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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관의 유형들>을 읽고
20100624 이민선
원제: Patterns in history
저자: 데이빗 베빙턴 (David Bebbington)
옮긴이: 김진홍, 조호연
출판: IVP(한국 기독교 학생회 출판부),1997
‘역사관의 유형들’은 역사 사상을 분석하기 위한 목적으로 편찬되었다. 저자인 데이빗 베빙턴은 스코틀랜드 스터링 대학교의 역사학과 교수로, 캠브리지 대학교의 피츠윌리엄 칼리지(Fitzwilliam College)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수많은 잡지에 논문을 발표했으며, The Nonconformist Conscience: Chapel and Politics, 1870-1914, Evangelicalism in Modern England: A History from the 1730s to the 1980s, The Baptists in Scotland: A History등 세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본 서는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도 제2장에서 제6장은 책의 핵심부분으로서 20세기 역사 사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역사관들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장들은 역사과정을 이해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 역사를 기술하는 방법에 대한 분석, 역사의 의미에 관한 저자의 생각 등 보다 역사의 본질적인 부분들을 다루고 있다.
가장 먼저 제 2장에서는 ‘순환론적 역사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순환론적 역사관의 핵심은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것이다. 이 순환론적인 역사 해석은 중국, 인도, 중동, 그리스-로마 세계에 널리 확산되어 있었는데 이 해석이 인기를 끈 이유는 두가지로 설명 될 수 있다. 첫째는 모든 개인의 생애는 성장하고 노쇠하여 결국 죽는 유형을 나타내는데 이것과 같은 도식이 역사 과정에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농업을 주로 하던 사회의 사람들은 자연을 역사의 일부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해마다 오는 계절의 반복이 인간 세계에서도 반복 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순환론적 역사관에는 세가지의 변형이 있는데 순환 단위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첫 번째는 특정 왕조나 문명을 순환 단위로 보는 것으로 특히 중국에서 나타났다. 이러한 ‘왕조순환론’의 핵심은 천명 사상이며 이 사상을 믿는 사람들은 과거를 통해 교훈을 얻었다. 두 번째는 전 지구, 우주가 광대한 시간을 주기로 순환한다고 보는 ‘우주론적 순환론’으로 이는 대체적으로 인도에서 나타났다. 서기 천년 전 브라만들이 작성한 ‘푸라나‘라는 자료에서는 한 주기가 네 시대로 되어있다고 보았다. 세 번째는 과거를 잃어버린 황금 시대로부터 현재까지 계속해서 쇠퇴하는 과정으로 보는 ’상고주의‘이다 이는 한 주기 안에서도 쇠퇴 국면에만 관심을 집중하였다.이 세 번째 변형은 전 세계에 걸쳐서 사상에 반영되었다. 그러나 순환론적 역사관은 전체적으로 반복되는 주기에 관해 일정한 유형이 있다고 증명할 수 없으며 지나치게 역사를 비관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비판된다.
제 3장은 ‘기독교적 역사관’에 대해 설명한다. 기독교적 역사관은 하나님이 세상에 개입한다는 믿음에서 유래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를 일직선으로 이끄는데 기독교적 역사주의자들은 그 역사의 끝에 승리의 결말이 존재할 것으로 믿는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적 역사관은 역사에는 끝이 존재한다고 봄과 동시에 그것을 매우 낙관적으로 인식한다. 한편, 기독교 사관을 확립시킨 어거스틴은 역사의 시작 또한 하느님의 창조로 보았다. 그리고 그 창조자를 떠나서는 역사의 의미와 목적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동시에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과 자비에 대한 개념을 제시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였다. 기독교적 역사관처럼 역사를 직선적으로 보는 관념은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신념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다른 역사관보다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 역사관에 대한 의문점들도 남아있다. 바로 특별 섭리에 관한 문제이다. 하나님이 모든 역사과정을 통제한다면 어떤 특별한 시점에 하나님이 개입한다는 사상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하나님이 역사에 개입한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없다는 것과 일맥 상통한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이 개입한다는 주장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또한 기독교적 역사관에 의하면 인간 역사에서 어떠한 고난이 닥친다면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책임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가 다스리는 세상에서 고통과 어려움을 없애는 것이므로 결국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는 점도 비판된다.
제 4장은 ‘진보주의’에 관한 내용이다. 진보주의는 18세기 계몽주의에서 생겨났으며 기독교 역사관의 세속화로 인한 결과였다. 따라서 진보사상은 기독교적 역사관과 상당 부분 닮아있다. 진보주의는 직선적 역사관으로서 미래에 대한 신념을 제공하고 인간의 역사를 기술 뿐만 아니라 정신적 조건에서도 끊임없이 진보를 이뤄온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보사상에서 역사의 종결은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란 점에서 기독교적 역사관과는 차이를 보인다. 한편, 진보론적 사상의 발생은 17세기에 있었던 고대인과 현대인에 대한 논쟁에서 발생하였는데 그 논쟁의 중심은 고대학자와 현대학자 중 누가 더 우수하냐의 문제였다. 처음에 많은 사람들은 고대인들이 더 우수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식이 축적됨을 깨달으면서 진보주의에 대한 싹을 키우기 시작하였다. 또한 과학주의도 진보사관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과학의 특성상 역사를 발전으로 보는 견해를 발달시키게 되었다. 하지만 진보사상은 20세기에 제 1차 대전을 겪으면서 대중적 낙관론에 타격을 입기도 한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서양국가들이 물질적인 번영을 누리면서 진보사상은 다시 살아났고 현재는 대중적으로 확산되어 있다고 말해도 좋다. 하지만 진보사상에 있어서도 비판이 존재하는데 진보의 개념 전체에 대한 도덕적인 반대가 그것이다. 인류가 진보한다면 앞선 시대의 사람들은 인간의 향상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들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을 장래 세대가 누릴 이익이라는 명분하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생각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 할 수 있다.
제 5장의 중심내용은 ‘역사주의’다. 역사주의에는 칼 포퍼가 제시한 개념으로서의 역사주의와 1880년대 이래로 독일에서 불린 이념으로서의 역사주의, 두가지가 존재하는데 이 책에서는 후자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역사주의의 핵심은 모든 문화가 역사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으로 모든 관습과 신념을 역사적 경험의 산물로 인식한다. 역사주의자들은 특수한 가치관이 뿌리 내릴 수 있는 근거로 민족을 강조하면서 민족을 어떤 특정한 언어가 사용되는 범위로 규정하였다. 하지만 역사주의의 이러한 특성에 의하면 우리 민족의 관습과 신념에 대해서는 알 수 있지만 다른 민족의 가치관들은 파악하기 힘들게 된다. 그래서 역사주의자들은 그것을 해결할 방법으로써 인간의 직관을 내세운다. 인간은 직관을 통해 ‘이해’의 과정을 거치는데, 그 과정으로 다른 인간들의 역사를 공감하고 탐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이성을 강조하는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성으로 여겨졌으며 역사주의는 그것을 따라 발전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역사주의는 매우 심각한 비판에 직면해 있다. 역사주의는 계몽주의에 과도하게 반발한 나머지 인간의 본성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역사의 변화무쌍한 특성이 인간 내부의 불변성을 완전히 제거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인간 본성의 불변성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처사이다. 또한 역사주의는 직관으로 과거시대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러한 ‘이해’과정은 역사주의는 단순히 이성보다 직관을 우월한 것으로 보는 것에 근거하며 실제로 명확히 정확성을 측정할 기준이 없다. 그리고 이는 역사주의 사상의 약점이 된다.
제 6장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서술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적 세계관인 동시에 정치적 강령이나 경제적인 분석으로도 여겨진다. 역사는 마르크스주의의 중심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사상은 중요하게 인식되어 왔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의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서 ’역사적 유물론‘을 주창하였는데 이 개념은 물질적 조건들이 인간의 역사를 형성한다는 신념을 나타낸다. 따라서 마르크스에 의하면 역사변화의 열쇠는 인간이 자신의 생존 수단들을 생산해내는 방법을 뜻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진정한 마르크스주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기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칼 마르크스는 역사주의와 진보사상과 관련된 사상 전통을 접하면서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는 기본적으로 그 두 사상의 상호작용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그 두개의 전통을 융합시킨 사례가 있었는데 그것은 헤겔에 의한 것이었다. 헤겔이 제시한 정(正)반(半)합(合)의 변증법은 이는 사적유물론과 함께 마르크스 철학의 한 축을 이루기도 하였다. 한편, 마르크스주의는 진보주의와 역사주의 두 사상의 영향을 공유함에 따라 그것에 대한 비판을 함께 받았다. 예를 들어, 진보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공하는 것은 미래에 발전 과정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제거하는 것을 정당화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된다. 또한 역사주의에서 끌어온 규범에 대한 상대주의는 인간이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옳은 가치를 얻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도덕적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한 마르크스의 의견은 객관적 토대를 갖지 못한다고 비판될 수 있다.
남아 있는 제 1장에서는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것들을 설명한다. 역사가는 반드시 사실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동시에 서술에 있어 자신의 정신도 투영해야 한다는 것, 역사 기록과 실제 과거와의 차이가 역사가의 문제에서 비롯할 수 있으므로 회의적 기질을 발달시켜야 한다는 것, 역사가는 순전히 사실만을 다루지 않으므로 언제나 역사적 논쟁은 존재한다는 것등을 말하는 것이다. 제 7장에서는 실증주의자들과 관념론자들, 두 부류로 나누어 역사 서술에 있어서 그 차이를 설명한다. 실증주의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자연 세계를 탐구하는 방식과 같은 방법으로 탐구될 수 있다. 역사학을 자연과학의 기법을 모방하는 사회과학의 하나로 간주하는 것이다. 반면 관념론자들은 인간은 의식이 있기 때문에 자연 세계와는 다른 방법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역사학을 독특한 것으로 인식하면서 그것을 서술 할 때 색다른 역사학적 방법론을 채택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기독교적 관점으로 돌아갈 것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실증주의는 진보사상에서, 관념론은 역사주의에서 파생된 것인데 그 두 사상의 공통적 근거가 기독교적 사상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제 8장은 역사의 의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기술되어 있다. 저자는 기독교적 역사관을 기본으로 하여 역사주의와 진보주의를 더해 역사의 의미를 탐구한다. 저자에 의하면 기독교적 측면에서 역사란 역사의 형성자인 동시에 희생자인 인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들을 승리로 이끌며 저자는 이것이 사람들에게 소망을 갖게한다는 점에서 기독교적 역사를 의미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역사학 입문 수업을 통해 역사관에 대해 공부하면서 고등학교 때 배웠던 것보다 더 심도있게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독후감 과제를 겸하여 학교 도서관에서 다양한 도서들을 찾아보다가 선택한 것이 이 책이다.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역사를 단순히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사람들의 생활로 여겼다. 또한 역사 사상을 공부할 때 기초적 지식만 가지고 부분적으로 접근하였다. 하지만 책을 읽고 역사 사상들이 유기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신학 등 여러 분야를 역사 사상과 연관시켜서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진보주의를 표방하는 우리나라의 다양한 정당들이 가진 가치와 사상의 관련성,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역사적 인식등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단순히 역사를 발전과 쇠퇴의 반복으로서 인식하는 순환론적 관점을 지지하는 쪽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왕조 순환론적 관점을 견지하였다. 여태까지 우리나라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등 모두 흥망의 역사를 거쳐 현재까지 이어져 가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반면, 시간이 지날수록 역사가 점점 발전한다는 진보주의적 역사관이나 하나님의 개입으로 인한 낙관적인 종말을 예견하는 기독교적 역사관은 부정적으로 인식해 왔다. 왜냐하면 진보사상은 우리가 예전부터 물질적 측면에서 발전을 이뤄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과연 진보인가에 관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발전이라는 명목하에 자연이 파괴되어 가고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과연 진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물질적 진보를 제하고서라도 인간의 도덕적인 측면에서의 진보 또한 확신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진보주의에 동의하지 않았다. 기독교적 역사관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개입의 존재를 명확히 증명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낙관을 바탕으로 하는 두 사상의 일직선적 역사관 사상에 비판적 경향을 가졌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당연하다고 믿었던 순환론적 역사관의 약점들을 발견하였다. 발전과 쇠퇴가 반복된다는 순환론적 역사관은 역사를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인간의 삶을 무용하게 만들 수 있는 부분이 된다. 또한 일직선적 역사관들도 미래에 대한 낙관론적 기대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장점을 인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각 사상을 대표하는 많은 학자들을 그 사상의 변화 양상과 결부시켜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단순히 철학자로만 인식하고 있었던 흄이나 칸트와 같은 학자들을 역사 사상과 연관시켜 생각하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지극히 단편적이고 무지한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또한 좋았던 것은 저자가 여러 사상에 대한 평가까지 제시하여 더욱 객관적으로 역사관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저자의 생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저자가 극단적으로 하나의 사관을 지지하거나 비판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하였다. 하지만 제 8장과 같은 ‘역사의 의미’ 부분은 완전히 기독교적 관점에서 서술되어 있어서 조금 아쉬웠다. <역사관의 유형들>은 일단 전문적이고 용어도 어려운 부분이 있어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들도 많다. 하지만 책 한권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을 다시 바르게 알고, 다양한 역사 사상들에 대해서 면밀하게 살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큰 도움이 되었다.

첫댓글 저자 소개 및 서지사항 보완 요.
서평 잘 읽었습니다.
글 쓰신 부분중에, 순환론적 역사관이 지나치게 역사를 비관적으로 바라본다고 하셨는데요. 개인적으로는 그런 약점을 극복한 것이 토인비의 나선형 발전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역사가 최후의 심판과 영원한 제국으로 향해 나아간다는 일직선적 역사관보다, 국가나 왕조의 흥망성쇠를 더 잘 설명해주고 순환론적 역사관과 일직선적 역사관의 역사 이해를 종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읽으신 책에 토인비에 대한 내용이 없어서 인지, 나선형적 역사관에 대해 언급하신게 없던데 토인비의 나선형적 역사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제 질문이 좋은 토론꺼리가 되었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