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사무 4,1ㄴ-11; 마르 1,40-45
+ 찬미 예수님
오늘 1독서는 이스라엘과 필리스티아인들의 전쟁 이야기를 전하는데요,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패배하자, 실로에서 야훼의 계약 궤를 모셔옵니다. 계약의 궤는 탈출기 25장에서(10-16절)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만든 것인데요, 그 안에는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 아론의 지팡이, 그리고 만나를 담았던 항아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걸으며 이 계약의 궤를 가장 앞에 모셨습니다. 궤가 떠날 때면 모세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야훼여, 일어나소서. 당신의 원수들은 흩어지고 당신을 미워하는 자들은 당신 앞에서 도망치게 하소서.” 또한 궤가 멈추어 설 때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야훼여, 돌아오소서. 이스라엘의 수만 군중에게로.” (민수 10,35-36)
계약 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 현존의 상징이었고, 그들은 계약 궤를 모신 장소를 ‘지성소’라 부르며 가장 거룩한 곳으로 여겼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스라엘 원로들은 “실로에서 야훼의 계약 궤를 모셔 옵시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오시어 원수들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합시다.”라고 말하며 계약 궤를 모셔왔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계약 궤를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빼앗기고, 전쟁에서 패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그들은 야훼의 계약 궤에 마술적 힘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 궤를 모셔오면,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우리가 승리하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이것이 올바른 믿음이라 볼 수 있을까요?
계약의 궤 안에는 십계명 돌 판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계약의 궤를 보며 하느님의 계명을 되새겨야 했습니다. 궤 안에는 아론의 지팡이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이끄심에 자신들을 내맡겨야 했습니다. 또한 궤 안에는 만나를 담았던 항아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광야 시절의 불평을 그치고 하느님의 은총과 섭리에 감사했어야 했습니다.
계약 궤가 하느님 현존의 상징인 것은, 그들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향하게 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자동적으로 마술적 힘이 나온다고 믿는 것은 이교인들의 믿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계약의 궤가 하느님 현존의 상징인데 비해, 우리는 하느님 현존 그 자체이신 성체를 영합니다. 그런데 성체를 영하면, 우리의 어려움이 마술적으로 자동적으로 해결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어제부터 내일까지 우리 본당에서 새 신부님들 미사가 봉헌되고 있습니다. 너무나 은혜로운 시간입니다. 그런데, 새 신부님 미사와 안수가 나에게 마술적인 힘을 주리라 기대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새 신부님들께서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에 자신의 부족함을 내맡기고 부르심에 응답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그렇게 살겠다는 다짐, 그리고 그 다짐을 성령께서 축복해 주신다는 믿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를 치유해 주시는데요, 복음서에서 말하는 나병은 오늘날의 나병을 포함해서 다양한 피부 질환을 의미합니다. 레위기에 의하면 악성 피부병에 걸린 사람은 스스로 ‘부정한 사람이오.’하고 외치며 공동체에서 떨어져 혼자 살아야 했습니다.(레위 13, 45-46) ‘나는 부정한 사람이오!’라고 외치며 공동체에서 격리되는 것은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그를 치유해 주시며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가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는 바람에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 곳에 머무르셨습니다. 나병 환자는 공동체로 돌아갔지만, 그의 처지를 이제 예수님께서 떠안으시게 되셨습니다.
우리는 성체를 영하면서,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신”(마태 8,17)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고통과 아픔, 스스로 ‘부정한 사람이오!’하고 외쳐야 하는 수치심과 외로움, 이 모든 것을 당신 안에 떠안으시며 우리를 안아 주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우리의 약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단 한 가지는, “너도 남에게 그렇게 해 주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