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주여! 확실히 듣거라! 심상(心相)이라는 것은
47) 탐심(貪心), 무탐심(無貪心), 진심(瞋心), 자심(慈心), 치심(痴心), 지심(智心), 결정심(決定心), 의심(疑心), 암심(暗心), 명심(明心), 적집심(績集心), 투심(鬪心), 쟁심(諍心), 무쟁심(無諍心), 천심(天心), 아수라심(阿修羅心), 용심(龍心), 인심(人心), 여심(女心), 자재심(自在心), 상인심(商人心), 농부심(農夫心), 하심(河心), 피지심(陂池心), 정심(井心), 수호심(守護心), 간심(慳心), 구심(狗心), 이심(狸心), 가루라심(迦樓羅心), 서심(鼠心), 가영심(歌詠心), 무심(舞心), 격고심(擊鼓心), 실택심(室宅心), 사자심(獅子心), 오심(烏心), 나찰심(羅刹心), 자심(刺心), 굴심(窟心), 풍심(風心), 수심(水心), 화심(火心), 니심(泥心), 현색심(顯色心), 판심(板心), 미심(迷心), 독약심(毒藥心), 견색심(羂索心), 계심(械心), 운심(雲心), 전심(田心), 염심(鹽心), 수미등심(須彌等心), 해등심(海等心), 혈등심(穴等心), 수생심(受生心)이다.
비밀주여! 탐심이란 다시 말해서 염법(染法)에 수순(隨順)하는 것이다. 무탐심이란 다시 말해서 무염법(無染法)에 수순하는 것이다. 진심(瞋心)이란 다시 말해서 로법(怒法)에 수순하는 것이다. 자심(慈心)이란 다시 말해서 자법(慈法)에 수순하는 것이다.
치심(癡心)이란 다시 말해서 불관법(不觀法)을 수습하는데 수순하는 것이다. 지심(智心)이란 다시 말해서 수승증상법(殊勝增上法)에 수순하는 것이다. 결정심(決定心)이란 다시 말해서 존(尊)이 교명(敎命)하시는 말씀과 같이 봉행하는 것이다. 의심(疑心)이란 다시 말해서 항상 부정(不定)등의 사업을 수지(收持)하는 것이다. 암심(闇心)이란 다시 말해서 무의려(無疑慮)의 해(解)를 생하는 것이다. 명심(明心)이란 다시말해서 불의려법(不疑慮法)에서 의려(疑慮)없이 수행하는 것이다. 적취심(績聚心)이란 다시 말해서 무량을 하나로 하는 성질을 가지는 것이다. 투심(鬪心)이란 다시 말해서 상호간에 시비를 가리는 성질을 가지는 것이다. 쟁심(諍心)이란 다시 말해서 자기에게 시비(是非)를 생하는 것이다. 무쟁심(無諍心)이란 다시 말해서 시비를 함께 버리는 것이다. 천심(天心)이란 다시 말해서 마음의 념(念)에 따라서 성취하려고 하는 것이다.
아수라심(阿修羅心)이란 다시 말해서 생사에 머물기를 바라는 것이다. 용심(龍心)이란 다시 말해서 광대한 자재(資財)를 사념하는 것이다. 인심(人心)이란 다시 말해서 이타를 사념하는 것이다. 여심(女心)이란 다시 말해서 욕법(欲法)에 수순하는 것이다. 자재심(自在心)이란 다시 말해서 사유해서 자신이 일체의 의(意)와 같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상인심(商人心)이란 처음에 수취(收聚)한 뒤에 분석하는 법에 순수(順修)하는 것이다. 농부심(農夫心)이란 다시 말해서 처음에 널리 듣고, 뒤에 구하는 법에 수순하는 것이다. 하심(河心)이란 다시 말해서 이변(二邊)에 의지하는 법에 수순하는 것이다. 피지심(陂池心)이란 다시 말해서 목이 타서 염족(厭足)이 없는 법에 수순하는 것이다. 정심(井心)이란 다시 말해서 이와 같이 사유하는 것이 깊고도 깊다. 수호심(守護心)이란 다시 말해서 오직 이 마음만이 진실이며, 나머지는 부실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간심이란 다시 말해서 자기만을 위하고, 타자에게 주지 않는 법에 수순하는 것이다. 이심이란 다시 말해서 서진법(徐進法)에 수순하는 것이다. 구심(狗心)이란 다시 말해서 적은 부분을 얻고, 만족하는 것이다. 가루라심(迦樓羅心)이란 다시 말해서 붕당우익(朋黨羽翼)의 법에 수순하는 것이다. 서심(鼠心)이란 다시 말해서 모든 계박(繫縛)을 끊으려고 사유하는 것이다.
가영심(歌詠心), 무심(舞心)이란 다시 말해서 이와 같은 법을 수행, 자신이 마땅히 상승, 여러가지로 신변(神變)하는 것이다. 격고심(擊鼓心)이란 다시 말해서 이 법에 수순해서 자신이 마땅히 법고(法鼓)를 쳐야하는 것이다. 실택심(室宅心)이란 다시 말해서 스스로 몸을 지키는 법에 수순하는 것이다. 사자심(獅子心)이란 다시 말해서 일체에 거약(怯弱)이 없는 법을 수행하는 것이다. 심이란 다시 말해서 항상 어두운 밤에 사유하는 것이다. 오심(烏心)이란 일체처에 경포(驚怖), 사념하는 것이다. 나찰심(羅刹心)이란 다시 말해서 선(善)중에서 불선(不善)을 발기하는 것이다. 자심(刺心)이란 다시 말해서 일체처에서 악한 일을 발기하는 성질을 가지는 것이다. 굴심(窟心)이란 다시 말해서 굴에 들어 가는 법에 수순하는 것이다. 풍심(風心)이란 다시 말해서 일체처에서 두루 발기하는 성질을 이루는 것이다. 수심(水心)이란 다시 말해서 일체의 불선(不善)을 세탁(洗濯)하는 법에 수순하는 것이다. 화심(火心)이란 다시 말해서 치성(熾盛)하는 불꽃을 성질로 하는 것이다. 니심(泥心), 현색심(顯色心)이란 다시 말해서 그와 유사한 성질로 하는 것이다. 판심(板心)이란 다시 말해서 양(量)에 따라서 법에 수순, 여선(餘善)을 버리는 것
48)이다. 미심(迷心)이란 다시 말해서 집지(執持)하는 바와 생각하는 바가 다른 것이다.
독약심(毒藥心)이란 다시 말해서 무생분법(無生分法)에 수순하는 것이다. 견색심이란 다시 말해서 일체처에서 자신이 속박되는 것을 성질로 하는 것이다. 계심(械心)이란 다시 말해서 두 발로 지주(止住)함을 성질로 하는 것이다.
운심(雲心)이란 다시 말해서 항상 강우(降雨)를 사념하는 것이다. 전심(田心)이란 다시 말해서 항상 이와 같이 자신에게 맡겨진 것을 수습하는 것이다. 염심(鹽心)이란 다시 말해서 사념한 것을 또하시 사념하는 것이다. 제도심이란 다시 말해서 오직 이와 같이 삭제하는 법에 의지하는 것이다. 미려등심(彌慮等心)이란 다시 말해서 항상 항상 사념, 마음이 고거(高擧)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해등심(海等心)이란 다시 말해서 항상 이와 같이 자신에게 수용, 주하는 것이다. 혈등심(穴等心)이란 다시 말해서 앞에서 결정, 그 뒤에는 다시 변경한하는 것을 특성으로 하는 것이다. 수생심(受生心)이란 다시 말해서 제행업(諸行業)을 수습, 거기에서 생하는 마음이 이와 같이 같은 성질이다.
비밀주여! 일(一), 이(二), 삼(三), 사(四), 오(五), 재차 헤아려 보면 그야말로 백육십심(百六十心)이 있다. 세간의 삼망집(三妄執)을 초월, 출세간의 심(心)을 생한다. 다시 말해서 오직 온무아(蘊無我)를 요해, 근(根)과 경계(境界)에 머물러 수행, 업번뇌(業煩惱)의 주항(株杭), 무명의 종자인 십이인연(十二因緣)이 생하는 것을 제거, 건립(建立)의 종(宗)등을 떠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심적(湛寂)은 일체외도(一切外道)가 알 수 없는 것이다. 일체의 과(過)를 떠난다고 선불(先佛)은 말씀하셨다.
비밀주여! 그 출세간의 심(心)은 온중(蘊中)에 주해서 이와 같은 혜(慧)를 수행(隨生)하는 것이다. 만약 온(蘊)등에서 이저(離著)를 발기하면 마땅히 취말(聚沫), 부포(浮泡), 파초(芭蕉), 양염(陽焰), 환(幻)등을 관찰, 해탈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온(蘊), 처(處), 계(界), 능집(能執)이란 모든 법성(法性)을 떠난 것이다. 이와 같이 적연계(寂然界)를 증득는 것을 출세간심(出世間心)이라고 한다. 비밀주여! 그 위(違)와 순(順)등 팔심(八心)의 상속, 업과 번뇌의 굴레를 떠나는 것이 일겁(一劫)
49)을 초월하는 유지행(瑜祗行)
50)이다.
또다시
51) 비밀주여! 대승의 행이 있다. 무연승(無緣乘)의 심을 발현하면 법에 아성(我性)이 없어진다. 그가 그 옛날 이와 같이 수행한 것과 같이 온(蘊)의 아뢰야(阿賴耶)를 관찰, 자성이 환(幻), 양염(陽焰), 선화륜(旋火輪), 건달바성(乾闥婆城)과 같다고 본다. 비밀주여! 그가 이와 같이 무아를 버리면
52) 심주(心主)는 자재(自在)해지고, 자심(自心)의 본불생(本不生)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비밀주여! 심은 전후 불가득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자심의 성을 아는 것이 이겁(二劫)을 초월하는 유지행(瑜祗行)
53)이다. 또 다시 비밀주여! 진언문에서
54) 보살행을 수습하는 제보살은 무량무수백천구지나유다겁(無量無數百千俱지那庾多劫)에 적집하는 무량의 공덕지혜와 더불어 제행(諸行)을 수습하는 무량의 지혜방편을 모두 성취한다.
이것은 천인세간(天人世間)이 귀의하는 바로써 일체의 성문과 비지불지(地)는 물론 석제환인(釋提桓因)등이 친근, 경례한다. 다시 말해서 공성은 근과 경(境)을 떠나 무상(無相), 무경계(無境界)로써 모든 희론(戱論)을 초월한다. 등허공무변(等虛空無邊)의 일체불법은 이것에 의해서 상속, 생기한다. 유위(有爲)와 무위계(無爲界)를 원리(遠離), 모든 조작(造作)을 떠나고, 안(眼), 이(耳), 비(鼻), 설(說), 신(身), 의(意)를 떠나 극무자성심(極無自性心)을 생한다.
비밀주여! 이와 같이 불(佛)은 초심(初心)을 성불(成佛)의 인(因)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업번뇌(業煩惱)에서 해탈하지만 업번뇌의 구의(具依)이다. 세간의 종(宗)을 받들어서 항상 공양해야 한다.
또 다시 비밀주여! 신해행지(信解行地)
55)에서 삼심(三心)을 관찰한다. 무량한 바라밀다의 혜를 가지고, 사섭(四攝法)을 관찰한다. 신해지(信解地)는 무대(無對), 무량(無量), 불사의(不思議)
56)이다. 십심(十心)을 건립, 무변의 지(智)를 생한다. 나는 일체제유(一切諸有)의 소설(所說)을 이것에 의해서 얻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자(智者)는 마땅히 이 일체지(一切智)의 신해지(信解地)를 사유, 또 다시 일겁(一劫)을 초월, 이 지(地)에 승주(勝住)해야 한다. 이 사분(四分)의 일(一)
57)의 신해(信解)를 도탈(度脫)
58)한다."
첫댓글 단어의 어휘가 생소한것들이 있어서 해석하기가 다소 시간이 걸리네요. 밀교에서만 쓰이는 모르는 단어들은 건너뛰면서 해석해야할거 같네요.
보리심(菩提心)21)을 인(因), 대비(大悲)를 근(根), 방편(方便)을 구경(究竟)으로 한다. 비밀주여! 무엇이 보리냐하면 실로 자심(自心)을 아는 것이다. 비밀주여!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그의 법으로써 조금도 얻어야 할 것이 없다. 즉22) 허공의 상(相)은 보리이며, 지해자(知解者)도 없고, 또한 개효(開曉)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23) 보리는 무상(無相)이기 때문이다. 비밀주여! 제법은 무상(無相)이며, 허공상(虛空相)이다."
무엇이 보리냐 하면 실로 자심을 아는것이다. 보리는 나를 아는것이다. 보리는 기의신심을 아는 것이다
보리심(菩提心)21)을 인(因), 대비(大悲)를 근(根), 방편(方便)을 구경(究竟)으로 한다.
나를 아는것을 인으로 하고 미타를 근. 방편을 깨달음으로 한다. 나를 알고 항상 미타를 기준으로 간다.
보리는 무상(無相)이기 때문이다. 비밀주여! 제법은 무상(無相)이며, 허공상(虛空相)이다."
나는 무상하다. 제법은 무상하고 허공상이다.
심은 안계(眼界)에 주하지 않고,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계(意界)에도 주하지 않는다. 보이고 현현하는 것도 아니다.
심은 안이비설신의의 육식에 있지않다. 보이고 현현하는것이 아니다.
일심으로 확실히 들어야한다. 백육십심(百六十心)35)을 초월, 광대한 공덕을 생한다. 그 성질은 항상 견고하다. 거기서 보리가 생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량함이 허공과 같다. 오염되지 않고 상주한다. 제법도 움직일 수 없다. 본래부터 적정(寂靜)하고 무상(無相)이다. 무량의 지(智)를 성취, 정등각이 현현한다. 공양행(供養行)36)을 수습, 여기에서 처음으로 발심한다."
일향전념무량수불의 일심이 있어야 보리가 생긴다.중생은 백육십가지의 망령된 마음이 있다. 그것을 초월해서 보리가 생기는것이다. 공양행을 수습, 여기에서 처음으로 발심한다. 부처님께 공양하는 마음에서 처음으로 발심한다. 부처님께 공양하는것이 제일 중요함..
언젠가 일법(一法)의 상(想)이 생할 때가 있다. 말하자면 지제(持齊)이다. 그 소분(小分)을 사유(思惟), 환희를 일으켜서 하나 하나 수습해야 한다.
부처의 마음을 알때 일법이 생긴다. 환희를 일으켜서 하나하나 수습해야됨. 그거 수습할려고 경전보고 있음..
무아를 버리면52) 심주(心主)는 자재(自在)해지고, 자심(自心)의 본불생(本不生)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비밀주여! 심은 전후 불가득이기 때문이다.
무아까지 버리면 자심의 본생불을 깨닫게 된다. 중생은 부처되기 불가능하다는 말같네요. 무아까지 버려라. 상상이 안가는 말인거 같습니다.
중생이 부처되기는 불가능하다는것은 알았는데 밀교에서 종지부를 찍네요. 부처가 될려면은 무아까지 버려라라고 확실한 경계표시를 하는거 같음.
물론 무아를 버린다고해서 부처가 되는것은 아님. 무아를 버리는 경계도 보살의 경계일것임.
공성은 근과 경(境)을 떠나 무상(無相), 무경계(無境界)로써 모든 희론(戱論)을 초월한다.
희론을 초월할려면은 대자비로써 중생을 위해 영겁을 목숨을 내놓아함. 대보살의 경계. 보살도 부처임. 부처는 나타나지 않으니요. 비로자불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부처는 보살로 중생에게 모습을 보이십니다. 내보이시지않는것은 부처요. 부처가 내보이신것은 보살. 보살은 부처였다.
비로자나불이 부처요 비로자나불이 보살로 화현하신 것은 석가모니부처님..
아미타불이 부처요 아미타불이 보살로 화현하신 것은 관세음보살.
석존의 국토 삼라만상이 비로자나불로 가득차있다.
관세음보살의 국토 삼라만상이 아미타불로 가득차있다.
깨달은 중생은 죽어서 극락왕생한다.
꺠달은 중생은 석존의 국토가 비로자나불의 국토인 불국토임을 안다.
법신불은 비로자나부처님과 아미타부처님이시구 화신불은 석가모니부처님과 관세음보살이다.
사바세계극악중생을 구제하시기 위해서 두분의 법신불과 두분의 화신불이 오셨으니 초울트라파워로 본원력을 내뿜고 있는것이다.
그만큼 사바세계극악중생 구제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