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나 없음, 자아 관념에 대한 집착없음-의 교리와 윤회는 상충되는 게 아닌가?
내가 없는 데 누가 인과를 받고, 누가 윤회하는가?
깨달음은 점차 이뤄지는가, 단박에 이뤄지는가?
초기불교가 정통인가, 대승불교가 정통인가?
아라한이 위대한가, 보살이 위대한가?
대승불교는 변질된 불교인가, 아닌가?
빨리어로 된 경전은 부처님의 원음인가, 아닌가?
불성론과 여래장론은 우파니샤드의 영향을 받은 것인가, 아닌가?
화두를 들어야 되나, 아니면 그냥 좌선만 하면 되는가?
위빠사나 수행할 때 마하시 전통을 따를 것인가, 파옥전통을 따를 것인가? 아잔 브람을 따를 것인가? 어떤 스승의 전통을 따를 것인가?
불교를 배우기 시작하여 3~4년 되면 이런 의문이 떠올라 마음이 어지러워질 수 있습니다. 자, 질문은 그럴듯하지만, 끝없는 논쟁거리를 만들어 내는 게 바로 생각이 하는 짓입니다. 아직 자기의 마음의 힘이 충분히 성숙되지 않았을 경우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달라 드는 건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애초에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불교에 입문했던 건 아니잖아요? 그런 건 불교전문가가 정리해서 우리가 이해하기 좋게 이야기해줄 겁니다. 여유가 있을 때 그들의 연구결과를 그때 가서 듣고 참조하면 됩니다. 유투브에 그런 강의가 많이 올라와 있으니까요.
그러니 지금 곧 바로 편안하게 앉아 생각을 텅 비웁니다. 모든 걸 내려놓습니다.
호흡을 자연스레 일어나게 내버려 둡니다. 일체를 쉬어 버립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무슨 문제에 걸려 있습니까?
다 놓아버리세요. 어떤 갈등도 흘려버리세요. 지금 이 순간 만물과 함께 평화만 가득할 뿐입니다. 비 온 뒤 숲은 더 푸르러졌고, 골짜기 물소리는 더 명랑 해졌습니다. 알아차림은 자명하고, 깨어있음은 생생합니다. 오감의 감각을 알아차리고, 그 알아차림까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앎도 튕겨내 버리고 텅 빔에 머뭅니다. 그 텅 빔은 맑고도 자명한 앎입니다. 그것은 어디에도 머물지 않으며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안심, 평화, 해탈이 가득합니다. 붉은 해가 활짝 웃으며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