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和尚與老虎同住17年,一字一拜《華嚴經》,感得韋陀菩薩護持(宏開和尚真實故事)
17년간 호랑이와 함께 살며 《화엄경》의 글자마다 절을 올리고
위태천의 가호를 입은 노스님 (홍개 스님의 실화)
징야 불교의 소리 2026년 7월 25일
존경하는 스님들과 도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징야 불교의 소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징야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불교의 역사 속에는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수행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화려한 명성도,
놀라운 신통력도 지니지 않았지만,
평생에 걸친 끈기 있는 정진을 통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수행의 귀감을 남겨주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구화산에 계셨던 한 노스님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분은 '호랑이 굴'에 거처하며
《화엄경》의 글자 하나하나에 절을 올리는 수행을
무려 17년 동안이나 이어가셨고,
그로써 위태천 보살님의 가호와 축복을 받으셨습니다.
참으로 놀랍고도 전설적인 이야기입니다.
만약 소운 스님께서
이 지난 일을 직접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면,
안후이성 구화산 뒤편에
잠잘 침상이나 이불조차 없이
호랑이가 사는 동굴에서 실제로 기거했던 노스님이 계셨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믿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스님께서는 그저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호랑이야, 오늘 밤은 춥구나."
그러면 호랑이는 동굴 안으로 들어와
스님 곁에 조용히 눕고, 스님은 그 몸에 기대어 온기를 얻으셨습니다.
마치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이는 소운 스님께서 직접 전해 듣고
그분을 직접 뵈었던 실화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경탄할 만한 것은 호랑이가 아니라,
바로 그 노스님 자신입니다.
수십 년 동안 한결같이 이어진
도(道)를 향한 그의 흔들림 없는 정진과 헌신 때문입니다.
이제 구화산(九華山)에서 가장 혹독한 고행을 견뎌낸 수행자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중화민국 45년(1956년) 무렵,
소운(紹雲) 스님이 구화산으로 돌아왔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구화산은
오늘날처럼 향 연기가 자욱하고 순례객들로 붐비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산 전체를 통틀어
수행자는 채 열 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백세궁(百歲宮) 뒤편 '호랑이 굴'에는
홍개(弘開)라는 노스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글을 몰랐고, 키도 작았으며,
세상에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분이었습니다.
그의 거처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초라했습니다.
지붕에서는 비가 샜고, 솥 바닥에는 구멍이 나 있어서
물을 끓일 때면 물이 다 빠져나가지 않도록
솥 밑에 무언가를 받쳐야만 했습니다.
침대도 이불도 없었으며,
그야말로 가진 것이 거의 없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소운 스님이 도반과 함께 그를 찾아갔을 때,
홍개 스님은 무척 기뻐하며
전날 누군가에게 얻어두었던 쫑즈(찹쌀 만두) 몇 개를 급히 데워 손님을 대접했습니다.
소운 스님은 쫑즈를 한 입 맛보자마자
그것이 상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냄새가 정말 고약했지만,
노스님의 정성 어린 대접을 생각해
억지로 그것을 삼켰습니다.
함께 간 스님은 배가 고프지 않다며 사양했지만,
홍개 스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쫑즈 서너 개를 드셨습니다.
진정한 고행 수행자에게 있어
음식이란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수행을 계속하기 위해
육신을 지탱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홍개 스님은 경전을 강설하거나 불법을 널리 펴는 일도 하지 않았고,
내세울 만한 학문적 이력도 없었습니다.
그저 평생 단 한 가지 일에만 매진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화엄경(Avatamsaka Sutra)》을 향해 지극한 마음으로 절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스님의 절하는 방식은 남달랐습니다.
가는 실에 커다란 엽전을 매달아
경전의 글자 위에 올려두고는,
절을 한 번 할 때마다
엽전을 다음 글자로 옮기며,
"나무대방광불화엄경, 화엄해회의 제불보살님께 귀의합니다"라고 염송하며
경건하게 절을 올리셨습니다.
이는 한 페이지나 한 문장마다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글자 한 자 한 자마다 진심을 담아 절을 올리는 수행이었습니다.
스님은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방식으로 수행하셨을까요?
무려 17년이라는 세월 동안이었습니다.
소운 스님은 홍개스님께서
일 년 내내 맨발로 서서 경전에 절을 올리시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셨는데,
스님이 딛고 서 계시던 두께 1인치(약 2.5cm)가 넘는 나무판자는
오랜 세월 발에 닳고 닳아
무려 반 인치(약 1.3cm)나 깊게 패인
두 개의 발자국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진정한 정진이란 한때의 뜨거운 열정이 아니라,
1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변함없이 이어지는 굳건한 의지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흔히 수행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지난 세대의 수행자들과 비교해 볼 때
우리에게 정작 부족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도(道)를 향한 흔들림 없는 결심일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깊은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한번은 소운 스님께서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이곳에 지내시면서 무엇을 드십니까?"
홍개 스님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셨습니다.
"얼마 전에는 꼬박 열흘 동안 굶기도 했습니다.
구화산은 바위산이라 애초에 산나물이 귀한 데다,
철이 지나고 나면 먹을 것이라곤 아무것도 남지 않으니까요."
그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만큼 심한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어,
짐을 꾸려 구화산을 떠나 종남산으로 향하려 했습니다.
떠나기로 한 바로 그날 아침,
그는 물을 한 솥 끓였습니다.
물을 마시고 길을 나서려던 찰나,
갑자기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떠나지 말고, 마음 편히 이곳에 머무십시오."
그가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묻자, 그 목소리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위태천이다."
홍개 스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태천 보살님, 제가 머물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만,
이곳에 계속 있다가는 굶어 죽고 말 것입니다.
벌써 열흘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위태천 보살이 대답했습니다.
"안심하십시오. 오늘 아침 누군가 자연스럽게 찾아와
쌀과 채소, 기름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계속 이곳에 머무십시오."
과연 정오가 되기 전,
누군가 쌀 20근과 참기름 한 근,
그리고 공양물로 신선한 채소와 절임 채소를 가지고 산을 올라왔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에는 흔히
자비로운 호법신들이 진정한 수행자를 수호한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는 그 진실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도(道)를 향한 확고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부처님과 보살님의 가피와 보호를 받게 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거처였습니다.
소운 스님은 그에게
침대도 이불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물었습니다.
"밤에는 어떻게 주무십니까?"
홍개 스님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호랑이 굴에서 잡니다."
"추울 때는 어떻게 하십니까?"
"'호랑이야, 오늘 밤은 춥구나' 하고 부르면,
호랑이가 다가옵니다."
소운 스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호랑이가 다가오면 무엇을 합니까?"
"그 녀석은 바로 내 곁에서 잠들고, 나는 그 몸에 기대어 쉬곤 하지.
몸이 아주 따뜻해서 눈이 내려도 두렵지 않고, 추위도 전혀 느껴지지 않아."
훗날 소운 스님께서
직접 그 호랑이 굴을 찾아가 살펴보셨는데,
안에는 볏짚 몇 단이 놓여 있을 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홍개 스님께서는
호랑이가 가끔 사냥감을 굴 안으로 끌고 들어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호랑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여기로 끌고 들어오지 마라. 나는 고기를 먹지 않으니까."
호랑이가 실제로 사냥감을 끌고 왔다는 사실은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일입니다.
만약 소운 스님께서 직접 겪은 이야기를
전해주지 않으셨다면,
이 세상에 그런 분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믿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사람이 두려움과
해치려는 마음, 그리고 탐욕에서 벗어나면,
하늘과 땅, 그리고 모든 생명과
놀라운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훗날 홍개 스님께서는
소운 스님께 부처님께 올릴 향을 피워달라고 청하셨습니다.
굵은 향이 팔 위에서 직접 타들어 갔고,
살이 오그라들며 타들어 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지만,
스님의 표정은 더없이 평온했습니다.
그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이라니, 참으로 큰 공덕이로구나."라고 말씀하셨을 뿐입니다.
오늘날 이 이야기를 접하는 사람들은
아마 깊이 놀라워할 것입니다.
홍개 스님의 생애는
화려한 사찰이나
세상을 뒤흔들 만한 업적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그분을 기억하는 것은 그저 '호랑이 굴',
발자국으로 닳아버린 나무 판자,
그리고 한 글자를 쓸 때마다 절을 하며 옮겨 적은
《화엄경》 한 권뿐입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수행의 모습이 아닐까요?
수행이란 반드시 북적이는 군중 속이나
타인의 찬사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 일은 종종 춥고 외진 산속 동굴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던 날들에,
아무도 보지 않는 가운데 행한 간절한 절 속에서,
그리고 수없이 물러서고 싶은 유혹 속에서도
끝내 버텨내겠다는 굳은 결심 속에서 펼쳐졌습니다.
호랑이가 그와 함께 지냈다는 것,
그리고 위타천(보살)이 그를 수호했다는 것은
어떤 신비한 마법의 힘 때문이 아니라,
그의 마음이 그토록 진실하고 순수하며
한결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우리 모두의 내면에도 저마다의 '호랑이 동굴'이
자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곳은 고독과 추위, 그리고 시련이 있는 곳이자,
우리의 수행 의지가 가장 흔들리기 쉬운 곳이기도 합니다.
만약 그러한 순간에
우리가 여전히 부처님의 가르침(법)을 기억하고,
부처님의 명호를 떠올리며,
자비로운 마음 하나를 굳게 붙들 수 있다면,
홍개 스님의 이야기는 그저 구화산의 전설로만 남지 않고
우리를 이끄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
진정한 수행이란 가장 힘든 순간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굳건한 의지를 지키는 데 있으며,
그리하여 마침내 깨달음에 이르는 길임을
일깨워주는 등불 말입니다.
오늘 영상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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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