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 대첩
임진왜란중 진주성에서 2차에 걸쳐 큰 전투가 벌어졌다.
1차 전투 때는 왜군 3만 명이 침입하여 왔다.
진주목사 김시민은 성문을 굳게 닫고 ,용의 주도하게
응전하여 적을 물리쳤다.
2차전은 왜군이 1차전 페배의 분풀이로 병력 93,000명에
수군까지 약 10만 대군을 이끌고 진주성을 재침범을 하였다.
김천일, 최경희 등 군, 관, 민이 모두 합세하여 항전하였으나
10만 명대 6천 명으로는 역부족으로 성은 함락되고 말았다.
조선의 군, 관 민, 6만명이 참혹하게 전사한 격전지로
임진왜란 때 최대의 전투 싸움이었다.
진주성에 승리한 왜군들은 촉성루에서 연회를 열고 즐길 때였다.
논개는 술에 취한 적장 게다니(毛谷村 六助)를 껴안고
남강에 투신하였다.
김보원(輔元: 25세,)은
조헌의 병막에 참가하였다가 청주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진주성 전투에 참여 하였다가 성이 함락되자, 김천일과 같이 남강에 투신 자살하였다.
김기명(基命: 28세)은
회천군수로 재임중 평양성 탈환에도 공을 세웠다.
남하 하는 적을 쫓아 행주대첩에서도 전공을 세웠다.
진주성 수성에도 참가하였으나 세 부족으로 진주성이 함락되자,
최경희와 같이 남강에 투신하였다.
김대민(大民: 23세)과,
김신민(信民: 23세)과,
김광운(光運: 25세)도 진주성 함락 때 목숨을 다 하였다.
광산김씨약사. 2023년, 6월. 편집 선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