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로 요약
다른 사례를 보자. 아래 글은 <번역의 미로>에 등장하는 글이다. 글쓰기 훈련에 맞도록 일부 수정했다. 언어가 다른 언어로 바뀌는 과정에서 일어난 특수한 결과에 대해 말하는 이 글을 1/2,1/4, 1/8로 줄여보자.
단어 번역 잘못 하나가 인류역사상 큰 비극을 가져왔다. 일본 히로시마 나가사키 핵폭탄 투하가 바로 그것이다.
1945년 7월 6일, 미국, 영국, 중국 연합국 수뇌들은 포츠담 회의를갖고 일본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무조건 항복 요구였다. 일본 천황은 이요구를 수락하려고 결심했다. 그러려면 먼저 내각의 지지를 얻어야 했다. 천황은 소련을 통해 선언문 속 '무조건 항복'이란 단어의 삭제를 요구했다. 미국은 단호히 거부했다.
이에 일본은 시간을 끌면서 외교적 노력을 하기로 했다. 이후 일본 스즈키 총리는 “무조건 항복 요구에 대한 답변을 당분간 보류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때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모쿠사츠(묵살)'라는 조금애매모호한 표현을 썼다.
우리말에서 '묵살'이란 단어는 '깔아뭉갠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일본어에는 못 들은 척 무시한다는 뜻 외에 '언급이나 논평을 삼간다'는 노코멘트의 뜻도 있다. 어떤 제안을 일부러 보류한다는 식이다.
그런데 일본의 한 통신은 총리 발표문을 영문기사로 작성하면서 이'묵살한다'는 말을 'no comment'가 아닌 'ignore'로 번역해버렸다. 일본의 한 라디오 방송 역시 '무시한다'로 보도했다.
미국은 격분했다. 7월 30일 미 언론은 “일본이 최후통첩을 무시하여 미 함대가 공격에 나섰다."고 대서특필했다. 다른 신문 역시 “일본이 공식적으로 연합국의 최후통첩을 거부했다.”는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이후 사흘 뒤 트루먼 미 대통령은 원자폭탄 투하를 허락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마침내 8월 6일 히로시마에 이어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
▶ 서정주 [질마재 신화]
다음은 서정주의 <질마재신화>다. 이 글을 읽고 생각과 근거로나누어보자.
신랑신부가 첫날밤을 맞이했다. 긴장한 신랑은 갑자기 요의를 느꼈다. 급한 신랑은 서둘러 방을 나섰다. 그때 뒤에서 무언가가 신랑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신랑은 음탕한 신부의 소행이라 여겼다. 기분이 상한 신랑은 옷이 찢어지건 말건 홱 뿌리치고 나왔다. 이어 뒤도 돌아보기않고 그 길로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사오십 년 지났다.
신랑이 우연히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게 됐다. 문득 옛일이 궁금해져당시 초례 방을 열어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신부는 귀밑머리단 플린채, 첫날밤 모습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를 입고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신랑은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신부 어깨를 어루만졌다. 그때서야신부는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그날 밤, 신랑을 붙잡은 건 신부가 아니었다. 실은 옷이 방문 돌쩌귀에 걸린 것이었다.
생각:신랑은 나쁜 사람이다.
근거 : 신랑은 신부를 음탕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근거 없는 오해였다. 설령 신부가 신랑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해도 그것을 빌미로 집을 나간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25쪽
포인트(POINT)라이팅, 어떻게 쓸 것인가?
수학이나 과학에는 공식이 있다. 공식은 문제를 쉽게 푸는 데 도움을 준다. 예컨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공식은 E=mc²이다. 이를 벤치마킹해 글쓰기 공식을 만든다면 W=het'가 된다. 글쓰기 실력(W)은 손(h)과 눈(e) 그리고 생각(t)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뜻이다.
글쓰기는 손재주와 사고의 깊이, 글감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손은 글을 쓰기 위해 존재하고, 눈은 글감을 찾기 위해 존재하며, 생각은 글을 풀어내기 위해 존재한다. 글쓰기는 많이 읽고, 쓰고, 생각하라 했다. 이를 다른 말로 변환하면 손은 다작을 위해, 눈은 다독을 위해, 머리는 다상량을 위해 필요하다.손과 눈, 머리, 이 세 톱니가 잘 맞물려야 글을 잘 쓴다.
그러나 W=het²는 추상적이다. 과연 실전에서 활용할 방법론이 없을까? 나는 고민 속에서 전작 <글쓰기 훈련소>를 통해 '포인트(POINT)라이팅'을 발표했다. 'POINT'는 글의 형식이자 내용인데 다음과 같은 뜻을 지닌다.
P(Point) : 특징, 핵심, 글감
I(Information): 주변 정보, 상황 정보, 언저리 정보
O(Object, Outline):대상, 내용, 줄거리
N(News) : 뉴스, 화젯거리, 예문
T(Thought) : 생각, 소감
우리가 알고 있는 글의 구조에는 서론, 본론, 결론 혹은 기승전결이 있다. 그러나 그 구조만으로 글을 다 쓰지는 못한다. 일기쓸 때 서론 본론 결론으로 쓰는가? 아니면 기승전결로 쓰는가?둘 다 아니다. 서평이나 보고서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우리가 늘 쓰는 글쓰기에 적합한 글의 구조가 없는 셈이다. 그래서 만든 방법이 '포인트라이팅'이다.
이 포인트 글쓰기는 다음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먼저 무엇을 쓸지 포인트를 잡는다. 다음으로 글감에 대한 배경정보를 기술한다. 이어 대상(글감)의 윤곽이나 개요를 적는다. 여기에 주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화젯거리나 예문을 넣는다. 그다음에는 글감에 대한 생각을 쓴다. 참고로 여기에서 순서는 큰 의미가 없다. POINT일 수도 있고, PIONT일 수도 있다.
P: 무엇을 쓸 것인지, 즉 글쓰기의 주제 혹은 소재를 잡는다.
I: 글을 쓰게 된 동기나 배경, 관련 정보를 기술한다.
O: 대상(글감)의 개요 주요 내용을 적는다.
N: 인용, 예화. 참고 자료를 넣는다.
T: 생각을 적는다.
아래 글을 통해 POINT가 어떻게 글의 형식이 되는지 알아보자. 이 글은 장영희 교수의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에 소개된 한국 유학생의 글로 책에 따르면 외국 교수로부터 “잘 썼다.”는 칭찬을 받은 글이다.
올해 ‘예일 어린이병원' 성탄 파티 때 우리는 아이들 얼굴에 그림을 그려주기로 했다. 성탄 트리를 함께 만들고 나서 아이들은 줄지어 우리 앞에 섰다. 그림 그리기에 별로 소질이 없는 나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무슨 그림 그려줄까?"
내가 묻자 첫 아이가 "눈사람이요!"하고 대답했다. 나는 아이의 뺨에 흰색 동그라미 두 개를 그리고 검은색 눈과 입을 그려 넣었다. 아이는 거울을 보더니 흡족한 미소를 지었고 사실 내가 보기에도 썩 괜찮은 그림이었다. 다음에는 여자아이였는데 산타클로스를 그려달라고 했다. 눈사람보다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빨간색 삼각형 모자에 구름 같은 흰 수염을 그리자 아이는 신이 나서 뛰어갔다. 다음은 너덧 살로 보이는 흑인 아이였다.
“이름이 뭐니?"
“자마. 근데 나 왼쪽 뺨에는 특공대 군인 아저씨, 오른쪽 뺨에는 파워레인저 로봇을 그려줘.”
나는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못한다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인지라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그렸다. 그러나 결과는 왼쪽 뺨에는 초록색 방울, 오른쪽 뺨에는 빨간색 방울 하나씩이 붙어 있는 형상이 됐다. 거울을 내밀며 나는 자마가 울음을 터뜨릴까 봐 겁이 났다. 그러나 놀랍게도 자마는 울음 대신 함박웃음을 짓더니 의자에서 펄쩍 뛰어내려내 목을 꼭 껴안았다.
“너무 멋지다! 고마워요!"
결국 눈물을 흘린 것은 자마가 아니라 나였다. 부근의 빈민촌에 사는 이 아이들은 아마 우리가 준 선물 하나와 뺨의 그림이 이번 성탄절에 받는 선물의 전부이리라. 자마를 안고 나는 이야기 하나를 떠올렸다.
거센 폭풍우가 지나간 바닷가 아침이었다. 태양이 천천히 잿빛 구름을 뚫고 있는데 소녀 하나가 무엇인가를 미친 듯이 바다 쪽으로 던지고 있었다. 노인이 다가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자 소녀가 답했다.
"이제 곧 해가 높이 뜨면 뜨거워지잖아요. 그럼 여기 있는 모든 불가사리가 태양열에 죽게 될 테니까 이 불가사리들을 바다 속으로......"
노인이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얘야, 이 해변을 봐라. 폭풍우로 밀려온 불가사리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네가 하는 일이 무슨 소용 있겠니?"
소녀는 수긍이 가는 듯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불가사리 하나늘 집어 힘껏 바다를 향해 던졌다. 소녀는 미소를 지으며 노인에게 말했다.
"적어도 저 불가사리에겐 소용이 있지요."
이 아이들은 내게 가르쳐주었다. 진정한 변화는 아이의 얼굴에 푸른색 방울을 그리는 것과 같이 아주 작고 구체적인 일에서 시작되는 것을, 그것이야말로 자선의 참의미라는 것을, 자마는 나의 불가사리였다.
이 글을 분석해 보자. 이 글의 맨 앞에 나오는 내용, 즉 '올해 예일 어린이병원에서 생긴 일'은 글의 배경 정보다. 특정 사안에 대한 때와 장소, 사건 배경이 들어갔다. 이어 일어난 일(글감)에 대해 대화체를 넣어 실감나게 기술했다. 다음에 '노인과 소녀'라는 이야기(뉴스)를 인용했다. 글 쓸 때 흔이 쓰는 예화다. 이와 함께 맨 마지막 세 줄은 글쓴이의 소감이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P(포인트) : 빈민촌 아이들과 겪은 감동 이야기
I(배경) : 올해 예일 어린이병원 성탄 파티 때 벌어진 일
O(내용) : 아이들과 겪은 이야기의 개요
N(예화) : 노인과 소녀 이야기
T(소감) : 진정한 변화는 아주 작고 구체적인 일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