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戰1년]②新냉전 속 전 세계 외교지형도 변화 억지냐, 3차 대전이냐…다시 시작된 군비 확장 경쟁[편집자주] 이달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코로나 팬데믹과 맞물려 세계경제에 인플레이션이라는 커다란 파고를 몰고왔으며 중국과 러시아의 밀착 등 전세계 외교지형에 신냉전 체제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군비경쟁에 불을 붙였고 한국 방위산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뉴스1은 6차례에 걸쳐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국제정세적 의미와 전망을 짚어보고자 한다.
2022년 11월 15일 인도네시아 발리 누사두아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담에서 식량·에너지 안보 회의 전 각국 정상들이 악수하고 있다. 좌측부터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 로이터=뉴스1 ⓒ News1 임세원 기자© 뉴스1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2일 기준 343일째 지속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 세계 외교안보지형을 재편하고 있다. 데탕트에서 소련 붕괴로 이어진 냉전 종식, 브레턴우즈 체제부터 세계무역기구(WTO) 설립에 이른 글로벌라이제이션 심화는 '과거 양차대전과 같은 전쟁은 이제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환상을 심어줬다. 2022년 2월 24일 새벽(한국시각 낮 12시) '금기'는 깨졌다. 경제적으로 너무나 쇠퇴해 더는 위협이 되지 않을 것만 같던 러시아는 유럽 대륙에 '양차대전 이래 최대 규모 전쟁'을 일으키며 '노장의 위력'을 과시했다. 냉전 부활을 막기 위해 미국과 유럽이 단합하고, 러시아는 민주주의 반대편 권위주의 진영에서 '자기편'을 모색하면서 세계는 어느덧 신(新)냉전의 파고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모습이다. ◇가속화된 新냉전…나토, '中 도전'·'러 위협' 명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 나토 회원국 정상들이 2022년 6월 29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담서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뉴스1 2022년 6월 29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합의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신(新)장기전략개념 채택은 신냉전의 '시작'과 '주체'를 분명히 한 사건이다. 미·유럽 30개 회원국 외에도 아태 4개국(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정상이 처음으로 초청받아 참석했다.
당시 회의에서 나토 정상들은 러시아를 "안보에 가장 중대하고 직접적인 위협"으로 명시했다. 나토는 자유주의 진영이 소련과 바르샤바조약기구에 대응해 설립한, '냉전의 산물'이다. 그런 나토의 전략 개념에서도 어느덧 글로벌 협력 심화와 함께 러시아가 '위협이 되지 않으며, 전략적으로 중요한 관계의 대상'으로 정의돼왔는데, 이번 전쟁으로 다시 주적이 된 셈이다. 무엇보다 관심을 끈 건 중국이 처음으로 언급된 점이다. 아태 4개국 정상이 초청받은 이유와도 무관치 않아 보이는 대목이다. 나토 정상들은 "중국은 우리 이익·안보·가치에 도전이 된다"며 "국제사회의 규칙기반 질서를 훼손하려 한다"고 명기했다. 유럽 언론에 따르면 미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으며, 대중국 정책은 미국과 차별화를 원했던 유럽 국가들의 우려로 그나마 표현 수위가 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최근 불거진 북한의 대러 무기 지원설이나 우크라이나 내 친러 반군 도네츠크·루한스크인민공화국과 북한의 수교, 이란의 무인기 지원 등은 신냉전을 '서방 vs. 러·中·北·이란' 대결구도로 정의하는 정황이다. 아직도 유지되는 '냉전의 결과물' 한반도의 분단이 신냉전의 파고를 절대 비껴갈 수 없다는 의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9년 4월 25일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을 마친 뒤 가진 만찬에서 건배하고 있다 ⓒ AFP=뉴스1© 뉴스1 ◇다시 시작된 군비경쟁…더 큰 전쟁 치닫는 세계 군축 노력도 무위로 돌아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나토 중추인 미국·영국·프랑스·독일과, 동아시아 한국·중국·일본·대만 등 8개 국가·지역이 모두 전후 편성 예산에서 방위비를 증액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2023회계연도 국방 예산을 전년 대비 10% 증액한 8580억 달러 편성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미국의 국방비는 2011년 정점을 찍고 감소하다 2016년부터 다시 1~8%씩 증가세로 돌아섰다. 중국과의 전략 경쟁이 시작된 시기와 겹치지만, 지난해 증가율이 두 자릿수로 오른 건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을 반영한다는 분석이다. 독일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대였던 국방예산 비중을 2%까지 늘리기로 했는데, 각종 기금 지출을 포함하면 전년 국방비의 17%까지 증액되는 셈이다. 프랑스의 국방비도 7% 올라 사상 최대 상승폭을 보이고, 영국은 12% 증액한다. 특히 영프독 3개국의 2016년 국방비는 2008년보다 20% 감소하며 긴장 완화 추세를 보이다 급반등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전까지 최대 '화약고'로 꼽혀온 동아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은 지난해 국방비를 7% 늘렸는데, 경제성장률과 비례해 증액해온 결과 20년 전의 10배로 치솟았다. 액수론 현재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동아시아는 그간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충돌을 억제해 왔는데, 이제 중국의 국방지출이 미국의 23%에 육박하며 균형이 깨졌단 분석이다. 대만도 국방비를 14% 늘리기로 했다. 한국도 새해 국방비를 4.4% 증액했다. 일본은 2차대전 패전에 따라 GDP 대비 1%대로 억제해온 방위비 비중을 2%까지 늘린다는 목표를 잡았다. 증액률은 26%에 달한다. 군비 확장 경쟁 배경에는 방산기술 고도화도 있다고 매체는 전했다.
신냉전이 한국 방산업계에 새 기회를 열어주는 점은 흥미롭다. 2022년 12월 6일(현지시간) 폴란드 그디니아의 해군기지에 도착한 '한국산 명품무기' K-2 전차와 K-9 자주포의 첫 수출 물량이 도열되어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뉴스1
◇강대국 대결구도 속 중진국들의 부상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싸고 선명해진 신냉전 구도가 어떤 지역엔 위협과 동시에 '기회'로 떠오른 점은 아이러니다. 튀르키예와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같은 전통적인 '중간 강대국'과,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신흥국이 새로운 국제질서 속 부상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관측했다. 튀르키예는 나토 회원국임에도 서방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채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가로막으며 자국내 오랜 민족주의 갈등 관련 국익을 협상하려는 노련함도 과시 중이다. 나아가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을 유엔과 함께 성사시킨 4자 회담 주역으로, 식량값 완화에 기여한 공로도 누리고 있다. 작년 3월 말엔 러·우 정부간 마지막 대면 평화회담 장소를 제공, 향후 휴전협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리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전후 에너지 가격 급등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레버리지를 높였다. 미국의 '셰일 혁명' 이후 협상력을 잃은 줄 알았던 사우디의 '석유 패권'은 유가를 제대로 낮춰줄 유일한 카드로 떠올랐다.
사우디를 '왕따'로 만들겠다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여름 리야드를 찾아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를 만나고 온 이유다. MBS는 같은 해 겨울인 지난달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맞이해 석유·가스 대금 위안화 지급을 합의, 미국이 유지해온 '페트로달러' 시대 종료를 시사했다. 인도 역시 서방과 그 동맹이 제재한 러시아 석유를 염가에 다량으로 사들이며 실익을 취하고 있다. 개전 이후 인도는 러산 석유의 최대 구매국 중 하나로 떠올랐다. 인도는 미국, 일본, 호주와 대중국 협의체 '쿼드'에 참여하고 있어 미국에는 중요한 안보 파트너다. 인도의 석유 거래로 서방의 러산 원유 금수가 무색해졌지만, 서방 정상들은 지난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나렌드라 모디 총리에게 친근감을 표현하기 바쁜 모습이었다. 미·중·러 외교 각축장으로 떠오른 아프리카의 중진국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예외는 아니다. 남아공은 2011년부터 미국을 비롯해 나토나 프랑스, 독일과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면서 중·러와도 2019년부터 훈련, 협상력을 과시해왔다. 지난해 유엔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 병합 규탄 결의안에 기권하기도 했다. 이들 모든 국가가 중국, 러시아와 함께 포함되는 G20은 이제 서방 중심의 주요 7개국(G7) 못지않은 존재감을 지난 11월 발리에서 드러냈다. 전략 지역인 남중국해에 위치한 당시 의장국 인도네시아도 러·우 중재를 시도하며 부상했다. 인도와 남아공이 브라질, 러시아, 중국과 함께하는 신흥 5개국 브릭스(BRICS) 역시 결속을 과시 중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2022년 12월 8일(현지시간) 리야드에서 열린 환영식에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참석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뉴스1
◇美 중심 규칙기반질서 약화?…평화 유지 위한 변화 모색 필요성 대두
결국 전 세계 외교안보지형을 뒤흔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대만 무력 통일 시도 우려의 기저엔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에 의한 세계 평화)'를 끝내고 새로운 국제질서를 모색하려는 시도가 역력하다. 홍콩 아주시보 영문판 아시아타임스는 '새로운 세계 질서의 절실한 필요성' 제하 기사를 통해 "서구 주도의 규칙 기반 질서는 지난 70여년간 주요국의 전쟁을 막았지만 평화를 유지하려면 이제 전반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매체는 "규칙기반질서는 서방과 중·러간 적대감이 심화되는 핵심축으로 부상했다"며 "중국과 러시아는 20년 전만 해도 자유무역 체제와 경제 발전 열망으로 조심스럽게 이를 지지했지만, 최근(본질적으론 2020년 이후) 들어 이 질서가 자국의 이익 및 선호와 충돌한다고 지적하기 시작했다"고 해설했다.
예컨대 중국의 통치 시스템은 서구와 다르지만 민주주의나 보편적 인권 같은 가치를 재개념화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그 정당성을 서구 모델과 동일선상에 놓고 의문을 제기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는 게 중국의 입장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이던 작년 2월 4일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안보에 관한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두 정상은 "국제법과 보편성, '불가분의 안보'를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원칙에 기반한 다극주의(多極主義)적 세계 질서를 모색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안보 불가분성(indivisibility of security)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직전 서방에 타진한 안보 협상의 핵심이자,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침공)'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한 개념이기도 하다. 국제조약상 불가분성 안보는 '한 나라의 안보는 다른 나라의 안보와 불가분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의미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와 나토 간 완충지대가 좁아졌다. ⓒ News1 DB© 뉴스1 매체는 "이 문제에 대해 건설적 대화를 나눌 공간을 모색하는 건 창의적이고 겸손하게 접근해야 하는 도전"이라면서 "어떤 국가도 역사의 옳은 편에 있다고 가정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페르시아부터 그리스, 로마, 몽골, 영국, 미국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국'은 강력한 지배력을 달성한 뒤 그 지위를 사용해 질서를 구성했다"며 "기존 질서를 설정한 자들조차 상상할 수 없는 도전에 직면하면 질서를 현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인지 판단하는 데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이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2022년 2월 2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군의 로켓 발사로 파손된 키이우 빌딩의 모습이 보인다. ⓒ AFP=뉴스1 sabi@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