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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책소개 스크랩 리뷰 나의 투쟁 :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민욱아빠 추천 0 조회 55 16.09.19 16:5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평범했다.  읽어내려가면서 조금은 지루함이 묻어날 정도의 평범과 단조로움을 마지막 장까지 견뎌내야 하는 건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한 사람의 별 특징없는 인생사를 내가 집중해서 읽어내려가야 할 이유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단지, 나와는 다른 문화권에 사는 사람이 보낸 어릴적 풍경의 생소함에 조금의 궁금증이 일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책을 붙잡게 하는 유일한 이유였다. 

  기억의 디테일이 조금씩 느껴졌다.  어릴적 기억의 한 단편을 입체적으로 살려내고 편린들이 가진 미세함을 구체적으로 살려내는 섬세함에서 내가 담고 싶은 글의 어떤 모습을 느끼게 했다.  문장과, 문장 속에 녹아있는 표현 속에서 눈이 쌓인 도로변의 울창한 숲과 그 사이에서 사춘기 시절 특유의 호기심을 위해 인도 위에서 분주해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선연하게 그려졌다.  가 본적도 없는 노르웨이 어느 작은 도시의 겨울풍경이 영화의 한 장면같이 말이다.  문장들엔 불필요하게, 아니 애초에 별다른 힘이 들어있지 않았다. 

  그리고 솔직했다.  자신과, 자신 주변의 모든 인물들에 가감없는 솔직함을 부여했고, 솔직함은 그대로 진실의 서사가 되었다.  솔직함 때문에 저자는 주변인물로 등장한 친척에게 소송을 당했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자신과 주변인물들의 묘사와 관계를 이렇게 솔직하게 써도 되는지, 그래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지 민망스럽고 걱정이 될 정도였다.  저자 스스로의 감정표현은 위태롭기까지 했다.  그런 감정에 대한 솔직한 표현이,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고 망자에 대한 모욕이 되지는 않는 것인지 걱정스러웠다. 

  결국 다 읽었다.  글자 가득 650페이지를 넘기는 문장들을 읽어내려가면서 읽기에 속도가 붙고 친화력이 생긴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잠시 고민했었다.  이유는 솔직함이었다.  이렇게 써도 되나 싶을 만큼 민망하고 불안했던 솔직한 문장들..  그것은 독자의 관음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붙잡게 하는 힘으로 치환되었다.  누구든 밖으로 내놓지 못하는 마음 안쪽에 내재하는 부끄럽고 위험한 솔직한 생각과 감정들, 행동의 이면에 존재하는 또다른 의도들이 날 것 그대로 꺼내어지고, 그것은 독자로 하여금 누구나 비슷한 생각과 감정을 가지는구나 안도하게 하는 그런 힘인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은 그대로 사고와 감정의 자유로움으로 발전한다.  밋밋할 정도로 평범한 문장은 자유로움으로 승화되는 솔직함으로 힘을 얻은 것이다. 

  나의 글쓰기는 이런 솔직함을 담아낼 수 있을까.  자기통제와 검열이 습관처럼 문장 하나하나에 매어지는 나의 문장이 칼 오베의 문장을 닮기엔 아직 요원하고 자신도 없다.  스스로 민망함과 주변의 시선을 견뎌내기도 버겁다.  솔직함을 시도하다 과장이 될 지도 모를 나의 서투름도 조심스럽다.  솔직함이 힘이 되는 문장을 접했지만, 솔직함이 어떤 선을 넘는다는 건 어느 순간이든 용납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이건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솔직함은 힘이지만 우리의 습관과 관습 속에 보편처럼 녹아있는 솔직한 표현의 경계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의식하게 되는 경계 또는 선, 그것이 문장을 꾸리고자 하는 나의 충동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충동과 경계의 갈등을 두텁게 의식하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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