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는 아파트는 17평~31평형까지 다양한 평수의 이천여 세대로 일 많고 말 많은 서민아파트이다.
주로 17평형에는 자식들과 떨어져 홀로 사시는 사연 많은 노인 분들이 많이 사신다.
그분들은 한겨울에도 난방이나 급탕을 최소한 사용하시고 어떤 분들은 1평짜리 전기장판으로 난방도 하지 않은 채 생활하시는 분들도 많다.
그래서인지 관리비가 오천원 내외 금액이 지난달 보다 증가해도 매우 민감해 지셔서 작정하고 관리실로 따지러 오시는 분들이 많으시다.
지난해 11월, 관리비 고지서가 나가기 무섭게 백발이 성성하고 조금은 마른듯한 몸으로 힘들게 출입문을 밀고 들어오시는 할아버님이 잔뜩 굳은 얼굴로 노여움 가득 “관리비가 너무 많이 나왔어” 하시면서 고지서를 쭉 내미셨다.
고지서 관련 민원중에는 무작정 와서 따지고 잘못됐다고 하시는 분들이 매달 열에 아홉은 되다보니 자연스레 미소 지으며 “제가 확인해 드릴께요”하며 지난달 관리비 항목을 비교해 보았다, 급탕은 1톤을 전기는 3KW정도 더 사용하셔서 통틀어 5,000여원 정도 인상된 상태였다.
할아버지께는 “지난달 보다 날씨가 조금 더 추워져서 아마도 조금 더 전기장판을 사용하셨나 봐요” 하고 설명해 드리면서 우리집 난방, 전기요금 별로 신경 안 쓰고 사는 난 죄송한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으로 한쪽 가슴이 시려왔다.
설명을 들은 할아버지는 처음 오실 때 노여움과 달리 웃음을 지으시며, 아가씨 친절하게 설명해 줘서 고맙고 내가 미안하니 관상과 손금을 봐 주신다시며, 지금은 힘없고 눈이 어두워 일을 하지 않고 있지만 10여년 넘게 하신일이라고 하시면서 나의 이목구비에 대한 듣기좋은 말씀과 손금의 잔선 하나하나까지 봐주시면서 오래오래 복 많이 받을 좋은 관상과 손금을 가졌다고 엄지손가락을 높이 올리시며 ‘따봉’이라고 하시며 환하게 웃으셨다.
작은 미소와 친절로 할아버지를 대한 것 밖에 없는 난 그 날 ‘따봉’ 관상과 손금을 가진 행복한 아가씨가 되었다.
아파트에 근무하다 보면 정말 말이 안 되는 억지로 화를 내시고 무시를 당하는 일들이 다반사지만 친절하고 차분하게 설명해 드리면 나중에 미안하고 고맙다고 야쿠르트 한 봉지, 사탕 한 봉지를 심심할 때 먹으라고 들고 오시는 분들도 계시고 당신이 잘 모르면서 너무 화만 냈다고 미안하다고 적은 카드에 작은 토기인형들을 선물로 주시는 할머니도 계신다.
세대수가 많은 아파트라 특히 관리비고지서 배포 후 관리비가 많이 나왔다고 잘못 된 것 아니냐고, 고지서를 잃어버려서 못 냈다고 연체료를 빼 달라 하고, 이중입금이나 과입금 했는데 내 돈 지금 당장 돌려달라고 등등...... 두 대의 전화기가 불이 날 정도로 울려 되는 날이면 대답하고 설명하느라 녹초가 되어 버리지만, 가끔 이렇게 맘을 써주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있기에 생활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이 있을 때면 나한테는 늘 그립고 죄송스럽고 미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는 한분, 바로 아버지가 생각 난다. 사람 좋고 남한테는 싫은 소리 잘 못하시고 특히 사람들을 집에 불러 음식 나눠먹기를 좋아하시고 딸, 사위, 자식들에게 먹을 것을 이것저것 챙겨 주시는 게 삶의 낙이셨던 분, 어린나이에 홀어머니의 8대독자로 자라 사람의 정을 그리워하시던 여린 아버지는 그렇게 걱정하시고 희망하셨던 손자들을 못 보시고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다.
결혼과 함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내가 아파트 관리소 일을 시작해 두 번째 아파트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친정이랑 가까운 아파트이고 유난히 고구마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관리소로 찐 고구마와 잘 익은 총각김치를 한가득 바구니에 가져오셔서 그날 직원들 모두 맛있게 나눠먹은 추억이 있다. 그렇게 다 큰 딸자식 챙기시고 남한테 베푸시고 배려하신 아버지와 같은 동연배인 분이 지금 현재 근무하는 아파트에 계신 소장님이시다.
주택관리사 2차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일 그만하고 관리소 건너편 독서실가서 공부나 하라고 하시며 넌 꼭 합격할거라고 격려해주셨고, 우리관리 공채 합격 후엔 오리엔테이션시간과 각종행사에 참여할 수 있게 배려해 주시며 지금도 소장발령 받아 나가면 수자 넌 잘 할거라고 하시면서 여러 가지 소장으로서의 노하우도 전수해 주시는 정말 아버지 같은 분이시다.
위에 일들은 전처럼 현실에 안주하면서 그냥 일 잘하는 경리로 의미 없는 삶을 살았더라면 크게 와닿지 않을지도 몰랐던 일들이 주관사 취득, 관리회사 공채 합격 등의 변화로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 지금은 큰 의미로 다가온 일들 중의 하나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생존목적은 살아가는 이유를 가지는 것이다.
결혼 8년만에 귀하게 얻은 복덩이 아들 경민이의 커가는 모습 말고는 “난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소용돌이치며 나를 깨우고 흔드는 날들이 더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을 다잡고 시작한 주택관리사란 목표는 변화의 바다로 나를 던져버리는 의미 있는 삶의 행운티켓이 되어 주었다.
남편이 사업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중국생활을 하던 터라, 남편 없이 초등4년 남자아이를 챙기며 일하고 공부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간날 때 소설, 에세이나 읽으며 공부를 놓은 지 오래된 사십 중반인 내가 전혀 문외한 쪽인 법과 시설을 공부한다는 것은 조금 거창하게 포장하자면 나와의 한바탕 싸움이었다.
그러면서 아들에게는 엄마는 꼭 해낼 거라고 선전포고 하면서 힘들 땐 아들을 보고 기운을 얻었고, 가끔은 중국에 있는 남편한테 힘들고 공부할 시간 없다고 투정도 부리면서 기어이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손에 쥐던 날 얼마나 스스로 뿌듯하고 자랑스럽던지,
그런 나에겐 자격증취득의 성취감으로 그냥 머물 수 없는 두 번째 목표가 있었다.
내가 현재 몸담고 있는 위탁관리본사도 몇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회사지만 현재 공채 합격된 관리회사는 대표이사의 특별한 마인드와 약력, 체계적이고 활기찬 홈페이지, 선배소장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통해서 무조건 나의 미래의 삶을 펼칠 수 있는 든든한 터전으로 정하고 그 길을 향하여 달리게 하는 목적이 되어버렸다.
만나는 합격동기생들에게도 나의 목표는 원하는 회사의 공채합격,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에게도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인 삼성과 비슷한 수준인 이 회사에 합격할거라고 장담을 하면서 공채준비를 했었고 그런 나의 꿈과 열정으로 12:1의 경쟁을 뚫고 이 회사의 최종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 석자를 당당히 새겼다.
2010년 연말 제7회 공채 오리엔테이션 첫날, 이른 새벽부터 준비하고 두 시간 이상 걸려 본사 교육장에 도착, 행복한 긴장감과 설레임 속에 첫날을 마쳤다.
집으로 향하는 늦은시간 전철안에서의 표현 못할 행복감과 희열, 이 회사 공채생으로서의 자긍심, 앞으로의 나의 미래설계, 아들과 남편에게 전해주고 싶은 오늘의 일들과 느낌들, 너무 오랜만에 가진 나에 대한 자긍심 등 나에겐 큰 선물을 받은 특별한 날로 기억될 것이다.....
인생에서 목표로 삼아야 할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우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며, 그리고 그것을 즐기는 것이라고 가장 현명한 사람들만이 두 번째 것을 성취한다고.
앞으로의 목표는 행복한 긴장감으로 내 앞에 펼쳐진 미래의 소중한 하루하루를 축제의 날처럼 알차고 신나게 보내는 것이다.
늘 준비하는 자에겐 기회가 있다는 걸 확신하며....
2011년 3월 22일
강 수 자
첫댓글 소장님~고맙습니다~
좋은글...모든분께...귀감될수 있기를 바라며....
와우!! 훌륭한 글입니다...
좋은 소장님에 배운 것들을 소장이 되시면 잘 활용 적용하세요^^ 저는 한국주택관리 공채합격자랍니다.~~
사랑받고 인정받는 분은 반드시 뭔가 다르더라구요~
역시 멋진분이십니다~
" 늘 준비하는 자 " 되겠다고 또한번 다짐해보는데 왜 마음이 짜~~~안~!!!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