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 인근에 자리한 메도우락 보타니컬 가든(Meadowlark Botanical Garden)은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자연을 품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 넓은 정원 한가운데, 미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특별한 공간이 숨어 있다. 바로 한국의 전통미와 문화를 알리는 코리안 벨 가든(Korean Bell Garden)이다. 북미와 캐나다에 거주하는 교민들은 물론, 미국을 여행하는 한국 방문객들도 일부러 찾아올 만큼 유명한 명소다. 하지만 처음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이런 고급 주택가 한복판에 식물원이 있다고?” 버지니아 페어팩스 카운티의 조용한 주택가 사이에 자리한 입구는 그만큼 소박하고 조용하다.
그러나 문을 지나 정원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잘 가꿔진 산책로와 잔잔한 호수, 그리고 다양한 식물들이 어우러져 마치 도시의 소음을 한순간에 지워버리는 듯하다. 자연 속을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한국 전통 건축의 선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서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기와지붕, 그리고 그 아래 자리한 웅장한 종각. 바로 코리안 벨 가든이다.
이곳은 단순히 한국식 정원을 재현한 공간이 아니다. 한국의 미학, 전통, 그리고 공동체의 마음이 담긴 상징적인 장소다. 종각의 섬세한 단청, 조각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 그리고 정원 전체에 흐르는 고요한 분위기는 미국 땅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작은 한국’처럼 느껴진다. 주변을 산책하는 미국인 방문객들도 종각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본다. “이게 한국의 전통 건축이구나.” 그들의 표정에는 호기심과 감탄이 함께 담겨 있다. 한국인으로서 괜히 마음이 뿌듯해지는 순간이다. 메도우락 보타니컬 가든은 처음에는 그저 조용한 동네 공원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는 자연과 문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특별한 공간이 숨어 있다. 특히 코리안 벨 가든은 한국인의 정체성과 아름다움을 이곳 미국 땅에 깊이 새겨놓은 소중한 장소다. 조용한 산책길을 따라 걸으며 종각을 바라보는 순간, 멀리 떨어진 고향의 향기가 살짝 스쳐 지나가는 듯한 따뜻함이 마음에 남는다.
찾아가는 길은 두 가지가 편리하다. 비엔나(Vienna) 지역의 123번 도로를 따라 뷰러 로드(Beulah Road)로 진입해 약 2.7마일 정도 주택가를 지나면 왼편에 공원이 나타난다. 또는 7번 도로(Leesburg Pike)를 서쪽 방향으로 가다가 702번 뷰러 로드로 들어서 약 1.6마일 이동하면 공원 입구에 도착한다.주차장은 공원 입구 왼편에 넓게 마련되어 있으며, 방문자 센터 건물은 오른쪽에서 바로 눈에 들어온다. 이곳 주차장은 약 300대의 차량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한 규모라, 주말이나 성수기에도 비교적 편리하게 주차할 수 있다. 공원을 찾는 방문객들에게는 접근성과 편의성을 모두 갖춘 공간이다. 메도우락 보타니컬 가든은 북버지니아 공원관리국이 운영하며, 입장료는 어른 8달러(18–54세), 시니어 4달러(55세 이상)이며, 17세 이하 어린이는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방문센터를 지나 아래쪽 언덕으로 내려가면 왼편에는 잔잔하고 아름다운 호수가 펼쳐지고, 오른편에는 한국의 전통미를 담은 코리안 벨 가든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의 역사를 살펴보면 더욱 의미가 깊다. 1980년 여름, 74에이커 규모의 농장을 소유하고 있던 민스(Means)와 캐롤린 웨어(Carolyn Ware) 부부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존하고자 이 땅을 북버지니아 공원관리국에 기부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수년에 걸쳐 추가 토지를 확보하며 공원은 현재 95에이커 규모로 확장되었다. 정원은 1987년 4월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으며, 호스타, 데이릴리, 관상용 벚나무 등 다양한 식물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후에도 꾸준히 개발이 이어져, 지금은 호수와 산책로, 전망대 등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여러 시설이 더해져 지역 주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사랑받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1992년에 문을 연 메도우락 방문자 센터는 기념품 가게와 다양한 이벤트 공간을 갖춘, 공원의 중심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방문객들은 공원 정보를 얻고, 산책 전후로 휴식을 취하거나 기념품을 구매할 수 있다. 메도우락 식물원의 가장 독특한 명소 중 하나는 바로 한국의 전통미를 담은 ‘평화의 종 정원(Korean Bell Garden)’이다. 한국 장인이 직접 제작한 대형 청동 종과 정교한 전통 목조 정자가 조화를 이루며, 미국 내에서 보기 드문 한국 정원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 공간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한국 문화의 정신과 미학을 담아낸 상징적인 장소다. 이 정원을 중심으로 메도우락 식물원은 다양한 행사와 문화 프로그램을 개최하며, 지역 주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사랑받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자연 속에서 산책을 즐기고, 한국의 전통미까지 함께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코리안 벨 가든(Korean Bell Garden)은 2005년 워싱턴 한미문화재단이 주관하여 워싱턴 지역 한인들이 기금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2006년에는 북버지니아 공원관리국으로부터 정식 부지를 배정받았고, 2007년에는 코리안 벨 가든 조형물 건립 승인 체결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후 꾸준히 모아진 기금과 지역사회의 참여를 바탕으로 공사가 진행되어, 2012년 5월 마침내 완공되었다.
코리안 벨 가든에는 워싱턴 한미문화재단이 주관하고, 기금 조성에 참여한 한인들과 여러 기관의 후원 내역이 기념비에 새겨져 있다. 특히 경기도 주민들도 한국 정원 조성을 위해 기부금을 모아 지원했으며, 이들의 참여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미국 사회에 소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러한 공동의 노력 덕분에 코리안 벨 가든은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과 정신을 알리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메도우락 식물원은 버지니아주 10대 공원 중 하나로 선정될 만큼 많은 관광객들에게 사랑받는 명소다. 그러나 최근의 모습을 보면, 주변의 한국 전통 문화재 시설물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채 점점 폐허처럼 변해가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사진만 보아도 한국 정원의 상징적 조형물들이 무성한 수풀에 가려져 본래의 아름다움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 쉽게 느껴진다.
아쉬운 점은, 완공된 지 12년이 흐르는 동안 버지니아 공원관리국의 관리가 다소 소홀해지면서 한국 정원이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종각과 전통 조형물들은 무성하게 자란 나무와 숲에 가려져 본래의 품격 있는 자태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미국은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능한 한 자연 그대로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이곳은 한국 교민들이 피땀 흘려 모은 기금으로 조성한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이다. 그런 소중한 공간이 나무들에 둘러싸여 빛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북버지니아 공원관리국에서 기증받은 4.5 에이커에 잔디를 깔고 그중 1.6 에이커에는 '평화의 종'을 세웠다,
‘평화의 종’ 표지판이 붙어 있는 정면에는 양쪽에 두 개의 석탑이 서 있는데, 그중 오른쪽 석탑은 상부가 부러져 최근에 복원된 상태다. 또한 종각을 둘러싼 소나무 두 그루가 너무 크게 자라 건물 전체를 가리고 있어, 정원의 핵심인 평화의 종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 하단 석탑 옆에 설치된 경기도민 기증(김문수 지사)이라는 주물 현판 역시 무성하게 자란 소나무에 가려 방문객들이 안내문을 확인하기 어렵다. 한국 정원의 상징적 요소들이 이렇게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 더욱 안타깝다.
한글 알파벳 돌판은 한국에서 특별 제작된 것으로, 한국의 전통문화를 기념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설치되었다. 한글은 조선 제4대 임금 세종대왕이 1443년에 창제하고 1446년에 반포한 한국 고유의 문자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쉽게 배우고 사용할 수 있는 문자를 만들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문맹을 줄이고 한국어를 정확하게 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러한 정신을 담은 한글 돌판은 코리안 벨 가든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한국 문화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전하는 상징적 요소가 되고 있다.
한글이 창제되기 전에는 한자를 사용해 한국어를 표기했지만, 한자는 구조가 복잡하고 배우기 어려워 일반 백성들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세종대왕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누구나 쉽게 배우고 사용할 수 있는 문자를 만들기 위해 한글을 창제했다.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 글자를 이루는 독창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자음은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과학이 발전하고 컴퓨터와 휴대전화가 등장하기 전에는 이러한 한글의 우수성과 편리함을 충분히 체감하지 못했지만, 오늘날 우리는 한글이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며 효율적인 문자인지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느끼고 있다. 지금의 한글은 단순한 문자 체계를 넘어, 역사적 가치와 독창성을 인정받아 전 세계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아름다운 문자로 자리 잡았다.
종각 주변에는 한국 국화인 무궁화를 비롯해 소나무, 은행나무 등 한국 전통 정원의 느낌을 받는다.
'평화의 종' 상단에는"Bell of Peace & Harmony'의 표지판이 붙어있다.
평화의 종은 충북 진천군의 진천박물관에서 제작된 작품으로, 높이 2.18m, 지름 1.26m, 무게 약 3톤에 이르는 대형 청동종이다. 2011년에 완성된 뒤 해상 운송을 통해 미국으로 옮겨졌고, 이후 트럭으로 메도우락 보타니컬 가든까지 운반되었다. 안내 직원의 설명에 따르면, 평화의 종은 매년 5월에 공식 타종 행사가 진행된다고 한다.
이 종은 경기도민과 당시 김문수 지사의 기부로 제작되었으며, 김 지사는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했다. 이러한 지원 덕분에 한국의 전통 종 문화가 미국 땅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고, 한국 문화를 알리는 중요한 상징물이 되었다. 종 표면에는 한국과 버지니아를 상징하는 문양들이 새겨져 있어, 두 지역 간의 우정과 문화적 연결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단순한 조형물을 넘어, 한국과 미국을 잇는 문화적 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공원에 세워졌던 네 개의 장승은 한동안 관리 소홀로 자취를 감추어 많은 한인들에게 아쉬움을 남겼지만, 최근 다시 복원되어 제 모습을 되찾았다. 한국 가든에 자리한 이 장승들은 한국의 장승 장인 김종흥 선생이 직접 제작한 작품으로, 한국에서 완성된 뒤 메도우락 보타니컬 가든에 설치되었다. 장승은 본래 죽은 나무에 인간의 얼굴을 새기고, 몸통에는 그 역할과 의미를 적어 넣는 전통 조형물이다. 마을의 수호신이자 경계 표시, 그리고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상징물로 오랜 세월 사랑받아 왔다. 이러한 장승이 미국 땅에 세워져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네 개의 장승 사이사이에 놓여 있는 작은 나무 기둥 네 개는 원래 얼굴 부분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새로 설치된 장승을 보면, 짧은 장승의 몸통이 잘려 나간 듯한 모습으로 보여 마치 기존 장승 사이에 새로운 장승이 추가로 배치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배치는 원래의 전통적 형태와는 다소 다른 인상을 준다.
담벼락 안쪽에는 연못도 있다. 한국의 고유문화 시설물을 옮겨온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장승 주변에는 우리나라의 국화인 무궁화가 활짝 피어 한국 정원의 분위기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전통 조형물과 무궁화가 어우러진 풍경은 한국 문화의 정취를 미국 땅에서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장면이다.
소나무로 가려진 평화의 종 모습
전통 목조 정자인 ‘하모니 홀(Harmony Hall)’은 지금 나무들에 거의 완전히 가려져 그 아름다운 자태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주변의 나무들을 적절히 정리해 정자 전체가 시원하게 드러난다면, 이곳은 또 하나의 훌륭한 사진 명소가 될 수 있을 텐데… 그런 가능성이 묻혀 있는 듯해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한국 정원을 관광하는 사람들..
호수에 있는 전망대
코리안 벨 가든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면, 메도우락 보타니컬 가든의 또 다른 매력이 펼쳐진다. 바로 정원의 중심을 이루는 호수(Lake Caroline)와 그 주변에 자리한 전망대와 정자다. 이곳은 계절마다 전혀 다른 표정을 보여주는 곳이라,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풍경을 만나는 기분이 든다.
호수에 가까워질수록 공기가 한층 더 차분해진다. 잔잔한 수면 위로 나무들이 비치며 만들어내는 반영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다. 바람이 거의 없는 날에는 하늘과 숲이 그대로 호수 속으로 내려앉은 듯 고요함이 깊어진다. 자연이 만들어낸 이 거울 같은 장면 앞에서는 누구라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호수 위로 길게 뻗은 나무 데크를 따라 걸으면, 물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 데크 끝에 자리한 작은 전망대와 정자는 잠시 쉬어가기 좋은 장소다. 벤치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감싸준다. 도시 근교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요하다.
글/ 사진 孫永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