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 이은 연재 칼럼이다. 지난 칼럼을 읽지 않은 독자께서는 꼭 읽고 오셨으면 한다. 연목구어(緣木求魚)를 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서다.
가평군의 남쪽 끝 마을에 묵안리라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우리 시대 최고의 명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 선생의 고향이다. 마을에는 조세희 선생의 작은 기념관이 있다. 그런데 유휴시설로 창고 비슷하게 방치돼 있다. 마을 사업으로 만들어진 공간인데 마땅히 기념관으로 잘 운영할 주민이 없고, 오지인 데다가 지자체도 신경을 안 쓰다 보니 그렇게 됐다. 작년 말에 조세희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우리 사회의 추모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그분의 고향에서 폐가처럼 방치되고 있는 기념관의 모습은 도시화, 산업화의 폐해로 만들어진 또 다른 '난쟁이'를 보는 것 같았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공정귀촌 때 제일 권하고 싶은 일이 바로 촌에 방치돼 있는 문화, 예술, 역사, 생태 자원을 발견하고 이를 마을 회생의 주춧돌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구직이 아니라 창직(創職)이다. 이런 종류 일의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제주 올레'다. 귀촌인이 도시에서 축적한 역량과 네트워크를 제주의 옛길을 살리는 데 활용한 사례. 서명숙 제주 올레 이사장의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으니 이 글에서는 생략하겠다. 이렇게 거창한 성공사례가 아니어도 작은 행정리 단위에서도 귀촌인들이 만들어내는 사례도 있고, 만들어 낼 자원들도 여전히 있다. 마을은 그 자체가 '지붕 없는 박물관'이기 때문이다. 마을에 어르신이 한 분 돌아가시면 '박물관이 하나 없어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기록되지 않고, 정리되지 않고, 체계화되지 않고, 연구되지 않은 자원들, 조각조각 나고, 가물가물한 기억들 속에만 또는 기억의 저편에 존재하는 이야기들이 많고, 그렇게 유실되고 방치된 자원들이 많다는 말이기도 하다.
마을에 도시인들이 방문할 수 있게 만들고 그 방문객들이 마을에서 농산물이나 음식을 사고 먹거나, 체험하거나, 자거나 하면서 마을에서 공정여행이, 착한 소비가 이뤄지게 하는 일. 그래서 세상의 변방에서 초라하게 살았다고,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촌로들의 자긍심을 살려주고 당신들이 있어서 '우골탑'이 섰고, 대한민국이 저임금 수출 입국으로 정신없이 달려갈 수 있었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일. 전국 곳곳 소멸위기의 '낙원구 행복동'을 진정으로 행복한 마을로 만드는 일이다. 또한, 상처받은 도시인들의 몸과 마음, 영혼을 치유하는 일이기도 하다. 도농상생의 일이다. 이런 일을 돕는 정부 지원사업도 있다. '로컬 크리에이터 사업'이 대표적이고 각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다양한 마을공동체 사업들도 있다. 다만 이런 일을 하다 보면 본인의 소득을 챙기기는 쉽지 않다. 한 3년 투자하고 이후 소득을 보전할 자립적인 공동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사회적 경제 조직으로의 발전을 돕는 지원사업들도 있다. 도시에서의 창업이 쉽지 않듯 촌에서의 창업도 쉽지는 않다. 그렇지만 소확행을 이룬 공정귀촌 사례들은 적지 않다. 만약 안정적인 연금수혜자이거나 소득에 그렇게 연연하지 않을 정도의 경제력이 있다면 기꺼이 해볼 만한 일이다. 무수히 많은 일거리가 있다. 이런 일거리를 일자리로 만드는 일이다.
이런 일은 귀촌인이 덜컥 시작하기 쉽지 않다. 자칫하다가는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가 우리 마을에 와서 돈을 번다'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주민들의 선한 네트워크에 연착륙하기 위한 수완이 필요하다. 본인의 고향으로 귀향한 귀촌인이라면 이 부분에서 이점을 가질 수 있다. 서명숙 제주 올레 이사장의 경우는 이런 경우다. 다만 귀향이더라도 그동안 고향과 악연이 있던 사람은 예외다. 만약 전혀 연고가 없던 지역으로 귀촌을 하는 것이라면 일단 그 지역의 중간 지원조직의 도움을 받기를 권하다. '중간지원'이라는 말은 행정과 주민, 주민과 주민, 도시와 농촌의 중간에서 각종 지원을 한다는 의미로 생각하면 된다. 각 지역마다 이름은 조금 다르지만 마을공동체지원센터, 사회적경제지원센터, 귀농귀촌지원센터, 도시재생지원센터 같은 이름의 기관, 단체들이 있다. 다만 다른 이름으로 활동하는 단체들도 있으니 약간의 검색 노력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사회적경제가 활성화된 완주군의 경우는 '완주소셜굿즈센터'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마을만들기 사업이 이뤄지고 있는 홍성군 홍동면의 경우는 '지역센터 마을활력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가평군에서 내가 일하고 있는 중간지원조직은 '가평아람마을 사회적협동조합'이다. 이렇게 색다른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단체들도 있으니, 해당 지역의 '마을만들기', '사회적 경제', '중간지원조직' 이라는 이름으로 검색을 해보면 좋겠다.
이런 단체들의 운영 주체가 지자체인지, 민간인지도 살펴볼 일이다. 지자체 직영이라면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 어려울 수 있고, 자신이 갖고있는 가능성과 창의성을 발휘하는데 제한을 받을 수 있다. 찾아갔는데 '저 사람 재미있는 사람이네' 하는 식의 별종 취급만 당하고 끝날 수도 있다. 지자체로부터 위탁을 받아서 운영하던, 자립적인 수익체계를 갖춰서 운영하던, 촌 주민들이 자조적으로 노력하는 중간지원조직이 훨씬 연대의 정신을 살려 적극적인 협력을 해줄 가능성이 크다. 그런 곳에는 십중팔구 일손이 필요할 것이니 위와 같은 취지로 일을 좀 해보고 싶다고 찾아가면 칙사 대접을 받을 것이다. 물론 칙사 대접을 받는다고 진짜 칙사처럼 굴면 안 된다. 중간지원조직에서 일하는 일꾼들에게 따뜻하고 겸손한 연대의 손을 내밀어 주길 바란다. 만약 내가 가고자 하는 지역에 중간지원조직이 없다면? 본인이 중간지원조직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가야 한다. 내가 그랬다. 그러나 추천하지는 않는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분의 경력이 문화예술적 일과 관련이 없었거나 요즘 유행하는 MBTI적으로 봤을 때 일을 벌리고 사람을 만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성향의 소유자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다음 칼럼에 제안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