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여대 사태를 보며
최근 동덕여대 사태를 보며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한국 페미니즘의 과격화에 따른 고립과 종말이다.
사실 남성중심사회의 희생자로서 여성을 바라보는 것은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여성들이 그런 역사에 분노하고 비판의 시각을 내놓는 것은 필요한 일이었다. 이런 각성 위에 문학, 영화, 미술 등 예술 분야에서 우리는 여성들의 풍요로운 성과를 만나고 있다. 필요한 일이었고 당연한 일이다. 한편 정치, 경제 등 아직도 남녀평등을 실현해 나가야 할 과제가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남성중심사회의 피해자로서의 여성에 대한 공감과 동정 때문에 일베 이후 메갈의 험오와 조롱, 그리고 차별적 분노에 대해서도 꽤나 너그러웠다. 상호 혐오가 양산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한편 미투운동의 파도 속에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굵직한 사건들(안희정, 박원순)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에서는 피해를 주장하는 피해자 여성에 대한 의문과 반론 자체가 점점 어려워졌다. 당사자가 사라지고 변호사와 대리인이 내세운 주장은 ‘2차 가해’의 네이밍이었다. 일방의 주장만 건재하고 담론이 사라진 공간이 우리들의 광장이 되었다. 여성은 피해자였고 남성은 가해자였다. 성적 심판이 이뤄졌다. 그렇게 십여 년이 지났다. 페미 진영의 엄포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검열을 하고 입을 다물었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감이 한편으로 쌓여갔다.
정의당과 녹색당의 몰락은 이들 정당이 비록 노동과 녹색의 이름을 내건 정당임에도 권력화된 페미니즘의 이미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왜 페미니즘은 자유의 담론이 아니라 억압의 담론이 되었을까? 페미니즘의 넓은 저변은 충분히 노동과 녹색을 포함할 수 있도록 넓지만, 왜 한국에서는 오히려 노동과 녹색의 영역을 좁히는 역할을 하게 되었을까? 이 지점을 우리는 성찰해야 한다. 안타까운 지점이다.
동덕여대 사태를 보면서 여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우리는 십여 년 더 밟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성의 피해자 의식과 보복심리가 남성혐오와 만나고 ‘피해자 여성/가해자 남성’의 도그마가 강화되고 사회적으로 집단화되어 권력화된 페미니즘의 한 축을 이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여대는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지금의 여대가 한국 페미니즘의 보루이자 영토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동덕여대 총학이 내세운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는 결기 있는 문구는 쇄국으로 패망하는 조선의 슬픈 역사와 새들의 낙원이었던 갈라파고스를 떠오르게 한다. 아마존의 전설처럼 여대를 여성들만의 성으로 만들고 도시여성 권력의 봉토로 삼겠다는 말로도 들린다.
물론 동덕여대의 사태는 여러 결과 맥락을 아우르고 있을 것이다. 여대를 페미니즘의 보루니 영토이 하는 말이 매도와 억측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 동덕여대도 다양한 사람과 시각이 여전히 공존하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에 대해 편향된 꼰대의 시각이라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십여 년을 지내오며 나는 한국 페미니즘에 대한 심경의 변화를 느꼈다.
동덕여대의 사태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 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다.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