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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留齋)는 추사(秋史) 선생의 제자(弟子)로 남병길(南秉吉, 1820-1869)의 아호이다. 그는 벼슬이 이조참판에 이르렀는데 추사 선생이 서세(逝世)한 후 유고를 모아 12년만에 [완당척독(阮堂尺牘)]과 [담연재시고(覃揅齋詩藁)]를 펴내어 오늘날 ‘완당선생집’이 나올 수 있는 기초 작업을 닦아 놓은 분이다.
그런데 무슨 연유로 그의 아호 연관 현판을 추사 선생이 그것도 제주도 유배 생활 중에 쓰게 되었는지는 모르나 그 “유재‘라는 현판이 창덕궁에도 걸리고 또 그것을 모각한 작품이 민간에도 수다히 퍼져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헌종대왕이 추사의 글씨를 무척 좋아하여 제주에 귀양살이 하고 있는 추사에게 자주 글씨를 요청하였다고 하는 바 위 현판의 원본은 그 때 쓰여진 것으로 짐작이 된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서 저간(這間)의 사정을 짐작하도록 하는 글을 추사 선생의 또다른 제자 소치(小癡) 허유(許維, 許鍊. 1809-1892)에게서 보게 된다. 곧 소치가 헌종대왕의 부름을 받고 창덕궁 낙선재(樂善齋)로 배알하러 갔을 때 거기서 본 추사의 현판에 대하여 언급한 바가 ’소치실록‘에 전한다. 그 글의 내용 중 중요 부분을 약기하면 “수문장을 따라……낙선재에 들어가니 상감께서 평상시 거처하시는 곳으로 좌우의 현판 글씨는 추사의 것이 많았다. <향천香泉>, <연경당硏經堂>, <유재留齋>, <자이당自怡堂>, <고조당古藻堂>이 있었고, 낙선재 뒤에는 또 <평원정平遠亭>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현판들이 경복궁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소치가 보았다는 현판 중 <유재留齋>에 대하여는 좀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소치실록’ 부기(附記)에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더하고 있어서 지금껏 전설처럼 되어 세상에 떠돌게 되었다. 곧 “추사 선생이 제주에 있을 때 글씨를 써서 현판으로 새겼는데 배로 싣고 바다를 건너다가 떨어뜨려 일본땅으로 떠내려간 것을 후에 찾아온 것”이라 하였다. 이러한 사정으로 보아 <유재>라는 현판 글씨는 아주 귀하고 상당한 사연을 간직한 현판인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이 현판에 대하여는 유홍준의 글이 또한 있는데, 그는 이 현판의 모각본을 세 가지를 보았는데, 그 중 일암관(日巖館) 주인이 소장하고 있는 것이 가장 아름다웠다 하였다.
* 留齋
留不盡之巧,以還造化.(유부진지교이환조화)
留不盡之祿,以還朝廷.(유부진지록이환조정)
留不盡之財,以還百姓.(유부진지재이환백성)
留不盡之福,以還子孫.(유부진지복이환자손)
阮堂題 .(완당제)
* 유재-다 쓰지 아니하고 남겨 돌려주는 집
다 쓰지 아니한 재주를 남겨 조물주에게 돌려주고,
다 쓰지 아니한 봉록을 남겨 나라에 돌려주고,
다 쓰지 아니한 재물을 남겨 백성에게 돌려주고,
다 쓰지 아니한 복을 남겨 자손에게 돌려주라.
완당이 쓰다.
예전 같으면 선비들은 물론이려니와 학동이면 거개가 다 암기하고 있었을 만한 글인데 추사 선생이 아끼는 제자를 위해 써준 좌우명(座右銘) 내지는 경구(警句, aphorism)라 할 만한 것이다. 위에서 보듯 제주 유배 시절 작품이라고 하는 현판의 글씨가 복각에 복각을 거듭해 원 글씨의 획 맛을 많이 잃었다고는 하지만, 그 중 큰 글씨 부분은 원래의 필의(筆意)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오늘의 내가 존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 인연으로 맺혀져 도움을 주고 받았을 것인지를 한번 생각해 보자. 부모, 형제, 배우자, 자식, 친지, 스승, 상사, 선배, 친우, 후배 등등 모두가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은인들이요 조력자들이다. 세상 사람 모두가 제 잘난 맛과 멋으로 살아간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참으로 많은 고마운 사람들의 도움과 보살핌 속에서 내가 있었고, 내가 자라온 것이 어김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말 그대로 독불장군(獨不將軍)인 것이다. 나이 70만 되면 더 잘 난 이나 못 난 이, 더 가진 자이나 덜 가진 자, 더 배운 이나 덜 배운 이가 모두 한결이라 하니, 오로지 하늘이 나에게 품부(稟賦)한 모든 것이 나만을 위한 것만 아닌 줄 알아 받은 만큼은 돌려주고 가는 지혜도 배워야 한다. 내가 남겨 하늘에 돌려줄 재주, 내가 남겨 나라에 돌려줄 봉록, 내가 남겨 세상에 돌려줄 재물, 내가 남겨 자손에게 돌려줄 복록이란 것이 과연 있는 것일까?
첫댓글 명심보감 성심편에 나오는 말씀이라 합니다.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王參政四留銘, 留有餘不盡之巧, 以還造化, 留有餘不盡之祿, 以還朝廷, 留有餘不盡之財, 以還百姓, 留有餘不盡之福, 以還子孫。
작품에서는 留다음에 나오는 有餘는 공통으로 빼고 적었습니다. 그러니까 留有餘가 되어 여유있는 부분을 남겨서...가 되는 것이지요. 德이란 이런 데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진품명품 해설위원 말씀이 이 현판이 너무나 인기가 있어 많이 새겨졌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