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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교회를 찾아서 말씀으로 탐방하는 주일 오늘은 여섯 번째 두렵고 떨리는 구원에 대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2절을 다시 읽습니다.....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소홀이 생각 할 수 없는 구원입니다.
그런데 두렵고 떨리는 구원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임을 믿으십니까?13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그러므로 2000년전 빌립보교회 뿐 아니라 이 시대에 교회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가장 큰 소원이 있다면 구원입니다.....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내 백성이 구원을 이루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지요
지난주 화요일 주향교회 청년들이 여수 대교교회와 이기풍목사님 마지막 목회지 우학리 교회를 탐방하고 일일 영성수련회를 마쳤습니다. 교회를 떠나기 전 짐들을 정리하고 떠나려는데 비가 부슬부슬 와서 걱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순천을 지나 여수 거의 왔을 때는 서서히 구름이 움직이면서 오던 비도 멈추고 수련장소 대교교회에 도착 했을 때는 주님께서 비도 딱 멈추게 하셨습니다.
강금용 목사님 말씀을 잘 듣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흔쾌히 사랑의 점심식사를 준비해 주셔서 따뜻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사진제공)
다음 장소 우학리교회를 갈려면 배를 타고 가야하기에 지체 할수 없어서 오후2시30분 배에 몸을 실고 112년 된 우학리교회 도착했습니다. 이 교회는 1907년 평양장로회신학교 1회 졸업한 7분의 목사님 중에 한 분이신 이기풍 목사님 마지막 목회지이기에 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곳입니다. 이기풍 목사님은 우리나라 최초 제주도 선교사입니다. 주로 제주도 전라도 광주지역에서 목회하시다가 마지막 우학리교회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하시고 감옥에서 모진 고문으로 몸이 쇠약하시어 석방되어 쉬셔야함에도 마지막 성찬예식을 집례하시고 그 다음날 별세하신 장소가 우학리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112년된 교회인데 이기풍목사님 기념관이 잘 조성되어 오늘도 목사님 흔적들을 알고자 순례길들이 찾고 있습니다. (사진제공)
우학리교회를 떠나 계획대로 금오도 섬에 왔으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섬을 걷는 것 괜찮다 생각하고 산행을 하는데 아는 분이 5코스중에 3코스가 무난하다는 말을 듣고 이동 할려고 하는데 생각지 않게 우학리교회 목사님을 교회에서 나올 때 만나게 되었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가려는데 목사님하시는 말씀이 3코스 쉬운 길을 택하시고 죽포교회에 가서 차를 잠시 세우고 산행을 하되 출렁다리를 건너기 전 좌측으로 가면 쉬운 기름 길이 있으니 그 길을 택하면 시간을 맞추면 아마 마지막 배로 나오실 수 있을 것입니다. 가르쳐 주시더라구요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다보면 주님께서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심을 믿습니까? 반드시 교회에서 하는 일만이 아닙니다. 주님의 자녀가 믿음생활 가운데 주님이 예비 하시고 뜻밖에 도움의 손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도와 주셔요..... 사람도 붙여주세요..... 할렐루야!!
청년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약 우리 일행이 우학리교회 담임목사님을 만나지 못하고 그냥 3코스 길을 끝까지 고집 부리고 갔다면 아마! 금오도에서 일박을 하고 다음날 왔을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도우심을 애기를 했어요.
산행을 하는데 우리가 저녁 6시 30분 배로 가야 하는데 비렁길이 생각보다 평지가 아니어서 조금 힘들었습니다. 여 청년들은 샌달을 신고 산행을 하다보니 걷는데 불편하여 하은이는 걷다가 약간 삐어 주저 앉기도 했고 안내표시가 잘되어 있지 않아 이리갔다 저리갔다 마지막 배타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출렁다리는 멀리서 보이는데 길을 안보이고 마음만 급해 졌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먼저 앞장서서 가야겠다 생각하고 앞서 가는데 은혜청년이 스마트폰에 있는 지도를 보여주는데 조금전 목사님이 가르쳐준 기름 길이 어렴풋이 보이더라구요 그래 시간은 촉박 하여 제 앞에 펼쳐진 금오섬 주면 경치를 볼 시간도 없었습니다. 마치 쫓기는 사람처럼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저 멀리 교회차를 세워 놓았던 죽포교회가 보이는 거예요 그때 교회를 바라보는 저의 심정은 마치 천국을 바라보는 마음이었습니다. (저 혼자만 이렇게 급했을까요?)
무사히 우리 일행들을 차에 태우고 여객터미날에 30분전에 도착했을 때에는 우리가 마지막 배에 승선 하는구나 다 하나님이 도와주셨습니다.
평안한 마음으로 이제 배에서 내려 우리 교회 차가 주차되어 있는 여수대교교회에 무사히 도착 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출발하여 광야 같은 금오도 비렁 길을 돌고 돌아 무사히 다시 도착한 곳도 교회인 것을 생각하면....... 다! 하나님이 행 하셨구나...... 일하셨구나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어디서 무엇을 하든 반드시 수호천사 같은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습니까?......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하나님이 도우시고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대로 두렵고 떨리는 구원.......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엡2: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선물은 누가 주면 감사 합니다. 그래서 그냥 받으면 됩니다. 3일전에도 이웃 삿슈사장님이 뜻하지 않는 수박2개를 주셔서 맛있게 오늘도 먹을 것입니다. 선물을 주는 사람은 그만큼 받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선물을 준비 합니다.
그런데 구원 받은 것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선물 중에 최고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은 눈에 보이지를 않습니다.... 잡히지도 않습니다...... 그런다고 선불을 받는 것도 아니요..... 돈을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신기합니다..... 그런데 아무에게다 덥석 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사 택함 받는 자에게 거져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주시는 거예요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누구나 예수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어 입술로 시인하는 자에게 주시는 그냥 주시는 구원입니다.
그런데 이 구원을 사도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편지하기를 어떻게 쓰고 있습니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어떻게 하라.... 구원을 이루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이루라는 것은 마침이 아닌 구원이 계속 진행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천국 가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천국 티켓을 가졌다고 졸업장 받는 것은 아닙니다. 학생이 입학하면 마칠 때 졸업장이 주어집니다. 반드시 과정이 있습니다. 신앙이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후 이 땅에서 마치는 그날까지 구원을 계속해서 이루어가는 성장이 필요 합니다.
대나무를 보셨습니까? 하늘을 향해 치솟으며 솟아 올라가는데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움직입니다. 그러나 대나무을 보십시오 지조 있는 고고한 자태를 보면 우러러보게 됩니다. 대나무가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올라 갈 수 있는 것은 중간 중간에 매듭이 있습니다. 일정한 매듭은 성장하도록 돕는 자리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고 구원받으면 모든 것이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이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기 위해 마치 대나무에 있는 매듭처럼 구원이후 성장과정을 거쳐 한 단계 한 단계 거쳐 가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을 이루는 과정입니다.
예정가운데 김승권이 선택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구원 받은 이후 구원을 이루어가는 과정(서정) ⇒ 소명.....중생..... 회심.....신앙....칭의.....성화...... 견인...... 안식...... 영화........ (이미지참고)
이처럼 구원을 이루도록 신앙성장을 위해 이런 계단을 우리에게 오르도록 하셨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세우고 싶어 하셨습니까?
13-14절에 보면 흠이 없는 자녀로 세우고자 하셨다는 말씀이 들어옵니다.
성도여러분!! 조금 전 구원의 서정 이미지를 보았지만 예를 들어 베드로를 한번 보십시오 예수님을 처음 만날 때 갈릴리 고기 잡은 어부에서 사람 낚는 어부로 베 선택을 받았습니다. 선택 받은 이후 시몬 베드로가 나중 게바 반석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루 아침에 되어진 것이 아니지요 복음서를 통해 수없이 반복된 베드로의 실수를 성경은 고스란히 들어내 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도 베드로처럼 실수 할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베드로는 어떻게 보면 신앙의 최고의 자리에서 최하의 자리로 떨어지는 수모를 당한 베드로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입니다. 근더더기 하나 없이 위대한 신앙고백을 했던 베드로 최고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베드로가 비자앞에서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나는 그를 전혀 모른다 신앙고백 한 적이 없다 라는 말과 다를봐 없다. 이 말과 같습니다. 한마디로 신앙이 최하의 자리로 떨어집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으로 베드로의 신앙인생이 끝납니까? 아닙니다. 베드로는 회심 중생의 삶이 초대교회가 시작되는 오순절 성령의 역사로 새 사람 중생으로 거듭나지 않습니까?
베드로는 중생한 이후 예루살렘교회 감독이 되고 마지막 순교할때에 전설에 의하면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죽음이 아니라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마지막 순교했습니다. 수제자중에 수제자가 되었습니다. 썩어진 한 알의 밀알이 되었습니다.
이런 두렵고 떨리는 구원을 이루도록 과정을 주셨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의 세대를 보십시오 정말! 만만치 않고 쉽지만은 않는 세대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대를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라고 했습니다.
2:14-15...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어그러진다"라는 말은 비뚤어지고 구부러졌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세상은 갈퀴같이 여기가도 걸리고 저기 가도 걸리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에 걸립니까? 죄에 걸리게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어떤 세대 입니까? 거스리는 세대입니다. 역행한다는 뜻입니다. 이세대가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서대로 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세대는 이처럼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에서 살고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이런 세대에서 구원을 이루어갈 수 있겠습니까?
지난주에도 동성애 동성혼에 대한 서명을 우리가 했지만 오늘날 이 세대가 잘살고 잘 먹고 여행가고 만족한 생활을 누리며 사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더좋은 것을 없을까 쾌락을 추구 하는 시대 잘못된 생각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질서 안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역행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들을 보는 그리스도인들이 어찌 불구경하듯 바라보고 있겠습니까? 그래서 지난주 있어서는 안되기에 동성애 동성혼 반대서명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 “양성평등이 성 평등으로 합법화된다면 나라의 근간이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16년 11월 서울 어느 중학교에서 한 교사가 수업시간에 동성애의 문제점을 소개하였는데 수업을 듣던 학생 중 일부가 이를 알고 몰래 카메라로 녹음한 뒤 서울시교육청에 인권을 친해 당했다고 신고한 일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학생들 중에 동성애를 찬성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만약 학교에서 동성애성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이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기에 우리는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세대가 반드시 오기 때문에 경고의 메시지를 성경을 통해서 이미 사인을 보내셨습니다.
롬1:26-32......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그런데 우리가 두렵고 떨리는 구원을 이루어가면 어떤 결과를 가슴에 품을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이 될 수 있습니다.
16절.......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시골오지에서 오직 한 교회에서 주님만 바라보고 순수하게 목회하는 모습 당당히 자랑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자랑거리가 무엇이겠습니까?
바울은 이 구원을 이루기 위해 마지막까지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기꺼이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17절에......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성도여러분!! 목회자가 가장 기쁜 일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교회 처음 출석한 성도가 6개월 내지 1년 후 신앙교육을 착실히 잘 받고 세례를 베풀 때입니다.
목사가 자랑이 있다면 큰 교회 건물을 갖는 것도 아닙니다...... 좋은 집에서 사는 것도 아닙니다.......우리교회가 날마다 세례교인이 늘어나는 것이 자랑입니다.
그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늘어나니 더 이상을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그래서 18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