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법, 교섭 방식이나 전임자 돈 문제가 아니다
한국노총이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대신 받아낸 유급근로시간면제제(타임오프제)가 사실상 전임자 임금 지급금지보다도 오히려 더 노조 활동을 제약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타임오프제가 불러올 노동조합의 미래는 노조를 이익집단으로 만들어 민주노조를 말살 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장귀연 불안정노동철폐연대(철폐연대) 정책위원장은 23일 열린 철폐연대 월례토론회에서 복수노조-창구단일화, 타임오프제 등이 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며 어떤 대응을 해야 할 것인지를 발제하면서 이렇게 분석했다.
장귀연 정책위원장은 발제문을 통해 “차라리 전임자 임금 지급이 금지된다면 사측으로부터 돈은 받지 못할망정 노조 활동에 대한 제한은 없는 반면, 타임오프제에 의하면 교섭과 상관없는 총회, 교육, 연대활동 등은 (근무시간 이탈을 핑계로) 징계 사유가 될 수 있다”면서 “노조 간부나 조합원들이 노조의 활동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고 분석했다.
장귀연 정책위원장은 “이러한 개악안에 합의한 한국노총은 근로시간면제를 인정받는 사유를 확장하는 것을 가지고 투쟁하겠다고 하고 있으나, 이것은 단순히 인정 사유의 범위와 종류 문제가 아니”라며 “무엇보다도 조합원 등을 대상으로 한 노조 내부의 일상 활동까지도 법적 또는 노사 합의로 제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노조의 손을 묶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노조 활동은 실리적 이해를 관철하기 위한 교섭으로 제한되며, 조합원들은 노조 활동 참여에 수동적이 되고 노조 활동의 관료주의화가 촉진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장귀연 위원장은 타임오프제가 되면 “조합원의 의식 향상 계기는 사라질 것이며, 조합원들은 단지 이해계산의 잣대로 노조의 존재를 상정하는 자판기 노조주의가 더욱 만연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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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창구단일화, 친회사 협조성 경쟁 불러올 것
장귀연 위원장은 또 복수노조-창구단일화의 문제점이 현장이 미칠 영향도 밝혔다. 발제문에 따르면 창구단일화는 비정규 노조를 포함한 소수노조는 없어질 가능성이 높고 신규 조직화도 매우 어려워진다. 상식적으로 교섭을 공식적으로 할 수 없는 소수노조가 대중적으로 유지되기 어렵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장귀연 정책위원장은 “창구단일화는 지금까지 비정규노조들이 많이 취해왔던 독자적인 조직화 및 교섭이라는 경로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비정규 독자노조의 경로는 소멸하고 기존 비정규 독자노조도 고사할 가능성이 높다. 비정규 독자 조직화 전략이 바람직하냐 아니냐를 떠나서 이러한 선택의 경로 자체가 제거되는 것은 활동 전략에 큰 손상을 준다”고 밝혔다.
두 번째 영향은 회사쪽 개입에 의한 노조의 어용화·무력화의 위험성이 매우 높아진다는데 있다. 지금도 사용자들은 노조를 끊임없이 친기업화와 어용화를 시도하는데 창구단일화가 되면 회사 쪽의 전술적 선택 폭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장귀연 위원장은 “친기업 성향의 노조가 대표교섭권을 갖는 다수노조가 되면 사측의 입장에서는 소수노조의 투쟁성에 대해서는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사측이 노조를 어용화 하려는 유인이 더욱 커지게 된다”고 풀이했다.
이렇게 유인이 커진 상황에서 사용자들은 △관리자를 동원한 어용노조 직접건설 △노노분열 야기-노조분립을 통한 친사용자 노조 지원 등 몇 가지 전술적 선택지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장 정책위원장은 “복수노조 하에서 다수 조합원을 확보하여 교섭권을 획득하기 위한 노조 간 경쟁은, 투쟁성(선명성)이나 민주성(대표성) 경쟁 등으로 나아갈 수도 있지만, 사측과의 협조성 경쟁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현재의 상황은 협조성 경쟁 가능성이 더 높다”고 전망했다.
장귀연 정책위원장은 이런 개정안의 영향을 한 마디로 “민주노조를 완전히 말살하려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창구단일화, 타임오프제 결사적으로 막아야
그렇다면 이런 진단 속에 어떤 대응이 필요할까. 우선 민주노조의 정체성을 제거하려는 노조법을 기정사실화하고 구체적인 대응 전략전술을 논의하는 것은 지나치게 패배주의적이라고 지적했다. 장 위원장은 “창구단일화나 타임오프제 자체가 제도화되는 것을 결사적으로 저지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노조법 개악이 현실화된다면 민주노조 유지에는 크게 두 가지 방향성이 있다고 밝혔다. 장 정책위원장은 다수화 전략과 소수노조로서의 위치를 불사하고 목소리(voice)를 내는 방법이 있다고 봤다.
다수화 전략은 민주노조의 정체성을 유지하되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다수노조의 지위를 획득하고 그를 기반으로 세력화 한다는 것이다. 장 위원장은 “노조법 개정은 노조라는 조직 자체를 말살하는 것은 아니되 민주노조의 정체성은 제거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라며 “민주노조가 주체적이고 강한 추동력을 갖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러한 전략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장귀연 위원장은 “오히려 민주노조 운동의 위기라고 불리는 현재의 상황에서 이러한 노조법이 현실화되면 민주노조의 소멸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했다.
장 정책위원장이 두 번째로 제시한 창구단일화에서 소수노조의 위치를 불사한다는 것은 노조의 목표에서 교섭을 상대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귀연 정책위원장은 “이 역시 어려운 길이지만 일정기간 동안 교섭에서 배제되더라도 민주성과 연대성의 기치로 조직화하고 투쟁하여 세력화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장귀연 위원장은 마지막으로 당장 총파업을 모을 힘이 부족하다면 개악을 저지하기 위해 대중적인 슬로건을 통해 의식 확산과 사회적 쟁점화로 총파업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진단했다. 아직 힘을 모을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장 정책위원장은 “연내 개악된 노조법이 통과되더라도 시행까지는 유예기간이 있고, 노조법이 개정되지 않더라도 노정은 계속 개정 시도를 계속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아직 저지할 시간이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노조법의 내용이 노조의 교섭 방식이나 전임자 돈 문제가 아님을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귀연 위원장은 “‘창구단일화’ 또는 ‘전임자임금 지급 금지’ 등의 언어는 교섭 방식이나 노조 내부의 문제로 축소하여 생각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며 “‘민주노조 사수, 산별노조 사수’ ‘비정규직은 노조도 못만들게 하냐?’ 등의 노조법이 민주노조의 정체성 자체를 말살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슬로건과 담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