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정검사를 응원하는 깨시민모임
Chosbul Simin · 14분 ·
전우용
29분 ·
10.29 이태원참사 1주기 시민추모제에 가서 헌화하고 왔습니다.
돌이켜 보면, 작년 이맘 때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잇달아 벌어졌습니다.
참사 자체가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정부의 후속 대응은 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공무원들은 ‘근조’자가 없는 검은 리본을 패용했고, 뒤이어 시청광장에 설치된 ‘합동분향소’에는 위패도 영정도 없이 국화꽃만 놓였습니다.
윤석열은 그 꽃 앞에서 묵념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했고, 많은 사람이 그 행위를 모방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2년 우범곤 순경 총기난사 사건 직후 ‘합동분향소’라는 이름의 ‘시설’이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빈소를 차리고 장례를 치르는 건 본디 ‘가족 단위’의 일이었지만, 이를 계기로 참사가 있을 때마다 ‘합동분향소’가 설치됐습니다.
‘합동분향소’의 ‘공익성’이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첫째, 같은 참사를 겪은 유가족들이 한 곳에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함께 대책을 논의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조문객들이 각 가정의 빈소를 일일이 찾아다니는 불편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국가 또는 공동체 전체의 책임’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영정도 위패도 없는 ‘합동분향소’가 과거에도 있었는지 궁금해서 일일이 다 찾아 봤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때까지 250회 정도가 설치되었지만, 영정도 위패도 없는 분향소 설치는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영정도 위패도 없는 합동분향소’라는 유례 없는 시설이 처음 생기면, 그 이유를 찾으려 들어야 ‘사람의 지성’입니다.
당시에도 ‘유족들끼리 연대하지 못 하게 하기 위해서’라거나 ‘주술적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모두 ‘합리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언론과 지식인, 정치인들은 명단 공개가 개인정보 유출이며 유족들에 대한 2차 가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이 윤석열 정부의 무도한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 놓은 이런 주장은, 1982년 이후 40년 간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습니다.
피해자 명단과 사진 공개가 ‘범죄 행위’라면, 그등안 대형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사망 실종자 명단을 속보로 공개해 온 언론은 과연 무슨 짓을 했던 걸까요?
그렇게 주장하려면, 자기들의 과거 보도 행태가 잘못이었다고 사과부터 먼저 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그런 언론사는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신생 시민 언론사가 명단을 공개하자, 그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빗발쳤고 심지어 경찰은 그 언론사를 압수수색까지 했습니다.
‘유족이 원치 않는 명단 공개는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희생된 가족의 이름이 밝혀지길 원치 않는 유족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들이 왜 그랬을까요?
사건 직후부터 ‘거기 간 사람 잘못’이라는 ‘희생자 책임론’을 만들어 유포한 자들이 과연 누구였던가요?
그렇게, 희생자들은 이름도 얼굴도 없이 사라진 존재로 ‘무화(無化)’했습니다.
애초에 이 세상에 없었던 존재처럼 돼 버렸습니다.
국가 공동체의 잘못으로 덧없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기억할 수 없는 사람’이나 ‘기억할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범죄행위’입니다.
참사 1주년, 아직도 영정 자리 몇 개가 빈 분향소에 헌화하면서 울컥했습니다.
공동체의 첫 번째 책임은 희생자들을 ‘이름도 얼굴도 없는 존재’로 남겨두지 않는 것입니다.
힘겹게 살고 있는 유족들을 위해서라도, 그들이 잃어버린 가족을 ‘애초에 없었던 존재’처럼 만들지 않는 일입니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를 돕기 위해 ‘희생자 명단 공개는 개인정보 유출이고 유족들에 대한 2차 가해’라고 떠벌이면서 ‘실존 인물들’에 대한 추모를 방해했던 언론인, 지식인, 정치인들의 이름도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