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조 주원장 어진.
무자비했던 군주 주원장.
명태조 주원장에 대한 고려인설은 전설로 널리 회자되었지만 전설로만 그쳤을뿐 증명되거나 실증적 접근이 서지학적 근거의 부족으로 제한 되었었다.
운영자가 고려의 남경을 확인하는 도중 새로운 주원장에 대한 사실이 증명되었다 즉 주원장이 고려인일것이라는 추측은 그가 고려인이라는 확신보다는 고려출생이라는 것이다.
고려의 남경은 운영자가 서지 및 고대지도로 확인한 결과 江都 즉 현재의 江蘇省 楊州가 고려의 남경이었음을 증명하였고 고려의 남경에 역시 고려의 궁전이 있었다는 명나라의 지방지의 근거를 토대로 증명한다. 즉 고려의 남경에 궁전이 있었다는 증명은 명나라 지방현지 양주 보응현에 고려궁전이있다는 아래의 기사이다.
보응현지략(寶應縣志略)
명나라 세종(1522~1566년)때 편수된 기록이 보이는데
"고려왕성(高黎王城)은 현의 서남쪽 80리에 있다.송(宋) 영종(英宗) 1064 ~ 1067년간에 고려왕이 축성했다. 높이는 1 장(丈)이며 주위둘레는 1 리 40 무(武)이다." (고려대제국증거님글 인용,실제사서는 운영자가 발표)
淸나라皇命지도인 <대청광여도>에 기록되어 있었고 실제로 위성사진을 확인한 결과에도 荔(麗)城鎭이라는 지명이 현재에도 존재하고있다.
그런데 청나라 황제명으로 만들어진 대청광여도에는 명나라 초대황제인 홍무제 주원장의 출생지가 바로 강소성 양주의 고려남경의 궁전지 부근에서 태어났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으니 틀림없는 사실인것이며 실제로 원나라말 민중봉기 혁명후 명나라를 세우고 첫수도로 정한곳이 남경이라 알고있는 실제 南京은 당시 고려남경에 설치한것으로 보인다.
명나라 초대황제 주원장의 출생지를 서지학적으로 증명해보자.
윗 왕명지도는 거짓이 들어가면 안되는 철저한 제작당시의 사실적 고증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데 그 지도에 한민족의 과거를 푸는 암호가 많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주원장은 고려사람이다라고 단정짓는것 보다는 고려의 남경지역에서 태어난 사람이며 과거 신라 백제의 영역을 이어받은 고려의 왕조적 영향도 받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해하면 될것이다.
아래는 한반도 해남지역에 구전되어 내려오는 주원장에 대한 전설이다 (인용)
고려말에 조선에서는 태조 이성계와 이지란이 고려를 뒤엎고 조선을 세웠다. 중국에는 그와 동시대 인물인 주원장이 명(明)나라를 세우게 된다.그런데 이 주원장이 출생지가 어디인지는 중국에서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놀라운 것은 주원장의 출생지라고 회자되는곳이 우리나라의 전라남도 해남 마을로 전해 내려온다.
주원장은 털복숭이 바다수달의 아들이라는 전설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가 천하 명당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헤메다가 전라남도 해남에서 바닷가 어딘가에 천하제일의 명당이 있음을 알아 냈다. 그곳에다 조상의 묘를 쓰게 되면 자신의 아들이 천자가 되는 천고제일의 명당이었다. 그러나 정작 관을 안착시킬 묘터는 찾지를 못하고 한달을 내리 보내다가 마침 해남 마을의 털복숭이 소년이 헤엄을 잘치고 해남 이곳저곳 안가본데 없이 지리에 환하다 해서 그에게 길안내를 부탁했다. 물론 명당을 찾는다는 목적은 숨기고 길안내를 부탁했다. 그렇게 또다시 한달을 명당을 찾아헤멘 끝에 마침내 천하제일 명당의 위치를 발견해냈다. 그곳은 해남의 육지가 아닌 바다 한가운데의 바위섬에 위치해 있었다.
위치를 확인한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는 묘를 쓴뒤에 혹시나 털복숭이 소년이 그묘자리를 훔칠까봐 죽이려 했다. 그러나 길안내를 해준뒤 그 털복숭이 소년은 온데간데가 없었다. 묘터를 쓰고 난뒤 털복숭이 소년을 죽여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 며칠간을 그 소년을 찾아다니고 있었는데 어느날 밤 하늘에 벼락이 치고 상서로운 기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는 드디어 자신이 쓴 천하제일의 명당의 기운이 움직였다고 생각하고 크게 기뻐 했으나 그순간 저멀리 털복숭이 소년이 나타나서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 나는 당신이 천하 명당을 찾아 이곳에 온 것을 알고 있다.
나역시 오랫동안 이곳 어딘가에 천하제일 명당을 찾아 헤메고 있었는데 묘를 쓰는 정확한 위치와 시간을 몰랐던 것 뿐이다. 그런데 그대가 와서 마침내 묘의 위치와 방향 그리고 시간을 알 게 되어 그 묘터에 나의 조상님의 묘를 썼다 그대는 묘의 위치를 알 게 해주었으므로 그 옆에 그보다는 못하지만 작은 나라의 왕이 되는 혈자리가 있기에 그곳에 당신 조상의 묘를 썼으니 그리알라. 이제 나는 중원 대륙으로 간다. 그곳에서 나는 나라를 세울 것이다." 하고 떠났다고 한다.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는 한숨을 쉬며 "천고의 명당은 그 주인이 있기 마련이니 복연이 없는걸 어찌 하겠나? " 이미 발동된 명당의 혈자리를 건들였다가는 오히려 화를 당하기 때문에 이성계의 아버지는 그 자리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인용글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wandanstory&logNo=50152692440
심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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