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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
자고 나니 나른하다. 온몸이 흐느적거려서 일어나려 해도 맘대로 안 된다. ‘왜 이럴까.’ 뒤척이다가 겨우 일어나 앉았다. 이른 새벽이어서 아내는 곤한 잠에 떨어져 자고 있을 거다. 부르면 저쪽 방이고 놀랄까 참아본다. 화장실을 가는데 뒤뚱거려 걸음이 온전치 못하다. 마치 출렁다릴 걸어가는 좌우로 비틀거리는 느낌이다.
겨우 자리로 돌아와 누웠다. 얼마쯤 지났을까. 아침 먹으라는 말에 깨어났다. 까라져 또 잤는가 보다. 꿈지럭거리며 허둥대고 제대로 기척이 없자 아내가 들어와 왜 그러냐며 푸석한 얼굴을 살핀다. 수저를 들어 올리는 것도 부지런하지 못하다. 어둔하고 뒤틀리며 뭔가 켕기고 엉기기만 하다. 반찬 집는 젓가락질이 헛갈리고 있다.
아직 잠이 덜 깬 건가 하는 아내다. 물어도 대답이 전 같지 않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게 달랐다. 금방 얘기하고선 또 뭔가 물어온다. 버벅거리기도 한다. 어디 똑 부러지게 아픈 데가 없으니 ‘나 아파요.’ 할 수 없다. 그러길 며칠이 지나면서 여느 때와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어 병원엘 가 봐야겠다 맘먹고 가까운 송도병원을 찾았다.
“병원은 왜 나 괜찮아 아픈 데 없어.”
멀쩡하다며 안 가겠다 떼쓰는 남편을 달래어 갔다. 여러 가지를 검사했다. 촬영도 했으나 자세하게 나오지 않아 안정제를 처방하면서 한 달 뒤 들르라 한다. 언제부턴가 약간 귀가 어두워서 거듭 묻기를 잘한다. 그러다 미안한가. 눈치로 알아채면서 느낌으로 지레짐작하며 살아간다. 이번 일도 그렇다. 김준태의 지남력이 남달랐는데 갑자기 흐려진 것을 모른다.
곁에 붙어사는 윤혜은이 다른 모습을 보고 검사를 하게 된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남편이다. 다시 병원을 찾아갔을 때 의사가 되게 놀란다. 이렇게 나빠졌느냐며 어린애처럼 허둥대는 남편을 바라보고만 있다. 입원으로 다시 이것저것 검사하고 촬영을 해봤다. 판독이 쉽지 않은가. 복잡한 머리의 영상이 잡히지 않는 모양이다.
다급한 아내와 자녀들이 걱정하면서 서울 큰 병원으로 가 보자 한다. 온갖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사월이다. 그것들도 모두 시들하다. 남편이 이러한데 무슨 소용 있나. 강남병원에서 머리 혈액암이란 진단을 받았다. 그러니 인지능력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금방 말하거나 들은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곳과 때, 사람을 선뜻 알아내지 못한다. 누구더라 더듬거리게 된다. 거기다 귀까지 어두우니 다른 사람 같다. 가장 마음 아프고 불쌍히 여기는 아내다. 어찌하면 좋을까. 참을 수 없고 견딜 수 없어서 속으로 마냥 울고 있는 혜은이다. 수술해서 고쳐 달라고 마구 다그쳤다. 그래서 암세포를 줄여나가는 방사선 치료를 시작했다.
부산 다대포 치과병원과 집안일은 모두 딸에게 맡기고 잘하라 부탁했다.
“아버지 치료해서 건강한 몸으로 오세요.”
하는 뒷소리가 귓가에 머문다. 밤낮으로 씻고 닦고 먹이고 침상 밑에 쪼그려 머물며 뒷바라지한다. 남편이 낫기만 한다면 하나도 고달프지 않다. 남편은 맨날 먹고 자고 생각하는 것이 일이다. 생판 딴 얘길 하다가도 멀쩡하게 돌아와 천연덕스레 말한다. 흐렸다 맑았다 하는 것 같다. 장마 날씨처럼 반짝 햇빛 날 때는 또렷해 보인다.
그러다 잠자고 골똘히 생각하기를 거듭한다. 밤낮의 구별이 없다. 멍할 땐 무슨 말인지 얘기하고 짜증을 부리기도 한다. 자기 말에 반응이 시큰둥하다는 것 같다. 그러다 섬망에서 돌아오면 미안한지 자꾸만
“여보 사랑해. 고생이 많구만 ---.”
남사스럽게 그 말을 많이 해서 세면장에 있노라면 간호사가 찾아와
“사랑하는 여보를 찾아요. 어서 가 보세요.”
한다. 계속되는 일이다. 잠자거나 조용히 있을 때 싱긋이 웃거나 중얼거릴 때는 지난날 있었던 일이 어렴풋해서 즐거워하는 것 같다. 당구 쳤던 일이 가장 많이 떠오른다.
툭툭 혼자 치다가 옆 당구대에 가까이 가서 같이 한번 하자 끼어들었다. 넷이서 편을 갈랐더니 비슷해서 재미있었다. 이기고 지고를 거듭하면서 사흘이 멀다며 만났다. 정원 중국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거나 김밥집 칼국수와 비빔밥을 시켰다. 다들 지하철로 하단역에서 내려 뒷길 3층 하이웰에 모인다. 처음에는 은행 복도 뒷문을 열어줘서 질러지나니 가까웠는데 어느 날 그만 걸어 잠그고 말았다.
쓸데없이 통로를 이용한다며 막은 것이다. 옆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루건너 뻔질나게 만났다. 오후 대여섯 시간은 긴데 여기선 잠깐이다. 어느새 훌쩍 지나간다. 아쉽게 헤어지면서 내일 또 만나 칩시다. 맨날 겨루는 일로 해가 진다. 당구가 이리 재밌을 줄 몰랐다. 갑자기 만나서 오랜 친구처럼 사귀었다.
한때 담배 연기 자욱하고 자장면과 술, 안주 냄새가 풀풀 나던 곳이다. 껄렁한 친구들이 드나들던 때는 소란이 일어 큐를 휘젓고 공은 날아다녔다. 이젠 많이 달라졌다. 냉난방에 흡연실이 따로 있어 추위와 더위는 옛 얘기다. 마구 피워대는 담배로 퀴퀴함이 가신 지 오래다. 시끌벅적하지 않고 차분하며 조용한 곳으로 바뀌었다.
한 달 두 달 몇 해가 지나도록 변함없이 쳤다. 이게 어쩐 일인지 세월 가는 줄을 모른다. 훌쩍 십 년을 넘겼다. 그사이 가까운 두 곳으로 옮겼다가 신평역 24시에서 사하시장 입구 키스로 갔다. 모두 4백으로 4구를 쳤다. 끌기와 밀기, 얇게 치기, 멀리 치기, 빗겨 치기, 끊어치기 쿠션, 뱅킹 중 어느 하나를 잘해서 뛰어난 친구도 있다.
신수영은 자주 한편이 되는데 빈 쿠션을 잘 쳐 이길 때는 늠름해 보인다. 쓰리 뱅킹을 어찌나 잘 치는지 다들 깜짝깜짝 놀란다. 가당찮은 것을 쉽게 맞추니 그에게는 각도를 보는 특별한 눈이 있는가 보다. 오래 보거나 겨냥하는 주저함도 없다. 다짜고짜 쳐서 저게 맞겠나 했는데 얼씨구 비틀비틀 가 부딪친다.
동래에서 1시간 지하철을 타고 온다. 괴정 칼국수를 좋아해서 ‘칼국시’하면 ‘ㅇㅋ’하고 답을 보낸다. 다들 밥과 고기를 좋아하지, 희멀건 밀가루 음식을 즐겨 먹는 사람은 우리밖에 더 있겠나 했는데 웬걸 많다. 자리가 없어 기다렸다 앉는다. 올은 건져 먹고 국물에 밥을 말아 ‘후루루’ 들이키면 먹은 것 같다. 한겨울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걸어서 키스 당구장으로 가면 이도준과 문천영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기다린다. 서둘러 큐를 들고 설쳐댄다. 오늘 준태는 수영과 한편이다. 몇 번 쳤지만, 저쪽이 좀 잘 쳐서 이기기 버겁다. 천영은 갈 때 같이 타고 다니는 친구로 당구 열성이 대단하다. 밑을 겨냥해야 하는데 중간을 끄는 데도 맥없이 끌려온다. 다들 살살 치는데 세게 친다.
그래도 돌고 돌아와서 모인다. 흡연실을 자주 가는데 희뿌연 창으로 보면서 자기 차례가 오면 한두 모금 피우곤 온다. 와선 자기 당구를 잘 찾아 친다. 대게 칠 때마다 흰 공 노란 공이 바뀌어 헛갈려 ‘이번 내공은 어느 것이더라.’ 하는데 정확하다. 또 맞았다. 안 맞았다. 를 가까운 데서도 모르는데 멀리서 보고 쫓아와 심판한다.
머리와 치아가 성글었는데 뒷머리 한판 수천 개를 앞머리에 옮겨심었다. 조금 빠지고 거의 살아 더부룩하다. 모자를 늘 푹 눌러쓰다가 벗으니 대머리가 온데간데없어지고 미남이 됐다. 쓰리 쿠션 연습을 많이 해서 한꺼번에 몰아칠 때가 있다. 편을 가르면 마지막에 두 개 쿠션과 빈 쿠션을 쳐야 한다. 편을 이기게 하는 데 좋다. 이렇듯 정성과 열심인 사람에게는 못 당한다.
다 낮춰 치는데 이도준은 큐 끝을 높이 들고 깊이 찔러 당기길 참 잘한다. 멀찍이 떨어진 것을 곧잘 쳐서 모아놓는다. 밀당을 어디서 배웠는가 가르쳐 달래도 말을 아낀다. 따라 해보면 안 되는데 쉬 쏙쏙 당겨지는 게 놀랍기만 하다. 밀기도 대개 큐를 수평으로 눕혀 위를 미는데 이건 가운데를 쳤는데도 쑥 밀려가 맞는다. 어찌 그리될까.
흰 바지에 백구두를 신고 다니며 공항 출입국 세무 일했다는 호탕한 멋쟁이다. 당구를 너무 좋아해서 빤한 날이 없다. 언제나 부르기만 하면 냉큼 쫓아온다. 길 건너편 산기슭에 살면서 걸어 오르내린다. 술과 담배를 즐겨 마시고 피운다. 위와 눈도 나빠 고생하고 있다. 아까운 당구 친구를 잃을까 담배를 끊으라 권했더니 쉬 똑 내동댕이쳤다. 쉽지 않다는데 그거 하난 독하다. 그 뒤 얼굴이 맑아지는 게 보기 좋았다.
천영과 도준 이 두 친구가 준태 아프다는 말을 듣고 입원하기 전 온누리치과로 찾아가 위로했다. 간 김에 스켈링도 했다. 부부가 반갑게 맞아주며 인사한다. 지하 교회와 1층 치과, 중간 전세 등 건물로 위층에 살고 있다. 좀 전에 옆 사람을 소개했는데 또 인사를 시켜서 민망했다. 어서 나아 당구장에서 만나자며 두 손을 잡고 흔들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상대가 잘 쳐서 주눅이 들거나 당구가 안 될 때면
“어이구 사람 죽겠다.”
말을 자주 하는 걸쭉한 최진효와 한편이 되어 칠 때는 웃음이 넘친다. 저쪽 박상정과 같은 편인 도준이 이길 거라 기고만장이고 자신만만하다. 외과 의사로 수술을 맡아 하다가 지금은 나이 많아 약방을 하는 진효이다. 그래도 주 이틀은 나가 돌봐야 한다. 바둑이 몇 단인데 즐기던 그것도 접고 당구장으로 달려온다.
온종일 치고도 힘이 남아도는가. 더 하잔다. 걸핏하면
“사람 좀 살자.”
하며 우거지상을 하는 게 즐거웠다. 갑자기 입원했대서 놀랐는데 계단에 넘어지면서 머리와 목을 다쳐 여러 달 저리 누워지낸다. 전염병으로 면회도 할 수 없이 사촌 친척 도준의 말만 듣는다. 부디 나아 다시 만나자
“쓸데없는 말 많이 해줘.”
특히 상정의 공이 뛰어나다. 저 멀리 떨어진 것을 멀리 치기를 해서 맞출 때는 눈이 휘둥그레진다. 끊어치기도 잘해서 뛰어나다. 한 팁 두 팁 각도를 정확히 가늠한다. 가는 곳으로 회전을 주지 않고 반대로 살짝 주어 찾아가게 한다. 오래 해서 손에 익은 것이다. 그것도 따라 해 보지만 잘 안된다. 다 자기 나름의 주특기가 있다.
나와 한편일 때는 힘이 나는 준태다. 최규진과 박구청이 잘 쳐도 몇 번 이긴 것에 힘이 되고 있다. 규진은 온몸으로 땀을 흘리며 정성껏 친다. 그 마음에 맞아주는 것 같다. 허투루 치는 게 없다. 얼마나 힘을 쏟는지 빌빌 끝까지 굴러 따라가 부딪친다. 숫자를 헤아리다가 틀리면 언짢아할 때가 있지만 곧 돌아서서 싱거운 소릴 한다. 칠십이 다 넘은 지긋한 나이인데 일본어를 배우러 다닌다. 늘 가방을 챙겨 든 게 괴정 복지관 일어반을 다녀오는 길이다. 늙바탕에 언어 배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대단하다.
구청은 얼마나 정확한지 가장 잘 치는 것 같다. 신중하다. 정신을 한곳에 모으곤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밀어 넣는다. 돌고 돌아서 기어이 찾아가 맞아준다. 요즘 텔레비전에 빌리아드 방송이 나와 보고들 많이 배운다. 거기서 봤는가 남달리 칠 때가 있다. 치려다 일어서고 초크를 묻힌 데 또 묻히며 머뭇거려서 속을 태우지만 잘 치는 데는 어쩔 수 없다.
“꾸물대니 오금이 저리고 속 터진다. 좀 빨리 치세요.”
규진의 말에
“어따 자기도 느리면서 남말---.”
능글스럽게 받아넘긴다.
준태는 나 강신호와 같은 문협 시인으로 모임 때마다 만나 한자리에 앉길 잘한다. 그런 그와 손잡고 당구장에도 나가니 정겹다. 한 편일 때가 많다. 어쩌다 잘 치면 신이 나는가. 함박웃음을 가득 먹으며 엄지척으로 즐거워하는 게 힘이 된다. 골프를 치며 해외에도 나간다는 데 당구 치는 게 더 좋은가 둘은 단짝이 된 지 오래다. 오후 내내 줄곧 대여섯 시간을 같이 함께 보내도 지루한 줄 모르는 사이다.
“당구에 미쳤다.”
그 얘길 집사람 한데 듣고 다른 친구도 그런 말을 한다. 등산과 낚시, 테니스, 바둑 등 수많은 놀이를 두고 하필 당구에 빠졌을까. 그래 물으면 나도 모른다. 이놈은 자신감을 가져야지. 되겠나 하고 치면 그만 빗나가길 잘한다. 안 맞아 속이 상하거나 상대가 잘 쳐서 삐뚜름하면 얄밉게도 옆으로 살살 빠진다. 맞으러 가다가도 어느새 나타나서 부딪쳐 튕기게 한다.
“사장, 사장 말을 그만두고 어디든 회장을 했으니 회장이라 부르자.”
“선생, 원장, 교장, 국장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준태의 말에 모두 그렇게 하기로 했다. 흔해 빠진 그 소릴 안 하니 속이 다 시원하다. 당구비와 식사비 등 누가 내고 다음에 내 부담하지 하는 건 소용없다. 각자 그때마다 나눠 내는 것이다. 처음엔 각자 내는 게 남 보기에도 거북해 보였지만 지나니 괜찮다. 으레 그러려니 한다. 부담스러운 꽁한 마음이 없어 좋다.
준태가 남긴 건 이뿐이 아니다. 또 있다. 먹거나 아침 일어나 이 닦을 때 치약보다 소금물로 닦으란 것이다. 어릴 때 소금 가루로 닦으면 더 깨끗해진다 해서 그렇게 했다. 잠시뿐 이내 가루 치약이 나와 텁텁하게 문질렀다. 이어 세제와 돌가루를 넣은 끈끈하게 짜는 것이 나와 여태껏 해 왔다. 건드리면 잇몸에서 피가 질금질금 나왔다. 소금 가루가 이를 깎을 수 있고 치약이 이 사이에 남아 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
“다 닦고 다시 칫솔질해 보면 거품이 일어난다.”
짜지만 물로 문지르니 시원하지 않았다. 거품이 부글부글 이는 양치질이 좋아 보였다. 허전하고 마땅치 않아도 그냥 하다 보니 여러 해째다. 이젠 이골이 나 생활이 됐다. 그리 해야 하는 줄 알고 소금 녹인 물로 닦아오며 살았다. 가족이 자기 소금물 병을 갖고 소독 삼아 칫솔을 꽂아 담가 놓았다. 어떨 땐 뿌옇다. 물에 헹궜지만 그래도 뭣이 있는가 그런다.
“이가 아주 튼실해졌다.”
질질 나오던 피는 멎었고 부서져 내리던 어금니 곳곳이 더 단단해졌다. 덮어씌운 곳이나 임플란트도 오랜 데 탈이 없다. 나이 많아 이가 아프다며 모두 힘들어하는데 우리 가족은 그런 걱정이 없다. 무심코 수십 년 지나다 뒤늦게 알고선 아주 아주 감사함을 느낀다. 치실을 사용하라 해서 해보니 또한 편하다.
끼여 찡찡거렸는데 안쪽 어금니까지 ㄱ자로 콕콕 찌르니 깨끗하다. 냄새가 없어졌다. 무엇이 이 사이에 남아서이다. 준태 가르침이다. 의사가
“치간칫솔 사용하라.”
노래했다. 귀 넘겨 듣기만 했는데 좋았다. 소금물 처방으로 뛰어나다. 처음 몇 년은 모르다가 십 년을 훌쩍 넘기니 이리 좋은 이빨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돌아가면서 편이 되는데 그때는 옆에서 보고
“잘 쳐라.”
소리치는 준태다. 이래저래 보고 배우기를 거듭하다가 따라 잘 치게 된다. 알맞게 견주어 힘껏 치면 또르르 흘러가 맞는다. 밀고 당기는 기술이 날로 쌓여 고수 치는 모습이다. 찬찬히 보고 빨리 익히는데 서슴없어라. 끌기가 남다르다 좀 떨어져 있어도 몇 번 견줘서 살짝 치는데 소르르 당겨져 가운데 딱 맞는다.
그러다 어언 마칠 시간이 되면 아쉽게 헤어져야 한다. 시니어 가격으로 싸게 칠 수 있다. 저녁은 사람이 많다. 낮 오후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다. 손님이 뜸하니 빈 당구대를 허락한 것이다. 3구 치는 대대보다 중대를 사용한다. 작은 공이 빙글빙글 돌아 돌아서 맞는 게 참 재미있다. 안 될 때는 잘 가다가도 무엇이 나타나 치거나 그만 옆으로 흐른다.
“감질나라.”
붉은 공 두 개 흰 공과 노란 공이다. 편을 가를 때는 넷이서 손바닥을 엎었다 젖혔다 한다. 같은 것이 그날 한 편이다. 먼저 치는 것은 가위 바위로 정하기도 하나 흰 공 노란 공을 가볍게 쳐서 한 레일을 갔다가 돌아와 턱에 가까워야 한다. 어려운 게 첫 큐이다. 이게 잘 안 맞는다. 아무리 연습하고 애써도 빗나간다.
보통 붉은 저쪽 공 왼쪽을 쳐서 벽 두 개를 거쳐 우측 벽을 지나 맞아야 한다. 조금씩 삐져 나가고 만다. 준태는 그걸 잘 친다. 알맞게 맞출 땐 멋져 보인다. 몇 번 밀었다 댕겼다 견주어 살짝 치는 게 고수다워 보인다. 누굴 보고 배웠는지 남들 묘기를 다 섭렵하는 게 대단하다. 보통 어느 정도 치면 늘지 않고 그대로다. 그런데 잘 나간다. 노력도 하고 애쓰는 것이 보이지만 남다르다. 탁구, 테니스 등이 나이 들어 배우면 더디기만 하다.
아무리 날고뛰어도 별 소용이 없다. 바둑을 늦게 배우면 오나가나 앉으나 서나 10급이다. 젓가락질이 그렇다. 어릴 때 못 배우면 평생 움켜쥐고 먹어야 한다. 그래서 일찍 익히라는 말이다. 치는 사람은 맞추려 애쓰느라 헤아리질 못할 때가 있다. 그래서 상대가 하나둘하고 알아듣게 해야 한다. 머뭇거리고 뜸 들이면 하나 더 들어가거나 덜 헤아릴 수 있다.
그러다 숫자로 다툼이 이는데 몇 개다. 아니다. 또 어지럽게 맞았다. 안 맞았다 하는 일이 생긴다. 자기는 부딪쳤다 하는데 상대가 볼 땐 그냥 지나갔다. 대수롭지 않은 일로 그만 승강이질이 된다. 이런 일 저런 일로 실랑이가 잦으면 머쓱하게 된다. 화가 쌓였는지 여러 사람 보는 앞에서 삿대질하며 크게 달려들었는데 학을 떼었는가. 말없이 떠나가곤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대여섯이 남게 됐다. 아픈 일이다. 얼마나 오래 같이 지나며 즐거웠는가. 다시 오길 기다렸지만, 가물가물 소식이 없다.
“눈 좀 붙이자.”
긴 생각으로 눈이 감겨오는 준태다.
여러 달 치료 했는데 급히 나빠져만 가는 남편이다. 어찌해 볼 수 없이 손써 봐도 진행은 계속된다. 허물어지는 돌담처럼 무너져 내린다. 다른 환자를 받아야 하므로 더 머물 수 없는 병원이다. 부산병원으로 치료 의뢰서를 써 준다. 하늘이 무너지듯 날마다 충격이다. 지금까지 긴가민가 미적거리다가 이제야 자신이 큰 병에 걸린 걸 알고‘하나님 낫게 해 주세요’기도드린다. 아는 사람마다 문자를 보낸다.
“저 아파요. 기도해 주세요.”
그런데 웬일인지 부산병원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환자가 넘친다는 구차한 핑계 말이다.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겨우 구포 골짝 만덕 요양병원에 어렵사리 들어가게 됐다. 고맙기도 하지 자칫하면 오갈 데 없어 헤맬 뻔했다. 파김치가 된 가엾은 아내와 아들딸의 눈물 어린 보살핌을 받는다. 차츰 나아지기를 바라고 통성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자주 듣는다.
“하나님, 남편을 데려가지 마세요.”
“하나님,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부디 살려 주세요.”
“하나님! 준태씨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하고 외쳤다.
노란 변이 동물처럼 거무스레하다가 요 며칠째 새처럼 하얗게 쏟아낸다. 왜 이렇게 되나. 두려움이 덮쳐온다.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는 느낌이다. 이제 정말 남편을 잃어버리게 될 거나. 어린애처럼 눈만 껌벅인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가. 엉뚱한 말을 할 때는 기막히다가도 잠깐씩 돌아와 맑아질 땐 오래오래 이대로이길 바란다.
먹고 자고 생각에 잠기는 준태 어린이다. 의료선교를 떠난다.
아프리카 열대지방을 거쳐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의료봉사활동을 했다. 1백 명이 넘는 의료진과 함께 이달은 이곳 다음 달은 다른 곳을 찾아다녔다. 다 못사는 곳이고 곳곳이 아픈 사람 천지다. 관공서를 이용하기도 하고 학교 시설을 병원으로 차려 진료해 나갔다. 외진 늪이나 숲속에서는 천막을 쳐서 임시 병원으로 그들을 보살펴야 했다.
말만 듣던 곳을 다니면서 치료하고 돕는다는 게 놀랍다. 우러러보며 구원의 손길을 거둬주는 우리는 별에서 온 사람 같다. 흰 가운에 청진기를 걸고 다니는 멋스러움이 있다. 가는 곳마다 어디에까지 줄을 서서 치료 순서를 기다린다. 외상 환자와 가슴앓이, 속병으로 지쳐가는 검은 대륙의 사람들을 살려내고 있다.
잠깐이라도 참을 수없이 쿡쿡 쑤시는 이 앓는 사람들은 치료 후 뛰듯이 날 듯이 시원하다며 고마워한다. 뱀에 물리거나 맹수의 공격으로 받은 상처를 해독하고 소독한 후 약을 발라 감싸면 다 나은 것처럼 좋아한다. 벌벌 열나는 사람, 속쓰림, 흔한 감기, 천식, 결핵, 나병, 성병 등에 해열제에서 해당 약을 처방하면 치켜들고 좋다며 야단법석이다.
다음 날 다 나았다며 닭과 오리고기, 물고기, 채소, 온갖 열매를 한아름 갖고 와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오래 머물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떠날 땐 울먹울먹하는 게 안됐다. 거무튀튀하거나 어떤 사람은 너무 까무잡잡해서 눈과 이가 하얗고 손톱의 하얀 반달이 드러날 뿐이다. 몇 달을 검은 사람만 대하다 보니, 나도 어둡다는 생각으로 지낸다. 말은 안 통해도 손가락으로 아픈 곳을 가리키면 손짓과 발짓, 애틋한 눈빛으로 다 알아낸다.
짓물러 터지는 사람들의 흐르는 고름을 닦아주고 앞을 못 보는 눈병 환자를 보게 하는 게 커다란 보람이다. 이보다 더한 인간애가 어디 있을까. 삐어 걷지 못하거나 앉지 못하는 사람을 계속 교정시켜 도움을 주면 눈 가장자리가 촉촉이 젖어 들면서 연신 굽신굽신한다. 만연된 성병으로 밑이 문드러져 냄새가 푹푹 찐다. 쓰라린 고통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해 주는 것 또한 우리의 할 일이고 기쁨이다.
먹고 자는 일이 쉽지 않다. 편히 지나던 사람들이 낯선 땅에서 하나에서 열까지가 다 불편하다. 후텁지근하고 오지의 온갖 것들이 괴롭힌다. 길에 커다란 덩어리가 있다. 보니 코끼리 변이다. 차가 못 다닐 정도로 크니 무얼 먹어 저럴까. 힘이 세어 집을 밀어 넘기니 모두 무서워한다. 코로 툭 쳐 밀고 밟으면 납작해져 큰일이다. 몸이 집채만 해서 큰 바위가 뒹구는 것 같다. 그래서 집 주위 밀림을 베어 없앤다. 숲 없는 곳은 안 다닌다. 대신 썰렁하고 휑뎅그렁하다.
수단과 콩고 등 내전 중인 데는 다니는 게 위험하다. 그래도 육이오 때 파병으로 도움을 준 나라를 어찌 지나치겠나. 가평과 춘천 전투에서 밀고 내려오는 인민군과 중공군에 맞서 싸운 용감한 에티오피아 왕실 군대를 잊을 수 없다. 유엔군을 만들도록 설득해서 최초로 한국전에 참전시킨 놀라운 나라이다.
이탈리아 파시즘 무솔리니 침략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애국 청년들과 저항하면서 유럽에 도움을 요청했다. 가까스로 독립한 셀라시에 황제가 세계에 호소하면서다. 유엔군사령부가 생겼다. 지금은 미군만 남고 대부분 철수했다. 다시 전쟁이 발발하면 안전보장이사회의 어려운 결의가 없어도 자동 참전이다. 이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그들이 전선을 지켜줘서 이제는 남침이다. 북침이다. 헛갈리는 거짓이 춤출 수 없게 됐다.
그런 이 나라에 재앙이 찾아왔다. 10년 가까이 가뭄이 들어 밀 농사를 접게 되고 풀이 없어 가축이 말라 죽자 1백만 명의 아사자가 속출했다. 그만 군부 반란으로 공산화되었다. 참전용사들에게 재산몰수와 구금이 가해졌다. 들판 가운데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숨어 살 수밖에 없다. 역대 두 분 대통령이 방문해 그들에게 거주 안정과 자녀 교육, 건강 등에 도움을 주려 애썼다. 우리 의료진은 다른 나라보다 오래 머물면서 깊은 산속 구석구석을 무던히 그들을 찾아 나섰지만 감감하기만 하다. 참전자라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지에서 늙고 병들어 숨죽이고 살면서 세상을 등지고 있다. 고마운 그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찾아 도와야 한다. 우선 생활과 치료에 도움을 주고 공단을 만들어 자녀들을 취업시키며 한국 유학의 길을 터 주는 일을 계속 진행한다. 의료진은 그들 남은 가족을 찾아다니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마 여기에 온 것은 이 나라를 위해 온 것 같다. 춘천에 기념관을 만들어서 오래오래 잊지 않도록 그들을 기리고 있다.
치료하던 의료진이 과로와 전염병으로 아파 눕는다. 견디기 어려운 의사는
“내 몰라라.”
하고 귀국해 버리는 일이 생긴다. 화려했던 처음과는 달리 지쳐가는 사람들이다. 1년 가까이 지나니 집이 그립고 가족이 삼삼해 견딜 수 없다. 같은 일에 싫증이 생기고 아무리 좋은 일도 그만하고 싶어졌다. 돌아가며 하루씩 휴가를 쓰게 하고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가도록 했지만 달갑지 않은 모양이다.
단장을 맡은 준태는 피로한 의료진을 달래야 하고 모자라는 의사를 급히 요청해 보충하는 등 끝나갈수록 바빠지고 있다. 후딱 지나던 고향의 계절이 여기선 하루가 길기만 하다. 1년이 10년 맞잡이로 흐르는 것 같다. 영상 전화로 보고 듣고 해도 소용없다. 어서 끝나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고 싶다.
환자는 가는 곳마다 넘쳐난다. 속병은 약을 주지만 외상은 짓무른 곳에서 피고름이 나온다. 고약한 냄새와 함께 손으로 어루만지며 고통을 말하는 환자를 달래야 한다. 소독 약솜이 한 뭉치씩 든다. 성병은 어떤가 엉큼한 그곳을 헤쳐 전염되는 무서운 질병을 조심조심 다뤄야 한다. 아랫도리에 썩은 냄새가 심하다.
대충대충 할 수 없다. 하다 보면 인간애가 생겨 어려운 사람들을 보살펴야겠다 다짐하게 된다. 그래도 저녁엔
“아 이제 끝나간다.”
1년 가까우니 더 안달이 난다. 의사들은 몇 달마다 교체해도 일반 의료진은 오래 간다. 수술의들이 진땀을 뺀다. 외상은 치료해서 붕대 감아 끝낸다. 내상은 수술 뒤 오래 진료해야 할 땐 주위 큰 병원에 의뢰해 보낸다. 대개 어려운 형편이어서 그냥 집으로 가 버린다니 난감하다. 그러면 더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가 싶어 찾아가 보면 자리가 덧나 위험하다.
급히 병원으로 데려가 입원시키고 비용을 환자 손에 쥐여주고 돌아와야 했다. 이곳 임시 병원을 찾아올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멀리 떨어지고 험한 외딴 산골이다. 죽음이 임박한 노인들이 많다. 골골하는 연약한 사람들이다. 또 골절로 걷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달려간다. 의료비도 비싸 집에서 그럭저럭 보내며 차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막상 두고 떠나려니 좀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얼굴은 검어도 눈망울은 애처로워서 일일이 기억된다. 국경을 맞대고 싸우는 나라보다 이념이 다르고 종족의 분쟁으로 갈등이 쌓여 뒤틀어진 오랜 앙금과 원한이다. 흔한 살상 무기로 편할 날이 없다. 누르면 날아가는 총포탄이 주택가를 덮친다. 사상 편향으로 준동하는 내전이 끊이지 않는다.
등쌀에 살아가기 힘들어서 고향을 등지고 이웃 나라로 넘어간다. 이고 지고 떠나는 난민이 길을 이었다. 그들을 따라가 보듬어야 한다. 길은 가깝나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지친 사람들 허기진 어린이들이 길에 깔렸다. 약보다 당장 먹을 걸 줘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고 보니 약 중의 약이 음식이었다.
남북과 동서로 갈라진 나라가 있는가 하면 수십 년 독재정권을 이어가는 나라, 얼마 전에 군부가 민간 정부를 밀어내고 잡았는데 또 다른 군부가 차지하는 등 곳곳에서 일어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곳이다. 총칼 앞에는 약하고 연약하며 오랜 기간 무디어진 인간이다. 칼자루가 힘이 되는 곳이다. 민간 정부가 무차별 무너진다. 세계가 민주화로 가는 길목인데 여긴 시간이 더 걸려야 할까 보다.
그런 곳을 찾아 나섰다. 팔다리가 부서져 흐느적거리는 환자가 막 실려 들어온다. 창자가 나와 줄줄 흐르는 다급한 들것도 닥친다. 죽은 사람을 부르는 가족의 울부짖음이 병원 여기저기에 낭자하다. 지옥과 같다. 폭포와 억센 파도가 지나고 조용한 밤중에 밖을 나와 보면 저 숲에서 맹수의 거친 소리가 들린다.
“저 달은 왜 저리 밝을까.”
언어는 많아서 가는 곳마다 다르다. 같은 나라 안이라도 사투리가 심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현지 영사관이나 대사관 직원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데려간 통역이 많은 수고를 한다. 단기간 약 외에도 장기 약 처방으로 바닥이 나 급히 날라와야 한다. 아직 뒤떨어진 진료 의사의 경험이나 눈대중, 낡은 엑스선 촬영으로 검사하는 현지 의술이다.
앞선 우리 의료진의 정확한 진료가 가는 곳마다 그들의 환성을 자아낸다. 소문이 나 이웃 나라에서도 달려온다. 진작 치료받은 사람도 물어물어 여기까지 찾아와 지난번 약을 처방받는다. 효험이 있었나 보다. 야전병원을 약속하고 가면 벌써 어디까지 줄이 생겨 기다리고 있다. 간절히 애타는 모습이어서 허투루 대할 수도 없다.
계절 없는 적도를 지나 내리니 봄가을이 보인다. 그런데 한국과는 반대이다. 별난 세상에 와서 지난날 우리나라를 보는 것 같다. 닥치는 대로 붙들어 배에 싣고 노예로 데려가던 시절 그들 노래가 애절하게 들려온다. 그게 우리가 즐겨 불렀던 아리랑이 아니었겠나. 인천항을 떠나 하와이와 남미로 사진 신랑을 찾아 혼례를 올리는 여인과 드넓은 사탕수수밭과 밧줄 만드는 선인장농장 일터에 품삯 일꾼으로 가던 게 생각난다.
한 달간 풍랑에 흔들리고 뱃속에서 매질을 당하며 시달렸다. 잘 사는 나라 이곳저곳에 노예로 팔려 날만 새면 고된 노동으로 다시는 어디쯤이 고향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흑인영가가 목매게 들려온다. 편할 날이 오지 않고 악순환이 계속되는 불쌍한 아프리카다. 가난은 나라도 못 돕는다는데 어찌 이리 못 살까.
모두 고향으로 떠나고 준태와 임원은 위로 여행을 가게 됐다. 최남단 호주 시드니에 달포 머물렀다. 생각은 지긋지긋하면서도 가난에 겨운 아프리카 생각에 골몰한다. 1백 년도 안 된 지난날 우리 모습을 보고 있다. 다 잘 사는 오늘날 어찌 못 살아도 그렇게 찌들게 가난할까 생각이다. 6대주 중에서 가장 어려운 나라이다. 아시아와 남미보다 힘들다.
준태는 주고받는 말에서 어련히 알고 눈치로도 알아챘는데 아내는 흰 물 변이 나온다는 말을 아낀다. 나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링거를 달고 좀 아프다면 약을 넣어 평온하게 잠만 자꾸 자게 된다. 구별 없는 밤낮 동안 멍하니 당구와 의료봉사의 모습이 언뜻언뜻 주마등으로 내닫는다. 또 까라지면서 목회 활동을 떠올린다.
지하 수십 평 공간에 예배당을 만들었다. 단을 깔고 위에 강대상을 올렸다. 좌우에 화분대를 세우고 마이크를 올려서 부드러운 음성이 나오도록 좋은 음향기기를 설치했다. 냉난방 시설을 갖춰서 한결 아늑하다. 긴 의자를 좌우로 배치해 가운데나 가장자리로 쉬 다닐 수 있게 했다. 앉으면 딱딱하지 않게 폭신한 것을 깔았고 등받이도 붙였다.
성경과 찬송 책을 펼칠 수 있도록 홈을 판 판자를 덧댔다. 밑에 보관함도 만들었다. 바닥엔 양탄자를 깔아 딱딱한 시멘트 바닥을 덮었다. 벽과 천장은 예수님상과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그림을 걸고 산데리아 조명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도록 아름답게 꾸몄다. 혜은 사모와 자녀들이 문에서 일일이 손잡고 인사하며 주보를 나눠줬다.
음악을 잘하는 친구가 찬양대를 지휘해 준다. 간절한 기도가 끝나고 단위에 올라선 김준태 목사의 설교가 이어진다. 시인답게 솔로몬 시편의 말씀을 즐겨 한다. 아멘 아멘으로 화답하던 그 시간은 잊을 수 없다. 3년간 내 사랑하는 가족과 주위 친구들이 헌신 봉사하여 70여 명의 신도가 자리를 메웠다.
예배 끝난 뒤 점심 식사가 즐겁다. 맛깔나게 만들어서 웃음으로 담소하며 드는 게 멋졌다. 문을 열어두어 언제라도 들어와 기도하게 했다. 끊이지 않는다. 새벽기도를 하면 밖에까지 들린다. 1층 치과 시료를 받은 사람들이 주일 예배를 드리러 왔다. 믿음의 자매들이 화목하게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하던 때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준태는 저절로
“할렐루야 아멘 ---.”
옆의 아내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따라 ‘아멘’을 외친다. 자고 떠올리는 남편이다. 밤낮 꿈결을 헤매듯이 열심히 다니는 남편이다.
“부디 깨어나 어서 우리 집으로 갑시다.”
치과 의원을 차려 치료하다가 후배 의사를 들여 운영했다. 이름을 ‘온누리치과’라 간판을 걸었다. 세상의 아픈 사람을 모두 도와주리라 마음먹었다. 전에는 아파도 참아야 했던 병이다. 심하면 실을 동여 이마를 ‘탁’치고 뽑았다. ‘아픈 이 빠진 것 같다’라는 말과 같이 그렇게 살았는데 요즘은 참을 수 없다. 조금만 아파도 병원을 찾아간다.
치과는 짓기만 하면 환자들이 모여든다. 서울과 대구 등 전국 여러 곳에 차려 정말 온누리가 됐다. 영구치 전의 유치가 흔들거리거나 누우면 하나하나 뽑아준다. 충치로 콕콕 쑤시는 것이 얼마나 아픈지 잠 못 들고 머리까지 흔들린다. 날 새면 급히 찾아가 치료하고 나면 가뿐하다. 효과가 바로 나타난다. 편한 의자에 누워서 입을 크게 벌린다.
이곳저곳을 닦아내고 사이사이에 끼인 것과 달라붙어서 굳어진 것을 밀어내거나 깎아준다. 이리 시원할 수 없다. 걸핏하면 칫솔질할 때 잇몸에서 질금질금 피가 났는데 곪아 퉁퉁 부은 곳을 찢고 소독하면 금방 아물고 낫는다. 축축한 물기 있는 입 안 상처가 어찌 나을까 걱정이었는데 신기하게 잘 나아진다.
나이 들어 하나둘 빠지면 성글게 몇 개가 남아 잇몸으로 질겅질겅 씹어 넘긴다.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며 치료하고 금을 녹이거나 은빛의 백금, ‘산뿌라’등으로 덮어씌워 주는 떠돌이 의사가 있었다. 의치를 만들어 몇 개 남은 곳에 걸어 고맙게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했다. 돈이 있어야 할 수 있었다. 대개 그냥 살다가 가는 게 대부분이다.
잇몸이 나빠 흔들리는 풍치와 병원균이 일으키는 충치를 앓아 오래 고생하다 결국에는 뽑아야 한다. 옆의 것도 하나하나 옮아 듬성듬성한 채로 허전하게 살아간다. 그러한 이로는 오래 살 수 없다. 엉성하게 넘기니 소화기를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눈이 9백 냥이요. 이는 오복에 든다고 하지 않는가. 씹어야 맛이라 했는데 날 것을 그저 넘기니 되겠나.
그러던 치과가 요즘은 빠진 이를 똑같이 심는 임플란트와 이리저리 비뚤거리는 이빨을 가지런히 고르게 교정한다. 의치를 만들어 씹어 넘기는 일은 수월하다. 턱뼈는 튼실해서 구멍을 뚫어 나사를 심지만 위쪽은 약해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다 비싸다. 나이 들면 눈어둡고 허리 휘어지며 이가 빠져 볼이 일그러진다. 말이 제대로 안 나와 옹알이하듯 살아간다.
지팡이 짚고 다니는 사람이 드물다. 모두 허리가 꼬장꼬장하기만 하다. 안경 쓴 사람도 있지만 지나는 사람을 다 알아본다. 웃을 때 아래위 이가 드러나는 게 젊은이와 같다. 의료가 사람의 생활을 살찌운다. 입에서 나는 냄새를 못 맡는다. 얼마나 씁쓰레한지 고개를 돌려야 한다. 자기 냄새를 모른다. 남이 말해서 알아챈다. 오래 사용하면 이 사이가 벌어져 낀 것이 여러 날 삭아서 말할 때 풍기고 숨 쉴 때 밖으로 퍼진다.
치간칫솔로 없애니 다 김준태 온누리 이사장과 같은 치과 의사들의 수고가 온누리에 퍼져 있어서이다. 전국 여러 곳의 치과를 문 닫게 하고 부산 것만 뒀다. 시내를 지나면 눈에 잘 띄는 게 치과이다. 가장 많은 것 같다. 차리면 환자가 넘친다. 알뜰히 보살피는 아내 혜은이 분주히 다니며 관리하는 게 힘들어 보여 정리하게 됐다. 몸져눕게 되니 알고서 한 짓과 같다.
성 뒤에 붙이는 다른 이름이 여럿이다. 당구 모임의 회장과 의료봉사 단장, 온누리교회 목사, 온누리 이사장에다 치과의 전공으로 박사이고 골프 치러 가면 김 사장이다. 그리고 부산 문인협회에서는 시인이라 불러준다. 지역 문인 모임에 나가 문인들을 만나는 게 즐겁다. 월례회와 봄가을 문학기행, 시화전 모임이다.
그때마다 반가운 얼굴로 마주 대하거나 나란히 앉길 잘한다. 그의 시가 빛나 읽어본 사람들 특히 여성 문인들은 스스럼없이 다가와 시 구절을 얘기한다. 그동안 틈틈이 지어 문인협회의 ‘문학도시’와 구 동인지에 내고 전시회에 내 건 백 편 가까운 시로 시집을 내려 했다.
“표지 그림이 어때”
하며 원고 다발을 봉투에서 꺼내 보였다. 표지에 멋진 아내의 그림을 올리고 각 편에도 혜은의 솜씨를 넣어 만들겠다며 시집 만들기를 서둘렀다. 빨리 책을 냈으면 하고 자랑하던 준태이다. 아내의 그림 전시회 때 가겠다. 하고서 다른 일로 구경을 못 했다. 그 일이 마음에 걸리고 미안으로 남았다. 가끔 아내를 자랑했다.
“한번 말하면 다시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
함께 저녁을 하자면 집사람과 같이 먹어야 한다며 가겠단다. 기다렸다가 같이 들기를 즐기고 혼자 먹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란다. 아내 자랑하는 천진한 그가 가끔 실없이 웃을 땐 귀염성이 흐른다. 그런 그가 아파 누웠다. 지나간 일들을 하나하나 들춰내며 아른아른 떠올린다. 누워서 할 수 있는 일이 이뿐이다. 지난날 일들을 되새김질하는 것밖에 어쩔 수가 없다. 생각할수록 다 그립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그것도 기억이 닿아야 한다. 끊기면 한숨 자고 다시 이어간다. 어떤 건 영 떠오르지 않아 아내에게 그때 일을 소곤소곤 물어본다. 꺼져가는 듯하다가 생기있는 걸 보고 기뻐하는 혜은이다. 3남매로 딸 둘 아들이다. 두 딸은 결혼해서 가정을 이뤘다. 둘째가 온누리치과를 맡아 수고하고 부모를 도와준다.
아들은 일본 유학을 한 후 그곳에 직장을 얻어 눌러앉아 일하고 있다. 아내는 ‘여보’라는 말 보다 ‘목사님’하고 깍듯이 불러준다. 정든 교회를 필요하다며 달라는 다른 고신 측 목사에게 넘겨주었다. 꿈결 같은 몇 해 간의 남편 목회가 은혜롭고 행복했다. 설교 앞뒤 준태 목사의 찬양이 그립다.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 ---.”
귓전에 대고 불러주면 빙긋이 웃는다. 즐겨 부르던 찬송이었다. 이젠 생각할 힘도 없는가. 눈을 감고 조용하다. 꿈지럭거리거나 물 달라는 말도 없다. 실눈도 보이지 않는다. 눈을 뜨게 하는 것은 의사가 회진할 때나 간호사가 링거 갈 때 손으로 벌려 확인한다. 아내는 3남매 키울 때처럼 남편 소 대변 받아내고 기저귀 갈아주는 일이 한결 쉽다.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집 일이 걱정일 때는 잠시 들른다. 남편이 새근새근 잠든 사이다. 무엇이 필요하거나 딸아이 병원 일을 잘 건사하고 있는가 볼 겸 찾아간다. 남편 방문을 열고 살며시 들어가 본다. 손때 묻은 켜켜이 숨결 쌓인 방이다. 의자에 앉아 책상을 어루만져 본다. 책상 달력이 4월 11일로 고정돼 있다.
“석 달 전 목사님이 집을 떠나던 날이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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