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따또바니
우리는 따또바니라고 부르는 개울가 온천을 향해 비탈길을 내려가고 있다. 다질링은 아직 춥지만 여기는 여름인 듯 무덥다. 해발표고가 그만큼 낮아진 때문이다. 이마에 땀이 흐른다.
맨 앞에서 석유 버너와 식기들을 양손에 챙겨들고 걸어가는 여자의 이름은 '체링', 35세 가량이다. 아담한 체구지만 강인해 보인다. 어렸을 때부터 절에서 자란 여승이라는데 씨감자처럼 작고 동그란 얼굴에 밤톨 같은 코, 그리고 깨끗한 눈빛이 인상적이다.
그 뒤에 가는 여자의 이름은 '세따'. 25세 가량이다. 남편이 부탄 절의 승려인 세따는 다른 여자들과 달리 부탄 전통 의상을 입고 있다. 부탄 여성의 전통 의상은 티베탄 여성들의 전통 드레스인 바쿠와 흡사하다. 다만 색상이 훨씬 화려하고 양어깨에 금빛 장식이 달려 있다. 결혼한 여자답지 않게 세따의 웃는 모습은 거의 백치에 가깝다. 날씬한 몸매의 상당한 미인인 그녀가 멘 큼직한 배낭에는 다질링 시장에서 산 말린 야크 고기 '스쿠티'가 5킬로그램이나 들어 있다.
세따 뒤에서 라무에게 떠밀리다 시피 하여 간신히 걸어가는 여자는 '아네이'. 체링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보이는데 사실은 35세로 동갑이란다. 작은 키에 똥똥하게 살이 올랐으며 음성이 곱다. 아네이 역시 웃는 얼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속세에 찌든 구석이 느껴진다. 몸무게 때문인지 그녀의 걸음은 느리고 불안하다. 보다 못한 라무가 그녀에게서 쌀자루를 빼앗는다.
아까 자동차 도로에서 내려다 본 출렁다리가 이제 수평으로 보인다. 계곡 이쪽에서 저쪽으로 네 가닥의 굵은 쇠줄을 매고 거기에 발판과 난간을 설치했다. 길이가 50미터쯤 되나 보다.
체링이 성큼성큼 줄 다리로 올라선다. 줄 다리가 출렁거린다. 세따가 올라서고, 라무가 아네이를 앞세우고 올라서자 더욱 출렁거린다. 내가 맨 나중이다. 이까짓 것쯤이야 했는데 막상 출렁다리에 올라서니 무릎이 후들후들 떨린다. '환자'인 주제에 남자 체면이라고 짐을 너무 많이 진 탓인가. 밑을 내려다보니 어지럽다.
건너편에서 한 노인이 염소를 안고 서서 우리가 다리를 건너기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지나갈 때 노인은 몸을 비켜 주면서 '타시델레이'하며 합장을 한다. 얼결에 나도 '타시델레이'하고 답례를 했다. 승려도 아니면서 승복을 입고 노인으로부터 경배를 받으니 얼떨떨하다.
출렁다리를 건너서 5분쯤 내려왔을까, 개울가에 커다란 바위들이 울끈불끈 솟아 있다. 그중 가장 큰 바위에는 산스크리스트 문자로 '옴마니밧메훔'이라는 여섯 글자를 음각 했다. 각 글자마다 빨간색, 초록색, 노란색, 파란색, 흰색, 주황색 페인트를 칠해 놓았다.
온천은 그 큰 바위들 밑에서 솟는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는 계곡의 물이 침범하여 온천물에 섞이는 걸 방지하기 위해 모래주머니로 둑을 쌓아 탕을 만들어 놓았는데 한 귀퉁이가 허물어져 있다.
짐을 놓고 탕으로 내려가 본다. 수면에서 유황냄새가 나는 더운 김이 모락모락 일어나고 있다. 물 속에 팔을 넣어 바닥 흙을 한줌 움켜 본다. 감촉이 좋은 새카만 모래다. 당장 벗고 들어가 몸을 담그고 싶은 걸 꾹 참는다.
아네이는 짐을 지키게 하고 우리는 숙소를 구하러 나선다. 온천 바로 위에 있는 절은 문이 잠겨 있고, 절 밑으로 개울을 따라서 움막들이 늘어서 있는데 돼지우리만큼이나 지저분하다. 그 움막들은 마을의 유일한 가게 주인이 지어놓고 온천 손님들에게 빌려 주는 임시 숙소다.
매부리코에 눈알이 노란 말라깽이 영감이 주인이다. 가게는 말이 가게지 어지간한 살림집 부엌만도 못하다. 소금, 설탕, 감자, 양파, 마늘, 싸구려 담배, 성냥, 양초, 석유 등 가게에 있는 물건을 모두 털어도 몇 백 루피 밖에는 안 될 것 같다.
영감은 이 너절한 움막 하나 빌리는데 하루에 10루피 씩 내라고 한다. 라무는 두 개에 10루피로 흥정을 시작했지만 나로서는 거저 준대도 들어가고 싶지 않다. 지저분한 건 둘째치고 사방 벽이 다 터져 있는 집이어서 벌써 앵앵거리기 시작하는 모기며 파리를 막을 방도가 없다. 영감에게 좀 더 나은 숙소는 없냐고 하니 집이 하나 비어 있는데 하루 100 루피 이하로는 절대 안 된다고 미리 쐐기를 박는다.
주인을 따라 움막 사이로 난 질척한 길을 조금 걸어가 보니, 번듯한 양옥집이 한 채 있다. 짓다가 마무리를 하지 않아 볼썽 사납긴 하지만 부엌과 거실 그리고 방이 두 개 있다. 나무 침대도 각 방에 네 개씩 있다. 여기서 염소를 길렀는지 여기저기 염소 똥이 굴러다닌다. 하지만 현관문이며 창문이 모두 제대로 붙어 있다. 구색은 갖춘 셈이다. 거실을 가운데 두고 여자들은 왼쪽 방, 나는 오른쪽 방을 쓰기로 했다.
저녁밥은 아네이와 라무가 짓기로 했나 보다. 두 여자는 부엌 살림을 정리하더니 곧장 버너를 피운다. 나는 주인집에서 함석으로 만든 물동이를 빌려다 물을 퍼서 부엌으로 나른다. 체링과 세따는 타올을 안고 따또바니로 목욕을 하러 나간다.
라무가 물동이를 받아들며 "이제 됐어요. 여긴 우리에게 맡기고 목욕하세요."라고 한다. 아네이도 "피곤할 텐데 목욕하고 푹 쉬세요." 라고 거든다.
인도 네팔 사람들은 남자나 여자나 중요한 부분은 가리고 목욕을 한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도 알몸으로 목욕하는 일은 없다. 마을 입구의 공동 우물가에서 목욕을 하는 여자들 곁에서 남정네들이 이를 닦거나 빨래를 하고 있는 건 자연스런 풍경이다.
가슴 위까지 올라오게 두른 통치마는 물에 젖어 몸에 착 달라붙어 있으며, 통통한 어깨와 통치마 위로 불룩 밀려나온 부드러운 젖가슴은 얼마나 자극적인가. 하지만 남자나 여자나 서로에게 개의치 않고 자기 할 일을 하는 것이 나는 무척이나 신기했다.
바위 위에 옷을 벗어 놓고 팬티 차림으로 탕에 내려서 보니 코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체링과 세따가 통치마 차림으로 물 속에 누워 있다가 내가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 주느라고 몸을 움직이자 물 속에서 하얀 젖무덤들이 탐스럽게 출렁였다.
나는 탕 속의 그녀들 곁에 들어앉긴 했지만 무연한 척하고 오래 버티기가 뭣했다. 구태여 성욕 때문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긴장한 건 사실이었다. 괜히 가슴이 울렁거리고 숨쉬기가 거북했다. 그 거북함은 어머니를 따라서 여탕에 드나들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의 막바지에 느꼈던 거북함과 비슷한 것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남탕에 다니기 시작한지 몇 해 후부터는 문득 여탕이 궁금해지곤 했다. 그리고 그때가 내 사춘기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사춘기란 결국 돌아가는 것이 금지된 봄이 그리워 헐떡이는 때 아니가.
이 봄날에 반라의 여자들과 함께 탕 속에 있는 게 싫지는 않지만 왠지 염치없는 짓인 것 같아서 나는 탕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하고 미쉘이 말했던 동굴을 찾아 나섰다. 가게 영감이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 시멘트로 볼품 없이 지어놓은 절이 있고 절 뒤로 돌아가는 쓸쓸한 오솔길이 그 동굴로 이어진다는 거다. 과연, 오솔길이 끝나는 바위 벼랑 밑에 큼직한 구멍이 나 있다. 잘하면 쪼그리고 앉아서 오리걸음으로도 들어갈 수 있는 크기다. 굴 앞 공터에는 누군가가 불을 피운 흔적도 있다.
쪼그리고 앉아 컴컴한 굴속을 드려다 보고 있자니 굴속에서 서늘한 바람과 함께 향냄새가 흘러나온다. 누군가 안에서 향을 태우고 있는 것 같다. 누굴까, 귀신을 떼기 위해, 혹은 소원을 빌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일까. 안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몰라 약간 켕기기는 하지만 들어가 보기로 한다.
더듬더듬 안으로 기어들어 갈수록 굴속은 컴컴해진다. 그리고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캄캄한 구석에 빨간 불빛이 한 점 보인다. 향불인 것 같다. 향불 앞에는 누군가가 웅크리고 있는 것도 같다.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숨도 작게 쉬면서 가만히 앉아 있어 본다. 저쪽에서도 누군가 나처럼 숨을 죽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별로 좋은 느낌은 아니다. 돌아 나갈까 말까 망설이는데 굴 밖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최소한 두 사람이다.
"어디까지 들어가려는 거야?"
"다 왔나 봐. 저 앞은 넓어."
그들은 분명 우리나라 말을 하고 있다. 그것도 듣던 목소리다. 그렇다. 영아와 극섭이다.
혹시나 하고 기대하긴 했지만 이런 데서 이렇게 만나게 된 건 뜻밖이다. '극섭아' '영아야' 하고 부르고 싶은 걸 꾹 참는다. 그들의 헤드 랜턴 불빛이 동굴의 어둠 속을 휘저을 때마다 동굴 내부의 모양이 드러난다. 대여섯 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정도의 넓이, 일어서도 머리가 닿지 않을 정도의 높이. 그리고 오른쪽 벽면에 또 하나의 조그만 굴이 보인다. 방금 누군가가 여기 있었다면 그는 아마 저 굴로 들어가 버렸을지도 모른다.
"방귀 끼지마. 방귀 끼면 똥침 논다."
"누나나 끼지마."
다시 들려 오는 영아와 극섭의 목소리. 쿡 웃음이 나오는 걸 간신히 참고 머리에 쓴 수건을 내려 얼굴을 반쯤 가린 후 그들이 나를 발견하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너무 조용하다. 나를 발견한 건가, 못 한 건가.
"나가자."
"그러자."
둘이 속삭이는 소리가 가까이 들린다. 둘은 내가 명상을 하고 있는 티벳 스님인 줄 알았을 거다, 그래서 방해하지 말고 조용히 물러나자는 데 합의한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둘이 몸을 돌려 기어 나가는 기척이 들린다. 어쩐다, 게 서거라 하고 불러 볼까? 영아야 극섭아 하고 이름을 불러볼까, 에라 모르겠다. 나도 뒤따라 기어나간다.
우리는 굴 앞에 앉아 지난 열흘을 이야기했다. 다소 마르기는 했지만 열흘 전에 비해 훨씬 건강하게 보이는 극섭과 영아. 그들은 칸첸중가 베이스 캠프까지 트레킹을 하려고 했지만 허가 조건이 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들어서 포기하고 여기 저기 구경하며 다질링으로 돌아가는 중에 이곳에 온천이 있다는 말을 듣고 들렀다는 것이다. 우리는 당분간 이 온천에서 같이 지내기로 했다.
맨 바닥에 종이 상자를 펼쳐 밥상을 차려 놓고 둘러앉은 식구가 자그마치 일곱 명이다. 촛불 두 자루에 비친 식구들 모습이 하나하나 모두 정답다. 여러 식구가 모여 불 켜놓고 밥 먹는 저녁은 얼마나 아름다우냐. 밤 기차를 타고 낯선 곳을 떠돌 때, 차창 밖 어둠 속에 떠올랐던 마을의 불빛들을 바라보면서 그 불빛 아래 모여 있을 식구들을 나는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우리가 숟갈을 들자 라무가 말한다.
"음식이 맵지 않을까 몰라요."
"우리도 매운 걸 좋아합니다. 우리는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서 먹는 민족이거든요."
극섭이가 자신 있게 말하고 찌개에 들어 있는 소고기와 고추를 한 숟갈 떠서 입에 넣고 씹더니 금세 얼굴이 빨개진다. 나는 국물만 조금 떠먹어 본다. 과연 엄청나게 맵다. 입에 불이 붙는 것 같고, 귀가 빠지는 것 같다. 진땀이 다 난다. 이렇게 매운 고추는 처음이다. 부탄 여자들이 키득키득 웃는다.
"부탄 고추는 나무에서 따요. 풀에서 따는 고추보다 훨씬 더 매워요. 이 고추는 부탄에 있는 세따네 친정에서 따온 겁니다."
아네이의 말이다.
"맵지만 맛은 있는데요. 이렇게 조금만 떠서 밥에다 비벼서 잡숴봐요. 우리나라 된장찌개 같아요."
영아는 된장찌개 먹는 식으로 고추 찌개를 한 숟갈 떠서 밥에다 살살 비벼가며 먹는다. 극섭이와 나도 그렇게 먹어 본다. 과연 된장찌개 맛이 난다. 그러나 입술이 화끈화끈 달아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먹다 보니 부탄 여자들도 모두 그렇게 밥에다 비벼 먹고 있다. 이 음식은 원래 그렇게 먹는 음식인가 보다.
저녁 밥상을 치울 때 극섭이와 나는 온천욕을 하러 나왔다. 계곡의 물소리는 낮에 비해 유난히 크게 들린다. 우리는 바위 위에다 옷을 벗어놓는다. 그런데 극섭은 팬티까지 벗을 태세다.
"극섭아. 팬티는 입어야 되."
"남자끼린데 어때요?"
"좀 있으면 여자들도 올 꺼야."
"우리가 있는 줄 알면서도 말입니까?"
"그럼. 그리고 우리가 불알을 내놓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지."
극섭에게 이 지방의 목욕 풍습과 낮에 있었던 일을 들려준다. 극섭은 반쯤 내리다 만 팬티를 다시 올리면서 말한다.
"부탄 여자들은 그렇다 치고 영아 누나는 어떡해요?"
"알아서 하겠지. 뭐. 너나 잘 해."
"뭘 잘하라는 거예요?"
"괜히 도망가고 그러지 말라는 이야기지."
극섭이는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듯 웃어 버린다. 우리는 벗어 놓은 옷과 수건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돌로 눌러 놓고 탕에 들어와 앉는다.
황홀하리만큼 매끄럽고 따뜻한 물이다. 유황 냄새도 향기롭다. 나는 다리를 쭉 뻗고 비스듬히 누워 본다. 극섭이도 따라하면서 말한다.
"이렇게 네 활개 다 펴고 누우면 네 명이 정원이겠네요."
"이렇게 누우면 세 명이 누워도 살이 닿을 껄."
"여자들이 정말 올까요?"
"왜 기다려지냐?"
"형님이야말로 기다려지는가 보군요."
"예끼!"
나는 극섭에게 물을 끼얹는다. 극섭이도 내게 물을 끼얹는다. 우리는 숨이 찰 때까지 '물싸움'을 했다.
둘이 탕에서 분탕질을 하다나니 온천물이 뿌옇게 변했다. 우리는 탕 아래 쪽 둑을 조금 터서 흙탕물을 내보내며 뜨거운 물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더듬어 본다.
뜨거운 물은 물가에 'ㅅ'자로 포개져 있는 두 개의 바위 사이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탕의 물은 'ㅅ'자로 벌어진 두 개의 바위틈에 반 높이로 차 있는데 물 위로 드러난 구멍으로 안을 드려다 보니 안에 한 사람쯤은 충분히 들어가 앉거나 누울 공간이 있다.
나는 그 속으로 다리를 먼저 뻗어 넣은 다음 자맥질하여 안으로 들어섰다. 안은 밖에서 보기 보다 훨씬 넓다. 애인 사이라면 둘이 들어와 몸을 맞대고 누워 있어도 갑갑하지 않을 공간이다. 후끈후끈한 유황냄새가 너무 강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밖에서 극섭이가 자기도 들어갈 만하냐고 묻는다. 나는 안 쪽으로 몸을 오그리고서 극섭이도 들어올 수 있게 해 준다. 극섭이도 들어와 쪼그리고 앉았다.
"어떠냐?"
극섭은 한동안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가 대답한다.
"'모태회귀'라는 말 알아요?"
"놀랐다. 니가 그런 것도 아는구나."
"형님은 내가 가끔 시를 쓴다는 사실을 벌써 잊었군요."
"그렇지 참. 미안하다. 깜빡했다. 어쨌든 '모태회귀'는 말 된다. 여긴 정말 자궁 같다. 우린 다시 어머니 뱃속으로 돌아온 거라구."
"그럼 우린 쌍둥이네요."
"그래 쌍둥이니까 이제부터 맞먹어라."
"에이, 그건 안 되지요. 쌍둥이래두 형 동생은 있잖아요."
쌍둥이 이야기를 꺼내니까 나와 내 동생 한로에게 있었던 어떤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연년생인 한로와 나는 쌍둥이처럼 자랐다. 옷도 같이 입고, 썰매도 같이 타고, 수영도 같이 하고, 스케이트도 같이 탔다. 군대도 같이 갔으며 내가 장가가자마자 한로도 뒤질세라 장가를 갔다. 한로는 언제나 내가 하는 그대로 따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아이였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한로가 나보다 훨씬 조숙했다. 극섭은 내 동생 한로가 어떤 면에서 나보다 훨씬 조숙했는지를 듣고 싶어했다.
나는 1학년이었지만 한로는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의 일이다. 우리보다 더 어린 여동생 둘은 부모님과 함께 안방에서 잤지만 한로와 나는 건넌방에서 인숙이 누나와 함께 잤다. 인숙이 누나는 인근 마을의 몹시 가난한 집 딸로써 우리 형제들을 돌보아 주고 집안 심부름도 해주며 같이 살았던 누나다.
그때는 우리 동네에 아직 발전소가 없던 시절이라서 밤에 오줌을 누려면 손전등을 켜고 요강을 찾아 오줌을 눠야했다. 인숙이 누나는 한로와 나 사이에서 자다가 우리들이 오줌 누는 걸 도와 주어야 했다. 물론 고추를 잡아 줄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잠에서 깨보니 이불 속에서 손전등 불빛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한로였다. 한로가 이불 속에서 인숙이 누나의 팬티를 내리고 손전등으로 그곳을 비추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아직 어리긴 했지만 그건 나쁜 짓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내가 '뭐 하는 거야, 너 일러준다'하니 한로는 '형도 해 봐'하면서 내게 손전등을 넘겨주었다. 나는 얼결에 손전등을 넘겨받았다. 한로는 인숙이 누나의 팬티를 더 밑으로 내렸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때 인숙이 누나가 잠에서 깼다.
인숙이 누나는 엉엉 울면서 어머니 아버지가 자는 방으로 건너갔고, 아버지가 뛰어 나와 내 귀를 잡아끌고 진찰실로 갔다. 나는 잘못했다고 빌었지만 아버지는 내 옷을 홀딱 벗기고 내 고추를 굵은 수술실로 친친 동여맸다. 그리고 종이 위에 <나는 누나 XX 후빈 놈이오>라고 쓴 후 반창고를 이용하여 그 종이를 내 등에 붙였다. 그러는 아버지는 꼭 미친 사람 같았다. 아버지는 내 손을 뒤로 묶었다. 고추를 묶은 실을 잡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공포에 질려 울음마저 나오지 않았다.
그 사이에 날이 밝았다. 아버지는 내 고추를 친친 동여맨 굵은 수술실 한쪽 끝을 주먹에 말아 쥐고 나를 길가로 끌어냈다. 속수무책, 나는 아버지가 당기는 대로 종종걸음치며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말렸지만 어머니는 아버지 발길질에 채일까 봐 가까이 오지 못했다. 삼촌과 고모도 말려보려고 했지만 아무도 아버지 가까이 오지 못하고 뚝 떨어져서 이 괴이쩍은 새벽 기차놀이를 따라 오다가 구경꾼이 많아지자 어디론가 숨어 버렸다.
구경꾼은 점점 더 많아졌다. 그 중에는 한로와 여동생 한주도 있었다. 동생들은 구경꾼들에게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를 일러주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 억울하고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었다. 수술실에 꽁꽁 묶여 점점 새파래지는 내 고추를 내려다보며 공포에 떨고 있었다.
구경꾼 중에는 뜨물 할머니도 있었다. 개울가에서 돼지를 기르는 그 할머니는 우리 집에 뜨물을 얻으러 오는 할머니였다. 그 할머니가 아버지를 말렸다. 이만 하면 됐다고, 이러다 장손 고추 떨어지겠다고 타일렀던 것이다. 아버지는 주먹에 감아 쥔 수술실을 풀어 던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뜨물 할머니가 내 고추에서 수술실을 풀었다. 어찌나 꽁꽁 동여맸는지 양복점에서 실밥 뜯는 칼을 빌려다 실을 잘라야 했다. 뜨물 할머니는 실에서 풀린 내 고추에 피가 돌게 하기 위해서 내 고추를 오랫동안 조몰락거렸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어머니는 나를 더 이상 여탕에 데려가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 남탕에 다녀야 했다. 그런데 내 동생 한로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천연덕스럽게 어머니를 따라 여탕에 다녔다.
극섭이는 내 이야기를 들으며 배를 잡고 웃었다. 나 자신도 되도록 웃어가며 그 사건을 희화해서 들려주려고 애썼다. 그러나 이야기 끝에 눈물이 핑 도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영화에나 있을 법한 얘기군요. 형님 아버님은 왠지 '안소니 퀸'을 닮았을 것 같아요."
"객관적으로 보면 캐릭터가 비슷해. 체격이나 성격이나 많이 닮았어. 하지만 내게는 늘 무자비하셨다는 기억만 남아 있어. 아버지는 공포 그 자체였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말을 안 더듬었지만 아버지 앞에만 가면 말이 안 나왔어. 말을 하려면 외마디 소리만 삐어져 나왔어.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어."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기까지는 너무나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나는 극섭에게 내 아버지에 대한 또 다른 아픈 추억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것은 고추가 떨어질 뻔한 그 사건보다 1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인애 말고는 아직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였으며 아주 긴 이야기로 이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여서 참았다. 그리고 우리는 너무 뜨겁고 어지러워서 더 이상 그 굴 같은 탕 속에 있을 수 없었다. 우리가 탕에서 나올 때 여자들은 탕으로 들어올 채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일찌감치 누웠다. 잠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왔다.
자다가 깨보니 어느새 자정이 넘었다. 영아도 극섭이도 가늘게 코를 골고 있다. 살금살금 침대에서 일어나 성냥을 그어 극섭이의 헤드 랜턴을 찾아들고 거실로 나온다. 부탄 여자들 방에서도 누군가 코를 곤다.
하늘에 별이 가득하다. 계곡의 물소리는 아까보다 훨씬 크게 들린다. 춥다. 옷을 벗으니 몸에 소름이 돋는다. 탕으로 내려가 따뜻한 물 속에 누워 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어제도 그제도, 아니 살아온 모든 날들이 그냥 꿈만 같다.
보리수, 그 아래 누워있던 다니 디디. 그녀의 주검을 태우던 불길, 재를 뒤집어쓰고 쓰러져 자던 미쉘, 그리고 서울을 떠나던 날의 김포공항이 떠오른다.
무섭게 달리는 자동차들의 소음과 비행기들의 굉음, 여기저기서 울리는 안내 방송......공항 화장실 거울에서 본 내 얼굴......아이들은 떠났고, 아내는 발작처럼 이혼을 요구했던 날들. 그때 나는 죽음과 도박을 하며 마셨다. 살고 싶고 또 죽고 싶었다. 만일 내게 용기가 있었다면 죽어버렸을 것이다. 나는 텅 빈 아파트 부엌의 가스 스토브에서 고무 호스를 빼는 상상을 하곤 했다. 유서를 써보기도 했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가족들을 더 이상 피곤하게 하기 싫어서 떠난다. 용서를 바란다. 그리고 깨끗이 잊어주기를 바란다. 장례는 화장으로 간단히 해주기를 바란다. 유골은 도봉산에 뿌려주기 바란다.......
죽는 마당에 뭐 그리 바라는 게 많던지......
그 무렵에 친구 강가가 죽었다. 그는 십 년 전부터 성좌(星座)들을 그리고 있었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저런 별들이 아니라 천체 망원경으로 본 별들, 전자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소립자들 같은 별들......
강가는 지방의 한 여인숙에서 혼자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주검으로 돌아왔다. 영안실에서 본 그의 영정 사진은 재수생 때 찍은 것이었다. 스물이 채 안 된 재수생 때 처음 만났던 소년 강가의 얼굴을 보니 왜 그리 눈물이 나던지......
내 삶은 언제나 겉돌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겉돌고 있다. 결핍과 불안과 분노를 허방다리처럼 딛고 서서 허우적이고 있다. 별은 별이고, 물은 물인데 나는 내가 아니다. 나는 해체되었다. 언제나 나는 불투명하다.......
그러니 인애를 찾는다 한들 무슨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나는 또 다시 인애를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인애 가슴의 상처를 또다시 덧내고 말 것이다. 갑갑한 망념이 물안개처럼 끝없이 피어난다. 나는 망념을 피해 자궁 속으로 들어간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 온 몸을 감싸주는 이곳, 피 냄새 같기도 하고 살 냄새 같기도 한 유황냄새가 감도는 이곳, 이 완전한 어둠과 정적 속에서 나는 숨을 들이쉬고 내 쉬는 일에만 집중해 본다. 그러나 잠시 뿐이다. 내 감각은 다시 밖으로 열린다. 누군가 바깥 탕에 들어왔다. 극섭이일까? 혹은 부탄 여자들 중 어느 한 명? 밖에서 발이 쑥 들어온다. 그 발은 내 발과 부딪친다. 넓적하고 커다란 발이다.
"누구냐? 극섭이냐?"
대답이 없다. 상대방은 발만 슬그머니 빼간다.
영어로 말해 본다. 역시 대답이 없다.
궁금해서 밖으로 나와 보니 수척한 사내가 별들을 등에 업고 탕에 앉아 있다. 어깨 밑으로 내려온 머리와 가슴으로 내려온 수염이 얼마나 긴지 물 속까지 푹 잠겨 있다. 그는 나를 개의치 않고 수염을 두 손으로 비벼 빨고 있다. 수염을 그런 식으로 '세탁'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
"타시델레이"하고 티벳식 인사를 해본다. 그는 얼굴을 들어 나를 한 번 바라보면서 씽긋 웃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무시하는 태도는 아니다.
잘 생긴 얼굴이다. 살색은 검은 편이지만 이마나 콧날이 예수 같다. 전혀 위험한 인물 같지 않다.
"나는 한국인이다. 너는 영어를 할 줄 아냐?"
그는 아주 천천히 대답한다.
"낮에 굴속에 들어왔던 게 너로구나."
뜻밖에도 그는 영어를 한다.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다.
"네가 그 굴에 향을 피우고 있었구나? 방해가 됐다면 용서해라."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내 말을 부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리라."
"내 이름은 김이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이곳 사람들은 나를 구파 바바라고 부른다."
'구파 바바'란 '굴에 사는 수행자'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는 흔히 '사두 바바' 또는 '바바지'라고 부르는 요기(요가 수행자)임이 분명하다. 전에도 인도 여기저기서 이런 사람을 만난 일이 있다. 많은 요기들은 깡통 하나와 담요 한 장만 달랑 들고 순례와 요가로 일생을 산다. 개중에는 거지와 다를 바 없는 사이비도 있지만 더러는 고상한 자들도 있다. 그런데 이 요기는 좀 고상해 보인다.
그는 긴 머리채를 둘둘 말아 쥐고 그것을 바위 위에 놓고 손으로 두드린다. 빨래 방망이로 빨래를 두드리듯이 주먹으로 머리채를 두드려 '세탁'하는 것이다. 내게는 생경하지만 그의 동작은 일상처럼 자연스럽다. 유난히 참혹하게 두드러진 갈빗대도 자연스럽다. 동굴에서 별로 먹지도 않고 지내는가 보다. 그리고 사람이 없는 한밤중에만 목욕하러 나오는가 보다.
그는 머리채를 뒤집어서 두드리고, 다시 뒤집어서 두드리기를 두어 번 거듭한 뒤 물 속에다 풀어 헹군다. 그러나 떡처럼 덩어리진 머리카락은 완전히 풀어지지 않는다.
"내게 비누가 있다."
"나는 비누를 쓰지 않는다."
짧게 대답하고, 그는 머리채를 둘둘 말아서 머리에 얹어 묶는다. 머리에 소똥을 얹어놓은 것 같다.
그는 '어떠냐? 멋있지?'하는 표정으로 나를 한 번 바라보고는 유연한 동작으로 바위틈을 비집고 자궁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계곡에는 박쥐가 날아다닌다. 쥐처럼 찍찍 울면서 계곡 이쪽 저쪽으로 날아다닌다. 부엉이 또는 올빼미나 소쩍새 같은 놈의 울음소리도 들린다. 어떤 놈은 아주 커서 별빛을 가리며 날아다니는데 그게 바로 부엉이 아닌가 싶다.
뜨거운 물에 오래 누워있자니 땀이 난다. 모래주머니 뚝 너머 찬물에 들어가 몸을 담근다.'으이구 차다'하고 소리를 내본다. 밤의 정적이 싫어서, 부엉새 울고 박쥐 날아다니는 밤이 스산해서 일부러 사람 소리를 내본 것이다. 다시 온천에 들어오면서도 '으이구 시원하다'하며 열탕에 들어가는 우리 동네 목욕탕 노인네들 소리도 내본다.
이 친구 유황 가스에 취해서 졸도한 거나 아닌가 싶을 때쯤 자궁 속에서 짧은 기침 소리가 나더니 사내가 나온다. 그는 나오자마자 몸을 쭉 뻗고 누워서 심호흡을 몇 번 한 후 바위에 올라가 앉는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말을 붙여 본다.
"너는 매일 밤마다 나와서 목욕을 하는 것 같다."
"아니다. 가끔 한다."
"그럼 평소에는 밤이고 낮이고 굴속에만 틀어박혀 있는 거냐?"
"......"
대답이 없다는 건 긍정이다. 그의 말문을 열게 하려면 질문 방법을 바꿔야 한다.
"언제부터 그 굴에서 지냈냐?"
"지난 겨울, 첫눈이 내릴 때부터다."
"앞으로 얼마나 더 거기서 지낼 거냐."
"글쎄......"
"내일 내가 너의 굴을 방문해도 좋으냐?"
"......"
"허락한 것으로 알겠다."
"......"
그는 자세를 바로 잡더니 눈을 감는다. 할말이 있거든 내일 하라는 뜻. 더 이상 그를 귀찮게 하는 것은 고상하지 못한 짓이다. 바위에 올라가 옷을 입으며 바라보니 소똥을 뒤집어 쓴 것 같은 그의 머리 너머로 박쥐들이 찍찍 날아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