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 밭에서>
- 2006. 6. 29. 목. 백장미-
내리 꽂는 태양 아래
무방비로 세월 이겨 온
늙은 선인장이 거룩해서
다소곳이 손 내밀다
무수한 침 세례를 받았다.
방금 진 것 같은
종이 같은 꽃 들쳐 내고
열매 하나 뚝 자르니
선지 같은 피가 떨어진다.
수많은 인고의 세월
그리고 꽃 하나
그리고 침범자 인간
어디선가 눈 흘기는 소리 들려
시침 뗀 동작 거두니
따끔거리는 팔뚝이 난장판이네.
순교하듯
가운덴 하얀 피가 흐르고
얼굴 인 듯 붉은 열매 속엔
놀라운 수줍음과 분노가 있더라.
한 주먹 움킨 열매가 미안해
아주 영겁스럽게 보듬고 나오면서
나를 위해 남을 죽인 몰골이
비단 이것 뿐 이였을까?
살아오며
내 가시는 어디를 향했으며
내 피는 누구를 위해 흘렸던가?
덕이 되고 본이 되는
귀함만이 모두 일진대
내 서있는 자리는
내 가득한 머릿속은
모두 어디로 향했더란 말인가?
숨죽인 선인장의 흐느낌을
들은 듯 못 들은 듯
내 손은 의기양양
내가 살아온 날이 모두 그랬지 않았을까?
물병 속으로
핏방울 들여보내면서
선인장을 마시고
내 피를 마신다.
그리고
나를 마셔 봤다.
********************
플로리다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선인장 밭에 갔다가
몸에 좋다기에
침이 날아오는 것도 모르고
마구 열매 따다
물병 속에 집어넣고
붉은 색깔이 미안해
나를 되돌아 봤단다.
잘 있냐?
여기도 더운 것 같은데
간밤엔 물난리 났다고
방송이 난리네.
난
무조건 잠 속에 취해
그 무서운 천둥 번개도 못 듣고
다 지나간 후
아침 산책만 댕겨 왔단다.
강물이 범람하고 나무가 쓰러졌어도
공기만은 시원해
내가 가진 이기적인 면모만
잔뜩 걸머 쥔 체
이렇게 시원한 에어컨 속에 앉았다.
한 이틀 돌아 와
쉬는 시간에 말이다.
<둘째 아이 입대하는 날>
- 2006. 6. 29. 목. 신형호-
먼 곳 출장
먼 곳 다녀왔구나!
장마가 시작된 지도 한참 지났건만
비 소식은 내일 내일 하면서 꾸물거리며
잔뜩 인상만 쓰고 있어서
연일 답답하고 더운 열기만 가득하다.
녹음이 비실비실하는 햇살과 어울려
제 빛깔을 자랑하지 못하고
뿌옇게 꿈틀거리는 아침이란다.
정원엔 홀로 무더위를 즐기며
눈 위에 뚝뚝 떨어지는
선혈 같은 요염한 장미 몇 송이
유월의 마지막을 지키고 있구나.
오늘은
둘째아들이 군입대하는 날이란다.
어제까지
무슨 볼일이 그리 남았는지
밤 이슥하도록 돌아다니다 늦게 들어온 아이가
출근시간이 되어도
꿈속에서 왔다 갔다 하더구나.
비몽사몽간에 있는 아들을
잠시 깨워 얼굴 한 번 보고
열심히 훈련 잘 받고
몸 건강히 잘 보내라 몇 마디하고
집을 나왔단다.
출근길 차 안에서
곰곰이 나를 돌아보니
난 사랑이 너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 되더라.
따뜻하게 한 번 안아주고
훈련병 훈련기간 건강하고 열심히
아무 탈 없이 잘 보내라 하고
진하게 포옹도 한번 못해주고 나온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리더라.
하긴 성격상
내가 스킨십을 잘 안하는 탓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나온 내 행동이
아직까지 살아오면서
사랑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닌가 여기니
가슴이 찡하게 쓰려오는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난
매사에 어떤 일이 지나고 나면
아하, 잘못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고
다음에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늘 자리 잡고 있건만
잘 실천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네.
앞으론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좀 더 적극적으로 행해지고
실천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50년 이상 길들인 성격이
잘 바뀔 수 있을지 모르겠네.
바라는 만큼의 내일이
너에게도
나에게도
근심 없이 펼쳐졌으면 하는 소망이
종일 가슴에서 출렁거린다.
카페 게시글
메일 보관방
20여 년 전 이메일을 펼쳐보며 251
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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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9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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