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寶沙門(천보사문, 편자 김규정) 위문관련시문(3)
聞寶林立公將如京作句寄之
(문보림입공장여경작구기지)
보림사 立公이 개경으로 가려한다는 소문을 듣고 절구를 지어 전하다.
원감국사 복암 충지
(圓鑑國師 宓庵沖止)(1226 ~ 1292)
寶林林裏有梧枝(보림림이유오지)
보림사 숲속에 오동나무 가지 있으니
引得營巢瑞鳳兒(인득영소서봉아)
둥지 틀고 상서로운 봉황새끼 끌어들였다.
聞道乘春欲飛去(문도승춘욕비거)
봄 되자 날아가려한다는 말 들리니
不知何日更來儀(부지하일갱래의)
어느 날 다시 와 위의 보여줄는지 모르겠다.
@長興府 迦智山 寶林寺의 意味
해동조선에 임제종(臨濟宗)을 최초로 소개한 사람은 신라 헌강왕 때 선사(禪師)인 도의(道義)였다. 도의는 중국에 들어가 임제종을 배워 귀국한 뒤에 전라도 장흥부 가지산(迦智山)에 보림사(寶林寺)를 창건하여 구산선문(九山禪門) 가운데 최초로 가지산문(迦智山門)을 개창했으나 이후 고려조에 들어와서는 문벌귀족사회의 교종(敎宗)이 성행하면서 크게 발달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고려말기의 선승(禪僧)인 태고 보우(太古普愚 1301~1382)가 중국 원나라에 들어가 석옥 청공(石屋淸珙 1272~1382)의 가르침을 받아 일시적으로 끊겼던 임제종의 종지를 다시 잇는 한편 구산선문을 통합하여 조계종(曹溪宗)이라 하였다.조선조에서는 부용 영관(芙蓉靈觀 1485~1571)의 제자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과 부휴 선수(浮休善修 1543~1625)의 법통이 불가의 적전(嫡傳)으로 자리잡으면서 의발(衣鉢)이 전라도 서부 대둔사와 동부 송광사.선암사.화엄사로 전해지면서 호남의 사찰들이 부활하며 다수의 고승들이 나타나 선교(禪敎)를 게양(揭揚)한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임제종의 법맥을 이어받은 조계종이 우리나라 불교의 최대산맥을 형성하며 구산선문이 가지산파 계승자임을 표방하고 태고 보우를 한국 불교의 종조(宗祖)로 모시고 있다. 보우 대사는 젊은 시절 장흥부 가지산 보림사에 주석한 법연(法緣)이 있다.
이밖에도 "寶林寺"라는 사찰은 全羅道 泰仁縣 七寶山, 忠淸道 牙山縣 桐林山, 慶尙道 靈山縣 靈鷲山, 黃海道 松禾縣 龍門山, 平安道 平壤府 三和현 牛山에도 있었다. 全羅道 長興府 迦智山 寶林寺까지 동국 여섯군데에 같은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 원감국사 복암 충지(圓鑑國師 宓庵沖止 고려 고종13년1226~고려 충렬왕18년1292)
속성은 장흥 위씨(長興魏氏). 이름은 위원개(魏元凱). 법명은 법환(法桓), 改名은 충지(沖止).自號는 복암(宓庵). 長興府 府內坊 출신이다. 19세 때(고려 고종31년1224) 문과(文科)에 장원(壯元)급제하여 한림학사와 추밀원부사를 지냈다. 29세에 선원사(禪源寺)의 원오국사(圓悟國師) 문하에서 승려가 되었다.원오(圓悟)의 법을 이어 조계산(曹溪山) 제6세 국사이다. 시호(諡號)는 원감국사(圓鑑國師)이고 탑호(塔號)는 보명(寶明)이다. 세수는 67세이고 법랍은 39년이다. 조선조 서거정 등에 의해 편찬된 <東文選>에서는 승려로서 가장 많은 시문을 남겼다.
재치(財痴)...
사진설명 : 지난 여름 보림사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너무 근엄하고 좋은 사진만 올라오는것 같아 허접한 '신행태보(신의 발걸음) 놀이중인 사진 한장 올립니다...^^
재치아우는 공중부양 능력을 지닌 것 같은데,
누가 사진을 찍었는지 궁금하구먼.
휼륭하신 위문중 조상님의 옛발취와 역사공부를 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