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부인
제 11 회
울대가 군사들에게 명령하여 한꺼번에 불을 지르니 화약이 폭발하는 소리가 산천이 무너지는 듯하고 사방으로 치솟으며 불빛이 하늘과 맛닿으니, 부인이 계화를 시켜 부적을 던진 후, 왼손에 흥화선을 들고 오른선에는 백화선을 들고 오색실을 매달아 화염 속으로 던져 넣으니 갑자기 피화당에서 큰 바람이 일어나며 도리어 호국군사 진영 속으로 들어 하늘과 땅을 분별하지 못하며 불길에 타 죽는 사람이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울대가 크게 놀라 급히 후퇴하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하되,
“군사를 일으켜 조선에 나온 후 군사 중에 피 흘린 사람이 없고 공포 일발에 조선을 점령하고 여기에 와서 여자를 만나 불쌍한 아우를 죽이고 무슨 낯으로 임금과 귀비를 뵈올 것인가?”
통곡하기를 그치지 않거늘, 모든 장수들이 좋은 말로 위로 하여 가로되,
“아무래도 그 여자에게 앙갚음을 없을 것 같사오니 군사를 후퇴시키는 것만 같지 못하도다.” 하고는
왕비와 세자 대군과 장안의 값진 물건과 미인들을 모두 거두어 서울을 떠나니 백성들의 울음소리가 산천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때, 부인이 계화를 시켜 적진을 보고 크게 외쳐 말하기를,
“무지한 오랑캐 놈들아, 나의 말을 들어보라. 너희 왕은 우리를 몰라보고 너희 같은 젖비린내 나는 놈들을 보내어 조선을 침략하니 국운이 불행하여 어쩔 수 없이 패망하였거니와 무슨 이유로 우리나라 인물을 거두어 가려고 하느냐? 만일 왕비를 모셔갈 생각을 한다면 너희들을 몰사 시킬 것이니 모숨을 살펴보라.”하므로
호국 장수가 이 말을 듣고는 웃으며 말하기를,
“너희 말이 가장 만만하도다. 우리는 이미 조선왕의 항서를 받았으므로 데려가도 안 데려가는 것은 우리 손안에 달려 있으니 그 따위 말은 궁색스럽게 하지 말라.”하며
능욕이 무수하므로 계화가 다시 일러 말하기를,
“너희들이 한결같이 마음을 고쳐먹지 아니할진대, 어디 나의 재주 한 번 구경해 보라.”하고
말한 후에 무슨 진언을 외우니, 갑자기 공중에서 두 줄의 무지개가 일어나며 우박이 덩어리로 쏟아지며 눈 깜짝할 사이에 폭풍우와 눈보라가 휘날리고 얼음이 얼어 호진의 장졸들이며 말굽 등이 얼음에 붙어 떨어지지 아니하므로 한 치도 움직일 수 없는지라 호국 장수가 그제서야 깨닫고 말하기를,
“처음에 귀비께서 분부하시되 조선에 신인이 있을 것인즉 부디 우의정 이시백의 집 뒤뜰을 침범하지 말라고 하셨거늘, 우리가 일찍 깨닫지 못하고 또한 일순간의 분함을 생각하여 귀비의 당부를 잊고 이곳에 와서 오히려 앙갚음을 받아 십만 대군을 다 죽일 뿐만 아니라 골대도 죄없이 죽고 무슨 맟으로 귀비를 뵈올 것인가? 우리가 이와 같은 일을 당하였으니 차라리 부인께 사죄하는 것만 못하리라.” 하고
호국장수 드이 갑옷을 벗어 말 안장에 걸고 손을 묶어 팔문진 앞에 나아가 땅에 엎드려 총하여 빌되,
“소장이 천하를 가로질러 조선까지 나왔으되 무릎 한 번 꿇어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 부인 뜰 아래에 무릎을 꿇고 비옵나이다.”하며
머리를 조아려 애걸하며 빌면서 말하되,
“왕비는 모셔가지 않을 것인즉 길을 열어 소장 등이 돌아가게 하여 주십시옵소서.” 하고
수없이 애걸 하거늘, 부인이 그제서야 발을 걷고 나오며 크게 소리질러 말하기를,
“너희들을 씨도 없이 몰살시키려 하였으나 내 사람을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으므로 이제 용서하노니 너희 말대로 왕비는 모셔가지 말 것이며 너희들이 어쩔 수 없이 세자 대군을 모셔간다 하니 그것 역시 하늘의 뜻에 따라 거역하지 못할 것이려니와 부디 조심하여 모셔 가도록 하라. 나는 가만히 앉아서도 다 알 수 있으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 신장과 갑병을 모아 너희들을 몰살시키고 나도 북경에 들어가 너희 국왕을 사로잡아 분을 풀 뿐만 아니라 죄없는 백성마저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조리 죽일 것이니 내 말을 명심하고 거역하지 마라.”하므로
울대가 다시 애걸하여 말하기를,
“소장의 동생 골대의 머리를 내어 주시오면 부인의 덕택을 입어 고국으로 돌아가겠사옵니다.”
부인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옛날 춘추전국시대의 조양자는 지백의 머리를 옻칠하여 그릇을 만들어 예전의 원수를 갚았다 하니 나도 옛일을 생각하여 골대의 머리에 옻칠하여 남한산성에서 패한 분을 만분지일이라도 풀어 볼까 하노라. 너의 정성은 지극하나 서로가 그 임금을 섬기기는 한 가지라, 너가 아무리 애걸한다 하더라도 그것만은 못할 것이로다.
울대는 이 말을 듣고 분한 마음이 하늘 끝까지 올랐으나 골대의 머리를 보고 통곡할 뿐이요, 할 수없이 하직하고 군을 이끌어 떠나려 하니 부인이 다시 이르기를,
“행군하여 돌아가되 의주에 들려서 임장군을 만나보고 가라.”
울대가 그 비계를 알지 못하고 속으로 생각하되, ‘우리가 조선왕의 항서를 받았으니 서로 만나봄이 좋을 것이다.’하고는 다시 하직하고 세자 대군과 장안 명물과 미인들을 데라고 의주로 가는데, 잡혀서 끌려가는 부인들이 하늘을 향하여 통곡하면서 말하기를,
“박부인은 웬 복으로 환을 면하고 고국에 편안히 있으며 우리는 무슨 죄가 있기에 맘리 타국으로 붙잡혀 가는가? 이제 끌려가면 어는 날 어느 시에 고국 산천을 다시 볼 것인가?”하고
눈물을 흘리며 소리 높여 슬피 우는 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부인이 계화를 시켜 다시금 외쳐 이르되,
“사람의 고생과 즐거움은 흔히 있는 일이거늘, 너무 슬퍼하지 말고 들어가면 삼 년동안에 세자대군과 모든 부인을 모셔올 사람이 있으니 너무 슬퍼하지 말고 안심하고 무사히 도착하도록 하라.‘ 하고 위로 하였다.
첫댓글 반갑게 잘 읽습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