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 날씨 같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매서운 바람과 함께 비가 흩날리는 날이었습니다. 다음주 조합원 간담회가 있을 예정이라 오늘은 만나는 어르신들께 조합원 간담회 진행 내용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명절 맞춤 셋팅 하던 것을 정리하고, 평소대로 물건을 정리하며 출발 준비를 해봅니다.
아침에 부랴부랴 나서던 와중,
"야채호빵 놓쳤어~! " 라는 선생님 말씀에 야채호빵 챙겨 다시 출발합니다.
(주문을 하셨던 분이셨는데, 꼭 달라하셔서 반드시 챙겼어야했습니다.)
9시 20분,
비가 흩날리고 안개가 자욱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명절이 지나고 나면 그 다음주는 어르신들의 경제활동이 많이 줄어듭니다. 이번주는 많은 거래가 이뤄지지 못할것을 예상합니다.
그래도 사람없는 적막함은 제 마음도 적막하게 만듭니다.
9시 40분,
한 2주 연속 어르신을 못만났습니다. 오늘도 안계시나 싶어서 집에 들어가니 오늘은 문이 열렸습니다.
어르신 집에 가보니, 티비 소리 크게 틀어놓고 이불속에 쏙 들어가계십니다.
조용히 어르신을 꺠워보니 어르신께서 그간 왜 안왔냐고 하십니다.
근 2주동안 어르신과 만나질 못했습니다. 명절에는 일정이 바뀌어 움직이기도 했습니다.
어르신은 그동안 필요했던 사이다를 읍에가서 사오셨다고 합니다. 읍까지 다녀오려면 버스 시간을 고려야해야하다보니 족히 왕복 3시간은 넘게 걸립니다.
잠깐 만나지 못했던 그 시간이, 어르신에게 필요한 생필품을 전달하지 못했던 순간이었음을 생각합니다.
11시,
바람이 엄청나게 불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날립니다.
어르신들 만나기는 어렵겠다 싶습니다.
그래도 회관에 누가 계신지, 걸음 보조기가 있습니다. 들어가보니 홀로 불끄고 티비 보고 계시는 어르신.
사람 온다고 바로 앉아주시며 커피 한 잔 내어주십니다.
지난 명절 안부 여쭈며 어르신 건강 확인합니다. 딸과 아들들이 모두 왔다가며 다 챙겨주고 갔다고 말씀해주시는 어르신.
어르신의 명절이 즐거우셨음을 상상합니다.
마을에 안보이시는 어르신들 안부도 여쭈니,
한 어르신은 명절 지나고 복통이 와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시고,
또 다른 어르신은 나무 작업하다가 떨어져서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고 합니다.
연세가 92세인지라, 수술도 어렵고 다들 오지 못하지 않겠냐고 말씀하십니다.
어르신들에게 낙상은 정말 큰 위험으로 다가옵니다. 정정하시던 어르신이었는데 낙상 한 번으로 건강이 휘청합니다.
그렇게 마을의 어르신들 안부를 모두 확인하였습니다.
11시 30분,
어르신 댁으로 가니, 오늘도 맞춤형 돌봄선생님과 함께 계신 어르신.
늘 집으로 들어와줘서 고맙다고 말씀해주시는 어르신. 어르신께 커피 한 잔 또 얻어마십니다.
물건 파는 일보다 어르신 안부 확인하고 대화 한 번 더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12시,
어르신께 전화가 옵니다.
"이따 울집올란들, 소주 2짝만 놓고 가쇼~"
오전에 매출이 거의 없었는데, 반가운 전화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13시 30분,
회관에 어르신들이 많이 모여계십니다. 보자마자 또 주시는 커피 한 잔.
이런 저런 이야기나누다보니 장사꾼 마음 채워주신답시고
"어이, 돈좀 있어? 나좀 꿔줘봐~ 아까 5만원 있던거 다쓰고 없네" 하십니다.
그러시더니 맞은편 어르신도 "나 락스 하나 주쇼~" 하십니다.
다른 어르신은 "일단 가봅세~ 아그들 먹는거 그 라면 있잔아~ 그거 한 박스 얼마요~" 하십니다.
일반 컵라면과 매운 불닭라면 각 한 박스사고 가십니다. 손주들이 또 오려나 싶습니다.
떠나려던 찰나, 한 어르신이 오십니다.
"여거는 소주 한 말에 얼마요?"
저희는 5천원 받고 있다고 말씀드리니, "저 아래짝은 5,500원이던데 축협은 4,700원이요, 너무 비싸게 받아서 동네 사람인데도 못사겠네" 하십니다. 100원 단위 차이이긴하지만 어르신들한테 값의 차이보단 마음의 차이로 더 크게 느껴지시나봅니다.
저희에게 소주 한 박스를 사시곤 음료 2개를 더사시며, 회관에 어르신들 드시라고 툭 놓고 가십니다.
14시 05분,
저 멀리서 봉투 2개를 들고오는 이모님. 공병을 가득 채워오십니다. 지난번에 못갖고 갔었는데, 오늘은 챙겨가라고 하십니다.
공병 30개, 그걸로 바로 사탕 한 봉지 바꿔가십니다.
야채호빵을 이야기하시던 삼촌은 야채호빵을 보곤 미소 지으십니다. 간단하게 결제 후 바로 들어가십니다.
집 앞에서 자신이 원하는것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작은 행복이라 생각이 됩니다.
14시 25분,
지난번엔 어르신께서 안계셨었는데, 오늘은 계셨습니다.
오늘은 늘 사던 두부 두모에서 멸치를 적어주셨습니다. 가격도 정확합니다. 어르신께선 물건을 보지도 않고 주문하시는데도,
늘 가격이 잘 맞습니다.
14시 45분,
오늘도 방문 요양선생님이 와계십니다. 인사드리고 들어갑니다. 오늘은 어르신 얼굴이 더 환해보이십니다.
자신이 앉던 자리 한쪽을 내어주며 앉으라고 하십니다.
"이거 빈봉투니까~ 갖고가서 돈채워넣고 와~"
무슨 말씀인가 싶었더니, 명절 용돈이라며 2만원을 챙겨주십니다.
안주셔도 된다고 말씀드리니, 손주 나이와 비슷하다며, 늘 집에 들어오고 인사해줘서 고맙다고 하십니다.
그러시더니 커피 한 잔 마시겠냐는 말씀에,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다고 하니, 며느리가 담가온 식혜 주신다고 합니다.
뭐라도 한 잔 주시고자 하는 어르신의 마음 덕분에, 추운날 차가운 식혜도 몸을 따뜻하게 해줍니다.
15시,
지난번, 마을에 장례가 있은 후, 분위기가 조금 가라 앉았습니다.
그럼에도 어르신들은 차 오는것을 보곤 회관 문여시며
"어여 오시게~~" 하십니다.
늘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어르신들이 고맙습니다.
"오늘 명절 지난 다음인디, 손님 있디요?"
어르신들도 잘 아십니다.
없다고 말씀드리니,
"오늘 여기도 공치시게~" 하십니다.
그러곤 내어주신 떡과 단호박 식혜. 어르신들은 이미 많이 드셨다며 눈치보지말고 다 먹으라고 합니다.
콩가루 직접 뭍혀주신 인절미와 시루떡, 어르신들 손음식은 다 맛있습니다.
덕분에 오후 간식 든든하게 먹고 다시 출발합니다.
오늘 하루만 어르신들에게 받은 커피가 6잔이요, 식혜가 두잔입니다.
거기에 용돈까지 2만원 받고, 떡도 받았으니,
장사하면서 많은 마음 얻고 왔습니다.
어르신들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장사가 주 목적보다는 어르신들 안부 확인하고, 필요한 물건 전달하는 일이 우선입니다~" 하니,
"하모~ 그래야지~" 하십니다.
돈을 쫓는 삶이 아닌, 사람의 관계를 엮고 함께 하는 일임을 어르신들 삶속에서 발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