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를 포기하고 간다고? 미네르바스쿨을 향한 호기심
단 한 번도 해외에서 거주한 경험이 없는 나는 여느 한국 학생들처럼 국내 명문대 진학이 목표였다. 하지만 수시대입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실망하고 있던 어느 날,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봤다. ‘케임브리지도 포기했다, 나는 미네르바스쿨 간다’는 헤드라인을 본 순간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도대체 어떤 사람이 세계 10위를 다투는 케임브리지를 포기하지? 아니, 그보다 케임브리지를 포기하게 만든 미네르바스쿨은 도대체 어떤 곳이야?’ 주요 일간지 전면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 있는 기사였는데 곧바로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기사를 읽으면 읽을수록 미네르바스쿨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강의실이 없는 학교, 강의가 아닌 100% 토론식 수업, 4년간 7개 도시에서의 생활, 매 학기 도시와 연계된 프로젝트 수행, 하버드보다 낮은 입학 허가율. 줄곧 국내 명문대만 바라보던 내게 미네르바스쿨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날로 나는 대입 정시를 포기하고 미네르바스쿨 입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획일화된 점수보다 학생 역량에 집중하는 선발 방식
해외 대학 진학을 고려하지 않아 SAT나 ACT 성적은 없었지만 미네르바스쿨의 독특한 선발 방식 덕분에 나도 지원 할 수 있었다. 미네르바스쿨의 지원 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이뤄진다. 1단계는 개인정보, 출신 고교, 고교 내신 성적 등 학교생활에 관한 부분이다. 여기에는 고등학교 성적표를 제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등학교 선생님이나 학교 관계자를 통해 학생의 실력과 생활 태도를 검증하는 과정 또한 포함돼 있다.
2단계는 ‘챌린지(challenge)’ 라 불리는 자체 입학시험이다. 보안 문제로 자세한 내용은 설명하기 어렵지만 전반적으로 상당히 창의적인 시험으로, 오로지 학생의 핵심 역량을 검증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마지막으로 3단계는 자기소개서와 유사한 ‘어치브먼트(achievement)’로, 고교생활 중에 했던 의미 있는 활동들을 소개해야 한다. 각 과정을 어떤 비중으로 평가하고 채점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략 이런 방식으로 선발을 진행한다.
우여곡절 끝에 지원 절차를 끝내고, 결과 발표까지 한 달 정도를 기다렸다. 결과 발표 전에 근거 자료 보충을 요구하는 이메일도 받았고 아시아 디렉터와 인터뷰도 진행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느낌이 좋긴 했다.
그렇게 지원을 마친 지 딱 4주째 되는 날 아침, 입학 허가 이메일을 받았다.
그날 아침 우리 가족이 흘린 감동의 눈물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합격한 뒤 한국의 새내기 배움터처럼 학교에서 재학생 선배들과 어울리고 교수진, 학교 스태프들을 만나는 어‘ 센트(ascent)’라는 행사에도 다녀왔다. 2박 3일 동안 무료로 진행하는데 샌프란시스코까지의 비행 거리에 따라 여비까지 지원해준다.
이 행사를 다녀온 뒤 내 마음은 더욱 확고해졌다. 학교 행사에서 만난 모든 재학생은 학교생활에 완전히 만족하고 있었고 이 학교가 단순히 실리콘밸리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적 교육 시스템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목표 아래 단계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굳게 확신할 수 있었다. 2박 3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모든 것이 완벽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나는 바로 입학을 결심하고 나의 4년을 이곳에 맡기기로 했다.
2학년 때 전공 선택하는 학사 시스템
강의실이 없고 강의가 아니라 토론식으로 수업하는 것 외에도 우리 학교의 특별한 시스템 중 하나는 모든 1학년 학생이 공통 과목을 수강한다는 점이다. 아직 확실히 전공을 결정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4개의 다른 학문 분야를 모두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는 취지일 뿐 아니라, 아직 1학년이니 미네르바의 학업 시스템에 적응하라는 의도가 담겨 있다.
1학년 과정을 마칠 즈음엔 2학년부터 시작할 희망 전공을 선택해야 하고, 2학년에 올라가면 ‘콘센트레이션(concentration)’ 과정을 밟게 된다. 이후 3학년부터는 전공 심화 과정을 이수하고 4학년은 수업보다는 프로젝트 위주로 학업 과정이 진행된다. 학부 과정은 총 다섯 개의 단과대학으로 이뤄져 있다. 인문대, 사회과학대, 공학대, 자연과학대, 그리고 경영대 등인데, 나는 그중 사회과학대의 정치학과 공학대의 데이터사이언스를 복수 전공할 생각이다. 부전공으로는 여러 가지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평소에 흥미가 많은 철학, 물리학, 경영학의 회계·재무관리, 그리고 사회과학의 경제학을 놓고 고민 중이다.
아직 전공을 결정하려면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부전공 선택 여부와 어떤 과목을 선택할 지는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전공을 선택하면 얼마나 더 흥미진진한 세계를 탐구하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전공 선택 과정과 선택 이유에 대해서는 앞으로 차차 소개하고자 한다.
1. 우리의 새내기 배움터(오리엔테이션)와 같은 ‘어센트’에 참여한 친구들과 함께 일출을 보러 갔다가 찍은 사진.
2. 입학 첫 주에 태평양의 노을을 보기 위해 바다에 갔다.
나를 포함한 사진 속 친구들은 전 세계 각국에서 온 신입생들이다.
3. 입학 첫날 학년 전체가 함께 찍은 단체 사진.
한 학년 규모는 160명 정도로, 모두 친하다.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