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압관계(뇌졸중, 腦卒中, troke) 환자는 비행기 탑승 시 약간의 절차가 더 필요하다고 하여
오후 비행기(Air China, CA5006 13:20)임에도 혹시나 무슨 일이 있을까 봐 아침식사 후
일찍 아내와 함께 집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친구의 도움으로 출국, 탑승의 절차를 일찍 다 마치고 대기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저는 이용 자격은 안 되는데,
그 친구와 함께 공항의 CIP(Commercially Important Person, 비즈니스 지원 시설) 라운지에서 인터넷을 하고 있습니다.
무료한 대기 시간을 채우려고 인터넷 여기저기를 검색하다가 보니,
이틀 전 날짜로 김동길 박사가 쓴 ‘박태준 명예회장’에 관한 재미있는 칼럼을
발견하여 원문을 이곳에 옮겨 봅니다. 그
리고 덧붙여 시간 되는데 까지, 제가 아는 만큼 박태준 명예회장의 글을 적어 보겠습니다.
출처 : cafe.daum.net/tumenlover(두만강을 사랑하는 사람들) 자유게시판 김동길 교수 칼럼
일자 : 2008.12.16
제목 : 이명박 대통령에게(230) -박태준이라는 인물을 아십니까 -
내용 :
지난주에 몇 사람이 광양제철소의 초대를 받아 제철소를 보았고
다시 통영으로 가서 민족의 영웅인 충무공 이순신의 유적지를 감격스런
마음으로 둘러보는 가운데, 배를 타고 한산섬의 제승당에도 갔습니다.
새벽 7시에 떠나서 저녁 7시에 돌아오니 80노인으로서는
좀 힘에 겨운 여행이긴 했지만 크게 보람 있는 하루였습니다.
광양제철소나 한산섬의 제승당을 참 오래전에 둘러보았지만 흘러간 세월 속에
광양은 엄청난 발전을 하였고, 제승당도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잘 정비가 되어 있어 마음이 흐뭇하였습니다.
그리고 광양제철소의 책임자들로부터 공장의 역사와
규모에 관한 설명을 듣고 현장을 견학하면서
“박태준이란 참 대단한 사나이다.”라고 느꼈습니다.
그는 조국을 위해 큰일을 하였습니다.
포항제철소・광양제철소, 그리고 장가항의 포항제철소를 이끌어 나가는
오늘의 ‘포철맨’들이 한결 같이 주장합니다.
“이 모든 것이 박태준 명예회장의 머리와 능력과
애국애족의 투철한 정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와 가까운 사이가 아니지만
이 시대를 사는 한국인 중의 한 사람으로 그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전에 잠깐 만났을 적에도 그의 체구는 여전히 단단해
보였고, 그의 눈에는 빛이 있었습니다.
그가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월을 느꼈습니다.
“저런 이가 나이를 먹는 것은 참 아깝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대통령께서도 가까이 모시고 국사를 의논하면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 김동길 - www.kimdonggill.com
저도 존경하는 기업인인 박태준 명예회장은
외국에선 한국의 카네기라고도 불리죠. 그런 까닭에 지금은 포스코로 불리는
포항제철은 박태준 명예회장을 떼어놓고는 상상할 수가 없지요.
1963년 육군소장으로 예편한 후 경제인으로 변신, 1964년 대한중석 사장으로 임명되어 1년 만에 대한중석을 흑자 기업으로 바꾸었고, 1968년 4월 포항제철의 초대 사장이 되어 10년 만에 연 550만 톤의 철강을 생산하는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키워낸 신화적 존재이지요.
현재도 포스코의 명예회장으로 모든 포철맨들의 사랑과 존경을 넘어, 일본, 특히 중국에서는 거의 신화적 존재로 알려저 있지요. 중국의 어느 최고지도자가 한탄하며 말하길
‘우리 중국엔 박태준 회장 같은 분이 없어서 슬프다“라고 했을 정도라니까요.
이 분에 관한 사례집, 논문도 셀 수없이 많이 나왔으니 더 이상 말하면 군더더기죠.
포철은
1968, 4월 박태준 초대 사장을 포함한 39명은 허허벌판 영일만에서 회사 창립식을 갖고,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사명감으로 ‘롬멜하우스(당시 박 사장의 닉네임을 딴 숙소)에서 새우잠에 모래 섞인 밥을 먹으며 일군 철강산업을 1998년 세계 1위(조강생산 기준)의 철강회사로 발돋음 하였고 광양제철소 등 철강업계를 리드하는 기업이 되었지요.
이의 효과로 우리나라의 철강 산업 및 자동차 산업, 조선업을 세계의 반열에 올려놓은 일등 공신 기업입니다. 포철맨들은 그 많은 공을 박태준 명예회장에게 돌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 분의 일화는 참 많이 따라 다녀요. 주로 사나이들의 의리에 관한 이야기들인데 재미있는 일화죠.
포항 제철은 초기부터 정치계로부터 온갖 인사 청탁과 납품 로비, 기술자 전격 발탁 등으로 모함을 받고 많이 시달렸는데 이런 애로 사항을 접한 박정희는 직접 "종이 마패"를 만들어 박태준의 사업에 일체의 정치 사회적 간섭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전권 위임 약조를 해 주었는 이야기 하며,
5.16 군사정변에는 직접 가담하지 않았으나 당시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여 쿠데타 전날 가족을 맡겼고, 지금도 그의 아들인 지만씨를 후원해주는 것도 참 대단한 의리지요.
또한 여야를 뛰어넘는 의리 역시 이야기 거리 중엔 그의 스케일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서슬이 시퍼렇던 10월 유신 당시에는 옥중에 있던 동향인 최형우를 대신해 그가 최형우의 모친을 돌봤다는 이야기며, 문민정부 출범 이 후에는 최형우가 그를 대신해 기장에 거주하는 그의 모친을 돌봤다고 합니다.
그의 독특한 인재 발탁 이야기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기술 이전을 해주러 온 일본인 기술자가 도 시원치 않으니까 바로 집으로 돌려 보낸 이야기 등.
이런 많은 사연을 지닌 의리의 박태준 명예회장도 ‘정치자금과의 절연’을 선언하며 입문한 정치계에선 시련을 당하게 됩니다. YS와의 불화로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고,다. 김영삼 집권 이후 표적수사라는 의혹이 있는 건, 즉 포철 협력사들로부터 39억여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한동안 외국을 떠돌았습니다.
이런 정치적 고난을 당할 때, 그 자신이 발탁했던 초기의 후배들이 주도한 회의를 통해 명예회장직을 박탈당하기도 했지요. 물론 YS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주도한 정치권의 압력이기도 했지만 초기 후배 몇몇은 회장직에 욕심이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는 서류상으로는 명예회장직을 박탈당했을 기간인 해외로 도피 생활 중에도 포철맨들에게는 여전히 사랑과 존경을 받는 불굴 신화의 엄연한 명예회장이었습니다. 사람이 없어진다고 그의 혁혁한 공도 없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그는 지금 현재 당당히 포스코 명예회장입니다.
이후 정권이 수차례 바뀐 뒤에도 포항제철은 기적적인 성장을 거듭, 세계 최대 규모의 철강회사로 우뚝 섭니다. (1998년 기준 세계 조강생산량 1위) 포항제철의 성공신화는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 철강 생산량 5위, 조선 1위, 자동차 5위의 산업 대국으로 부상하는 밑거름이 됐었고, 올해로 창사 40주년인 포철의 현재 이구택 회장(46년생, 1969년 포철 공채 1기 입사)이 맡고 있고, 슬로건인 “소리없이 세상을 움직입니다.”를 실천하고 있는 우리나라 몇 안 되는 알찬 기업으로 성장합니다.
요즘 기업은 주가로 말하지요.
포스코 주가가 어제 종가(12.17. 장종료 기준) 391,500원 이군요.^^*
많은 외국인 기업 및 투자가들이 절대 신임하는 알찬 기업입니다.
지금 이 어려운 경제난 속에서도
지난 12월 11일, 한국경제의 활력을 위해 포스코는 전 계열사와 함께 '범 포스코 상생경영 선포 및 공정거래 협약식'을 갖고, 2009년 국내투자 6조 `사상 최대` 와 함께 中企 R&D 펀드 100억 지원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12.12 한국경제)
두서없이 길어졌습니다.
이제 서서히 일어나 31Gate로 가야겠습니다.
치료 효과가 50 대 50 이라는데 친구들의 도움으로 가는 만큼 기대감에 설렙니다.
깐깐징어 명예회장님,
명예회장님 정도의 그런 훌륭하고 출중한 능력이면 우리나라 경제 회생에 도움이 되는 영리사업을 한 번 해보심이 어떨까요. 참 보기드문 경우라 감히 권유 드립니다. 반드시 성공하실 것입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국어 잘하는 학생이 수학도 잘한다고 그제 신문에 났더군요.^^*
- 공항에서 시간을 떼우며 두서없이 적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