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 15분 강원도 영월을 떠나 경북 안동으로 가는 도중 휴게소(영월랜드)에서 간식으로 감자떡(1인당 2~3개)을 사 먹었다. 아무래도 안동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으려면 때를 놓쳐서 배가 고플 것 같아서였다.
2시간 후인 오후 1시 20분 하회마을 주차장 도착하였다. 점심을 먹으려고 이곳 안동에서 유명한 ‘헛제사밥’ 잘 하는 집을 물었더니 ‘옥류정’이라는 식당을 소개해 주었다.
우리를 맞이하는 옥류정은 식당 안이 아주 정갈하고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안내하는 여 종업원의 복장도 우유 빛 피부에 검정 원피스를 단정히 입고 있어서 ‘헛제사밥’이라는 메뉴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헛제사밥’(1인당 2만원)을 시켰더니 먼저 주안상을 봐 주었다.
동동주를 불러서 초여름의 한 낮 더위를 식히고 갈증을 풀기로 하였다. 안주를 담은 반찬접시가 조선시대의 유기그릇이었다. 동동주를 담은 단지와 술잔도 질그릇 토기를 내왔다. 놋수저 놋젓가락이 상 위에 놓였다. 각자 도기 술잔에 담긴 동동주를 높이 들어 조용히 ‘건배!’를 하였다. 술 안하는 사람은 나중에 나올 ‘안동식혜’를 먼저 내오도록 하여 건배에 동참하였다. 주문한 지 20분이 지나자 ‘헛제사밥’이 나왔다. 주문하면 새로 음식을 준비하여야 하니 시간이 걸린다고 하였다. 그리고 식당의 운영을 다른 종업원을 쓰지 않고 식구들(어머니와 아들 딸)끼리 하고 있었다.
‘헛제사밥’의 유래에 관한 정설은 없다. 일설에 의하면, 밤늦게까지 글을 읽던 안동 유생들이 속이 출출해지면 하인들에게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장난기 어린 거짓말을 하고 ‘헛제삿상’을 차리게 했는데 제사는 지내지 않고 제삿밥만 나누어 먹는 것을 보고 하인들이 ‘헛제삽밥’이라고 한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또 서원이 많았던 안동지역에서는 여러 가지 회합이 끊이지 않고 열렸고, 그때마다 인근 지역에서 많은 유림과 유생들이 서원에 모이게 되었는데, 이때 준비한 비빔밥의 재료가 다양한 어물과 탕국, 각종 나물 등 제사 음식과 비슷했던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헛제삿밥은 안동의 제례문화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안동지역에서 헛제삿밥이 상품화되어 식당 메뉴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78년 무렵. 당시 안동시에서는 안동댐을 건설하면서 수몰 직전의 고 가옥 하나를 현재 안동 야외 박물관 자리로 옮겼는데, 그 뒤 이곳에 전통 음식점을 차린 한 할머니가 처음으로 헛제삿밥을 ‘안동 칼국시’와 함께 메뉴에 넣어 팔았다고 한다. 1년 뒤에는 헛제삿밥만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 또 하나 생겼고, 1990년대 들어 하회마을 입구와 임하면 등에도 헛제삿밥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안동 헛제삿밥 상차림은 나물과 간고등어, 녹두전, 명태찜, 두부 부침을 기본 반찬으로 하고, 놋그릇에 따끈한 밥을 담아낸다. 선비들이 먹은 밤참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모든 찬이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해, 커다란 놋그릇 밥에 나물을 넣고 비벼 먹어도 좋다. 밥을 다 먹은 후에는, 고두밥에 무를 잘게 썰어 넣고 고춧가루, 생강즙을 넣어 만든 ‘안동 식혜’를 입가심 삼아 마시면 입안이 깔끔해지고 소화도 잘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