사 크리스티의 전집 중에서 이삼십권을 또 사서 읽었습니다. 얼마 전에 <삐뚤어진 집>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원작이 <아가사 크리스티>라고 해서 '내가 안본 소설이구나'하고 책장을 찾아보니 그 책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읽었다는 소리인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이나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너무나 유명하고 그 트릭이 아주 교묘해서 기억이 나는 작품이지만 <아가사 크리스티>의 다른 소설은 다시 읽어보아도 줄거리가 생각나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아마도 추리과정을 읽을 때는 감탄하면서 읽지만 수십권의 추리소설을 읽다 보면 뭐가 뭔지 헷갈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열린도서관에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몇권이 들어와서 <침대의 시체>와 <다섯마리의 아기돼지>를 골라서 읽고 있는데 처음 읽는 소설이네요.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살인을 예고합니다>를 읽었습니다.예전에 <예고 살인>이라는 제목으로 된 같은 책을 읽은 것 같기도 한데, <살인을 예고합니다>를 읽어보니 줄거리가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처음 읽는 것 같았습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에서 범인이 누구인지 이제는 대충 감이 옵니다. 알리바이가 완벽한 사람, 절대 범인이 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범인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이번 <살인을 예고합니다>도 앞부분을 읽었을 때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번 소설의 등장 인물 중에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보고 이렇게 살면 <거의 도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초반에 <번치>라는 부인이 이런 소리를 합니다. "나처럼 살면 행복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당신이 있고 수잔이 있고 에드워드가 있고, 다들 내가 아무리 바보 같은 소리를 해도 좋아해 주잖아요. 게다가 태양은 밝게 빛나고! 이렇게 널찍하고 예쁜 집도 있고!" 남편인 목사가 "크기만 하고 낡아서 외풍도 심한 집이 뭐가 좋냐?"고 하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큰 집 청소가 작은 집보다 어려울 것 없어요. 자루 걸레로 쓸고 다니면 훨씬 빨리 끝나는걸요....그리고 난 널찍하고 추운 방에서 자는 것도 좋아요. 코만 내놓고 이불로 둘둘 감고 누우면 아주 아늑해서 천당이 이렇겠지 싶어요. 그리고 집 크기야 어떻든지 간에 껍질 벗기는 감자 개수나 설거지 양은 똑같잖아요...." 그러면서 남편의 시답지 않은 설교를 너무나 재미있어 하면서 남편에게 "자부심을 가질만 해요."라고 말합니다. 참으로 유쾌하고 즐겁게 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후반에 <괴들러 부인>이 나오는데 이 부인은 평생 병으로 고생했고, 아이와 남편을 먼저 보내고 외로운 미망인으로 지냈다가, 오랫동안 가망없는 환자로 지낸 여인이었습니다. 아이는 겨우 두 살 때 죽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난 인생의 모든 즐거움을 만끽했답니다. 지금은 아닐지 몰라도 예전에는 분명히 그랬어요. 예쁘고 활달한 처녀 시절을 보냈고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했고 죽을 때까지 남편 사랑을 듬뿍 받았으니까요. 아이는 죽었지만 2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잖아요. 육체적인 고통을 많이 겪었지만 고통을 알아야 고통이 멈추는 순간의 완벽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법이랍니다. 거기다 모두들 나에게 잘해 주었으니.....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여자였어요."
아이가 겨우 두 살에 죽었다면 평생 슬픔으로 기억될 수도 있을텐데 2년 동안 소중한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었다고 고마워 합니다. 인생을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남은 여생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