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주 - 왕수인 철학
왕수인 수업을 들으며 다양한 생각들을 할 수 있었는데 가장 먼저 왕수인을 알려면 주희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희의 대학을 보면 격물에 대한 이해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주희는 격을 궁리하고 이치를 연구한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격을 연구한다’는 것은 ‘사물의 이치’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곧 주희의 관점인 것입니다.
그러나 왕수인은 ‘바르지 않은 것을 바르게 하는 것’ 이 바로 격물이라고 보았습니다.
또한 대학의 팔조문에 있는 것의 해석을 다르게 보았습니다.
왕수인은 기본적으로 맹자를 존중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맹자는 생각하지 않아도 알고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양지양능인 것입니다. ‘양지 양능’이라는 것은 내가 경험하지 않고도 이미 내 안에 선량한 앎과 희망이 있다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강의 중간에 교수님께서 왕수인에 대해 강의해 주시며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를 들려주셨습니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는 고등학교 때 처음 접했는데 시의 의미가 아름답게 느껴져 기억해두고 있었는데 대학교에 와서 시를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고 반가웠습니다. 동시에 어떤 의미에서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를 들려주는지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이 시속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구절에 주목하여 보았을 때
교수님께서 이 시를 들려주신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와 왕수인의 사상을 관련시켜 생각해 보면
아름다운 꽃이 있을 때 이 꽃이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내가 꽃한테 관심을 갖기 전에는 나에게 의미 없는 꽃이라는 거이고 내가 꽃에 관심을 가져야 비로소 그 꽃은 나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또 한 가지 사례로 왕수인이 제자들과 함께 무등산을 오르는데 왕수인의 제자가 왕수인에게 한 물음을 던집니다.
그 자세한 내용은 심위무물 즉 마음 밖에 사물이 없다고 하였는데 꽃은 마음밖에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에 대한 해석은 마음 밖에 꽃이 있는 건 분명한데 그런데 여기서 저 꽃을 마음으로 보지 않았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객관적인 사물로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내가 마음을 기울어야 의미가 있다는 것임.
즉 나의 마음이 향했을 때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멋지고 훌륭한 친구가 내 주위에 있어도 내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멋짐과 훌륭함은 나에게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무엇이든 내가 관심을 가지고 마음이 향했을 때 그 사람은 나의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행함은 앎의 완성이라고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행합일의 핵심 내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내 마음의 이치이고 내 마음은 고요한 것이 아닌 움직이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제 주위의 아름답고 훌륭한 존재들에 대해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것들에 대해 제가 마음속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또 아름답다고 생각하기에 그것들은 저에게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또한 제 주위에 아무리 아름답고 멋진 것이 있어도 제가 그러한 존재들에 관심 갖지 않고 바라보지 않는다면 적어도 나에게 있어 그러한 존재들은 아무런 의미 없는 존재들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나를 둘러싼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고 인식하고 또 마음이 향하도록 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양지 양능에서 양지를 이루는 것이 치양지입니다.
여기서 왕수인은 지와 행이 분리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쉽게 말해 지와 행이 애초에 분리가 안 되는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왕수인은 지라는 것은 행함의 시작이 행은 행함의 실현이라고 보는 것이고 결국 아는 것도 행함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토론 주제 : “지”( 知)와 “행”(行)의 선후 문제는 줄곧 이학과 심학의 논쟁거리였으며, 이학을 대표로 하는 주희는 지선행후(知先行後), 즉 이론을 이해한 후 실천에 옮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심학으로 대표되는 왕수인은 지행합일(知行合一), 즉 지행은 행만큼 중요하며 둘 다 분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실생활에 적용한다면 누구의 입장을 지지하는가?
7주 차 토론 주제에 대한 저의 입장은 왕수인을 지지하는 입장입니다.
저는 지행에 관련한 부분에서 지와 행의 선후를 정하여 행동하는 것보다 지와 행은 선후도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 아닌 두 가지의 개념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어느 하나를 먼저 하는 것에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실생활과 관련지어 더욱 깊게 생각해 본다면 지와 행은 실생활에 있어 모두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하나의 선후도를 정하기 보다 두 가지 모두 생활 속에서 꼭 필요한 것들이기에 지행은 분리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왕수인의 입장에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