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나물, 제 이름 다시 찾기
시장에 가보면 콩나물은 많고, 녹두나물도 적지 않은데 팥나물을 흔하지 않다. 죽을 쑨 것은 팥죽이 많고 녹두죽도 있는데 콩은 죽보다는 국으로 불린다. 콩나물은 좀 비린기가 있고, 녹두나물은 아삭거리지만 쉽게 상한다. 녹두죽은 해독작용을 한다고 해서 중국에서는 많이들 먹는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 할 것은 녹두나물이다. 콩은 콩나물, 팥은 팥나물인데 녹두나물은 숙주나물이라고 한다. 신(申)씨와 겸상을 할 때에 숙주나물이라고 하면 면박 당하기가 일쑤이다. 그렇게 상식이 짧으냐고? 불사이군(不事二君)이란 고정관념에서 신숙주를 빗대는 듣기 싫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새삼 떠올리면 사6신은 박팽년, 성삼문, 유성원, 이개, 하위지, 유응부(무신/단종복위사건으로 처형)이고 생6신은 이맹전, 조려, 원호, 김시습, 성담수, 남효온(또는 권절)이다. 후에 김문기가 등업되면서 생7신이라고도 한다. 사6신이든 생6신이든 유응부만 무신이고 모두가 집현전 학자들이다. 그런데 어디에도 신숙주(申叔舟, 1417∼1475)는 없다. 역사를 보면 많은 걸출한 학자들이 세파에 휘말리어 뜻을 펴지 못하거나 요절한 경우가 많지만 신숙주는 여러 임금을 모신 정승이며 박식한 학자이기도 하다. 조선 초기에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등 6대의 임금을 섬기며 좌의정과 우의정, 영의정 등 3정승을 두루 지냈다. 중국어, 일본어는 물론 몽골어, 여진어, 위구르어 등 8개 국어에 능통했다고 한다. 뿐만아니라 그는 당시 조선의 외교정책을 주도하고, 모련위(毛憐衛)에서 여진을 정벌하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신숙주는 불사이군의 틀에 같혀 후대에서까지 민중의 입으로 매도되는 것 같다.
신숙주는 지조 대신 현실 택했으나 밀고자는 아니었다고 한다. 야담집에서는 재미있게 하기 위해 그럴싸하게 각본을 쓴다. 예를 들면, 신숙주의 부인 윤씨는 성삼문 옥사가 일어나던 날 밤에 남편이 평소처럼 귀가하자 윤씨는 “평시에 밤낮으로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고 말하던 숙주의 입이 똥보다도 더 더러웠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숙주의 얼굴에 침을 탁 뱉어버렸다. . . . 마당을 쓸러 안으로 들어갔던 하인은 높다란 누마루 대들보에 기다란 허연 무명수건에 목을 걸고 늘어진 주인마님 윤씨부인의 시체를 보았다.”(박종화, 목매이는 여자, 1923년). 하지만 사육신의 옥사는 윤씨 부인이 죽은 지 5개월 후의 일이기에 여담일 뿐이다. 사육신들의 단종 복위 시도는 1456년 6월 1일 일어났다. 신숙주의 부인 윤씨는 그해 1월에 이미 세상을 떠났다. 신숙주도 그 때에 중국에 사신으로 가 있었다. 따라서 월탄 박종화는 소설 ‘목 매이는 여자’를 통해 신숙주를 폄하했다. 춘원 이광수도 ‘단종애사(동아일보에 연재된 장편소설, 1928.11.30.~1929.12.1)’를 통해 부인의 죽음을 단종복위 사건에 맞추었다.
신숙주는 성삼문과 박팽년의 단종복위 모의를 미리 알았지만 발설하지 않았다. 더구나 성삼문이 “신숙주는 내 친한 친구지만 죽어야만 한다”고 했다는 기록을 보면 서로의 노선이 다를 뿐이지 변절자는 아니라고 한다(이숙인의 조선가족실록). 어쨌든지 당시의 시대적 흐름이 불사이군이란 사조에서 보면 신숙주의 처신은 백성들의 민심과는 어긋나는 처신이었다. 쉽게 시지만 맛있는 녹두나물로 만두소를 만들 때 나물을 짓이는 것은 변절에 대한 민심의 분풀이로 신숙주를 짓이긴다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숙주나물이라거나 녹두나물이라거나 현대 역사학계에서는 신숙주를 단순한 변절자로만 보지 않고 실리를 추구한 '현실주의 관료', '능력 있는 정치가'로 재평가하기도 한다.
녹두나물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변절의 대명사라로 숙주나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녹두의 본질이야 변하지 않겠지만 녹두나물에 대한 사람들의 기호가 달라지거나 기술발전에 따라 캔 요리라든가 쉽게 시지 않는 녹두나물 요리가 나오다면 그 때에는 숙주나물이라고 할까? 아니면 녹두나물이라고 할까? 김치도 한 때는 쉽게 시는 속성 때문에 장기간 시지 않는 김치를 만드는 기술과 보관 기술을 개발하는데 시간이 걸렸을 뿐 지금은 아무도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숙주나물’도 다시 ‘녹두나물’이란 제 이름을 찾아갈 것이다.
[2026.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