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무산(巫山) 소삼협(小三峽)과 마도하(馬渡河) 소소삼협(小小三峽)
좁고 깎아지른 천하절경 구당협은 8km 정도의 협곡인데 깎아지른 기암괴석에 감탄사가 절로 난다.
이 협곡을 빠져나가면 무산(巫山)이라는 도시가 나타나는데 이곳에는 대영하(大寧河)라는, 장강(長江)으로 흘러드는 또 다른 지류가 나타난다.
이 대영하 지류를 따라 들어가면 용문협(龍門峽), 파분협(巴雰峽), 적취협(滴翠峽)이라는 천하절경의 좁은 협곡(峽谷)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소삼협(小三峽)이다.
적취협(滴翠峽)에서 다시 오른쪽 지류인 마도하(馬渡河)를 따라 들어가면 삼장협(三掌峽), 진왕협(秦王峽), 장탄협(長灘峽)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다시 소소삼협(小小三峽)이라 부르며, 이곳의 경치 또한 기가 막힌 절경이다.
무산 앞에서는 소삼협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크루즈 유람선은 두고 1층짜리 작은 배로 갈아타고 대영하(大寧河)를 거슬러 올라가는데 머리를 젖혀야 쳐다보이는 기기묘묘한 형상들의 산과 절벽은 까마득히 하늘에 닿아있다.
몇 시간을 가도 인적이 없는 협곡의 연속인데 이따금 강가 바위틈으로 황금빛 원숭이가 뛰어다니는 모습도 보인다.
마침 영어를 잘하는 50대의 중국인이 있어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 천험(天險)의 계곡 속 까마득하게 쳐다보이는 절벽 중간에 동굴이 보이는데 저 동굴 속에서 1.500여 년 전 삼국시대(吳蜀魏)의 것으로 보이는 나무 관(木棺)과 인골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장강삼협 크루즈 선상 / 천하절경 소삼협
소삼협 마지막 협곡인 적취협(滴翠峽) 인근 이르면 강가 바위절벽 아래 정자각 같은 집이 있고 나가채(羅家寨)라는 글씨가 보이는데 그곳에서 누군가 피리를 구슬프게 부는 소리가 협곡을 울린다.
이 부근에는 강물에서 10여m 위, 바위 절벽을 따라 밧줄로 매단 다리(棧道)가 있는데 4~5km는 족히 되겠다.
그 옛날 하늘을 나는 새도 넘나들기 어려웠다는 이른바 촉도(蜀道:蜀나라로 가는 길)이다.
이백(李白)의 시(詩) ‘촉도난(蜀道難)’에,
‘촉도지난 난어상청천(蜀道之難 難於上靑天)’ 이라 했으니 풀이하면,
‘촉나라로 가는 길이 험난하여 푸른 하늘 오르기보다 어렵다.’라는 의미가 되겠다.
중간에 무너져 내린 곳도 보였는데 맨 끝부분에 오자 시멘트로 다시 만들고 있었다.
절벽 밑에 배를 대고 시멘트를 비벼서 올리고...
참 대단하다 싶고, 이것도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려나 보다는 생각이 든다.
촉도(蜀道) / 대창고진(大昌古鎭)
소삼협을 지나 대창고진(大昌古鎭)에 들렀는데 이곳은 근처에 있던 1.000여 년 전의 옛 진(鎭)의 모습으로 삼협댐을 막으면서 수몰될 형편이 되자 이곳에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하는데 재현하여 놓은 진의 모습이 어쩐지 어설프고, 기념품 가게와 간단한 요기꺼리를 파는 가게만 을씨년스럽게 벌어져 있다. 이곳에서 삼국시대부터 군인들이 전투식량으로 먹기 시작했다는 이 지역의 자랑 두부(豆腐)를 맛보았는데 그런대로 맛이 괜찮았다.
다음날, 배에서 눈을 뜨자 배는 소삼협(小三峽)을 도로 내려오다가 소소삼협(小小三峽)이 시작되는 마도하(馬渡河) 입구에 도착했는데 배에서 내려 노를 젓는 20인승 기다란 용선으로 옮겨 타고 계곡으로 들어간다.
중간에 잠깐 노를 젓기는 했지만, 모터가 달린 배라 곧 제법 빠르게 달린다.
이곳 경관도 기가 무척 아름다운데 20여 분 달리다가 대석곡(大石谷)이라는 곳에서 배를 내리란다.
내가 탔던 20인승 용선(龍船) / 대석곡 잔도(大石谷 棧道) 1, 2
이곳에는 자그마한 공연장도 있고 집도 몇 채 있다. 이곳에서는 배에서 내려 거의 맞붙을 것 같은 좁다랗고 까마득한 바위협곡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물 위에 놓은 일렁거리는 부교(浮橋)를 따라 들어가다 다시 계단을 따라 절벽으로 올라간다.
절벽 중간쯤 아슬아슬한 잔도(棧道)를 걷는 코스인데 정말 스릴이 넘치고 경치가 기가 막힌다.
나이 먹은 10여 명 중국 늙은이들은 결국 부교 중간에서 포기하고 돌아선다. 잔도를 따라 걷다보면 다시 선착장 부근으로 나오게 되는데 공연장에서는 관광객에게 소박한 고전극(古傳劇)을 보여준다.
돌아오는 용선에서 어쭙잖은 영어를 구사하는, 화학선생이라는 뚱뚱한 50대의 중국인은 한국, 일본은 모두 중국이 뿌리라며 침을 튀긴다. 얼빠진 국수주의자 같으니라구...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이곳의 물빛은 양쯔강 원류의 흙탕물이 아니라 너무도 푸르고 맑아서 내가 이태리어로 ‘산타루치아’를 불렀더니 그 멍청한 중국 화학교사 놈 돼지 멱따는 소리로 따라 부른다. 그것도 중국어로....
장강삼협은 구당협(瞿塘峽), 무협(巫峽), 서릉협(西陵峽)인데 밤에 지나쳤을 무협(巫峽)은 춘추전국시대의 대시인 굴원(屈原)의 고향이고, 또 근처의 향계하(香溪河)는 중국의 4대 미녀로 꼽히는 왕소군(王昭君)의 고향이다.
한나라 원제(元帝/기원전 1세기)의 궁녀였던 왕소군(王昭君)은 월(越)나라 출신의 서시(西施), 춘추전국시대의 초선(貂嬋), 당 현종의 왕비 양귀비(楊貴妃)와 더불어 중국 고대 4대(四大) 미녀로 꼽히는데 서시는 침어(沈魚), 왕소군은 낙안(落雁), 초선은 폐월(閉月), 양귀비는 수화(羞花)라는 칭송을 받았다.
이들의 미모를 두고 이야기꾼들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는데...
그녀들이 너무나 아름다워,
♤왕소군(王昭君)- 기러기가 날개짓을 잊고 땅에 떨어졌다<낙안(落雁)>
♤서시(西施)-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고 물에 가라앉았다<침어(沈魚)>
♤초선(貂嬋)- 달이 부끄러워 구름 사이로 숨었다<폐월(閉月)>
♤양귀비(楊貴妃)- 꽃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수화(羞花)>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또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시(詩)와 술(酒)과 달(月)을 너무나 사랑했던 천재시인 이태백(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의 고향이 이곳인지 만주(万州) 부근에서는 ‘시선이백지향(詩仙李白之鄕)’이라는 표지판도 보인다.
용선(龍船) 경주 / 이백(李白) / 굴원(屈原)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왕족으로 대시인이자 정객(政客)이기도 했던 굴원(屈原)은 수많은 명시를 남기는데 정적(政敵)으로부터 모함을 당해 여러 번 유배를 당한다.
결국, 유배지에서 돌을 끌어안고 강물(汨羅水:멱라수)에 뛰어들어 자살하였다.
대시인의 결백과 시재(詩才)를 아낀 백성들은 수십 척의 용선을 타고 시체를 찾았으며, 또 시신이 물고기에 훼손될까 봐 작은 떡을 만들어 물에 뿌렸다고 한다.
지금도 매년 5월 5일이면 강물에 떡을 뿌리고 용선(龍船)경주를 하는 풍습이 남아있는데 굴원의 죽은 날을 애도하여 생겨난 풍습이라고 하며 중국에서는 이것이 단오제(端午祭)의 효시(嚆矢)로 본다고 한다.
그러나 실은 내 고향 강릉의 단오제(천년단오)가 인류문화 단오(端午)의 시작으로 이것 보다 훨씬 옛날이다.
이백, 굴원과 왕소군의 고향을 지척에 두고 직접 찾아가 그들의 흔적을 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저녁에 옆 선실에서 누가 부는지 플륫으로 위모레스크, 토셀리의 세레나데를 연주한다.
실력은 별로였지만 분위기 탓인가 아름답게 들린다.
유람선(遊覽船)에서의 2박 3일, 나름대로 멋진 여행이었고 특히 서양인들과 친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나의 어설픈 프랑스어, 스페인어도 몇 마디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내가 불렀던 아일랜드 민요 몰리 말론(Molly Malone)과 자장가 아일리쉬 룰라바이(Irish Lullaby) 덕분인지 한결 가까워져서 E-mail을 주고받으며 사진을 보내주기로 하였다. 이렇게 멋진 여행이 나의 장강삼협(長江三峽) 크루즈 유람이었다.
<3> 산샤(三峽)댐과 의창(宜昌)
산샤(三峽)댐 / 댐 기념공원
장강 크루즈여행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이 삼협(三峽)댐이다. 이 산샤댐으로 인하여 장강(長江/揚子江)은 무수한 계곡과 마을이 물 밑으로 가라앉았고, 엄청나게 많은 호수도 생겨났다고 한다. 따라서 수만 톤급 큰 크루즈(Cruiz) 선이 강물에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에서 제일 크다고 중국인들이 자랑하는 삼협(三峽)댐은 1994년에 착공하여 2002년에 완공되었다고 하는데 어마어마한 규모의 댐으로, 수력발전량이 22.500 메가와트로 세계 1위라고 한다.
그러나 2008년 진도 8의 강진(强震)으로 사망자 7만, 부상자 37만, 행방불명자 2만 명을 기록하였던 쓰촨성(四川省)의 대지진은 이 삼협댐에 가두어 놓은 물의 압력으로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니 인간의 욕심이 초래한 재앙이었다고 할 것이다.
쓰촨성 만주(万州)에서 시작되었던 장강삼협 2박 3일의 크루즈여행은 호북성(湖北省) 의창(宜昌)의 삼협댐(三峽坝)에 이르러 비로소 끝을 맺게 되었고 이곳에서 댐 관광 전용버스로 갈아타고 댐 관광길에 나섰는데 여기서도 안전을 위하여 철저한 소지품 검사를 한다.
댐 완공 기념공원과 전시관, 댐의 위와 아래 등 몇 군데에 차를 세우고 10여 분씩 관광시간을 준다.
댐 관광을 끝으로 곧바로 버스로 갈아타고 의창(宜昌)으로 향했는데 3시간 정도 걸린다.
의창에서 장가계(張家溪)로 가는 열차표를 받았는데 3등 칸으로 저녁 11시 57분 출발이다.
분명히 계약할 때는 침대차라고 했는데 이곳 가이드가 장난질을 친 모양이다.
항의해서 침대차로 바꾸어 볼까 하다가 그 악명 높은 중국의 3등 열차를 경험하여 볼 작정으로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중국어를 못해 따질 형편도 못되었지만.....
출발까지 3~4시간 여유가 있어 지도에 있는 옥천사(玉泉寺)를 다녀올 작정으로 사람들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손짓 발짓으로 물었더니 가는 데만 택시비가 250元(5만 원) 정도 되고 열차 시간 전에 돌아오기도 어렵다고 하여 포기하고 시장 구경을 나섰다.
시장통은 구질구질하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지만, 중국인들 삶의 현장을 체험해 볼 겸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시장 구석 가판대 옆의 좁은 나무의자에 앉아 쇠고기와 야채를 다져넣은 빵 두 개에 5元(천원), 콩을 직접 갈아주는 두유 한 컵에 2元(400원)을 주고 사서 저녁으로 먹었는데 괜찮은 편이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거리 가판대 음식점의 간판에 한국 야채를 쓴다고 써 놓았다. 한국생채(韓國生菜).... 그런데 저 한국(韓國)이 우리나라를 칭하는 것이 맞나???
한 달 동안 중국을 여행하며 느낀 점 중 하나는 중국인들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이란 생각이 든다. 아무 곳에서도 가래침 돋우어 뱉고, 웃통을 벗어 던지고, 먹고 마시고, 거침없이 떠들어대고, 길거리 아무 곳에서나 둘러앉아 카드하고 마작하고... 심지어 식당에서 내가 식사를 하고 있는데 내 쪽으로 여자아이의 다리를 벌려 안고 소변을 보게 한다.
또 가는 곳마다 바글거리는 중국인들을 보며 이 엄청난 인구가 무진장한 지하자원과 더불어 어쩌면 중국발전의 원동력이 되겠구나 하는 경외감(敬畏感)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