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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후 아 유
정 수 남
미쳤군, 미쳤어.
어쩌면 그렇게 닮을 수가 있을까. 그 여자를 보는 순간, 나는 사 년 전에 죽은 어머니가 다시 살아나와 앞에 앉아 있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혹시 잘못 본 것은 아닐까, 콧등에 내려왔던 안경을 치켜 올리고 다시 살폈으나 틀림없었다. 약간 굽은 허리와 깡마른 체구, 아무렇게나 뽀글뽀글 볶은 헤어스타일, 학처럼 긴 목과 검은 뿔테 돋보기를 끼고 앉아 왼손가락으로 성경을 짚어가며 읽는 모습까지도 여자는 꼭 어머니를 보는 것 같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다만, 며칠째 병상에 누워 있는 게 무료하고, 또 통증이 일어날 때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두렵고 떨리고 불안하여 이동식 링거대를 끌고 병원 안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닌 게 시작이었다. 여자는 3층 중환자실과 같은 층에 잇대어져 있는 보호자 대기실에 있었는데 내가 놀란 얼굴로 살피며 한참동안 살펴도 의식하지 못하는 듯 했다. 성경을 보면서 이따금 혼잣말을 나지막하게 내뱉곤 하였다. 그런데 그 ‘주여, 주여’ 하는 소리까지도 어쩌면 어머니가 생전에 읊조리던 것과 똑같은지, 나는 숨이 턱, 막혔다. 물론 크고 탁했던 어머니의 목소리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으나 한숨까지 섞어 뱉어내는 것은 정말 닮은꼴이었다.
면회 시간이 한참 지난 탓일까. 대기실엔 여자 혼자밖에 없었다. 나는 어떤 자력에 이끌리듯 대기실에 발을 들여놓았다. 여자는 그때에야 비로소 인기척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돋보기 너머로 나를 돌아보았다. 툭, 불거진 광대뼈 아래로 쑤욱 들어간 볼까지도 여자는 어머니를 닮아 있었다.
어디가 아파서 입원하셨대요?
성경을 손에 쥔 채 여자는 환자복 차림의 나를 이상하다는 듯 훑어보았다.
나는 대답을 미룬 채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여자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러자 비로소 여자가 어머니와 다른 데도 많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눈가에서 광대뼈 위로 그려진 자글자글한 잔주름과 반쯤 허옇게 센 머리카락은 생전의 어머니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젊은 사람처럼 머리가 검었으며, 주름살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왜, 아주 잠깐이기는 하지만 나는 여자를 어머니로 착각했던 것일까.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잠시 머쓱해진 나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여전히, 김 부장이 보낸 문자는 없었다. 무슨 일일까. 나는 문득 어둠이 몰려오는 것 같은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위장을 강철로 쿡쿡, 쑤시며 긁는 것 같은 통증이 다시 시작되었다. 아무 것도 씹어 먹은 게 없는데, 목구멍으로 뭔지 모를 시큼한 것이 치밀어 오르고 배가 뒤틀렸다.
젊은 사람이 무슨 일로?
여자가 궁금하다는 얼굴로 잼처 물었다.
위 때문에…….
나는 결국 어눌하게나마 대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나 자신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던 일이 내 몸 속에서 비밀스럽게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언제부터 그 녀석은 내 위 속에 몰래 들어와 똬리를 틀기 시작했을까. 7시간에 걸쳐서 위의 4분지 3과 함께 그 녀석을 강제로 떼어낸 의사는 그러나 앞으로도 방사선 치료와 약물치료를 꾸준히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완치는 적어도 5년 이상 정기적인 검사를 통해 살펴본 다음에야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냈다고 하지만 아직은 유보 상태인 셈이었다. 나는 갑자기 닥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마음을 졸이며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내가 주춤거리며 전말을 늘어놓자, 여자가 머리를 끄덕거렸다.
아주 깜짝 놀라셨겠네요?
여자는 자기 몸속의 일도 모르는 게 사람이라면서, 웃었다. 화장을 하지 않아 나이보다 겉늙어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궁상맞아 보인다거나 귀접스럽게 보이는 민낯은 아니었다.
지나가는 말투로 혼자 계신 거냐고 묻자, 어제까지는 보호자 몇 분이 밤새워 동무를 해주었는데 지금은 모두 가고 혼자 남았다고 했다. 한 분은 시어머니가 하늘나라로 갔기 때문에 지금쯤 빈소에 가 있을 터이고, 또 한 분은 오늘 내일 하던 환자가 아무래도 오늘밤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고 의사가 통보하자 초상을 준비하기 위해 집에 다니러 갔다고, 내가 구태여 알 필요가 없는 사연까지 시시콜콜 덧붙여주었다. 그러면서 여자는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자신이 이곳에 있은 지가 벌써 석 달이 다 되어간다고 했다.
석 달이요?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여자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아니, 세상에……. 그렇다면 계절이 한 번 바뀔 동안 줄곧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데도 여자는 지쳐 보이지가 않았다.
초면인데도 여자는 스스럼이 없었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왜, 석 달이 다 되어가는 동안 자신이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머리를 흔들었다. 내가 굳이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보다는 내 코가 석 자였다. 그러나 병상을 비우고 잠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내려왔던 나는 결국 여자가 정성스럽게 타서 건네주는 따끈한 차 한 잔에 그만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마실 수는 없었으나 사양할 수도 없었다. 바투 다가가 앉은 나에게 여자는 자신이 갈망하며 기도하는 제목은 단 하나, 중환자실에 들어가 있는 남편의 의식이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했다.
교회에 나가기로 약속했거든요. 꼭 나갈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만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어떡해요. 그때 내가 좀 더 강하게 붙잡고 매달렸으면 지금쯤은 벌써 세례도 받았을 터이고, 저도 조금은 홀가분할 텐데…….
나는 어느새 여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세웠다. 여자는 남편을 이대로 죽게 내버려둬서는 아니 된다고 하면서 또 ‘주여, 주여’를 연발했다. 갈 때 가더라도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뒤 천국에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창조주가 부르면 피조물로 태어난 생명은 언제든지 가야 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니냐면서, 오직 그것만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했다.
여자가 말해준 사연은 대략 이랬다.
동갑나기인 남편과 여자가 만난 곳은 대학교 시절 미팅 자리였다. 첫눈에 호감을 느낀 두 사람은 급속히 가까워졌고, 급기야 졸업 무렵에는 결혼을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종교가 두 사람을 가로막았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그녀와는 달리 그는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그 집안은 몸살만 앓아도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가정이었다. 당연히 그녀의 어른들은 반대했다. 지금은 몰라도 나중에는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터이니 미련 없이 돌아서라고 강요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그를 교회로 인도하면 될 것 아니냐고 맞섰다.
교회에 나갈 거지?
그러옴!
꼭, 꼭이지?
그러옴!
여자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에게 다짐을 받고 결혼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일요일에도 출근해야 하는 남편은 교회에 나가지 못했다. 그런 사정을 뻔히 알고 있는 여자도 우격다짐으로 붙잡을 수만은 없었다. 조금 지나면 시간이 날 테지. 그때 가서 시작해도 늦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그것이 첫 번째 기회였다는 것을 여자는 몰랐다.
두 번째 기회는 몸이 아플 때 찾아왔다.
회사에 다니면서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한 남편이 어느 날부터인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빈혈을 호소하고, 전신이 갑자기 쇠약해지는 기미를 보였으나 그때까지만 해도 젊었던 두 사람은 그게 큰 병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피곤해서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간경변증. 의사가 굳어진 간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 여자는 비로소 젊은 사람에게도 그런 엄청난 병이 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사의 시키는 대로 ‘주여, 주여’를 외치면서 부랴부랴 남편을 입원시켰다. 그러나 절망은 하지 않았다. 그게 다 교회에 나가지 않아서 그런 거야. 문병 온 친정엄마가 한 마디 핀잔을 주었지만, 그녀는 그때에도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을 굳게 믿었다. 이번에야말로 남편을 교회로 반드시 인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병 다 나으면 당신 교회에 나갈 거지?
그러옴!
하나님이 당신 병은 치료해 주실 것이라고 믿지?
그러옴!
입원은 넉 달 동안 계속되었다. 넉 달이 지나면서 병은 다행히 차도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육 개월 만에 남편은 마침내 그 병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남편은 앓아누워 있었던 그 시간을 마치 벌충이라도 하겠다는 듯 회사 일에 온힘을 쏟았다. 진급이 되면 좀 나아지겠지 했으나 그것도 아니었다. 그때부터는 그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더 극성을 떨어댔다. 그런 탓에 교회는 또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채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남편은 오히려 호소하곤 하였다.
이번 주일에 교회에 나가자.
안 돼. 지금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당신도 잘 알잖아.
그럼, 언제 가?
조금 한가해지면…….
두 번째 기회는 또 그렇게 멀어져갔다.
세 번째 기회는 시련 속에 찾아왔다.
결혼생활 13년 만에 겨우 아파트 한 채를 분양받아 입주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손으로 집을 마련했다는 기쁨에 들떠 있었다. 조금 더 지나면 넓은 평수의 아파트도 곧 손에 잡힐 것 같았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어느 날 사업을 하는 동창이 찾아와 거듭 졸라대는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서 찍어주었던 도장이 잘못되고 말았던 것이다. 연대보증이란 대출자가 그 빚을 갚지 못할 경우 대신 갚아야 한다는 것을 여자는 그때에야 알았다. 빚을 독촉하던 은행은 이자가 몇 개월 연체되자 인정사정을 보지 않았다. 곧바로 두 사람의 아파트를 경매에 넘겨버렸다.
여보, 이제 우리 어떡하지?
남편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어디에 자문을 구해보아도 뚜렷한 대책은 찾을 수 없었다. 비로소 여자는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질책도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이까짓 집, 달라면 내주자. 이런 것쯤은 우리가 다시 힘을 모아 장만하면 돼. 안 그래? 우린 아직 젊잖아.
고마워. 그렇게 위로해 줘서…….
그런데 여보. 약속만 하지 말고, 이번엔 정말 당신 하나님 앞으로 나가자.
남편은 머리를 주억거렸다. 그러옴, 나가야지. 암, 나가고 말구, 이번에는 기필코……. 남편은 짐짓 입술까지 깨물었다.
그렇지만 그 맹세도 허사가 되고 말았다. 셋집으로 이사한 뒤 남편은 더욱 일에 매달렸다. 하루 빨리 자신들의 집을 다시 가져야겠다는 일념으로 밤낮없이 뛰어다녔다. 그 바람에 전보다 작은 평수이기는 하지만 집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다시 장만할 수가 있었다. 이삿짐을 새집으로 옮긴 날, 두 사람은 만세를 불렀다. 이제는 남부러울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세상이 온통 자신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린 것은 결코 아니었다.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으로 인해 믿음생활이 잠시 해이해졌던 여자 역시 그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잊고 오직 자신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응분의 대가라고 간주했을 뿐이었다.
우리 이제부터는 정말 열심히 살자.
그래야지.
남편은 얼굴 가득 웃음꽃을 피웠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 사람을 그냥 놓아두지 않았다. 다시 한 번 기회를 더 주었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 찾아온 네 번째 기회는 명예퇴직을 통한 것이었다. 열심히 일하던 회사에서 어느 날 구조조정이라는 미명 아래 스스로 퇴직할 수밖에 없었던 남편의 상심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다. 식물처럼 하루 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꼼짝하지 않았다.
여보, 우리 이럴 게 아니라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께 매달려보자.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또 다른 길을 열어 주실 거야.
정말 그럴까?
그럼. 당신도 이젠 한가해졌으니 나갈 수 있잖아?
그러나 아니었다. 한가해진 것은 분명하지만, 오십이 넘은 나이에 하는 일도 없이 이대로 교회에 나가기에는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인다는 게 남편의 변명이었다. 상관없다고 해도 남편은 막무가내였다. 나중에는 핏대까지 세워가며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했다. 이 나이에 자기가 이대로 썩을 것 같으냐면서 좋은 시절이 오면 그때 당당하게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여자는 어쩔 수가 없었다. 남편의 고집을 꺾기에는 자신의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여자는 새벽마다 혼자 교회에 나가 기도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세상이 덧없으며, 부질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은 여자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처럼 남편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었다. 퇴직금과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시작한 칼국수집이 입소문을 타고 의외로 성황을 이룬 것이었다. 열의 아홉은 망한다고 하지만, 음식점은 날마다 손님들로 만원이었다. 여자는 이젠 됐다, 싶었다. 더 이상은 남편도 변명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먼저 여하한 일이 있어도 일요일은 무조건 휴무라는 것을 남편에게 주지시켰다. 다행스럽게도 그 점에 대해서는 남편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그러옴! 카운터에 앉아 지폐를 세면서 남편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럼 당신도 이번 주일부터는 무조건 교회에 나가야 해!
그러옴!
남편은 순순히 승낙하였다. 여자는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
그러나 남편은 결국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일요일마다 채근을 해도 피곤하다는 핑계로, 드러눕기 일쑤였다. 다음 주일부터는 꼭……. 그럴 적마다 여자는 ‘주여, 주여’를 연발하며 다음 일요일을, 또 다음다음 일요일을, 또 또 다음다음다음 일요일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 뒤로 아무리 잡아끌어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어느 날, 하나님의 채찍을 맞은 것이었다.
일요일이었다. 그날도 두 사람은 아침부터 심하게 다투었다. 배부른 소 마냥 자리에서 일어날 줄 모르고 뒹굴면서도 남편은 끝끝내 고집을 부렸다.
오늘만 혼자 다녀와. 다음 주일부터는 내가 아무리 피곤해도 꼭 나갈 테니까.
정말 매번 그렇게 다음, 다음 할 거야?
미안해. 오늘은 정말 꼼지락하기 싫어서 그래.
핑계대지 말아. 더 이상은 안 속아.
핑계가 아니라니까…….
그녀는 결국 마음을 돌렸다. 다음 주일부터, 라는 남편의 말을 믿기로 했다. 이렇게 조르다보면 언젠가는 마지못해서라도 들어주겠지. 그러나 그 대화가 남편과의 마지막이 될 줄은 여자 자신도 알지 못했다. 하나님의 채찍은 예고가 없었다. 교회를 가기 위해 현관을 나서는 여자를 배웅해 준다고 일어서던 남편이 그만 쓰러진 것이었다.
말을 마치고나서 여자는 또 혼잣말처럼 ‘주여, 주여’ 했다.
내 남편은 반드시 깨어날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곳을 잠시도 비울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한 번은, 꼭 한 번은 더, 기회를 주실 것이라고 믿어요.
여자는 확신에 차 있는 얼굴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사람이 누구인 줄 아세요? 예수님을 모르고 살다가 가는 사람이에요. 저는 내 남편을 그런 사람이 되게 내버려둘 수가 없어요.
나는 어머니가 떠올랐다. 그러나 여자는 어머니처럼, 나에게 꼭 나가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다.
슬하에 자녀는 없어요?
없어요. 신혼 때 몸 간수를 잘못해서 유산을 한 뒤로는…….
여자는 다시 성경을 무릎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니까 그 분이 역사하실 것을 믿고 석 달이 다 되어가는 동안 이곳을 지키고 있었단 말인가. 나는 고개를 외로 돌렸다. 미쳤군, 미쳤어. 나는 문득 8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여자의 주장대로라면, 결국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아버지는 이 시간 구천 어딘가를 정처 없이 떠돌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하나님은 짧은 인생을 통해서 우리에게 정말 많은 것을 겪게 해요.
한 식경이나 지체하였을까. 더웠던 찻잔은 이미 식어 있었다. 나는 비로소 주사 맞을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일어서자 여자는 잡지 않았다.
몸조심 하세요.
아주머니두요.
저야 하나님이 지켜주시니까 괜찮아요.
여자는 나를 보며 밝게 웃었다. 입 꼬리를 치켜 올리며 웃을 때면 자글자글하던 주름살이 더 깊게 패였다. 하지만 이상스럽게도 그 얼굴에서 초조하다거나 불안해하는 기색이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내일 또 와도 돼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말을 뱉어놓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실, 여자에게 내일이란 기약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나는 여자가 선물이라고 건네주는 작은 성경책을 한 손에 받아들고 대기실을 빠져나오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누군가 꼭 나와 여자의 만남을 주선한 것 같다는 느낌이 자꾸만 치솟았다.
아직 절반가량 남아 있는 비닐 주머니 속의 노란 수액이 링거대에 매달려 걸음을 옮길 적마다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었다.
*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는 좁고 음습한 곳에 온몸이 묶인 채 갇혀 있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먹물을 뿌린 것 같은 캄캄한 어둠. 높고 견고한 벽.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고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꼼짝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라면 얼마 못가 질식해버릴 것만 같았다. 어딜까? 누가 나를 여기에 끌어다놓은 것일까? 결국 나는 해일처럼 밀려드는 불안과 두려움에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지독한 악몽이었다.
해 떨어지기 전 선잠에서 꾼 개꿈에 불과했으나 늘쩍지근한 몸이 자꾸만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특히 아무리 밀어도 열리지 않던 완강한 벽이 그때까지도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무서움증이 더해졌다. 갑자기 소란스러워진 소리 때문에 눈을 뜬 나는 다시 시작된 통증 때문에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의사는 분명 수술이 잘 되었다고 했는데, 왜 잊을만하면 통증이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직도 남아 있는 그 뭔가가 내 속에서 위장을 쥐어짜고 비틀고 갉아대는 것 같았다.
왜, 또 아파요?
아이들 때문에 잠시 집에 다녀온 아내가 언제 돌아왔는지, 바투 다가와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물었다. 나는 대꾸를 하지 않은 채 안경을 찾았다. 언제 들어왔을까. 어제처럼 또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내 병상에서 대각선에 위치한 창가 왼쪽 병상을 중심으로 빙 둘러서서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병실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진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다.
태산을 넘어 허엄곡에 가아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며언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마알씀 벼언치 않네……. 그 곡은 어렸을 때부터 나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곡이었다.
D병동 7608호엔 나를 포함하여 모두 6명의 수술환자가 입원해 있었다. 나와 같은 소화기 계통의 암수술환자가 2명, 대장을 비롯한 장기 암수술 환자가 3명, 그리고 특이하게도 나머지 1명은 교통사고로 수술을 받은 환자였다.
그러니까 그는 어느 날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공사장 덤프트럭에 받혀 척수 손상을 입고 벌써 두 달째 입원해 있는, 이 병실에서는 가장 오래된 환자였다. 그런데도 이상스러운 것은 하반신이 마비되어 누구의 도움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형편인데도 그 얼굴에서는 불안해하거나 절망하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젊은 사람이 평생 휠체어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 같다고 하는데도 그는 물론, 그를 간병하는 누나, 또 그를 찾아오는 문병객들까지도 모두 하나같이 밝았다. 음료수 박스를 들고 찾아오는 다른 환자 문병객들과는 달랐다. 그게 무엇 때문인지, 어떤 힘이 그들로 하여금 절망을 절망으로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인지,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미쳤군, 미쳤어.
병실은 그들이 부르는 찬송가 소리로 귀가 따가울 정도였다. 그들의 찬송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일어나 앉았다. 통증이 멈춘 것은 아니었으나 일어나 앉지 않고는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괜찮아? 아내가 물었으나 나는 얼굴을 찡그린 채 그들을 건너다보았다. 정말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만드는 것일까. 나는 정말 미치지 않고는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내 어머니처럼…….
쫌, 기네요?
보호자 의자에 앉아 있던 아내가 나를 돌아보았다.
4절까지 있어. 후렴도 있고……. 저게 다가 아니야. 저게 끝나면 이번엔 또 모두 눈을 감자고 하고는 부르짖듯 기도를 할 걸.
그런다고 저 환자, 하반신 마비가 풀릴까요?
모르지, 그건.
저러는 것보다는 지금이라도 용하다는 한의사를 찾아가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요?
아내는 그렇게 해서 나았다는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를 친구한테 들었다고 했다. 설마,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척수가 손상을 입었다면 의학적으로는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게 상식인데, 한방으로 그게 어디 당키나 한 소리인가. 낫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심이야 이해가 되지만 그런다고 안 되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니나 다를까. 찬송가가 끝나자 예상했던 대로 이번엔 기도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돌아서 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누군가가 대표로 기도하는 모양이었다. 기도 중간 중간에 아멘, 아멘, 하는 나지막한 소리들이 섞여 나왔다. 그렇게 시작한 기도는 카터를 밀고 들어온 간호사가 환자들에게 복용할 약을 나눠주면서 체온과 링거액을 체크하고 나갈 때까지도 이어졌다.
조용하던 병실이 갑자기 장터마냥 복대기는데도 다른 환자들의 얼굴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것 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가림 커튼도 열어놓은 채 그들은 누워서 잠을 자거나 천정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따금 침대 난간에 매달려 있는 표찰 뒤로 간병하는 보호자들의 투덜거리는 소리만 가느다랗게 들려올 뿐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 환자가 분통을 터트릴 일은 하나둘이 아니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30대 초반인데, 어느 날 눈 깜짝할 사이에 저런 몰골이 되었으니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할 일인가. 그것도 환자의 잘못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횡단보도에서 파란불을 보고 건너가다가 부지불식간에 당했으니…….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대요.
며칠 전 환자의 누나는 누워 있는 자신의 동생을 가리키며, 정말 오 분 앞도 알 수 없는 게 사람들의 미래라고 했다.
나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녀의 말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사실 우리는 스스로 영원한 존재인 것처럼 착각하고 그런 환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자신이 언제 죽을지조차 알지 못하지 않는가. 가족과 더불어 오래오래 살다가 편안하게 자연사하기를 바라지만, 당장 몇 분 후에 죽을 수도 있는 게 우리들이었다. 내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보면 그것은 비단 사람만 그런 게 아니었다. 생명이 있는 것들의 죽음은 모두가 예고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예측할 수 없는 죽음……. 그것만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그녀는 그가 목사가 되기 위하여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꿈은 큰 교회를 담임하는 게 아니라 복음에서 소외된 섬이나 산골에 내려가 목회를 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일류대학을 나와 대기업 연구소에 취직까지 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거예요.
예에? 그래서 방향을 바꾼 거예요?
나는 그렇다면 뭔가 크게 잘못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누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나를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우리 주님이 사용하시겠다는데, 누가 거역하겠어요?
나는 갑자기 딸꾹질이 올라왔다. 약 때문일까. 아니면 그 부르심이라는 것 때문일까. 먹은 것도 없는데 토할 것처럼 속이 다시 뉘엿거렸다.
탁하고 거쿨진 말투였으나 미친 것으로 견주자면 그녀도 환자에 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것은 아내에게 예수를 믿느냐면서, 덧붙인 말이 무엇보다 잘 나타내주고 있었다.
사명의 길을 걷다 보면 때로는 넘어질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고, 낙담할 때도 있는 거예요. 동생이 지금 그런 셈이지요. 그러나 우리 주님은 반드시 또 다른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동생은 또 그 길을 갈 거구요.
그럼 그 몸으로 공부를 계속하실 작정인 거예요?
가만히 듣고 있던 아내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그럼요. 동생도 이미 각오하고 있어요. 우리도 모두 찬성했구요. 하반신을 못 쓰면 어때요. 휠체어 타고 다닌다고 공부를 못하겠어요? 성할 때보다야 아무래도 좀 불편은 하겠지만…….
그녀는 자신 있다는 투로 머리를 크게 주억거리면서 아내에게 한 번 더, 믿으라고,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갑자기 수럭스러운 그녀가 장검을 뽑아들고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영화 속에 나오는 갑옷 입은 여전사 같아 보였다. 그래서 그럴까. 떡, 벌어진 어깨와 풍만한 몸집이 헌걸차 보이기까지 하였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들이 그런 줄을 모른다는 거지요.
그녀는 그래도 미심쩍어하는 아내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합의를 그렇게 빨리 해주신 거예요?
그럼요. 그 분도 어렵게 사시는 분이시던데…….
내가 묻자 그녀는 선선히 대답했다.
사실 그런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아무리 종합보험에 가입이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한동안 밀고 당기는 게 통례였다. 더구나 창창한 나이의 피해자가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할 처지라면 보상금 문제 등은 사정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특히 10개 항목 가운데 가장 큰 것을 위반한 가해운전자는 피해자가 하자는 대로 끌려오게 마련이었다. 보험사가 주장하는 라이프니츠 계산법이나 법원의 호프만 계산법을 굳이 들출 필요도 없이 이런 경우엔 피해자가 합의를 해주지 않으면 애를 먹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사고가 발생한 지 보름도 지나지 않아 선뜻 합의를 해 주었다니, 나는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쾌재를 부르며 환하게 웃었을 가해운전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기도두 기네요?
아내가 눈살을 찌푸린 채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게 다 쓸데없는 짓 아닐까요?
모르는 소리, 저 사람들은 지금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거야.
굿 같은 거예요?
아니야. 굿하고는 달라…….
나는 머리를 세게 흔들었다. 그건 결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때도 어머니는 분명히 그것과 예수를 믿는 것은 다르다고, 당당하게 맞섰다. 뭐가 다르냐고, 할머니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데도 물러서지 않았다. 평소처럼 다소곳하지 않았다. 용맹스러운 전사 같았다. 그러니까 나중에 후회하지 마시고, 어머님도 예수님을 믿으세요. 그래야 천국에 가요. 어머니는 오히려 할머니를 훈계하듯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런데 그때 어린 내가 목격한 것은 이상스럽게도 아버지가 그 말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마치 방관자처럼 외면한 채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서도 그게 굿과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래서 어머니가 그토록 예수를 주장삼으면서 극성스럽게 교회에 나가는데도 양손을 깍지 낀 채 못 본 척 했던 것일까?
대놓고 말을 꺼낸 적은 없지만 어머니는 내가 목사가 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신학대학이 아닌 다른 대학에 입학하자 실망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나는 어머니가 싫은 적은 없었다. 어머니는 어머니다웠다. 다른 어머니들이 그랬듯이 수더분했고, 늘 살갑게 나를 감쌌다. 단지 머리가 조금 큰 다음부터는 어머니가 믿는 그 종교가 싫어 엇나가곤 했을 뿐이었다. 거기에 빠져 무조건 맹종하는 어머니가 정말 미친 여자 같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종교생활은 그만큼 내가 생각하는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는 종일 풀이 죽어 있다가도 교회에 갈 시간이 되면 어디에서 힘이 솟는지 생기가 넘쳤다. 할머니가 혀끝을 차며 비아냥거려도 끄떡하지 않았다. 성경책을 옆구리에 끼고는 발걸음도 가볍게 집을 빠져나갔다.
어렸을 때는 나도 어머니에게 붙잡혀 교회를 다녔다. 어머니는 내가 교회를 다녀야 나중에 아버지도 할머니도 다 다닐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때 들은 성경 몇 구절과 찬송가는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우리가 천국에 갈 수 있는 건 예수님이 구원하셨기 때문이야. 그런데 네가 안 믿으면 우리 집안이 어떻게 되겠니?
예수님이? 어떻게 구원하셨는데?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구원하셨지. 그 보혈로 우리가 죄에서 해방된 거야.
나는 머리를 끄덕거리면서도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죄가 무얼까? 구원은, 또……. 어머니 곁에 앉아 예배를 드리면서도 나는 그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고, 설교를 듣는 게 모두 시들했다.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어머니가 눈을 감고 ‘아멘, 아멘’ 할 때에도 빨리 시간이나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어머니를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비단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나를 볼 때마다 할머니도 니 엄니 미쳤다고 했으며, ‘부영 미장원’의 뚱보 아줌마도, ‘새로와 슈퍼마켓’의 뻐드렁이 누나도, ‘옛날 기름집’의 오무래미 할머니도, ‘맛나 통닭집’ 멋쟁이 형도 체머리를 흔들며 같은 말을 했다. 아마도 어머니가 바람개비처럼 이집 저집 돌아다니면서 교회를 가야 한다고 권면한 모양이었다. 특히 그들이 기겁하는 것은 자신들이 안 간다고 분명히 잘라 말했는데도 몇 번씩 끈질기게 찾아와서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이 꼭 나가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니 엄니 좀 말려라……. 고등학교에 올라가기 전까지 나는 동네에 나가면 그 소리를 귀가 아프도록 들어야 했다.
내가 교회를 다니지 않은 것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 이유는 단 하나, 나도 어머니와 같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 까닭에 아내와 결혼을 결심하였을 때에도 나는 종교 따윈 상관하지 않았다. 물론 어머니의 반대가 극심했지만 그 난관은 다행스럽게도 할머니와 아버지가 지원군으로 나서주었기 때문에 쉽게 넘을 수 있었다.
문병을 마친 사람들은 기도를 마친 뒤에도 한참 동안 웃고 떠들고 나서야 빠져나갔다. 몸 조리 잘 하세요. 나가면서도 그들은 다른 환자들에게까지 깍듯이 인사를 건넸다. 그들이 모습을 감추자 병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가끔 대장암 수술을 받은 건너편 환자의 가래 끓는 기침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간호사가 항생제가 들어 있는 링거대의 노란 수액과 흰 수액을 체크한 뒤 흉부의 꿰맨 상처 부위를 소독하기 위해 들어왔다.
괜찮아요?
아내가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물었다.
예에, 아주 좋은데요.
간호사의 대답은 어제와 똑같았다. 어제뿐만이 아니었다. 그 간호사의 대답은 처음부터 늘 그랬다. 그런 까닭에 아내도 이제는 그 대답에 익숙해진 듯 했다. 아주 좋아요. 아주 좋은데요. 간호사가 나가자 쿡쿡거리며 아내가 똑같이 흉내를 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을 다시 꺼내들었다. 그때까지도 출판사 김 부장이 보낸 문자는 없었다. 말일까지 대출금을 상환하라는 은행의 독촉 문자만 두 개 들어와 있었을 뿐이었다. 지금쯤은 지방 출장에서 돌아왔을 텐데, 연락이 없는 것을 보면 이 달에도 수금이 예상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지방 서점들이 또 농간을 부렸는가 싶어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지방 출장일이 다가오면 지방서점들은 늘 그런 식이었다. 그것이 자신들의 생존 방식인지는 몰라도 며칠 전까지 매대에 진열했던 서적들을 반품시켜 외상매출액을 스스로 줄여놓거나 아니면 멀리 찾아온 사람을 면전에 대놓고 결제를 아예 다음 달로 미루는 방법을 쓰기 일쑤였다. 요즘 사람들 책 읽는 거 봤어요? 그들의 변명은 거의 똑같았다.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책장사 이젠 걷어치워야겠다고 엄살을 떨었다. 그나마 토끼 꼬리만큼 대금을 결제할 때도 5개월짜리 문방구 약속어음을 끊어주고는 특별히 선심을 쓰는 거라고 너스레를 떨곤 하였다. 그걸 알면서도 지난 10여 년간 출판사를 운영하였다는 것은 어찌 보면 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몇 달간 시장조사까지 해가며 장고를 거듭한 끝에 분명히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를 것이라고 확신하고 제작한 기획물도 겨우 체면치레를 하거나 아니면 아예 바닥을 칠 때가 많았다. 그래도 그동안은 자비출판을 원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호구를 면할 수 있었으나 요즘은 그나마도 경쟁이 심해져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단가를 낮춰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보면 아내의 말은 하나도 틀린 데가 없었다. 대학교 졸업 후 그래도 전공을 살린답시고 여성전문 잡지사에 들어갔다가 편집주간과 대판 싸우고 나와 독립하겠다고 선언했을 때부터 아내는 출판사는 안 된다고 점쟁이처럼 예언하였다. 차라리 세 출발하는 마음으로 다른 직종을 찾으라고 했다.
주머니 사정과 책은 반비례 한다는 거, 몰라요?
대박 한 방에 빌딩 세운 출판사도 여럿 있어.
빌딩 좋아하시네, 쪽박이나 차지 않으면 다행인 줄 아세요.
아내의 빈정거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보란 듯이 출판사를 차렸다.
김 부장은 그때 같이 여성전문 잡지사에서 나온 영업부 팀장이었다. 끊고 맺음이 투미해 좀 답답해 보이는 게 흠이기는 하였으나 진솔하고 건강했으며, 더구나 허투루 나대지 않는 진중한 성품이 맘에 들었다. 그러나 함께 지내면서 나는 그의 가장 큰 약점이 순하고 무르고 두루뭉술한 성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통화버튼을 눌렀지만 김 부장은 여전히 신호가 가도 받지 않았다. 나는 별 수 없이 문자를 보내놓고는 다시 휴대폰을 접었다. 정말 무슨 일일까. 지금 출판사가 존폐위기에 몰려 있다는 것은 알고 있을 터인데……. 더구나 지금 꼼짝 못하는 내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만 두겠다고 하더니 벌써 마음이 떴나,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배신감이 치밀었다.
안 받아요?
그러네.
무슨 사람이 그래요? 아무리 그만 두겠다고 했다지만, 그렇게 나오면 안 되지요. 지금이 어떤 상황인 줄 뻔히 알면서……. 그런 사람을 믿고 십 년이 넘도록 영업을 맡겼으니, 그 출판사 될 턱이 있겠어요?
아내는 그게 다 물러터진 내가 길을 잘못 들인 탓이라고 했다. 나는 아내의 잔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아랫배로 손을 가져갔다. 다시 뱃속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간헐적으로 일어났다.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럴 때마다 엄습하는 불안과 두려움이 온몸을 찍어 눌렀다.
조금만 더 참아보자고 했으나 김 부장은 머리를 매몰차게 흔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면서 나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내가 절실하게 느낀 것은 사람이란 결코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사실이었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처럼 굴다가도 수가 틀리면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게 사람들의 생리라는 것을 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내 몸에 이상을 처음 이야기한 사람도 김 부장이었다. 지난 달 중순께 우리는 연탄갈비 집에서 소주를 마시며 모 시인의 시집 원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오랜만에 들어온 자비 출판물이었다. 얼마나 마셨을까. 내가 지나가는 말투로 요즘 체중이 자꾸 빠진다는 말을 꺼낸 게 발단이었다. 그러자 그가 나를 뚫어질 듯 건너다보며 소화는 잘 되느냐고 물었다. 그 물음에 나는 비로소 며칠 동안 속이 좋지 않아 소화제를 줄곧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나는 그게 대출금 상환에 대한 스트레스 탓이거나 아니면 이제 그럴만한 나이가 되었다고 치부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속이 메슥거려도, 소화가 잘 안 되어도, 설사를 계속해도 그러다 말겠지, 했다. 내가 정작 놀란 것은 그 다음 그의 입에서 떨어진 뒷말이었다. 자신의 삼촌이 몇 년 전 위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초기 증상이 꼭 그와 같았다는 것이었다.
빨리 병원에 가보세요. 병원은 서둘수록 좋아요.
그의 말에 나는 갑자기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설마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긴가민가한 마음이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아내는 펄쩍 뛰었다. 왜 그런 중차대한 증상을 이제야 자신에게 알리느냐며 당장 병원에 가자고 팔을 잡아끌었다. 초진을 마친 의사는 내시경을 권했다. 그리고는 뭔가 안 좋은 게 보이니까 조직검사를 해봐야겠다고 했다. 안 좋은 게 있다고요? 나는 그날 하늘이 노란 색깔로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결과는 사흘 뒤에 판명이 났다. 의사는 조금만 더 지체했으면 큰일 날 뻔 했다면서 나를 위로했다. 임파선에 전이가 되기 전에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라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머릿속이 갑자기 텅 비는 것 같았다. 물속에 잠긴 것처럼 의사의 말이 응응거릴 뿐, 귀에 들리지 않았다. 암이라고! 나에게 그런 게 걸렸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누가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들으면 나하고는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치부하곤 했다. 그는 그럴 수 있어도 나는 아니라고 여겼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의사는 수술도 시기가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나는 아내를 돌아보았다. 얼굴이 백납처럼 하얗게 변한 아내는 그래도 침착했다.
수술을 받아야지요. 그게 살 길이라면…….
나는 그때 비로소 내 몸이 생각보다 견고하지도, 완벽하지도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살아온 내 삶이 언젠가는 당도할 죽음을 향해 가고 있었으며, 이 죽음을 막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새삼 절감했다. 미쳤군, 미쳤어……. 나는 그래도 아내가 울지 않는다는 게 고마웠다.
의사는 수술날짜를 잡을 때까지 입원해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입원 수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누군가 티브이 전원을 누른 모양이었다. 조용하던 병실에 갑자기 여자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굴러다니기 시작하였다. 저기압 운운하는 것을 보면 날씨를 예보하는 것 같았다. 내일은 흐리다네. 건너편 병상의 간병인이 혼자 중얼거렸다.
배고프지 않아요?
아내가 물었다.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아내가 먹고 싶은 거 이야기 해보라고 했으나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래도 아내는 포기하지 않았다. 먹고 싶다고 지금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걸 떠올리는 게 몸에 좋대요, 면역성을 길러준다나 뭐라나…….아내가 핀잔을 주듯 다시 물었다. 그러나 며칠 째 수액만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으면서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그것은 비단 어제오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맛을 잃으며 죽은 거나 다름없다는데, 교통사고 환자와 그 누나가 과일과 음료수를 씹고 마실 때에도 나는 마치 구경꾼이 된 것처럼 멀뚱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일쑤였다. 식욕으로 견주자면 결코 누구에게 지지 않을 만큼 왕성했던 나였으나 왠지 모두 다 시들했다.
자장면 어때요? 아님, 갈비탕은?
아내는 집요했다. 얼굴을 찡그린 채 도리질을 해댔으나 얼굴을 디밀고 배시시 웃으면서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자장면? 갈비탕? 어떤 맛이었지? 모양은 그런대로 머릿속에 그려졌으나 아무리 돌이켜봐도 맛은 종래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냥 느끼하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나는 불현듯 여자가 떠올랐다. 그 여자는 끼니를 때웠을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나는 나도 모르게 빨리 여자를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솟구쳤다. 그 이야기를 꺼내자 아내도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비로소 먹고 마시는 것을 뒤로 돌린 아내가 나보다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머니하고 똑, 같이 생겼다면서요?
그래. 그래서 나도 처음엔 무척 놀랐다니까.
설마,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아내는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와 똑같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부축했다.
대기실은 어제와 달라진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어제처럼 여자는 혼자였으며, 어제처럼 그 자리에 앉아서 성경을 읽고 있었다. 그 모습은 역시 어제처럼 어머니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깡마른 체구, 아무렇게나 뽀글뽀글 볶은 머리. 학처럼 긴 목과 검은 뿔테 안경. 다르다는 것은 청바지를 입었던 어제와는 달리 그날은 작은 꽃무늬 몸뻬 바지를 입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아내의 눈에도 처음엔 내가 그랬듯이 똑같아 보이는 모양이었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한동안 바깥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세히 살펴보던 아내가 나를 부축했던 팔을 풀며 파르르, 떨었다.
그러네, 정말 어머님을 보는 것 같네.
아내가 한 차례 크게 진저리를 쳤다. 그러나 아내도 대기실에 들어서자 나처럼 금방 실망하는 눈빛이었다. 나보다 먼저 대기실 안으로 발을 들여놓은 아내가 내 팔을 툭, 건드렸다.
또 오셨네?
여자는 어제처럼 밝게 웃으며 나를 맞았다. 그리고는 또 어제처럼, 스스럼없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남편 분은 좀 어떠세요?
나는 여자가 내준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똑같아요. 석 달 전이나 오늘이나…….
그래도 여자는 실망하는 얼굴빛이 아니었다.
뭘 좀 드셨어요?
그럼요. 설마하니 굶겠어요?
성경을 무릎에서 내려놓으며 아내와 수인사를 나눈 여자가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말을 꺼냈다. 면회시간이 지난 탓일까.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대기실은 고즈넉한 느낌이 감돌 정도로 조용했다. 아내가 여자에게 어머니를 보는 것 같아 깜짝 놀랐다고 말하자 이번엔 여자가 머리를 흔들며 아내에게 아마 하나님이 그렇게 보이도록 만드셨는가보다고 했다.
어떡해요? 아직도 차도가 없으시니…….
아내가 여자의 손을 붙잡고 석 달이 다 되었다면서요, 했다. 그러자 여자는 그 말엔 대꾸를 하지 않은 채 ‘주여, 주여’를 반복했다. 내가 듣기에 그 소리에는 그러나 그와 같은 안타까움보다 남편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이 더 많이 깔려 있는 것 같았다.
차 한 잔을 끓여 내밀며 여자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의사가 이젠 틀렸다고, 준비하래요.
그럼?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여자가 오매불망 기다려온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말인가. 그러나 나와 달리 안경 너머로 바라본 여자의 얼굴에서는 이상스럽게도 절망의 빛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도 저는 남편이 구원을 받을 거라고 믿어요. 그렇지만 또 그렇게 되지 않아도 저는 실망하지 않을 거예요. 그것 또한 주님의 뜻 아니겠어요?
여자가 말하는 동안 나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아내도 할 말이 없는 듯 입을 다문 채 찻잔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내가 어머니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리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뒤였다. 왜, 무슨 이유 때문에, 그 이야기를 여자에게 하게 되었는지는 나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그때 해주지 않으면 다시는 해줄 수 없을 것 같은 절박감이 나를 못 견디게 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어머니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여러 날 동안 슬프게 울었다. 꺼이꺼이, 우는 어머니를 보고 사람들은 모두 이상하게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와 할머니의 사이가 가깝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익히 알려져 있던 까닭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상관하지 않았다. 입관할 때에도, 하관할 때도, 처음과 똑같이 꺼이꺼이, 울었다. 아버지 장례 때도 그랬다. 어머니는 누가 보건 말건 아주 슬프게 꺼이꺼이, 울었다. 어머니의 울음은 장례를 모두 마치고 집에 돌아온 뒤에도 한동안 멈춰지지 않았다. 결국 궁금증을 견디지 못한 나는 삼우제를 마친 뒤 눈이 퉁퉁 부은 어머니에게 넌지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구원을 못 받고 떠나는 게, 너무 불쌍하잖아…….
어머니는 그것을 자신의 잘못이라고 후회했다. 자신이 게을러서, 복음을 좀 더 강력하게 전하지 못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가슴을 쳤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때 어머니가 사람들의 말처럼 정말 미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여자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되네요. 왜 안 그렇겠어요? 그렇지만 제 기도는 우리 주님이 꼭 들어주실 거라고, 저는 믿어요.
나는 머리를 수그렸다.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여자의 정성을 봐서라도 꼭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영원을 믿어본 적 있으세요?
아니요.
영원은 누구에게나 다 있어요. 다만 그 영원을 어떻게 소유하느냐가 문제이지요. 지금은 순간에 불과한 거예요. 정말, 금방 지나갑니다.
여자는 이어서 자신이 방금 읽다가 내려놓은 성경책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이런 구절이 있어요.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여자는 이어서 우리 인생이란 모두 나그네 삶이라고 했다. 나는 여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어머니도 할머니한테 늘 그랬으니까…….
나는 여자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휴대폰을 꺼냈다. 그러나 여전히 김 부장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아내가 내 눈치를 살피다가 얼굴을 찡그렸다. 미쳤군, 미쳤어. 나는 혼잣말을 엉얼거리며 시선을 바깥으로 돌렸다. 대기실 밖으로 몇 명의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며 지나갔다. 형광등 불빛에 비친 그들의 낯빛은 어두웠다.
여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까워요. 그걸 모르는 남편이…….
지금은 알까요?
아내가 찡그린 채 물었다.
어떻게 알겠어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못했는데…….
‘주여, 주여’를 내뱉은 여자는 또 그때 자신이 야무지게 남편을 끌고 교회에 가지 못한 게 잘못이었다는 것을 반복하며, 그때는 자신도 그 순간이라는 게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고 했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자신이 지금처럼 대기실에 석 달째 기거하며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 아니냐며 한숨을 내뱉었다.
나는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또 주사 맞을 시간이었다. 주사는 6시간마다, 하루에 네 번 맞았다. 내가 일어나자 여자는 어제처럼, 이번에도 만류하지 않았다.
몸 조리 잘 하세요.
감사합니다.
나는 머리를 깊이 숙였다. 그때였다. 아내가 여자를 돌아보며 물었다.
내일 또 와도 돼요?
그 말은 어제 내가 했던 것과 똑같은 말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왜 아내가 하필이면 그 시간에 그와 같은 말을 꺼냈는지는 묻지 않았다. 대기실을 벗어난 우리는 서둘러 엘리베이터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사위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유리창밖으로 우뚝 솟은 아파트에서 어느덧 불빛이 하나둘 새어나오고 있었다.
*
밤안개가 골짜기를 덮고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있어도 안개 때문에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여기가 거기 같고, 거기가 여기 같았다. 어쩌면 골짜기는 태고부터 그렇게 줄곧 안개에 갇혀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둠 속에서 나는 골짜기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나뭇가지를 붙들고 기어오르고 또 기어올랐다. 살 길은 그것뿐이었다. 허방을 짚고 넘어지기도 수십 차례, 긁히고 찢긴 몸에서는 어느새 핏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을 치며 기어올라도 골짜기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한참 뒤에 보면 다시 제자리에 돌아와 있었다. 아무렇게나 뻗은 나무와 키만큼 자란 풀, 그리고 창끝처럼 날카롭게 튀어나온 바위와 밟으면 흘러내리는 모래흙과 가파른 비탈길……. 내가 어둠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사방은 여전히 짙은 안개 속에 파묻혀 있었다.
무슨 일일까. 도대체 여기는 어디일까. 나는 왜 여기 있는 것일까. 결국 더 이상 걸음을 옮길 힘조차 잃어버린 나는 출구 찾기를 포기한 채 땅바닥에 주저앉아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골짜기 너머 높은 곳에서 아래를 향해 비치는 불빛 하나가 안개 사이로 어른거리는 게 보였다. 그것을 발견한 순간, 나는 살았다 싶었다. 풀어졌던 다리에 다시 힘이 솟았다. 출구를 찾아 헤맬 때는 보이지 않던 그것이 왜 그때 내 눈에 띤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것은 분명 불빛이었으며, 불빛이라면 누군가가 거기에 살고 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는 내가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를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벌떡 일어나 그곳을 향해 숨을 헐떡이며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불빛은 교회의 십자가첨탑에서 비치고 있었다. 그런데 내 눈에 비친 그 교회는 낯설지가 않았다. 어릴 때 어머니에게 손목을 잡혀 다니던 교회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렇지만 나는 그 교회가 왜 거기 있는지 이상하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땀을 흘리며, 헐레벌떡 다가간 나는 불빛을 따라 무작정 문을 밀고 들어갔다. 파란 페인트가 덕지덕지 칠해진 출입문 역시 옛날과 똑같았다. 화려하거나 크지도 않았지만, 닫혀 있지도 않았다. 쉽게 열려,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밤안개 속을 헤매는 동안 옷에 달라붙은 눅눅한 습기를 털어낸 뒤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실내 역시 어릴 적 교회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처럼 밝고 따뜻했으며, 고요했다. 꽃향기가 은은히 풍기는 것까지도 똑같았다. 몇 십 년이 흘렀는데 어쩌면 이렇듯 하나도 변하지 않았을까, 나는 비로소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이윽고 십자가가 높이 걸려 있는 강대상 아래 엎드려 기도하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출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는 그 사람이 기도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기로 작정하였다. 분명히 인기척을 느꼈을 터인데도 그 사람은 꼼짝하지 않았다. 그렇게 장승처럼 서서 얼마를 기다렸을까. 마침내 기도를 마친 그 사람이 몸을 일으켰다. 순간, 나는 그만 입을 벌린 채 얼어붙고 말았다. 아, 어머니.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내 어머니였던 것이다. 어머니가 왜 그곳에 계신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분명한 것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어머니를 향해 미쳤다고 손가락질을 하던 ‘부영미장원’의 뚱보아줌마, ‘새로나 슈퍼마켓’의 뻐드렁이 누나, ‘옛날 기름집’의 오무래미 할머니, ‘맛나 통닭집’의 멋쟁이 형은 없다는 사실이었다. 어머니도 나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골짜기를 기어 올라오느라고 긁히고 찢긴 내 몰골이 말이 아닐 터인데도 반갑게 웃으면서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출구가 어디인지 물어보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갑자기 소금기둥이 된 것 같았다.
어머님을 만났어요?
아내가 내 몸을 흔들어 깨웠다. 가까스로 눈을 뜬 나는 턱짓으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잠꼬대를 또 요란스레 한 모양이었지만 설명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았다. 아내도 듣기를 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내는 죽은 사람이 왜 자꾸 꿈에 나타나는지 모르겠다고 씨우적거리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그런데 정말 어머니는 왜 그곳에 계셨을까. 왜 나한테 나타나신 것일까. 안경을 찾아 끼었으나 그때까지도 나는 그 이상한 꿈에서 완전히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꿈속에 본 교회가 눈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요?
아내가 앞 병상을 가리키며 귓속말을 속삭였다.
중환자실로 내려갔어요.
나는 누운 채 텅 비어 있는 앞 병상을 쳐다보았다. 며칠 전까지 수술 경과가 괜찮다고 가족들이 좋아했는데, 중환자실로 내려갔다면 어딘가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두 가지 중 하나라고 추정할 수밖에 있었다. 처음부터 수술이 잘못되었던가, 아니면 회복하는 과정에 재발 하였던가……. 하긴, 수시로 뱉어내는 밭은 기침소리가 수상쩍긴 했다.
암수술이란 완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몸에 자리를 잡은 암 세포를 제거했다는 것뿐이지, 그것이 언제 어느 곳에 다시 뿌리를 내릴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산불처럼, 숨어 있던 아주 작은 불씨 하나가 다시 살아나기 일쑤였다. 그래서 어젯밤 의료진들이 그렇게 난리를 떨었구나. 흔하지는 않지만 그런 경우라면 대개 중환자실에 며칠 머물다가 지하실의 시체안치실로 내려가는 게 통례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난밤 그것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단 말인가. 나는 갑자기 정신이 몽롱해졌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사람의 목숨이 벌레와 조금도 다를 게 없다고 느껴졌다.
기어이 그렇게 되고 말았구먼.
나는 복부를 손바닥으로 한 번 쓸어보았다. 수술 이후 음식물이 들어간 적 없는 뱃속은 헛헛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이상한 징조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당신은 정신없이 자더라고요. 잠꼬대까지 하면서…….
깨우지 그랬어?
어떻게 깨워요, 그렇게 골아 떨어져 자는 사람을.
아내가 내 이마에 손을 얹으며, 그게 다 기가 떨어져서 그렇다고 혀끝을 찼다. 나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하긴, 80킬로그램을 유지하던 몸무게가 수술을 하고난 뒤 갑자기 60킬로그램으로 줄었는데 기력인들 온전할 리가 있겠는가.
퇴원하는 대로 빨리 한약방부터 가봐야겠어요.
열이 없다는 아내의 뒷말을 들으며 나는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6시 16분.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어느새 병실 벽에 빗금으로 빛기둥을 그리고 있었다.
교통사고를 당해 들어온 환자는 그때까지도 꿈속을 헤매는 듯 링거대와 연결된 가느다란 튜브에 한쪽 팔을 맡긴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보호자 의자에 앉아 있는 그의 누나도 무릎담요가 흘러내린 것도 모르는 채 편안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어쩌면 저럴 수 있을까. 두 사람은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딴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같아 보였다. 세상 걱정을 내려놓은 것 같은 그들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나는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미쳤군, 미쳤어.
아침 8시가 되면 간호사를 대동한 의사들은 떼를 지어 각 병실을 돌며 환자들의 증상을 낱낱이 체크하는 것으로 일상을 시작했다. 소위 회진이라고 하는 것인데, 그때가 되면 환자들은 지난 밤 자신에게 일어났던 증상을 시시콜콜 알리고, 담당의사가 내리는 처방을 가슴 졸이며 듣게 마련이었다.
나의 증상은 어제와 별반 다른 게 없었다. 이따금 복부에 통증이 엄습한다는 것과 설사기가 있다는 것, 미열이 조금 있었다는 것을 말했으나 의사는 차트를 손에 들고 약은 지시한 대로 잘 복용하고 있는가, 운동은 하고 있는가 묻고는 간호사에게 체온과 혈액 검사 결과를 보고받고 돌아섰다. 5분이나 경과했을까. 아내가 불안한 눈빛으로 언제쯤 퇴원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으나 의사는 조금 더 경과를 두고 보자며 잘랐다. 그리고는 아직 금식 중이므로 음식물을 섭취해서는 절대 아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그 뒤를 이어 들어온 또 다른 의사들은 교통사고 환자를 담당하는 의사들이었다. 떼거리로 들어온 그들 역시 여러 말은 하지 않았다. 환자의 환부 상태를 확인한 뒤 누나에게 몇 마디를 묻고는 이내 돌아섰다. 그래도 환자는 걱정하는 얼굴빛이 아니었다. 이미 휠체어를 타야 한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하얀 가운을 펄럭이며 몰려왔던 의사들이 부산을 떨다가 나가면 병실은 잠시 활기를 찾았다. 간병인들과 보호자들의 발길이 바빠지는 것도 그때였으며, 덩치가 큰 배식 카터가 음식 냄새를 풍기며 복도를 지나는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잠깐이었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면 다시 병실은 산 속처럼 조용해졌다. 요의를 느낀 나는 옆 병상의 환자가 내뱉는, 가래 섞인 기침소리를 들으며 일어섰다. 교통사고 환자의 누나가 성경책을 무릎 위에 올려놓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화장실에 다녀오는 나를 침대머리에 주저앉힌 아내가 다짜고짜 내 멱살이라도 잡을 듯 따져 물었다. 나는 아내의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어젯밤 김 부장이 다녀간 뒤 아내가 줄곧 주장하던 것 가운데 하나였다.
글쎄…….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미루적거린다고 될 일이 아니잖아요?
나는 못마땅해 하는 아내의 눈길을 피해 창밖으로 머리를 돌렸다. 아침부터 바람이 부는 모양이었다. 유리창을 긁어대는 바람소리가 사납게 들려왔다. 층이 높을수록 바람의 기세 또한 그만큼 드센 것 같았다.
김 부장은 고향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런데 그를 보는 순간, 나는 반가움보다 걱정이 먼저 앞섰다. 그것은 무엇보다 며칠 사이에 몰라볼 만큼 초췌해진 그의 모습에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왜 소식이 없었어요?
아내가 먼저 잔사설을 늘어놓으며 눈꼬리를 치켜세웠다.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아시잖아요……. 한 번 시작된 아내의 사설은 비집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은 채 빠르게 이어졌다. 그래도 그는 다른 때처럼 머리를 긁적거리거나 웃음으로 엄벙뗑 때우려고 들지 않았다. 그가 어물거리자 눈치 빠른 아내가 정말 그만둘 생각인 거냐며 쐐기를 박았다. 그래도 그는 잠시 텅 빈 눈빛으로 무슨 말을 어디부터 꺼내야할지 주저하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어? 빨리 말해봐.
내가 서너 차례 잦추었는데도 머리를 수그린 그는 좀체 입을 열지 않았다.
왜, 수금이 잘 안됐어?
순간, 나는 대출금 상환을 독촉하는 은행을 떠올렸다. 또 어떤 핑계거릴 만들어 변명을 해야 하나, 걱정스러웠다. 머리를 수그릴 각오는 이미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들어줄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잠시 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뜻밖에도 그는 고향에 다녀왔다고, 어눌하게 말했다.
다 잊고, 며칠 다녀왔어요.
고향? 고향엔 왜? 누가 죽었어?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전화까지 받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목청을 돋웠다. 잠시 가라앉았던 배신감이 다시 목구멍까지 솟구쳐 올랐다. 아내도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나 이어진 그의 뒷말을 듣고 나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아내가 이혼을 하자네요.
그의 어투는 마치 이웃집 이야기를 하듯 덤덤했다.
남자가 생긴 지 벌써 오래 되었대요.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아내라면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아내도 잘 알고 있었다. 부부가 함께 우리 집에도 몇 번 놀러왔고, 출판사 행사에서도 몇 차례 마주친 적이 있어 서로 수인사 정도는 나누며 지내는 사이였다. 키는 좀 작지만 김 부장과는 달리 행동거지가 재고, 특히 웃을 때면 가뜩이나 작은 눈이 모두 감길 정도로 활짝 웃는 여자였다.
이제부터라도 자기 세계를 찾아 가겠대요.
숨을 크게 내쉰 김 부장은 주위를 한 차례 휘둘러보았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엿듣지는 않는지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그런 것도 눈치 채지 못했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으나 참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아내가 지금부터는 그 좋아한다는 남자와 살겠다고 선언했다는 것이다. 뜬금없는 그녀의 말에 그도 처음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자신과 한 이불 속에서 살을 섞으면서 산 것은 다 허상이었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머리를 크게 주억거렸다는 것이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그쯤 되었으면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일 아니냐며, 그가 나를 쳐다보며 반문했다.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모든 연락을 다 끊고 고향에 내려가 며칠 머물렀다는 그에게 무어라고 야단을 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세상이 무서워졌어요.
그럴 테지…….
아무리 세상이 험하다고 해도 저는 정말 그 사람을 믿었거든요. 그런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그 사람한테 그런 말을 듣게 되다니…….
그럼 아이들은?
제가 맡아야지요. 이제부터 자기 세상을 살겠다는 사람한테 떠맡길 수는 없잖아요? 물론 맡지도 않겠지만, 혹시 맡겠다고 해도 아이들이 짐 취급을 당하는 건 제가 참을 수가 없어서요.
이 세상에서 가장 믿었던 아내의 뒤에 그런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는 게 새삼스러웠다면서 그는 처음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고향에 내려가 며칠 지내고나니까 그것도 견딜만하더라고 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내를 돌아보았다. 다시 통증이 느껴졌다. 뱃속 깊숙한 곳을 강철로 긁는 것 같은 통증은 한참이 지나도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꿰맨 자국이 있는 옆구리에 손을 가져가자 아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투 다가왔다. 아내 때문에 잠시 말을 끊었던 그가 다시 동을 달았다.
앞으로 사람들을 어떻게 믿고 살지요?
나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때까지 내 머릿속을 짓누르고 있던 수금이나 대출금 상환 문제는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때였다. 마뜩찮은 눈으로 김 부장을 살피던 아내가 불쑥 그의 말을 끊고 나섰다.
그래도 다 살아가게 마련이에요, 사람들은.
김 부장을 쏘아보는 아내의 눈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앞 병상에서 보호자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곧이어 급히 달려온 간호사가 머리맡의 기기를 살피고, 주사를 놓는 등, 부산을 떨었다. 그러나 환자의 상태는 호전되는 것 같지 않았다. 어떡해요, 어떡해. 보호자는 발을 동동 구르며 울부짖고 있었다. 당직의사가 뛰어오는 것을 보고 김 부장은 그만 가봐야겠다고 했다. 나는 뒷말을 더 듣고 싶었으나 막지 못했다. 붙들고 있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가 비척거리며 병실 문을 빠져나가자 나는 비로소 그때에야 그에게 거취문제를 묻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만두겠다던가, 아니면 상황이 상황인 만큼 조금 더 유보하겠다던가, 하는 언질을 그에게 받았어야 했다. 사실 이 상황에서 그것만큼 중요한 문제가 어디 또 있겠는가. 그러니까 아내가 지금 나를 붙잡고 닦달하는 것은 그것을 두고 하는 소리였다.
지금 당장은 아쉽더라도 자를 건 잘라야 해요. 그래야 나중이 편해요. 환부를 그냥 놔두면 더 악화된다는 거 몰라요?
글쎄…….
이미 마음이 떠난 사람을 붙들 필요가 어디 있어요?
그래도 그 사람한테 말은 들어봐야지…….
들어보나마나 빤해요. 물론 사정이야 딱하지만, 그건 그쪽 사정이고요.
유리창을 긁는 바람의 기세는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우우, 우우우우우…….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소리가 사납게 귀를 때렸다.
사람은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어요.
나는 문득 대기실이 궁금해졌다. 며칠이 지났는데 여자는 아직도 그곳을 지키고 있을까. 이 시간에도 ‘주여, 주여’하며 성경책을 읽고 있을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시간이 이르다는 아내의 말을 뒤로 하고 일어섰다. 오전 시간대에 찾아가기는 처음이었으나 망설이지 않았다.
저녁 시간대와 달리 보호자대기실과 복도는 면회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발 디딜 틈조차 없는 그 사이를 아내가 앞장을 섰다. 다행히 이동식 링거대를 본 사람들은 선선히 길을 비켜주었다. 그러나 나는 기대했던 여자를 대기실에서 만날 수 없었다.
어, 그 아주머니 없네?
나보다 먼저 대기실에 도착한 아내가 나를 향해 손사래를 쳤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렇다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뒤따라 들어갔다 확인하고 돌쳐나온 나는 맥이 풀렸다. 그곳엔 이미 다른 사람들로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꽉 차 있었다.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다시 사람 사이를 뚫고 중환자실과 복도와 수술실 앞까지 두루 찾아보았다. 하지만 여자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찾아 다녔을까. 몇 번씩 같은 곳을 사람들에게 떠밀려가며 비척거리는 나를 발견한 청소 아주머니가 딱하다는 듯 장례식장으로 가보라고 일러주었다.
왜, 무슨 일 있었어요?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청소 아주머니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덧붙였다.
무슨 일은, 무슨 일. 죽었으니까 거기 갔지.
언제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 병원에서 죽는 사람이 어디 하나둘이야? 어제까지 대기실에 있던 사람이 없어졌다면 거기밖에 더 갔겠어?
나는 문득 여자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남편이 깨어나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그렇다면 여자는 결국 소원을 이루지 못한 셈이었다. 아내가 문상을 하려면 의복부터 갈아입어야 한다고 잔소리를 퍼부었으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이동식 링거대를 끌고 장례식장으로 내려갔다.
장례식장에서도 여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비슷비슷한 크기의 빈소가 통로마다 여러 곳 잇대어 있고, 매캐한 향냄새와 조문객, 또 조화가 도열하듯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어 그 사이를 한참 동안 기웃거리며 헤매고 다녀야 했다. 내가 여자를 발견한 곳은 특5호실이었다. 하얀 소복을 입고 여자는 그곳에서 문상객들을 맞고 있었다. 그런데 첫눈에도 여자는 내가 머릿속으로 그렸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슬퍼하거나 절망하는 얼굴빛이 아니었다. 대기실에서 보았을 때보다 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복도에서 한동안 여자를 훔쳐보던 나는 나도 모르게 혼자 중얼거렸다. 미쳤군, 미쳤어. 미치지 않았다면 저런 낯빛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여자도 빈소 밖에서 머무적거리는 나를 쉽게 발견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환자복을 입은 채 링거대를 끌고 빈소를 찾는 사람이 흔한 것은 아니므로 한눈에 띨 것은 당연했다. 문상객과 대화를 주고받던 여자가 급히 다가왔다. 나는 여자의 안내를 받아 빈소로 들어갔다. 국화꽃에 묻혀 있는 영정엔 웬 남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여자가 건네준 국화 한 송이를 놓고 조문을 마친 나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신위 아래에 펼쳐져 있는 성경책이었다.
여자는 어제 오후에 남편이 소천 했다고 일러주었다. 나는 ‘소천’이라는 어휘가 죽었다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을 여자의 설명을 통해 비로소 알았다. 그것을 설명하면서도 여자는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내 남편, 천국 갔어요. 설명하는 도중 여자는 ‘천국’이라는 어휘를 두 번이나 반복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나는 의아한 눈으로 여자를 쳐다보았다. ‘천국’이라는 말도 그렇지만, 거길 갔다고 확신하고 있는 여자가 정말 미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를 쳐다보는 여자의 눈빛은 어떤 의혹도 녹여버릴 만큼 강렬했다.
마지막 숨 넘어가기 직전에 정신이 잠깐 돌아왔거든요.
정신이요?
그래요, 의식이.
의식이요?
나는 숨넘어가기 직전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어디에서 들은 기억이 났다.
그때 마침 와 계시던 우리 목사님이 영접기도를 했는데, 남편이 아주 분명한 음성으로 아멘이라고 대답했어요. 똑똑히……. 그 말은 즉, 남편이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신 예수님을 믿고 구주로 영접한다는 뜻이에요.
여자는 곧이어 ‘구원’에 대해 말했다. 그래도 믿음이 가지 않은 나는 건성으로 머리만 몇 번 끄덕거렸다. 정말 그럴 수도 있는 것일까? 천국에 간다는 게 그렇게 간단한 것일까? 그렇지만 그게 전혀 낯선 말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입만 열면 아버지와 할머니, 동네사람들에게 늘 주장삼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는 것은 곧 구원을 의미해요. 그리고 그것은 또 천국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요.
여자의 어조는 확신에 차 있었다.
어디선가 매캐한 향냄새가 풍겨왔다. 어느 빈소에서 흘러나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몇 날 며칠 장례식장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떠돌던 것으로 조문객들의 발길에 채여 내 코를 찔러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슬프지 않느냐고 묻자, 여자는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천국에서 다시 만날 텐데 뭐가 슬프냐고 반문했다. 여자는 그래도 내가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짓자 이번엔 성경 구절까지 인용하며 말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 말 역시 나에게는 낯선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로부터 수없이, 들었던 구절이었다.
그럼?
맞아요! 하나님은 제 기도를 들어 주셨어요.
여자는 또 활짝 웃었다. 그 얼굴은 꺼이꺼이, 울던 어머니와는 다른 낯빛이었다. 정말 여자의 기도를 들어준 걸까. 그런데 이상스러운 것은 왠지 정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차츰 내 머릿속에 차오르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한 떼의 사람들이 빈소를 찾아왔다. 나는 한손에 들고 있는 가죽표지의 두꺼운 성경책을 보고 그들이 교회 성도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위로예배나 입관예배를 드리기 위해 왔으리라…….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들의 얼굴에서도 역시 슬픈 기색은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그들을 따라 여자가 빈소 안으로 들어가는 보면서 나는 돌아섰다. 빈소에서는 곧 찬송가가 울려나왔다. 날빛보다 더 밝은 천국 믿는 맘 가지고 가겠네……. 그 곡은 어머니가 깜장색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일을 하거나 청소를 할 때면 혼자 입속으로 웅얼거리던 곡이었다. 장례식장을 빠져나오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자꾸 뒤를 돌아보는 나를 발견하고는 혹시 아내의 말처럼 나도 조금씩 미쳐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미쳤군, 미쳤어.
병실이 또 시끄러워졌다. 창가의 교통사고 환자를 찾아온 사람들이 어제처럼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찬송가 몇 곡으로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이유는 그 환자가 다음 날 휠체어를 타고 퇴원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온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그은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지임을 풀었네. 주님을 차안송하면서 하알레엘루야 하알레엘루야, 내 앞 길 머얼고 허엄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이도 되었고, 저언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되었네. 주님을 차안송하면서 하알레엘루야 하알레엘루야, 내 앞길 머얼고 허엄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아니나 다를까. 4절까지 있는 곡을 연거푸 두 번이나 후렴까지 부른 뒤에도 순서는 끝나지 않았다. 곧이어 기도가 이어졌고, 다시 설교가 시작되었다. 청색 넥타이를 맨 정장차림의 젊은 목사가 성경을 펼쳐들고 목청을 돋웠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대상은 이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 세상 속에 있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독생자의 생명까지 내어주셨습니다. ……독생자의 생명과 바꾸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곧 영생인 것입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복음입니다.
오늘 저는 우리 주님이 이 젊은이를 복음의 일꾼으로 연단시키기 위하여 육체적 장애를 주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 현실적 고통을 울며 슬퍼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부단히 떨치고 일어나 더 열심히 복음을 증거 한다면 만병의 의사가 되시는 주님께서 반드시 낫게 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주님께서 복음을 위하여 또 다른 방법으로 사용하시리라 믿습니다.
아직도 주님을 모르는 불쌍한 영혼들을 살리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맡겨준 주님의 절대적 사명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우리의 선진들은 이보다 더 어렵고 힘든 역경 속에서도 이 사명을 충성으로 받들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여기 모일 수 있는 것도 다 복음을 위해 그분들이 피 흘린 수고가 있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목사는 피를 토하듯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그럴까. 다른 날과 달리 중간 중간 터져 나오는 ‘아멘’ 소리도 그날은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병상에서 일어나 앉은 교통사고 환자도, 또 그 곁에 앉은 누나도 다른 때와는 달리 엄숙한 얼굴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머리를 끄덕거렸다. 한 병실에 입원한 뒤 때때로 아주 짧은 순간, 그 환자에 대해 연민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날만큼 절실하게 느낀 적은 없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 연민이란 결국 그 환자가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설교가 이어지는 동안 다른 환자를 찾아왔던 문병객들의 말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남자 아나운서가 뉴스를 알리던 맞은 편 벽에 걸려 있는 티브이 소리도 잦아들었다. 카터를 밀고 들어왔던 간호사도 옆 병상에 비닐로 포장한 약봉지를 내려놓고는 얼른 나가버렸다.
설교를 끝낸 목사가 이번엔 두 손을 환자의 머리 위에 얹고 축도를 했다. 순서는 그것으로 겨우 끝난 셈이었다. 그러나 그날도 그들은 쉽사리 물러가지 않았다. 그 뒤로도 환자를 향해 던지는 격려와 위로의 소리가 한동안 병실 가득 질서 없이 이어졌다. 승리하세요. 승리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크게 쓰실 거예요……. 병실은 그들이 터트리는 크고 작은 말소리로 더욱 북적거렸다. 이윽고 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아내가 나를 돌아보며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나는 눈을 감았다. 약 때문일까. 갑자기 현기증이 일었다. 눈앞에 노란별 무리가 몇 번 떴다가 사라졌다.
낯빛이 창백해졌어요.
…….
나는 갑자기 조용해진 병실이 마치 무덤 속 같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죽어 묻히면 땅속 세계란 바로 그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입을 다물자 아내가 혼자 마뜩치 않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저 사람들은 자기들이 여기를 전세 낸 줄 착각하고 있나봐. 결국 아내의 호출을 받고 달려온 간호사가 기기를 살피고는 체온과 혈압을 체크하고 돌아갔다. 잠시 뒤 들어온 또 다른 간호사는 내일 오전에 혈액검사가 나오면 시티촬영을 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래도 현기증은 좀체 가라앉지 않았다. 비틀고 갉아대는 것 같던 속이 토할 것처럼 또 뉘엿거렸다. 숨을 내쉴 때마다 싸한 소독내가 입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내가 아이들 때문에 잠시 비운 사이 잠이 들었다가 깬 나는 무심코 머리맡에 있던 성경책을 집어 들었다. 대기실에 내려갔던 첫날 여자가 선물이라고 건네준 것이었다. 그것의 첫 장 첫 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런데 무슨 일일까. 이 천지를 창조한 이가 하나님이라는, 그 구절을 눈으로 읽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데인 듯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갑자기 목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상스럽게도 꿈에 보았던 어머니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어머니가 늘 하던 말이 아령칙하게 떠올랐다. 이 세상이 니 맘대로 되는 것 같지? 천만의 말씀이야.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안 되는 거야……. 지금까지는 그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다시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동네 사람들로부터 허릅숭이로 취급받던 어머니의 그 말이 갑자기 진실처럼 나를 감싸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늘과 땅, 그 사이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까지가 문득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측이 불가능한 암수술과 출판사 문제……. 그것만이 아니었다. 살아간다는 게 외줄을 타는 것처럼 위태롭긴 하지만 누군가가 꼭 그래도 살아야 할 목적을 나에게 부여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어쩌면 지금까지 나를 욱죄고 있는 무거운 그 무엇인가를 훌훌 벗어버리라는 암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는 과연 누구일까. 나는 비로소 나도 차츰 미쳐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나는 폐부에 가득 차오르도록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곧 숨을 쉬고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밤이 깊어갔다. 병실은 밤 10시가 되면 자동으로 소등이 되었다. 그러나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에 선잠을 깬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뒤척일 때마다 몸을 덮었던 담요에서 비릿한 냄새가 역하게 코를 찔렀다. 어쩌면 그것은 며칠 동안 샤워를 하지 못한 내 몸에서 배출된 노폐물과 병원 냄새가 한데 어우러진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때였다. 창밖에서 다시 앰뷸런스 소리가 들려왔다. 또 생명이 경각에 다다른 누군가가 급히 실려 오는 모양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여덟 번째 들려오는 소리였다. 나는 얼굴을 돌려 옆 병상의 환자를 살펴보았다. 대장암 3기 판정을 받고 수술한 그는 그러나 훤했을 때와는 달리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이따금 꿈이라도 꾸는 듯 마른 입소리까지 내면서……. 아내의 코고는 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려왔다. 불편할 터인데도 아내는 며칠 사이에 습관이 된 듯 보호자 간이침대에서도 잘 자고 있었다.
교통사고 환자의 누나는 퇴원을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두 달 동안 풀어놓았던 짐을 조심스럽게 정리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종일 사납게 불던 바람의 기세도 밤이 깊어지면서부터는 잦아진 듯 했다. 건너편 고층아파트의 불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는 병실엔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무겁고 어두운 정적이 마치 내일을 준비시키는 휴식처럼 느껴졌다.
-끝-
정수남 프로필
*이름 : 정수남
*1945년 평양 출생
*198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 ‘접목’ 당선되어 등단
*작품집 :
『분실시대』
『별은 한낮에 빛나지 않는다』
『타성의 새』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시계탑이 있는 풍경』
『길에서, 길을 보다』
『앉지 못하는 새』
『행복아파트 사람들』(장편소설)
『병상일기』(시집)
『시 한 잔의 추억(1)(2)』(산문집)
『소설가 정수남과 함께 떠나는 365일 글짓기 여행(1)(2)』
*수상경력 : 제2회 자유문학상
제15회 대한민국 장애인문학상 수상
제43회 한국소설문학상 수상
*(현)일산문학학교 대표
(현)한국작가회의회원. 국제PEN클럽 한국본부회원.
한국소설가협회중앙위원. 한국크리스천문학가협회회원.
한국작가회의 소설분과위원장 역임
고양작가회의 회장 역임
*주소 : 경기도 파주시 책향기로183, 상록데시앙아파트 1508동 12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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