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06 - 서영남
텅 비어 있으면,
남에게 아름답고
나에게 고요하다.
추석이 지나고 난 다음에 민들레국수집에 참새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참새도 추석에 가족들이 모였나봅니다.
오랫동안 민들레국수집 소식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9월 29일(화)
고마운 분들이 명절이 서러운 우리 손님들과 나누기 위해서 참 좋은 것들을 많이 나눠주셨습니다.
항상 잊지 않으시고 국내산 항우를 푸짐하게 보내주시는 전남 담양의 창평한우방에서 소고기를 보내주셨습니다. 연안부두 자매님께서 소고기와 삼겹살을 보내주셨고요. 아녜스자매님께서 고등어 세 상자와 자반고등어 한 상자를 선물해주셨습니다. 고마운 분께서 사과 네 상자를 보내주셨고요. 안젤라자매님께서 신종플루 예방을 위해 손세정제를 보내주셨습니다.
9월 30일(수)
주소영 가타리나 할머니께서 수원에서 찾아오셨습니다. 가타리나 할머니는 한글학자이신 주시경 선생님의 막내 따님이십니다. 수원에서 가난하게 사십니다.
친일 매국노의 자손은 대학 교수가 되고 총장이 되고 회사 사장이 되고 회장이 되어 떵떵 거리며 살고 있습니다.
독립투사의 자손은 학교 수위가 겨우 되었고, 회사의 경비가 되어 근근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타리나 할머니는 연금 13만 원이 수입의 전부이십니다. 매달 성당에 교무금으로 만 원을 내시고 또 민들레국수집 몫으로 한 달에 만 원씩 모으셔서 하얀 봉투에 일 년치 모든 귀한 정성을 담아서 선물해주셨습니다. 몸이 약하셔서 차 한 잔도 못 드시고 또 먼 길을 그냥 돌아가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봉선상회에서 어묵과 오이 완두콩 그리고 도라지와 고사리와 도토리묵을 추석 선물로 보내주셨습니다.
2005년부터 지금껏 민들레국수집의 고춧가루를 책임져 주신 고마운 분께서 고춧가루를 듬뿍 선물해주셨습니다.
외환은행 신포지점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햅쌀을 열 포나 나눠주셨습니다.
남구 노인문화센터에서 떡메로 쳐서 만든 인절미를 보내주셨습니다.
동네의 어려운 가정 다섯 가정에 햅쌀 한 포씩 선물해드렸습니다.
10월 1일(목)
옥련동 민들레의 집 식구인 석원씨가 오늘 민들레국수집 근처 동네로 이사를 하는 날입니다.
보증금 백만 원에 월세 십만 원입니다. 방 하나와 부엌 하나인 단칸방입니다. 들어가는 문은 있습니다. 그런데 창문이 하나도 없는 희한한 집입니다. 왜 창문이 없는가 하면 일제 강점기 때 지어진 창고 건물입니다. 한 건물이 여러 작은 방으로 나뉘어져있기에 창문이 없습니다.
석원씨가 방을 보더니 이렇게 큰 방에서 지내는 것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너무 넓다고 합니다. 얼마 만에 자기만의 방을 가져보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합니다. 십 몇 년도 넘었다고 합니다.
장판과 벽지를 싸게 샀습니다. 민들레 식구들이 도배를 거들어주었습니다. 민들레 희망지원센터의 신 선생은 열여섯 번 이사한 실력으로 방 도배를 하루 만에 끝냈습니다. 점심으로 짜장면을 배달시켰습니다. 대성씨가 한 턱 쏘았습니다.
베로니카께서 석원씨가 덮을 이불과 베개를 새것으로 마련해서 보내왔습니다. 석원씨는 오늘부터 자기 방에서 자겠다고 합니다.
인천 12번 버스 제물포지부 노동조합에서 박봉인데도 불구하고 월급에서 조금씩 떼어 금일봉을 전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마운 분께서 사과와 배를 보내주셨고요. 또 고마운 분께서 두유를 보내주셨습니다.
10월 2일(금) 추석 전날
민들레국수집이 쉬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문을 열었습니다.
손님들이 명절이 서글픈 모양입니다.
덕적도 할머니께서 추석 선물로 캔 맥주 여섯 개들이 두 개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손자가 군대 간 후에는 쌀이 훨씬 덜 들어간다고 합니다.
고마운 분께서 콩나물을 네 관이나 선물해주셨습니다. 콩나물 무치고, 콩나물국을 끓였습니다. (주) 희성에서 쌀을 선물해주셨습니다.
민들레 식구인 영두씨가 식사한 다음에 도라지를 만 원어치나 사서 반찬 하라고 주고 갔습니다.
다음 카페에 “민들레국수집” 카페가 있습니다. 오늘 설거지 봉사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민들레 희망지원센터에서 쓸 일회용 면도기 백 개와 일회용 칫솔 천 개를 선물해주셨습니다.
석원씨는 밤새 뒤척였다고 합니다. 노숙하던 때가 떠올라 잠을 자지 않아도 행복했다고 합니다. 오늘은 석원씨 살림살이를 챙겼습니다. 그릇들과 수저를 챙겼습니다. 비누와 치약과 칫솔도 챙겼습니다. 전기밥솥, 중고 텔레비전은 국수집에 있는 것을 가져갔습니다. 냉장고는 베로니카께서 선물해주겠다고 합니다.
우리 손님 한 분이 명절을 지내야하니까 삼만 원만 빌려달라고 합니다. 이만 원만 빌려주었습니다. 돈이 생기면 갚으라고 했습니다. 언제 갚을 돈이 생기면 참 좋겠습니다.
민들레국수집 문을 닫고 여섯시에 베로니카 가게 문도 닫고 모니카와 함께 이마트로 장을 보러갔습니다. 베로니카께서는 좀 더 많이 사려고 하고요. 저는 조금만 사자고 했습니다. 조금만 사야 제가 반찬 만들기가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10월 3일(토) 추석
조금 일찍 일어났습니다. 반찬 만들고 민들레 식구들 맞을 준비를 했습니다. 베로니카께서는 청소하고 모니카는 상을 준비하고 준비된 음식을 나르고 과일을 준비했습니다. 저는 제일 쉬운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반찬 만들기를 했습니다. 식을 차렸습니다. 열두 시에 민들레 식구들이 한껏 치장을 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릇이 모자라서 뷔페식으로 준비했습니다. 접시에다가 음식을 조금씩 담아서 천천히 먹다가 마지막에 밥과 국을 먹자고 했습니다. 그래야 음식을 즐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민들레 식구들에게 음식을 즐긴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음식은 배를 채우는 것이지 맛을 따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배만 부르면 행복했기 때문입니다.
어느새 밥과 국을 먹기 시작합니다. 금세 배부르다면서 상에서 물러나 앉습니다. 베로니카께서 식구들에게 음식을 원하는 만큼 싸주었습니다. 그리고 차비하라고 용돈도 나눠주었습니다.
모니카와 베로니카께서 설거지를 하는 동안 저는 낮잠 조금 잤습니다.
그리고 오후 늦게 영종도 드라이브를 다녀왔습니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습니다. 약간 달무리가 끼었습니다.
10월 4일(일)
민들레국수집 문을 열었습니다.
햅쌀로 밥을 지었습니다.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맛있는 밥입니다. 소고기 무국을 끓였습니다.
“손님, 어제 뭘 드셨어요?”
라면 하나 드셨다는 분. 아예 굶었다는 분도 있습니다.
민들레의 집 식구였다가 자립해서 나간 창환씨가 찾아왔습니다. 요즘은 색시도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살림을 차렸다고 합니다. 간혹 민들레국수집에 와서 식칼을 전부 갈아주곤 합니다. 봉투를 하나 내밉니다. 조금밖에 넣지 못했다며 미안해합니다. 가장 힘들 때 도와줘서 고맙다고 합니다.
고마운 기자께서 배를 두 상자나 선물해주셨습니다. 봉선상회에서 너물을 듬뿍 보내주셨습니다.
영희할머니가 힘이 하나도 없는 모습으로 국수집을 찾아왔습니다. 돈을 벌 길이 없다며 한탄하십니다. 폐지를 주우려해도 자기 눈엔 보이질 않고, 옥수수빵 장사를 해도 히루 천원벌기도 힘들다고 합니다. 쌀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쌀을 한 포 드렸습니다.
10월 5일(월)
민들레국수집 문 여는 시간이 오전 열 시입니다.
그런데 아홉시 오십분에 밥을 뜸 들 시간이 없어서 그만 밥이 떨어졌습니다. 아홉시부터 손님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오전에는 참으로 바빴습니다. 서울에서 온 손님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민들레 희망지원센터도 월요일이 어렵습니다. 센터 이층을 담당하고 있는 석원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손님들 냄새 때문에 죽을 뻔 했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처음으로 온 손님들 때문에 그렇습니다. 몇 시간을 환기시키느라 고생했다고 합니다.
지언 맘께서 둘째 아가씨가 함께 도넛과 주스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공부방 아이들 주려고 했는데 아이들이 배부르다고 해서 봉사자들이 맛있게 나눠먹었습니다.
10월 6일(화)
오늘은 돼지불고기를 내었습니다. 정말 맛있다고 합니다.
오전에는 KBS2 TV “세상의 아침” 촬영이 있었습니다.
10월 7일 오전 7시 40분 KBS2 TV에서 방송된다고 합니다.
첫댓글 신나고 희망찬 민들레 국수집 일상 덕분에 삶이 생생해지는 걸 느낍니다. 훌륭하신 수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