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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강사 이기성
490__최철용과 한글도깨비--마소, 뚱보강사 이기성, 한국전자출판교육원장, 경기칼럼, 20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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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__ 최철용과 한글도깨비 마소
은행업무의 발전... 온라인시스템, 순번대기표, ATM(현금자동입출금기), 인터넷뱅킹, 스마트뱅킹... 모두 컴퓨터가 업무에 도입된 후 디지털로 변화한 현상이다. 반세기 한국 소프트웨어(SW) 역사의 첫걸음, 전산화 작업... 국내 SW산업의 첫걸음은 1967년, 반세기 달려온 한국SW... 1970년대 금융권 전산화 이어 1980년대부터 SW기업 등장... 2010년엔 생산규모 28조 원… "경쟁력 한 차원 끌어올려야"... 9년 전에 [디지털타임스] 김지선 기자가 취재했다(2013-03-19). 1960년대 후반 당시 국내 SW 시장은 과학기술처 산하에 한국전자계산소(KCCㆍ현 KCC정보통신)가 주도권을 잡았으며, 민간분야에서는 글로벌 IT기업인 IBM이 한국에 지사를 설립하며 국내 IT산업에 불을 지폈다. KCC는 당시 국내 금융의 중추였던 한국은행의 외환관리 전산화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국내에 처음으로 컴퓨터를 보급하면서 IT발전의 기초를 다지기도 했다. 1970년대 초반까지는 한국전자계산소가 정부와 주요 공공기관의 전산 용역을 수주하며 전산화 바람을 이어갔다.
1970년대는 한국 금융권의 업무 전산화가 연이어 일어났다. 지금처럼 계좌이체 하고 1초면 바로 수신자에게 돈이 송금되는 ‘온라인 송금제도’가 없던 시절에는, 은행 창구에 가서 송금전표를 써서 제출하고, 내가 송금을 한 은행에서, 유선전화로 상대방 은행에다 돈을 내주라고 연락하는 시간인 30분에서 한 시간을 기다려야 수신인이 돈을 찾을 수 있었다. 1972년 11월 외환은행이 국내 은행으로는 처음으로 지금의 IBM AT 개인용컴퓨터 정도 기능의 미니컴퓨터 시스템으로 서울-부산간 온라인 뱅킹을 구축했고, 이어서 상업은행, 농협, 국민은행 등이 전자계산실 가동과 온라인 예금 처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외환은행에서 국내 최초 온라인시스템을 도입한데 대해서, 신문은 ‘먼 거리를 여행하거나 출장 갈 때, 돈을 들고 가거나 송금할 필요 없이, 통장과 도장만 가지면 해당 은행지점에서 필요액을 꺼낼 수 있다’고 소개했다. 1972년엔 지점 간 거래내역 공유가 어려워, A지점에 입금을 했으면 A지점에서만 돈을 찾을 수 있었다. 온라인제가 도입되어, 현재와 같이 어디서든 은행 거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됐다. 1970·80년대에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선 손님이 직접 영업점을 방문해야 했다. 은행 한 지점 당 직원 수는 100~200명이나 됐다. 번호표 제도가 없었으므로, 무조건 창구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월말에는 공과금을 내려는 사람들이 몰려 은행은 도떼기시장으로 변했다. 납부 기한이 지나면 연체료를 물어야 하기 때문에...
1980년대 한글 워드프로세서 발명
1980년대는 개인용컴퓨터용 도깨비한글(최철용), 보석글, 아래아_한글, 카멜레온 한글변환프로그램, 리볼트 통신 프로그램 등이 출현했고, 1987년 <<알기쉬운 BASIC 프로그램 모음>> 책이 국내 최초로 한글 DTP 방식으로 영진출판사(이문칠 사장)에서 출판되었다. 각 금융기관의 온라인 예금 취급 점포 수는 370여 개였다(1979년 12월 기준). 이 시기에 쌍용그룹을 비롯해 삼성그룹, 동아그룹 등 국내 대형 그룹사들이 자체 전산실을 가동하기 시작했고, 국내 전 분야에 걸쳐 골고루 전산시스템이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기존 업무들의 전산화가 탄력 받았다. 1982년 당시 서울북공고 2학년 학생이던, 17살 박현철 씨가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워드프로세서가 탄생했다. [박현철, 최초의 한글 워드프로세서 발명가]는 발명 동기를 “미국 사람들이 한 거, 우리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1988년 캐나다 토론토대학생 강태진, 정재열, 한석주의 ‘한글2000’ 워드프로세서가 개발되고, 1989년 4월 이찬진, 우원식, 김택진, 김형집의 ‘아래아한글’ 워드프로세서가 개발됐다. 이밖에도 ‘한메한글’ ‘한메타자교사’ ‘한메그림그리기’의 한메소프트, ‘태백한글’ ‘명인’등을 내놓은 태백무른모(이주명), ‘글맵씨’ ‘지필묵’등을 개발한 창인시스템(김재훈) 같은 회사들이 한글 워드 프로세서 발전에 힘을 보태고 있었다.
1989년 2월 설립한 휴먼컴퓨터(정철)의 자본금은 24억 원(삼보 등 국내 투자자들이 9억 원, 일본 엡슨이 15억 원)이었다. 1987년 신문사 견학을 갔다가 첨단 일제 전산사식기에 탑재된 한글 글자꼴이 일본에서 개발된 것이며, 어쩔 수 없이 비싸게 그 기기를 사다 써야만 한다는 사실에 분개하여, 정철은 휴먼컴퓨터를 창업하고 임순범과 함께 한글 DTP ‘문방사우’, ‘글꼴지기’, 레이저프린터용 한글폰트를 개발한다.
1980년대는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기반으로 국내 IT기업들이 SW 개발에 나서기 시작했다. 삼보컴퓨터, 대우통신, 금성소프트웨어 등 컴퓨터를 보급하던 기업들이 각자 차별화 전략으로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했으나, 1989년 ‘아래아한글’의 탄생으로 무력화된다. SW기업들이 생겨나면서 SW업체를 대변하는 조직도 만들어진다. 한국정보산업연합회(1983년)와 한국SW산업협회(1988년)가 100여개 내외의 회원사를 중심으로 발족한다. 1985년 빌 게이츠 당시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이 국내에 첫 방한한 이후, 1988년 한국MS지사가 출범했으며, 1991년부터 SW수입의 전면 자유화 조치가 발표된다. 이밖에 SW개발이 늘어나면서 1984년에는 국내 첫 SW복제 시비 소송이 제기되기도 했다.
--- 1990년대, 국내SW 기업 춘추시대 개막... 1994년 국내 정보산업 총괄 부처인 정보통신부의 설립은 SW가 미래를 주도할 핵심산업으로 각광받는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한글과컴퓨터의 이찬진 사장, 김재인 한메소프트 사장, 최철용 한도컴퓨터 사장, 정철 휴먼컴퓨터 사장 등이 당시 신세대 경영인으로 떠올랐다. 이찬진 사장과 안철수 안철수연구소장은 ‘오피스’와 ‘보안’이라는 국내 SW산업 두 축의 중심을 일궈 주목받기도 했으며, 한글과컴퓨터는 1993년 국내 SW업계 최초로 매출 100억 원을 돌파했다. 이들 신세대 경영인 외에도 핸디소프트, 티맥스소프트, 영림원 등 국내 분야별 SW 업계를 대표하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했다.
최철용의 ‘한글도깨비’
1989년 최철용(한도컴퓨터 대표)의 만든 ‘한글도깨비’는 지금까지 약 15만개가 팔려 우리나라 한글 처리 소프트웨어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다. 아이비엠 16비트 컴퓨터(IBM XT, AT)는 미국에서 설계·제작된 것이기 때문에 한글에는 벙어리나 다름없다. 개인용 컴퓨터 화면에 한글을 띄우거나 영문 소프트웨어에서 한글을 쓰려면 한글을 처리해주는 소프트웨어나 이를 반도체칩에 수록한 한글카드를 최철용 씨가 개발했다. “한글도깨비가 나오기 전에도 세운상가에서 제작된 ‘청계천 한글카드’와 ‘삼보컴퓨터의 한글카드’가 있었다.” “그러나 삼보의 한글카드는 값이 무려 25만 원이나 돼 가난한 컴퓨터 사용자들에게 그림의 떡이었고, 청계천 한글카드는 10만 원으로 값이 조금 쌌지만 한글을 1천 4백 여 자밖에 나타낼 수 없어, 완벽한 한글처리 기능을 가진 값싼 소프트웨어개발이 절실한 상태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1988년 〈마이크로소프트웨어〉라는 컴퓨터 전문잡지의 취재기자가 되면서부터 직접 개발을 결심했다. 당시 이 잡지에 실린 컴퓨터광(컴퓨터 매니어)들의 주요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개인용 컴퓨터에서 한글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가?”하는 문제였는데, 이 글을 읽고 컴퓨터를 공부하면서, 프로그램 개발을 결심하고 2년 만에 마침내 ‘도깨비’를 내놓은 것이다.
‘도깨비’ 프로그램은 청계천 한글카드의 1/3 값인 3만 5천 원이었다. 디스켓 한 장에 담긴 소프트웨어로 한글을 처리했고, 한글코드가 완성형이든 조합형이든 가리지 않고 한글을 쓸 수 있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용산전자상가에 한도컴퓨터라는 소프트웨어 업체를 차린 최철용씨는 레이저프린터로 아름다운 글꼴을 출력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개정판 한글도깨비를 내놓았다. (참고) [한겨레] 신동호 기자.
‘한글 도깨비’의 정식 이름은 ‘소프트웨어 도깨비 한글 에뮬레이터’이다. 한글이 표시되지 않는 컴퓨터의 머릿속에 들어가 컴퓨터가 한글을 알게 해주는 프로그램으로, 8비트 상용 조합형(KSSM) 코드를 지원한다. 화면을 그래픽 모드로 바꾼 후 텍스트 영역의 비디오 메모리를 읽어서 영어는 그대로, 조합형 한글코드는 한글로 출력해주는 한/영, 영/한 번역기(에뮬레이터) 프로그램이다. IBM PC(XT, AT)가 사용하는 머릿속의 텍스트 모드와 그래픽 모드의 비디오 메모리 영역이 다르기에 사용할 수 있는 기법이다.
메모리칩 내장형 ‘메가락’ 개발
한글도깨비 한도는 ‘엔터컴퓨터’ 이름으로 창립했다. 국내 최초 폰트카드 방식의 ‘한글도깨비3’ 상업용 버전을 판매하고, 메모리칩 내장형 ‘메가락’을 개발했다. 상용 프로그램의 불법복제를 막기 위하여 개발회사에서는 복제방지용 잠금장치(LOCK 장치)를 컴퓨터 내부나 외장으로 설치하는데, 기존의 물리적인 커다란 하드웨어를 대체하는 소형의 메모리칩 락 장치를 발명했다. (주)한도컴퓨터로 상호를 변경, 법인으로 설립하고, ‘한글도깨비4’를 개발했다. CPU 내장형 ‘메가락’ 개발(다품종 소량 주문생산 시스템으로 전환), 디지털 스위치 내장형 메가락 개발(고속 프린트포트 지원), USB용 메가락 개발(USB-A, USB-B), 원격 컴퓨터 부팅장치 '리모트파워' 개발, 신형 패러럴 메가락 개발(액세스 속도 향상), 세계 최소형, 고급형 메가락(USB-S) 개발, 금속용 레이저 마킹시스템 도입(USB 컨넥트에 ID, 제조일, 버전 표시).
<<마소>> 월간 ‘마이크로소프트웨어’
한국 컴퓨터 전문지의 역사 '마소'... 컴퓨터 전문지 <마이크로소프트웨어> 독자들은 언제부턴가 이 월간 잡지책을 ‘마소’라 줄여 부르기 시작했다. 경영과 컴퓨터, 컴퓨터 학습, 학생과 컴퓨터, PC저널(매경), 과학동아, 마이크로소프트웨어, 퍼스널컴퓨터, 월간 컴퓨터, 컴퓨터 비젼 등이 컴퓨터 정보를 많이 다루는 월간 잡지였다. 1983년 11월 창간호를 낸 마소는 한국 컴퓨터 잡지계를 대표하면서, 2000년 7월 201호를 발행했다. [이코노미21]의 유춘희 기자가 보도했다. 1983년 11월호 창간호는 본문 210쪽에 광고 10쪽이었다. 마소는 창간 초기부터 소프트웨어에 초점을 맞췄다. 하드웨어는 껍데기일 뿐 중요한 것은 소프트웨어임을 강조한 것이다. 삼성 금성 대우 삼보의 초창기 8비트 PC를 비롯해, 8비트 애플, MSX, 그리고 16비트 IBM 호환 PC에 이르기까지 주요 기종의 소프트웨어를 소개하고 직접 구현하는 방법을 보여줘 인기를 끌었다.
마소의 기획물은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개발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COBOL에서 시작해 베이직과 파스칼, 어셈블리어, C, 그리고 90년대 초부터는 C++와 객체지향 언어, 델파이, 비주얼베이직, 자바, SQL 등을 잇달아 소개했다. 마소는 미국형 PC가 한국에 정착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대표적인 예가 최철용의 한글도깨비와 이찬진의 아래아-한글(ᄒᆞᆫ글), 서울대 의대생 안철수의 컴퓨터 백신 프로그램(V2, V2plus, V3)의 소개였다. 한글도깨비는 IBM PC에서 소프트웨어적으로 한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기자였던 최철용(한도컴퓨터 사장)이 직접 개발해 소스코드를 공개했다. 서울대 기계과 학생 이찬진(드림위즈 사장)은 한글 구현 기법과 폰트 처리에 관한 기술을 기고하면서, 뜻이 통한 후배들과 만나 워드프로세서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아래아 한글이다. 제품을 상용화하기 전 마소 독자들이 쓸 수 있도록 공개하기도 했다.
국내에 인터넷을 가장 먼저 대중에게 소개한 컴퓨터 잡지도 마소였다. 일부 전문가들만 알고 있던 인터넷을 1994년 3월호에서 낱낱이 파헤치는 특집기사를 실었다. WWW 서비스는 알려지지도 않았고, ftp나 고퍼를 통해 파일을 제한적으로 주고받던 때였다. 애플 도스를 비롯해, CP/M, MS-DOS, 유닉스, 제닉스, 윈도우, MacOS, OS/2, 넥스트스텝, BeOS, 리눅스 등 PC 환경을 수놓았던 다양한 운영체제가 마소를 통해 소개됐다.
마소는 우수한 소프트웨어 전문가를 배출하는 인큐베이터 구실을 톡톡히 함으로써, 한국 정보기술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이찬진, 최철용을 비롯해 통신에뮬레이터 이야기를 만든 이영상(큰사람컴퓨터 사장), 아래아한글 차기버전 개발을 주도한 정내권(드림위즈 부사장), 윈도우용 워드프로세서 파피루스를 만든 이창원(OSK 사장) 등이 마소를 통해 데뷔했다. 안철수 사장은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발견된 브레인바이러스 치료 백신을 마소에 공개했고, 그 이후에도 다양한 백신을 디스켓 부록으로 무료로 제공해 ‘컴퓨터 명의’라는 별명을 얻었다. 안 사장은 201호를 내는 동안 마소에 ‘가장 많은 글’을 남긴 필자로 기록된다.
마소는 컴퓨터 잡지의 원조답게 전자책을 최초로 시도했다. CD-롬이 확산되기 전인 1995년, 지난 10년 동안의 본문 텍스트와 참조그림 등을 담은 ‘마소 CD’를 발행해 ‘멀티미디어 북’으로 이름을 날렸다. ‘도서출판 장왕사’의 컴퓨터 분야 단행본이나, ‘영진출판사’의 단행본처럼 마소를 발행하는 정보시대 출판사에서는 CD-롬 책을 발행하기 이전에도, 기사의 소스를 5와 1/4인치 플로피디스크(디스켓)에 담아 원하는 독자에게 제공했다. 디스켓 가격이 상당히 비쌌던 당시, 5.25인치 디스켓 한 장에 든 소스코드는 6천~1만 원에 판매됐다. 그때 마소 한 권의 값은 3천 원이었다.
뚱보강사 원고도 1985년부터 1989년까지 총 17번 월간 마소에 실렸다. ①한글을 사용한 프로그램의 컴파일(1985년 7월), ②처리 속도가 빠른 프론토 도스(1985년 12월), ③고객 카드 관리 프로그램(1986년 1월), ④한글 고리짝 분류하기 프로그램(1986년 2월), ⑤한글 바구니 프로그램(1986년 8월), ⑥퀵도스(1986년 10월), ⑦인사 급여 관리 프로그램(1986년 12월), ⑧애플 베이직을 IBM-PC 베이직으로(1987년 1월), ⑨리스트 살려내기(1987년 10월), ⑩dBASE 팁(1987년 12월), ⑪dBASE로 작성한 급여관리 프로그램(1987년 12월), ⑫dBASE 도서관리 프로그램 (1988년 5월), ⑬보석글 팁(큐닉스 프린터에서의 사용)(1988년 6월), ⑭dBASEIII+ 헤더 구조(1989년 7월), ⑮유럽에서 본 컴퓨터 이용(1987년 8월), ⑯남아메리카에서 본 컴퓨터의 이용(1988년 8월), ⑰지금 호주에서는(1989년 9월).
참고로, 2017년 1월부터 월간이던 마소는 1년에 각 분기당 1회씩 총 4회 발행한다. 발행시기는 준비상황 및 여건에 따라 변경될 수 있는데, 매 1, 4, 7, 10월을 기준으로 발행한다. 마소 399호는 2020년 1월 31일 발행했다. 마소 395호부터 마이크로소프트웨어 권당 정가는 22,500원이다. 종이책은 2020년 401호로 절판했고, 현재는 전자책으로만 발행 중이다.
[참고] [디지털타임스] 김지선 기자, 2013-03-19.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3032002011060746005
[참고] [국민일보] 박은애 기자, 2013-08-03.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7429013&code=11151100
[참고] 블로그 하모, [한겨레] 신동호 기자, 1992-09-26.
https://blog.naver.com/jmoaa/40003221177
[참고] ‘#143_ 한국 출판계와 인쇄계의 IT화 50년’, 2015.10.06. 조회 486.
https://kg60.kr/cmnt/2342/boardInfo.do?bidx=272241
[참고] ‘#192. 저작권과 바이러스’, 뚱보강사, 2019.09.16. 조회 108.
https://kg60.kr/cmnt/2342/boardInfo.do?bidx=624467
[참고] 한도컴퓨터, 회사이력
http://www.megalock.co.kr/sub_02.html
[참고] [이코노미21] 유춘희 기자, 2000.07.12.
http://www.economy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24
[참고] 월간 [마이크로소프트웨어] 컬럼 (1985.7-1989.9), 정보시대.
[참고] ‘마소’ 기업구독 또는 별도 요청은 IT조선으로 문의.
https://www.imaso.co.kr/getma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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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__최철용과 한글도깨비--마소, 뚱보강사 이기성, 한국전자출판교육원장, 경기칼럼, 20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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