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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의 하나님(마 1:18-25)
할렐루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거룩하고 복된 성탄의 아침입니다.
서로 인사를 나눌까요?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기념일입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
오늘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감사예배를 통하여, 임마누엘이신 우리 주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심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
오늘도 임마누엘의 은혜가, 여러분의 생애와 자녀와 각 가정에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아기 예수님으로 오셨을 때, 주의 사자가 미리 오셔서, 요셉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장차 태어날 아기의 이름도,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미리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21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22-23절)
훗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다음, 승천하시기 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에도, 임마누엘로 오셨고, 하늘로 돌아가신 다음에도 임마누엘로 계십니다. 한 마디로 주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보다는 “누군가 나와 함께 있다”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 주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하여 주십니다.
신명기 4:31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힘이 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어버리기 때문에,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절망하고, 때로는 삶을 포기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와 항상 함께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이름은 임마누엘 예수입니다.
임마누엘! 그 이름은 죄와 허무와 고독으로, 죽어가고 있는 인생들에게, 힘과 위로와 소망을 줍니다.
임마누엘! 그 이름은 우리에게 임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은혜로운 이름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사람을 이용하고, 때로는 학대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고, 자기 마음대로, 다른 사람을 조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우리를 위하여 사셨고,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셨고,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셨고, 우리를 위하여 천국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우리를 위하여 이 땅의 삶을 사셨습니다.
얼마나 멋진 예수님이십니까? 이런 예수님을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늘 기억해야 합니다.
찬송가 305장인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를 작사한 존 뉴턴은 한때 포악한 노예 상인이었으며, 이름난 탕자였습니다.
그러한 그가 예수 믿고 변화되어 목사가 되어, 40년 동안 주님의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죤 뉴턴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주님이 나의 죄를 다 용서 하셨다고 하지만, 나 같은 노예 상인을 용서하셨을까? 정말로 나 같은 탕자를 용서하셨을까?”
문득 문득 과거의 죄가 떠오를 때에는, 온몸에 소름이 돋고, 두려움에, 마음이 떨렸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벽에다가, 이사야 43:4절 말씀을 써 붙여 놓고, 그 말씀을 되뇌이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노라”
그는 일생 동안, 구원 받고, 용서 받은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있어서,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입니다. 별볼일 없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받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존 뉴턴은 82세에 숨을 거두면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 나라로 간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 나라로 가면 아마 세 번 놀랄 것이다. 처음엔 하나님 나라에 오리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던 사람들이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 나라에 가면 반드시 만나리라 기대했던 사람이 안 보이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고, 세 번째는 노예 상인인 내가 그 자리에 와 있다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
하나님은 포악한 노예 상인과도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훌륭한 목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성경 말씀을 기록한 세리 마태와도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예수님의 열두 제자인 사도 마태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성탄입니다. 성탄은 하나님이 죄인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어떤 죄인일지라도 다 품으시고 영접하시고 구원하시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입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
이 성탄의 메시지가, 지치고, 상하고, 낙심되고, 외롭고, 고독한 이 시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이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죄악으로 어두운 세상에, 한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기꺼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죄를 속죄하는 어린양이 되신 하나님의 은혜는, 이 땅의 모든 죄와 사망의 사슬에서, 우리를 건져 내고, 해방시켜 주십니다. 참 자유를 주십니다. 이천년 전,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접하는 이들의 심령 속에, 다시 잉태하시고, 영원히 그와 함께 하여 주십니다.
왜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일까요?
빌립보서 2:6-8절을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우리 주님은, 죽기 위하여 오셨다고 했습니다. 살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십자가에서 죽기 위하여 오셨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다는 이야기는, 창세기 3:15절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많은 나무를 심으셨습니다. 동산 중앙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나무를 심으셨습니다. 그리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와와 아담이 뱀의 꾀임에 빠져 따먹고 말았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죄를 범하였습니다. 에덴동산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우리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에덴동산을 회복시키고자 오셨습니다. 새하늘과 새땅을 주시고자 오셨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고자 오셨습니다. “네 죄를 사하노라”고 말씀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우리의 죄가 사해졌다는 것을 보여주시고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채찍을 맞으셨습니다.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 죄를 대신하여,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사야 53:6절을 보면,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죄악을 대신 담당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21절을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고, 우리들에게 참 자유를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친히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과 같이 주무시고, 같이 일어나시고, 같이 잡수시고, 같이 마시면서, 같이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병자를 고쳐 주시고, 슬픈 자를 위로해 주시고, 죄 있는 자를 사해 주셨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마지막에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서 사흘 만에, 또한 우리를 위하여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임마누엘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께서는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계십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우리가 약할 때 힘이 되십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우리가 불안할 때 평안이 되십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우리가 길을 잃을 때 안내자가 되십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우리가 죽을 때 영원한 생명이 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합니다.”(고후 4:8-9)
임마누엘의 주님을 우리의 마음 속에 모시고 살아갈 때, 이 험한 세상에서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주님의 오심을 축하하는 이 크리스마스에 임마누엘 주님을,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인간으로 오셨을까요? 하나님이 하나님이신 그대로 계셔도, 그분은 분명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신 그대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오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이신 그대로도 믿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이, 정말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잘 믿었겠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과 그 사랑을 어리석은 인간들이 더 잘 알고,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친히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아기 예수님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친근히 대하고, 그가 주시는 것을 잘 받아들이도록,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 우리 곁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신 이유는, 바로 우리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고, 그 모습 그대로 지금도 저와 여러분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날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우십니다. 이런 임마누엘의 신앙이 있다면, 누가 뭐라 해도, 어떤 위험이 있어도 담대하게 여러분의 길을 걸어갈 수 있고, 진리를 지킬 수 있으며,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의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그리고 그는 평생을 임마누엘로 사셨으며,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도 “임마누엘”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8:20절을 보면, 예수님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토록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임마누엘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 곁에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으로 오신 예수님을 날마다 기억하시고, 늘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아갈 때에, 무엇보다도 가장 소중한 것은, 돈이나 명예나 권세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을, 계속 유지하지 못하고, 예수님과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는 안타까움이, 우리들에게 늘 있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인생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계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내가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십시오.
올 한 해를 되돌아보십시오.
올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분노와 혈기가 있었습니까?
상처 주고 상처를 받았습니까?
미워했고, 또 미움을 받기도 했습니까?
사랑하며, 사랑받으며 사셨습니까?
나누며, 베풀며, 섬기며 사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사셨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죄악 덩어리입니다. 험담하고, 상처 주고, 분노하고, 관계를 깨뜨리고, 미워합니다. 모두가 자기 자신을 세우려는 욕망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들입니다. 그래서 외롭고 슬픈 인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있고 싶으셔서, 임마누엘의 이름으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고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까?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고 할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이 임마누엘로 오셨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 가운데에서도,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지치고 상한 마음 가운데에도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병들고 아픈 육신 가운데에서도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어제도 함께 하셨고, 오늘도 함께 하시고, 내일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과거도 함께 하셨고, 현재도 함께 하시고, 미래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이 이천년 전에 우리와 함께 임마누엘 하시기 위해서,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신 것처럼, 오늘도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임재하셔서, 임마누엘 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연약할 때나 좋지 못한 환경에서나, 태산 같은 큰 문제 앞에서나, 죽음의 골짜기에 있을지라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믿고, 남은 한 주일 동안, 올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2017년도 새해에는, “임마누엘의 하나님”과 매일 매순간 함께하므로, 말씀에 순종하므로,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큰 은혜와 능력을 체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기쁠 때나 즐거울 때나, 힘들 때나 어려울 때나, 병들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올 한 해, 항상 함께 하여 주셨던 것처럼, 우리의 남은 생애도 항상 함께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