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12월 17일)
평소 운동이 부족한 나에겐 무리한 시도를 했습니다.
태전동에서 고산골까지, 늘 트래킹 해보고 싶던 구간이지만
주 1회나 2주에 1회 정도의 뜸한 운동으로 운동량이 부족한 저로서는
언뜻 보기에 제법 되는 거리에 살짝 주눅이 들기도하여
차일 피일 미루다가 마침 시간이 나는 토요일이어서
일단 출발을 하였습니다.
보건대 네거리 앞 은마아파트를 기점으로 출발하여
태전교에서부터는 팔거천을 따라 내려 갔습니다.
도시철도 공사로 하천가로 엄청난 크기의 기둥들이 서 있었지만
철도 개통하기 전 출발하는 것이 소음이나
위압감으로 부터 해방되어 갈 수 있어 좋다는 생각으로
지금쯤 시도하길 잘 했다고 위로하며 갑니다.
매천지구를 지나 농수산물 시장쪽으로 내려가면서 팔거천 하천변을 찍어봅니다.
멀리 경운대 대구강의동이 보입니다.
뒤쪽의 얕은 산은 함지산의 남쪽 팔거산성 쪽입니다.
겨울인지라 주변이 황량하고 수량도 많지 않지만
바로 옆 복잡한 도로 아래쪽으로 이렇게 한산하고
조용한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그렇게 걷다가 공사중인 하천변으로 계속 걷기가 불편하여
농수산물 시장 쪽으로 올라와서는 국도를 따라 걷습니다.
토요일이라 주변의 예식장 때문에 차와 사람들이 많지만
걸어가는 편안함이랄까, 차를 가지고 다닐 때와는 전혀 다른
가뿐함으로 사람과 차 사이를 빠져 나옵니다.
금새 팔달교가 앞에 보입니다. 시계를 보니 13시 55분.
13시 15분에 출발하였는데 벌써 40분이나 소요되었군요.
걸어다니는 즐거움 뒤로 이렇게 많은 시간들이 사라지니
사람들은 너도 나도 차를 이용하나 봅니다.
하지만 오늘같은 날 시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걸을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살짝 행복해집니다.
이쯤에서 시내에 거주하고 있는 선배님께 전화를 드립니다.
"선배님. 나 지금 여기서 출발했는데요. 고산골까지 걸어가면
한 3시간쯤 걸릴거 같아요. 시간이 되시면 대포나 한 잔 하시죠."했더니
알았다고, 그정도 시간에 맞춰나가겠다고 하신다.
참 고마운 분이시지. 이런 날 시간이 맞지 않으면
잘 알지도 못하는 동네에서 얼마나 처량하게 돌아서겠나.
그렇게 팔달교를 지나 옆으로 난 하천연결도로를 내려와 돌아본다.
팔달교 너머로 도시철도 교량공사가 한창이다. 오면서 본 모습으로는
아마 현수교형식의 교각을 만드는 것 같아 보인다.
도시철도가 개통되면 편리해지겠지.
하지만 소음과 교각이 지나는 도로 주변의 모습은
얼마나 삭막할 것이며, 주변 상인들의 피해는 또 얼마일까.
개발의 편리함과 그늘을 두고 양쪽의 이득을 저울해 내는
정책집행자들의 모순이 순간 떠오르기도 한다.
겨울의 금호강변은 전혀 정비도 되어있지도 않고
허옇게 노출되어 있어 자연스럽기도 하지만
개발되어 잘 정비된 예쁜 도시환경 미화에 익숙한
내 눈에는 을씨년스럽기까지하다.
어디까지 개발해야 할까?
그냥 놓아두면 이렇게 흉칙하고 보기싫고
개발하다보면 자연을 파괴하기 일수니
조화롭게 개발한다는 것의 한계와 후손들이 또 건강하게,
편리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의 경계가 너무도 불분명하여
개발이나 정비를 새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일단은 잊어버리고 오늘은 그냥 걷자.
그래도 꾸준히 여기도 개발의 손길이 닫나 보다.
곳곳에 장비와 목재들이 쌓여 있다.
앞쪽 장마 때만 되면 물이 넘쳐나는 노곡동으로 이어지는
노곡교로 분주히 차들이 들락거린다.
다리 뒤쪽으로 보이는 팔공산의 주봉과
양쪽의 동봉과 서봉이 나즈막히 편해보인다.
그냥 걸어보자. 잊어버리고 걷기만 하자.
아무도 없던 주변으로 할아버지 한 두 분이 보인다.
열심히도 걸어가시는 할아버지께서는
뒤쪽에서 꾸준히 따라 걷는 내가 불편한지
자꾸만 뒤를 돌아보신다.
아차 싶어 얼른 지나치려 걸음을 재촉하지만
여간해서 할아버지는 재쳐지지를 않는다.
땀 꽤나 흘리고 저만치 앞서 걸어가니
할아버지께선 그제서야 속도를 줄이신다.
그렇게 또 걷고 있다.
앞쪽에서는 말을 탄 두 분이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가다가
달리기 좋은 곳을 발견했는지 서로 경주를 하기 시작했다.
한쪽 옆으로 비켜 주면서 한편 부럽기도 했지만
말 관리하기가 얼마나 힘들고 비용이 많이드는 일인데 하며
슬슬 다른 생각으로 방향을 바꾸고는 걷는다.
주변이 삭막해서 인지, 초행길이라 그런지
조금씩 지겨워지기 시작하는데
북대구IC로 이어지는 금호대교를 지나면서
신천이 그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다.
금호강변 보다는 잘 정비되고 다리도 많고
일단 사람들이 제법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하는 사람들과
두,세명씩 짝이 되어 걷는 할머니들
가끔씩 공을 들고 뛰어 오는 아이들.
그런 곳으로 들어왔다는 것이 약간의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강폭이 대폭 좁아져서 한 눈에 주변 시설과
익숙한 도로가 들어오기도 했고,
신천에 걸려 있는 수 많은 다리간의 거리가 표시되고
그 사이 사이의 자전거 및 도보 도로가 잘 포장되어
편리하게 되어 있는 것도 그렇고
이제부터는 일단 눈에 보이는 것이 많아서
지겹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첫번째 다리인 침산교에서 목적지 상동교까지의 거리가 8,540m란다.
지금까지 걸어온 거리가 그 정도 될거로 보이니 이제 절반 온 것이다.
부실한 내 다리는 벌써 쉬고 싶은 맘이 굴뚝인데 이제 절반이라니....
익숙한 다리 이름이고 예상되는 거리인데 생각보다 지겹다.
볼 것도 많고 생각하는 것도 많은데 왜 지겨울까?
아마도 하천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약간의 오르막을 가게되고
체력도 제법 소모되어서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된거 같다.
여태 왔던 팔거천과 금호강변은 오히려 정말 초행이기도 했기에
볼게 많기도 했을 뿐 아니라 체력도 충분했는데
이제는 볼건 많아도 이미 다 아는 것들 뿐이요.
체력은 떨어져 있으니 어서 도착했으면 하는
조급한 맘에 아직 도착하려면 멀었고 하니
자꾸만 지치고 힘들게 느껴진거 같다.
그렇게 지쳐가고 있을 때 쯤 대봉교를 지나기 전
신천변에 스케이트장을 개설해 두었다.
아직 방학은 아니지만 토요일을 기해
스케이트를 타러나온 아이들이 마냥 즐겁다.
그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도 덩달아 힘이난다.
이 길을 지나 희망교 중동교를 지나니
하천 양쪽으로 새로 지어진 아파트들에는
최대 1억인하, 30%세일 마지막 기회 등등의
프랭카드를 걸어놓고 아파트 세일에 여념이 없다.
다들 제일작은 평수인 30평대의 아파트는 매진으로 되어 있다.
40평 이상의 대형 평수들의 예상된 미분양과 외면이 적나라하다.
그래도 강 왼편의 수성구쪽에는 그정도의 프랭카드는 보이지 않는데
남구쪽의 아파트들은 분양율이 많이 저조한지
절박한 문구들이 바람에 펄럭인다.
상동교 아래쪽으로는 자전거,도보도로도 끝이나고
고산골 안쪽으로 들어서는 작은 길로 들어서니
예전에 보이지 않던 건물과 가게들이 많이도 들어섰다.
선배는 봉O휴게실이라는 작은 주막에서
막걸리와 두부김치찌게를 올려 놓고
미리와서 한 잔하며 앉아 계셨다.
뜨거운 난로 옆을 권하는걸 사양하고
한 자리 건너 앉으며 시원하게 막걸리를 들이마신다.
오늘 걸은 거리만큼의 피로가 사악 가신다.
그렇게 두 주전자(막걸리 두 통씩 들어가니 네 통)를 마시고는
선배는 댁으로 가고 나는 대덕맨션 앞에서 730번버스를 탔다.
졸다보니 어느새 태전교앞이란다. 얼른 내렸다.
상동교에 도착한 시간이 16시 50분 경이었으니
거의 세시간 삼~사십분의 거리를 걸은 것 같고,
거리는 17Km쯤인거 같다.
또 언제 걸어볼지 모르지만
즐거운 하루, 밀린 숙제를 해 낸거같은 하루였다.^^
첫댓글 나도 걷고 싶어지네요. 날이 좀 풀리면 친구들과 가까운 곳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