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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성적도[孔子聖跡圖].
공자의 일생을 그린 그림으로 대략 명나라 때 출현하였으며, 채색본, 목판본, 석각본 등 다양하게 존재함.
공자 성적도 (靑島 國學公園) http://cafe.naver.com/acebike/2956
001 先聖小像[선성소상]. 공자 안회와 진 나라를 돌아 봄.
002 尼山致禱[니산치도]. 모 안정재가 니구산에 기도를 드리고 공자를 낳다.
003 麒麟玉書[기린옥서]. 기린이 옥서를 전하다.
004 二龍五老[이룡오로]. 기원 전 551년 팔월 스무이렛날. 공자가 태어나던 날 용 두 마리가 지켜 주었으며 다섯 신선이 내려왔음.
005 鈞天降聖[균천강성]. 하늘이 공자의 탄생을 축복하여 노래를 보내다.
006 俎豆禮容[조두예용]. 5,6세에 제사 지내는 예의를 연습하다.
007 入平仲學[입평중학]. 공자 7세에 안평[晏平] 중반 학교에서 공부하다
008 織司委吏[직사위리]. 공자 20살 때 계손씨의 위리[委吏] 벼슬을 하였는데 무게와 기록이 정확하였다.
009 命名榮贶[명명영황]. 기원전 532년 아들이 태어났을 때 노 소공이 잉어를 하사하여 이름을 리[鯉], 자를 백어[伯魚]라 지음.
010 織司乘田[직사승전]. 기원 전 531년 21세 때 계씨의 승전리라는 벼슬을 맡아 소와 양이 살찌고 수도 늘었다.
011 學琴師襄[학금사양]. 사양에게 거문고를 배움.
012 太廟問禮[태묘문예]. 노태묘에서 제사 지내는 것을 도와 주면서 매사 질문을 하였는데 공자는 “이 것이 바로 예의를 아는 것이다”라고 함.
013 大夫師事[대부사사]. “공자는 성인후세이며, 훌륭한 예의를 갖추었으니 스승으로 모셔야 한다”며 몽희자와 남궁경숙이 스승으로 모심.
014 問禮老聃[문예노담]. 노자가 주나라의 예의를 잘 알기 때문에... 남궁경숙과 가서 노자에게 예의에 대하여 물었다.
015 訪樂萇弘[방락장홍]. 장홍이 공자의 품행을 찬양하자 공자는 “나는 단지 예의와 음악을 즐겼을 뿐이다”라고 함.
016 在川觀水[재천관수]. 공자가 강물을 보고 있는데, 자공이 이해하지 못하였다. 공자는 “강물이 쉬임없이 흐름이 마치 도의 유전과 같아서 군자는 이렇게 물을 보면 꼭 한다”라 하였다.
017 觀器論道[관기논도]. 공자는 “만즉복”이라하였다. 즉, 거만하고 자만하면 필경은 실패의 복선을 묻어두는 것이다.
018 獵轎從魯[엽교종노]. 공자가 제사 지낼 때 사용하는 물품은 모두 먼저 문서로 규정한 것이다. 종래로 강탈해 온 포획물로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019 退休詩書[퇴휴시서]. 계씨가 권력을 독점하여 공자는 벼슬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 시서연구에 전념하며 예의와 음악을 정하여 그에 따라 공부하는 제자들이 더욱 더 많아졌다.
020 韋編三絶[위편삼절]. 공자는 역경을 즐겨 읽었다. 연속이나 죽간을 동여매는 가죽띠가 여러 번 끊어졌다. 공자 이르기를 내가 여러 해 역[易]을 연구했는데... 역경을 많이 읽으면 큰 과실을 지지 않는다. 라 함.
021 晝息鼓琴[주식고금]. 공자가 낮에 거문고를 탔는데 그 소리가 여느 때와 달라 민자건과 증자가 물으니 “너희들이 이 소리의 다른 점을 들어 냈으니 음악을 연구해도 되겠다”라 하였다.
022 論穆公覇[논목공패]. 경공이 “진목공은 어찌하여 패주로 될 수 있는가?”고 묻자 공자 답하기를 “목공은 원대한 포부에 행위가 단정하고 인재를 중시하니 당연 패주가 될 수 있다”고 이름.
023 觀鄕人射[관향인사]. 공자는 관향인사라 하였다. 감탄하여 말하기를... “지모가 바르지 않으면 목표물을 명중하지 못하고 매 화살이 모두 맞은 사람은 필경 덕행이 좋은 사람이다”라 하였다.
024 拜胙遇途[배조우도]. 공자는 양대를 만나려 하지 않았는데, 길에서 우연히 만나니 그가 벼슬을 하라고 권고하였다.
025 泰山問政[태산문정]. 태산을 지나는데 한 부인이 이르기를 남편과 아들이 범에게 잡아 먹히였다기에 왜 이사를 가지 않느냐? 고 물으니 “이 곳은 과중하고 잡다한 세금이 없다”고 하는 말을 듣고 과정이 범보다 무섭다고 하였다.
026 景公尊讓[경공존양]. 공자가 경공을 만났을 때 예제대로 경공이 먼저 가시라고 이르다.
027 晏婴沮封 [안영저봉].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를 물어오니 “재력을 아껴야한다”고 하였다. 경공은 땅을 상으로 주자고 하였는데 안영이 반대하였다.
028 知魯廟災[지노묘재]. 공자는 진나라에서 노 나라의 환공을 알았다. 리[釐]의 묘가 재화를 입었을 때 “그들의 공득이 부족하여 유지하기 힘들다”고 하였다.
029 不對田賦[불대전부]. 계손이 전부에 대하여 물었을 때. 공자는 답하지 않았다. 군자는 응당 예의의 기준에 따라 밭세를 징수해야 된다고 하였다.
030 受饩分惠[수희분혜] [餼, 饩 - xì, 음식물 보낼 희]. 계환자가 보내준 식량을 빈곤한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자공이 이해하지 못함. 공자는 “계씨의 예의와 혜택이 저 한 사람에게 미치는 것 보다 몇 백 사람에게 미치는 것이 낫다.”고 이름.
031 射矍相圃[사확상포]. 사확포에서 활을 쏠 때 자로가 주위사람들에게 이르기를... 효와 예에 준하여 맞추지 못한 장수는 들어와 설 수 없다 며 골라내니 절반이 돌아갔다.
032 舞雩從游[무우종유]. 무우대 아래서 번지[樊遲]에게 덕을 숭상하고, 간악함을 닦는 도리를 전하다.
033 饋食欣受[궤식흔수]. 다른 사람이 보낸 도기는 제사품 마냥 보인다고 하였다. 그는 도자기의 우열을 중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034 觀象知雨[관상지우]. 공자가 하늘을 보니 달이 가려 나갈 때 우산을 가지고 나가야 함을 알았다.
035 步游洙泗[보유수사]. 공자가 자주 사수 물가를 산보할 때 안자는 한 발자국 뒤에 바짝 따라 간다.
036 毖儆孺悲[비경유비]. 유비가 공자에게 회견을 요청하였을 때, 병을 핑계 삼아 미루고, 비파를 선물로 보내 깨닫게 하였다.
037 農山言志[농산언지]. 공자가 농산을 유람하며 제자를 평가 함. 자로는 용감하고 자공은 웅변에 능하며, 안연은 유가문화를 추앙하니 공자가 특별히 칭찬하였다.
038 四子侍坐 [사자시자]. 공자가 제자들에게 무엇을 하고픈가 말하라고 할 때 증석[曾晳]이 기수에서 목욕을 하고 봄 바람을 맞고 싶다고 할 때 찬동하다.
039 過庭詩禮 [과정시예]. 공자가 아들[鯉]에게 가르친다. “시를 배우지 않으면 교제하지 못하고, 예를 배우지 않으면 입신하지 못한다.” 고...
040 命賜存魯[명사존노]. 자공[子貢]이 열국을 돌며 유세하기를 齊나라는 魯나라를 공격하지 말라 이르며 공자의 존노난제[存魯亂齊] 꿈을 실현하였다.
041 化行中都[화행중도]. 공자가 중도를 재상으로 임명하자 여러나라들이 따라하다.
042 敬入公門[경입공문]. 공자가 공문을 들어갈 때 공경하고 조심하다.
043 羵羊辯怪 [분양변괴] [羵 fen 땅 속 괴물 분]. 노 나라에서 우물을 파는데 괴물이 나왔다. 이에 공자는 “세상만물에는 요괴가 있는데 땅속에서 나왔으니 ‘분양[羵羊]’이라 하자”고 말했다.
044 誅少正卯[주소정묘]. 공자 53세. 대사구로 있을 때 난정대부[亂政大夫] 정묘를 주살하였다.
045 夾谷會齊[협곡회제]. 기원전 500년. 노와 제가 협곡에서 만났을 때 노 나라를 도와 외교상 승리를 얻다.
046 歸田謝過[귀전사과]. 제 나라가 침범한 노나라 땅을 돌려 받다.
047 禮墮三都[예타삼도] [堕, 墮. 떨어질 타, duò]. 공자가 노 나라 정공에게 일러 편제에 맞지 않는 비[費], 후[郈], 성[郕] 지방의 성벽을 헐어내다.
048 赦父子訟[사부자송]. 공자가 사구라는 벼슬로 재판을 할 때 부자가 소송을 걸어왔는데 아비가 취소하였다. 이에 사면을 해 주며 그 것이 효에 맞다 고 하였다.
049 侍席魯君[시석노군]. 노 나라 애공[哀公]이 나라 다스리는 법을 묻자 노역과 세금을 줄이고, 죄를 멀리하고 오래 살게 하는 것이라 이르다.
050 儒服儒行[유복유행]. 노 나라 애공이 유복을 공자에게 유복에 대하여 묻자 “군자는 자립[自立], 자수[自守], 근정[近情], 강의[剛毅]... 등 유가의 조행을 준수함이지 옷을 입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함.
051 貴黍賤桃[기서천도]. 공자는 밥을 먹고 복숭아를 먹었다. 밥은 제사상에 올리지만 복숭아는 그렇지 못하다.
052 子貢辭行[자공사행]. 자공[子貢]이 신양에 가서 벼슬을 할 때 공자 이르기를 근면하고, 공평하게 일을 보며 청렴하게 일하라 이르다.
053 子羔仁恕[자고인서]. 자고의 집권은 인자하다. 내란 시기에 처벌 받은 사람을 살려주니 공자가 듣고 칭찬하였다.
054 因膰去魯[인번거노]. 제국의 노공은 많은 제물을 나누어주지 않아 공자는 벼슬을 그만두고 천하를 주유할 수 밖에 없었다.
055 放鯫知德[방추지덕]. 위국에 가니 어부가 뱅어를 잡아 작은 것을 놓아 주었다. 이로 복자천[宓子賤]의 도덕교화가 범상치 않음을 알 수가 있다.
056 儀封仰聖[의봉앙성]. 위나라 관원이 공자를 만나 “공자는 하늘에서 백성을 교화 시키러 왔다”고 말했다.
057 靈公郊迎[영공교영]. 위나라에 갔을 때 영공이 영접을 하였으며 벼슬 할 기회가 있었다.
058 適韋擊磐[적위격반]. 공자가 위 나라로 가는 중에 제자들과 바위를 두드리다. 孔子說 : “好堅決呀! 沒法說服他了.”
059 沐浴請討[목욕청토]. 진환[陳桓]이 제간공을 죽임. 공자가 목욕 뒤에 애공을 만나 출병하여 진환을 치자고 하였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060 丑次同車[축차동차]. 위 영공과 부인이 함께 여행하는 뒷차를 타라 할 때에... 미덕보다 미인을 좋아한다고 하며 이는 위국과 멀어지는 일이라 말했다.
061 靈公問陣[영공문진]. 위의 영공이 군사에 대하여 물었으나, 공부하지 않아 대답하지 않았는데... 다음날 담화 때 영공이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고 있어, 공자는 실망하고 위를 떠났다.
062 匡人解圍[광인해위]. 공자가 위국을 떠나 진국에 닿았을 때... 광인지역을 통과하는데 양화[陽貨]인지 알고 5일이나 잡아 두었다가 오해가 풀려 놓아주었다.
063 西河返駕[서하반가]. 공자가 진국으로 가려고 황하에 이르렀을 때 조간자[趙簡子]가 정권을 잡고 어진 대부들을 죽였다는 소리를 듣고 돌아왔다.
064 脫驂館人[탈참관인]. 위나라로 가는 길에 관원이 죽자 곡을 하며 몹시 슬퍼하고 말 한필을 내주며 제사에 쓰게 하였다.
065 宋人伐木[송인벌목]. 조 나라로 가는 길에 송 나라에서 사마 환퇴[桓魋]가 큰 나무를 베어 공자를 해치려고 하자 공자가 “그가 나를 어찌하겠는가”고 말했다.
066 過蒲贊政[과포찬정]. 공자가 포 지방에 닿아 재상으로 있는 자로가 물과 다리를 잘 다스리는 것을 보고 크게 칭찬하였다.
067 忠信濟水[충신제수]. 물이 30길이나 되는 험한 강에 자라와 게도 살지 않는 곳을 한 사람이 헤엄쳐 건넘에 공자가 물으니 “마음 속에 믿음이 있으면 능히 건널 수 있다” 고 하며, “당신들도 강을 믿고 건너기를 원하면 능히 건널 수 있다”고 함.
068 楛矢貫隼[고시관준]. 새 한 마리가 거친 화살대와 돌촉으로 된 화살을 맞고 죽었다. 공자 왈 : “이 화살은 숙신씨[肅慎氏] 것이다” 고 말할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069 微服過宋[미복과송]. 공자가 정 나라로 가는 길에 제자들과 헤어지고 초라한 몰골이 되었을 때 자공[子貢]이 말하기를 이마가 요임금 같고... 목이 어쩌고 어깨는 저쩌고 성현 같다고 하니 공자 이르기를 상가집의 개와 같다고 답하다.
070 五乘從游[오승종유]. 공숙씨[公叔氏]가 반란을 하여 공자를 못 지나가게 하자 제자 공양유[公良孺]가 차 5대로 호위하여 포를 지나 위 나라로 호송하였다.
071 子路問津[자로문진]. 공자가 채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강구에서 밭을 가는 걸익[桀溺]에게 나루터를 물으니 “우리를 따라 난세를 피하는것보다 못하다”고 이르고 계속 밭을 갈았다.
072 陵陽罷役[능양파역]. 공자가 진후[陣侯]에게 이르기를 “문왕은 건축을 하고 백성들은 아들같이 일을 해 주는데 어찌 사람을 죽이는가!”고 하자 그 일을 멈추었다.
073 紫文金簡[자문금간]. 붉은 참새가 빨간 편지를 물고와 양왕전에 내려 놓자 공자가 “이 것은 우증[禹曾]이 차고 있던 보물인데 하늘이 너에게 준 선물이다” 고 하였다.
074 在陳絶糧[재진절량]. 진, 채나라 대신들이 공자일행을 포위하였다. 양식은 다 떨어지고 제자들도 병이 났지만, 공자는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불렀다. 뒤에 초 나라에서 파병하고 영접하였다.
075 受魚致祭[수어치제]. 공자가 어부에게 물고기를 받아 제사를 지내는데 썼다.
076 題季札墓[제계찰묘]. 계찰[季札]이 아들을 영[嬴]과 박[博] 사이에 묻었다. 이에 공자는 “延陵季子之墓”라 써 넣었다.
077 楚狂接輿[초광접여]. 공자는 초 나라의 광인 접여[接輿]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였으나 그리하지 못하였다.
078 子西阻封[자서조봉]. 초국의 소[昭]왕이 공자에게 서사[書社]벼슬을 주었으나 자서[子西]의 권유로 맡지 않고 위국으로 돌아감.
079 觀周明堂[관주명당]. 공자가 주[周]나라 묘의 높은 문과 담의 위용을 보고 “이 것이 곧 주조의 번창원인이다”고 하였다.
080 金人銘背[금인명배]. 공자가 후직[後稷]묘의 한 동인을 보았는데 입이 봉해지고 등에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말을 많이 하지 말고 조심하라고 경고를 줌. 그 것이 화를 부른다 이름. 또한 입이 일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081 山梁歎雉[산량탄치]. 공자가 산량을 지날 때 마침 꿩이 물을 마시고 모이를 먹는 것을 보고 감탄하며 말했다. “산량의 꿩이 때를 만났다.” 자로[子路]가 두 손을 모아 절하자 그 옆으로 날아갔다.
082 孔子延醫[공자연의]. 공자의 병이 심하여 정도를 실행하기 어렵고 사회 정치가 암울해지고 자신의 일을 추진할 힘도 없다.
083 作猗蘭操[작의란조].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와 의란초[猗蘭草]를 저술하고 유수와 같이 흐르는 세월에 늙음을 을 한탄하다.
084 [武城絃歌[무성현가]. 자유[子游]가 무성관리를 맡았다. 공자가 무성에 닿아 거문고 타며 부르는 노래를 듣고... 군자학도와 소인이 알아듣게 지휘하는 자유의 집정법을 알고 웃으며, “닭을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랴”고 했다.
085 杏壇禮樂[행단예악]. 공자가 노국으로 돌아와 벼슬을 하지 않고 매일 가야금을 타며 제자들과 ‘書’, ‘詩’, ‘樂’, ‘易’ 등을 전수하다.
086 克復傳顔[극복전안]. 안연[安淵]이 인에 대해 묻자 “자신의 말과 행동이 모두 예에 맞는 것”이라 이르니 재차 묻기에 예에 맞지 않는 것은 보지 말며... 예에 부합하지 않는 말은 듣지 말고 말하지 말며, 그런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인[仁]이라 이르다.
087 老經傳曾[노경전증]. 공자가 “효는 처음과 끝이 없다”. “효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며 효경[孝經]을 증자에게 전수하다.
088 琴吟盟壇[금음맹단]. 공자가 노성을 나가 은행나무 아래를 지나가다 머리를 돌려 자공[子貢]에게 “여기가 예전에 장문중이 맹세한 곳이다”고 말하며 시를 읊고 거문고를 탔다. 暑往寒來春復秋 夕陽西下水東流 將軍戰馬今何在 野草閑花滿地愁.
089 讀易有感[독역유감]. 공자가 역경의 損과 益까지 보고 탄식하니 자하[子夏]가 왜 그러냐?고 물었다. 줄어들어야 할 것은 늘어나고... 늘어나야 할 것은 줄어들어 그렇다 고 하니... 자하가 공부가 어려워 학문이 늘지 않는가? 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그 뜻이 아니고 학문이 높을수록 겸손하여야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진보한다 고 함.
090 望吳門馬[망오문마]. 공자가 안자[顔子]와 태산에 올랐을 때. 오국 도성 멀리 흰 명주 같이 보이는 백말을 알아 보았다. 그와 같이 공자는 신명하다.
091 萍實通謠[평실통요]. 초의 소[昭]왕이 강을 건너 빨간큰 물건을 얻어 공자에게 사람을 보내 물으니 평실[萍 實]로 먹을 수 있으며, 오로지 패업을 달성한 인재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고 하니... 자유[子游]가 어떻게 알았는가 물으매 진 나라에 갔을 때 동요를 들었는데... 크고 빨갛고 꿀 같이 달다 해 알았다 고 이름.
092 商羊知雨[상양지우]. 양들이 제 나라로 모여들어 기괴하여 공자에게 사람을 보내 물으니 장차 큰 비가 올 것이니 둑을 정비하고 치수를 잘하라 이름. 멀지 않아 큰 비가 내려 많은 나라가 수해를 격었지만 제 나라는 면했다.
093 骨辨防風[골변방풍]. 오가 월을 침공하여 큰 뼈를 얻었다. 오왕이 공자에게 사람을 보내 어떤 뼈가 가장 큰가 물으니 방풍[防風氏]것이며 차 한 대가 필요하다 이름.
094 跪受赤虹[궤수적홍]. 공자가 저작을 마치고, 목욕을 한 뒤 북두칠성에 고했다. 홀연히 무지개가 내려와 꽃 무늬가 새겨진 황옥으로 변하여 무릎을 꿇고 하늘이 내린 선물을 받았다.
095 聖門四科[성문사과]. 공자의 제자들 중에 덕성이 뛰어나기로는 안연[顔淵], 민자건[閔子騫], 염백우[冉伯牛], 염중궁[冉仲弓]이 있고, 말을 잘하기로는 자아[子我], 자공[子貢]이 있으며, 정무처리에는 염유[冉有], 계로[季路]가 있고, 고대문헌에 능하기로는 자유[子游], 자하[子夏]가 있다.
096 觀蠟論俗[관랍논속]. 자공이 연말 제를 올리는데, 공자가 이르기를... 자네는 알지! 어찌 백일의 일을 하루에 풀겠는가. 문,무왕도 알 것이다. 즉, 긴장도 있고 풀어주는 것도 있어야만이 천하를 다스리는 도리다 고 일러줌.
097 世業克昌[세업극창]. 공자가 쉬고 있는데 돌연 자사[子思]가 탄식을 하며 아비가 나무를 패는데 아들이 지질 못하면 불효다 하니 공자 웃으며 아이가 어찌 그 심정을 알리요 하며 나는 염려하지 않는다 며 가업은 끊이지 않고 번창할 것이다 함.
098 西狩獲麟[서수획린]. 노 애공 14년 서쪽에서 기린을 한 마리 잡았다. 이에 공자 춘추집필을 멈추었다. 계손씨가 기린을 잡았다. 염유가 울며 공자에게 이르기를... 이 것은 인의의 동물 기린이다. 나의 도[道]가 끝이다.
099 夢尊兩楹[몽존양영]. 공자 병중에 있을 때 자공이 문안을 가니 꿈에 두 기둥 사이에 나무가 있는 것을 보았다 더니 7일 뒤에 공자가 죽었다.
100 三壟植楷[삼용식해]. 공자가 죽은 뒤 제자들이 무덤을 지켰다. 각지에서 나무를 가져와 묘 옆에 심었으며 자공[子貢]이 왼쪽에 심은 나무는 무척 크다.
101 治任別歸[치임별귀]. 공자는 사[泗]하 변에 묻었는데 제자들이 삼년 상복을 입었으며, 자공은 6년을 입고 무덤을 지켰다. 뒤에 무덤 주변에 사는 집이 100여호나 되었다.
102 哀公立廟[애공입묘]. 서기 전 479년 애공이 묘를 짓고 제를 올렸으며, 묘 주위에 백 가구를 지었다.
103 漢高祀魯[한고사노]. 노 나라 사람들이 공자 제사를 지냈다 한 대에는 이미 200년이 되었으며 한 고조 유방이 취푸[曲阜]를 지날 때 소, 양, 돼지를 잡아 제를 올렸다.
104 眞宗祀魯[진종사노]. 송 진종도 공묘에 술을 따라 올려 배알[拜謁]하였으며, 현성 문선왕[玄聖 文宣王]이라 추봉하였다.
칭다오에서 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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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금까지 숭배를 받는걸 보면 사람이라기 보다는 신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3월에 청도로 들어가 가까운곳을 여행하고 싶은데 어디가 적합할가요?
태산,제남은 다녀왔고 6일 정도니 멀리는 못가겠고...추천 부탁합니다.
칭다오에 오시면... 탱자원을 들리셔야 하고... 칭다오도 볼 곳이 많은데... 웨이하이 롱청에 장보고 유적이 있고, 엔타이 치샤에는 대지주 모씨장원이 있지요.
@탱이 장보고유적지는 꼭 가보신다고 하시고 마지막 이틀을 청도에서 쉴 예정입니다.
에어부산에서 뱅기표가 아주 저렴하게 나왔어요 탱자원에 가볼수 있으면 좋겠는데요.
바쁜분 힘들게 하면 ...미안해서요...
@아소산 문제 없습니다.
단. 3월 중순에는 귀국하여서...
언제 몇 분이신지 맞춰보지요.
@탱이 3월15일 출발인데 기간이 안맞겟네요.우린 부부만 다닙니다.
양주는 청도에서 얼마나 먼곳인지 알고 싶습니다.기차로 몇시간 가는지요?
@아소산 날자가 들어가 있을 때이군요!
칭다오에서 양저우까지 고속도로는 500km쯤이고 바로 가는 기차는 없습니다. 난징에서 갈아 타셔야 될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많이 돌아 갑니다. 버스를 이용하심이 빠를듯 합니다.
@탱이 네...살아먄 있으면 만나게 됩니다.500키로면 서울보다 조금 머네요.
저희가 11시35분에 내리면 공항옆에 버스터미널이 있는것 같던데...[맞나요?]
13시 이후로 양주가는 버스편이 언제 있는지 알아봐 주실수 있는지요?
@아소산 네!! 그 터미널은 공항에서 동남쪽으로 4km쯤 떨어진 총칭뻬이루[重慶北路] 59호에 있는 치처뻬이짠[汽車北站. 전화 6691 1234]인데 이틀에 한 번씩 있다 하고 12시 반쯤에 온 답니다. 그 버스가 출발하는 곳은 온저우루[溫州路] 2호에 있는 칭다오창투치저짠[青岛长途汽车站 8375 4240 ]인데 9시와 11시 반에 매일 - 사정에 따라서 - 있다 고 하며 그 때가서 예약을 하랍니다. 즐거운 여행이 되시기를...
@탱이 시간이 둘다 안맞네요.돌아가도 난징까지 기차를 타야하나?.......
아직 시간이 있고 맘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나중에 결정할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