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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유배문학 정황(丁熿) 선생의 칠언절구 한시의 세계와 문학적 특징>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조선중기 을사사화(1545년)에 연루되어 1548년 거제도로 유배된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의 칠언절구 작품들은 절해고도(絶海孤島)의 고독감과 성리학자로서의 의리 정신을 고도의 압축미로 형상화한 거제 유배문학의 정수다. 선생은 1548년 곤양에서 거제도 고현동으로 이배되어 약13년 간 귀양 살다가 거제에서 타계하신 분으로, 거제도 유배동안 지은 약700편의 글들이 그의 문집 「유헌집(游軒集)」을 통해 전하고 있다. 또한 거제도의 정황(丁熿) 선생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37세 때인 1548년부터 1560년 49세로 사망할 때까지 유배된 고현동 거제향교에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 내신 일이 첫째이고, 다음은 거제도를 대표하는 유배문학인 중, 한 분이라는 것이다. 고려시대 정서(정사문)부터 시작된 거제도 유배문학은 1500년대 초기 최숙생, 이행, 홍언충, 김세필로 이어졌고 1500년대 중반 정황(丁熿) 선생이 이를 이어받아, 고전한문학을 남겨 오늘을 사는 거제민에게 큰 자부심을 갖게 한 분이다.
거제의 학교 기원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초기 고현에 거제향교가 1453년 건립되면서 시작되었다. 거제 유배자 중, 교육에 가장 큰 기여를 하신 분은 1548년에 귀양 온 정황(丁熿)선생이다. 약 13년 동안 거제향교에서 후학에 전념하시었고, 경남 전 지역에서 학생들이 몰려와, 거제향교는 처음으로 부흥기를 맞이하였다. 이때 향교에서 수학한 인물로 이준민(李俊民), 이로(李魯), 정염(丁焰), 김급희(金伋希), 박오(朴旿,太曦) 등은 널리 알려진 학자들이다. 정황(丁熿) 선생은 당시 불모지였던 거제민초에게 유교와 학문을 전파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며, 거제교육의 부흥기를 만드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 또한 거제향교의 묘당을 새로이 정비하였고, 정여창 김굉필 조광조 등을 향교 서쪽에다 위패를 모시고 배향하였으며, 오성(五聖)의 위패와 신주함을 새로이 만들어 올렸던 인물이기도 하며, 거제향교에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신 분이다. 남명 조식, 퇴계 이황과 함께 성리학의 거두로서, 당시 편지로 학문을 주고받으며 거제가 성리학의 한 축을 담당케 한 인물이다.
● 거제유배문학, 정황(丁熿) 선생의 칠언절구(七言絶句)의 문학적 특징
정황 선생의 칠언절구는 28자의 짧은 형식 안에 유배객의 복잡한 내면과 자연의 섭리를 밀도 있게 담아냈다. 먼저 ①자연물을 통한 사림(士林)의 지조 표출했다. 「영감국(咏甘菊)」, 「영매(詠梅)」, 「이매(移梅)」시편에선, 국화와 매화는 한파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지조의 상징이다. 유배지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사림의 정체성과 군자의 의리를 대변했다. 특히 매화를 옮겨 심는 행위(移梅)는 유배지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정립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또한 「무궁(無窮)」은 끝없는 자연의 순환 속에서 인간사의 덧없음을 관조하고, 성리학적 우주관을 투영하여 유배의 고통을 초연하게 이겨내려는 태도가 돋보인다.
② 두 번째는 시공간적 대비를 통한 고독과 그리움을 드러냈다. 「계명음(鷄鳴吟)」, 「춘모(春暮)」에선 1548년, 1549년 등 구체적인 기년(紀年)이 명시된 이 시들은 유배 초기 시간의 흐름을 절감하는 고통을 다루었다. 새벽닭 소리(계명)와 저무는 봄(춘모)이라는 시간의 이미지를 통해 조정에서 멀어진 자신의 처지와 세월의 무상함을 시각·청각적으로 극대화했다. 또한 「제월(霽月)」, 「해산월가(亥山月歌)」에선 비가 개인 뒤의 달이나 거제 해산에 뜬 달은 고결한 군자의 마음(光風霽月)을 뜻하는 동시에, 한양의 임금과 고향의 가족을 향한 유일한 통로가 되어 깊은 연군(戀君)과 향수(鄕愁)를 자아내었다. 특히 이백의 운을 빌린 '차적선운' 형식을 통해 유배객의 풍류와 쓸쓸함을 동시에 담았다. ③ 세 번째는 일상의 포착과 감정의 내면화를 묘사했다. 「견가서(見家書)」에선 고향 가족의 편지를 받고 느끼는 반가움과 슬픔의 교차를 담백하게 서술하여 절제된 감정의 극치를 보여줬다. 또한 「우음(偶吟)」, 「우성(偶成)」, 「비 온 뒤 봄날을 기다리며(雨後春望)」에선 문득 떠오른 생각(偶吟)이나 우연히 이룬 시(偶成) 속에는 비 온 뒤의 풍경을 보며 절망에 머물지 않고 다시 '봄(해배, 정치적 복권)'을 기다리는 은근한 희망과 내면의 평정심을 담았다. 특히 2편의 「우음(偶吟)」에선, 유학자로서의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수양 과정 그리고 변치 않는 지조를 담았다.
○ 정황 선생의 한문학에 대한 논평
한마디로 거제도의 그를 논하자면, "지조 높은 성리학자의 의리문학(義理文學)이자, 거제도를 교화한 교육 문학의 결정체"였다. ①먼저 조광조 학풍을 계승한 '도학(道學)의 시정(詩情)'였다. 정황 선생은 정암 조광조의 문하에서 수학한 정통 사림파다. 그의 한시에는 단순한 신세 한탄이나 절망적 고발에 그치지 않고, 언관(言官)으로서 직언을 하다 유배를 오게 된 선비의 당당함과 의리가 관통하고 있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도학자적 기상이 한시라는 예술적 그릇을 통해 격조 높게 형상화되었다.
② 두 번째는 절제와 담박함을 기치로 한 시풍이다. 그의 문학은 화려한 수식이나 과장된 감정 분출을 배제한다. 유배지의 고독, 가족에 대한 그리움 같은 날 것의 감정을 성리학적 이성으로 한 차례 걸러내어, ‘사무사(思無邪, 생각에 사악함이 없음)’의 담박하고 온화한 시풍을 구현했다. 이는 비극적 상황 속에서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으려는 수양의 과정이었다.
③ 세 번째는 거제 지역 문학사 및 교육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선생의 거제 유배 한문학은 고려의 정서(鄭敍)로부터 시작된 거제 유배문학의 맥을 잇고 이를 한층 심화·발전시켰다. 그는 약 13년의 유배 기간 동안 시 창작에 머물지 않고, 거제향교에서 영남 전역의 후학들을 교육하며 섬 지역의 문풍(文風)을 일깨웠다. 그의 한문학은 개인의 문학적 성취를 넘어, 변방 거제를 '교육과 문학의 섬'으로 탈바꿈시킨 문화적 이정표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 다음은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의 거제도유배 작품 중에 칠언절구(七言絶句) 13편 「무궁(無窮)」, 「영감국(咏甘菊)」, 「계명음(鷄鳴吟) 1548년(戊申)」, 「우음(偶吟)①」, 「춘모(春暮) 1549년(己酉)」, 「제월(霽月)」, 「해산월가(亥山月歌) 차적선운(次謫仙韻)」, 「견가서(見家書)」, 「영매(詠梅)」, 「‘매화를 옮겨 심고’ 이매(移梅)」, 「‘비 온뒤 봄날을 기다리며’ 우후춘망(雨後春望)」, 「우음(偶吟)②」, 「우성(偶成)」 등을 차례대로 소개하겠다.
1) 다음 ‘東’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무궁(無窮)」 ‘끝이 없어라’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의 거제도 유배 작품으로, 그의 문집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무한히 반복되는 삶과 죽음이라는 우주적 순환 철학을 바탕으로, 당대 훈구 대신들의 정쟁과 윤리 타락으로 얼룩진 어지러운 말세(조정의 난세)를 향해 지식인이 던지는 쓸쓸하고도 날카로운 탄식을 담고 있다.
○ 내용인즉, [1구]에선 만물이 자연의 이치에 따라 기(氣)가 모여 태어났다가 다시 자연으로 흩어지는 장자(莊子)의 기화설(氣化說)적 유전(流轉)을 선언한다. 인간의 생사 역시 거대한 대자연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임을 담담하게 응시했다. [2구]에서 '무궁(無窮)'이라는 시 제목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한 개인의 삶과 죽음은 유한할지 몰라도, 인류와 우주 전체의 차원에서 보면 태어남과 죽음은 멈추지 않고 영원히 지속된다. 삶이 죽음으로 이어지고, 그 죽음이 다시 새로운 생명의 바탕이 되는 우주적 생사의 장엄한 무한 루프를 대구 형식으로 강조했다. [3구]에선 1구와 2구에서 다룬 우주적 법칙을 '천지(天地)'라는 거대한 공간적 무대 위로 끌고 와 집약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수많은 생명이 명멸하는 웅장한 자연의 섭리를 보여주며 마지막 4구의 극적인 반전을 준비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4구]에선 이 시의 철학적 사색이 날카로운 현실 비판과 비장한 우국(憂國)의 정서로 승화되는 핵심 대목이다. 거대한 우주의 생사는 이토록 변함없이 순환하고 고결한데, 정작 인간들이 발을 딛고 정치를 행하는 당대의 현실 사회(천지)는 을사사화와 같은 피비린내 나는 정쟁으로 가득 차 '말세의 쓸쓸한 바람'만 불고 있다는 유학자의 뼈아픈 탄식의 노래다.
○ 정황 선생은 문과에 급제한 후 청요직을 거치며 강직하게 간언을 아끼지 않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1545년 소인배 권신들이 가차 없이 현량들을 숙청한 을사사화(乙巳士禍)에 휘말려 거제도로 유배되었고,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초를 겪다 결국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 시 「무궁(無窮)」은 유배객인 정황 선생이 변방에서 홀로 깨달은 '우주의 영원함'과 '인간 역사의 유한함·추악함'을 대비시킨 명작이다. 소인배들이 아무리 정적을 죽이고 칼춤을 추어도(死), 결국 새로운 정의와 생명은 다시 태어날 것(生)이라는 '무궁한 순환'에 대한 믿음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당대 윤리가 파탄 난 조선의 조정을 '숙계풍(말세의 바람)'이 부는 공간으로 규정하며 지식인으로서 느끼는 깊은 환멸과 서글픔을 격조 높게 표현했다.
**「무궁(無窮)」 ‘끝이 없어라‘**/ 정황(丁熿) 측기식
如是而生如是死 이와 같이 태어났다가 이와 같이 죽어가니
生無窮亦死無窮 인간의 삶도 끝이 없고 죽음 또한 끝이 없어라.
無窮生死于天地 이 거대한 천지간에 끝없는 삶과 죽음이 되풀이되는데
天地蕭蕭叔季風 온 천지에는 쓸쓸하게도 말세(末世)의 바람만 불어오네.
[주1] 소소(蕭蕭) : 바람이 쓸쓸하고 스산하게 부는 소리나 모양을 뜻하며, 시인의 암담한 심경을 시각·청각적으로 대변한다.
[주2] 숙계(叔季) : 형제의 서열(백·중·숙·계) 중 마지막을 뜻하는 말로, 역사적 맥락에서는 '한 왕조의 말기' 혹은 '도덕과 기강이 무너져 내린 어지러운 난세(말세)'를 지칭하는 강력한 정치적 수사다. 고로 숙계풍(叔季風)은 ’말세의 바람‘
2) 다음 ‘寒’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영감국(咏甘菊)」 ‘감국화(甘菊花)를 읊다’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의 거제도 유배 작품으로, 그의 문집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을사사화로 가혹한 유배 생활을 겪으며 몸과 마음이 지쳤던 시인이 늦가을의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고고하게 피어난 국화꽃을 보며 깊은 위로를 얻고, 그 고결함에 매료되어 밤새 곁을 떠나지 못하는 애틋한 정서를 담고 있다.
○ 내용인즉, [1구]에선 시인은 찬 바람이 부는 정원에 피어난 국화꽃을 가리켜 '너(汝)'라고 부르며 의인화한다. 당시 선생은 오랜 유배 생활로 인해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추위를 몹시 꺼리는 상태였다. 하지만 국화의 고결한 자태에 마음을 빼앗겨 자신이 병들었다는 사실과 밤바람의 매서운 추위마저 완전히 망각해 버리는 극진한 애정을 보여준다. [2구]에선 어스름한 황혼녘, 차가운 달빛 아래서 시인과 국화꽃이 마치 오랜 벗처럼 나란히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3구]에선 밤이 깊어 갈수록 추위가 더해지므로 따뜻한 방으로 들어가야 마땅하지만, 시인은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꽃 주변을 안절부절못하며 서성인다. 국화를 향한 단순한 감상을 넘어 밀도 높은 정서적 교감을 나누고 있음을 고백한다. [4구]에선 시인이 차가운 밤바람 속에서 서성이던 진짜 이유가 밝혀지는 대목이다. 가을 서리와 겨울 추위가 몰아치는 혹독한 계절이기에, 내가 자리를 비운 이 하룻밤 사이에 서리를 맞아 이 고결한 꽃이 꺾이고 시들어버릴까(殘) 염려하는 애틋한 가련함이 극에 달하며 시가 마무리된다.
○ 이 시는 단순한 관조적 자연 찬미 시가 아니다. 작가인 정황 선생은 을사사화(1545년) 때 소인배들의 모함을 받아 거제도 등으로 유배되어 1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유배지에서 보냈다. 전통적으로 문학에서 '국화'는 서리를 맞으면서도 홀로 피어나는 오상고절(傲霜孤節), 즉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 따라서 시 속의 '국화'는 다름 아닌 모진 정치적 풍파 속에서도 올곧은 신념을 지키며 늙어가는 시인 자신의 투영이자 분신이다. 하룻밤 사이에 꽃이 시들까 봐 전전긍긍하는 시인의 모습은, 혹독한 세태 속에서 자신이 지켜온 선비로서의 양심과 지조가 훼손되거나 꺾이지 않기를 바라는 치열한 자기 성찰과 내면의 의지를 은유한 것이다. 병들고 지친 유배객의 쓸쓸한 심경을 국화라는 매개물을 통해 지극히 섬세하고 애틋한 서정성으로 승화시킨 명작이다.
**「감국화(甘菊花)를 읊다(咏甘菊)」** / 정황(丁熿) 측기식
愛汝都忘病怯寒 너를 너무나 사랑하여 병든 몸이 추위 타는 것마저 모두 잊고
黃昏鎌月共吾看 황혼녘에 떠오른 낫 같은 그믐달을 너와 내가 함께 바라보네.
徊徨不忍輕歸去 차마 가벼이 발길 돌려 돌아가지 못하고 그 주위를 서성이노니
不忍容華一夜殘 너의 그 고운 꽃다운 모습이 하룻밤 사이에 시들어버릴까 차마 눈에 밟혀서라네.
[주1] 겸월(鎌月) : 낫처럼 얇고 날카롭게 휜 그믐달이나 초승달을 뜻하며, 차갑고 쓸쓸한 가을밤의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했다.
[주2] 불인(不忍) : 차마 ~하지 못하다.
[주3] 용화(容華) : 국화꽃의 화사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뜻한다.
3) 다음 ‘侵’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계명음(鷄鳴吟) 1548년(戊申)」 ‘닭울음 소리를 읊다’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의 거제도 유배 작품으로, 그의 문집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이 무신년(1548년) 거제도에서 지은 칠언절구 「계명음(鷄鳴吟)」은 한밤중 닭 울음소리를 들으며 끊임없이 자아를 성찰하고 도덕적 본성을 지키려는 굳은 의지를 담은 수양시다.
○ 내용인즉, 정황 선생은 을사사화(1545년) 이후 유배 생활을 하거나 정계의 혼란을 겪으며 학문과 치열한 내면의 수양에 힘썼다. 무신년(1548년) 역시 그러한 시기의 연장선이다. 주자학(성리학)에서 '닭이 우는 새벽(鷄鳴)'은 음기(어둠/욕망)가 물러가고 양기(밝음/천리)가 처음 생겨나는 순간으로, 학자가 마음을 맑게 깨워 수양하기 가장 좋은 시간으로 여겨졌다. 시인은 고요한 밤 닭 소리를 신호 삼아 깨어나, 자신을 엄격히 돌아본다. 선과 악, 성인과 도둑의 차이는 거창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순간 마음속의 사리사욕을 물리치고 천리(天理)를 지키느냐에 달려 있음을 스스로 다짐하고 있다.
**「계명음(鷄鳴吟) 1548년(戊申)」** ‘닭울음 소리를 읊다’ / 정황(丁熿) 평기식.
鷄鳴中夜獨危襟 한밤중 닭 울음소리에 홀로 옷깃을 여미고
思省孜孜靜我心 부지런히 생각하고 반성하며 내 마음을 가라앉히네.
物欲退聽將自此 물욕이 물러가고 (본성이)다스려짐이 장차 이로부터 시작되리니
由來堯跖各玆心 예로부터 요임금과 도척의 갈림길도 각각 이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네.
[주1] 위금(危襟) : 옷깃을 바르게 여미다. 마음을 가다듬고 엄숙하고 경건한 태도를 취함을 뜻함.
[주2] 사성자자(思省孜孜) : 힘쓰고 부지런히(孜孜) 생각하고 반성함(思省)을 의미한다. 성리학적 수양론인 '성찰(省察)'의 자세를 보여준다.
[주3] 물욕퇴청(物欲退聽) : 외부의 사물로 인해 생기는 사사로운 욕심(物欲)이 물러나고 내면의 소리에 순종하게 됨을 뜻한다.
[주4] 요척(堯跖) : 중국 전설 속 성군(聖君)인 요(堯)임금과 악명 높은 도둑의 대명사인 도척(盜跖)을 대비한 표현이다. 극과 극의 인물을 통해 인간의 선악을 상징한다.
[주5] 각자심(各玆心) : 각각 이 마음에 달려 있다. 성인(요임금)이 되느냐 악인(도척)이 되느냐는 결국 한 생각의 차이, 즉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맹자(孟子)의 사상이다.
4) 다음 ‘歌’와 ‘麻’ 운을 통운한 칠언절구(七言絶句) 「우음(偶吟)」 ‘우연히 읊다’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의 거제도 유배 작품으로, 그의 문집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학문에 임하는 자세, 마음의 경계(戒), 그리고 매일매일 깨달음을 얻어 선(善)을 쌓아 나가는 유학자로서의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수양 과정을 담고 있다.
○ 내용인즉, 학문의 본질을 추구하고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매일 실천했다. 배움을 시작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면(三年後), 눈앞의 이익이나 벼슬(志穀) 같은 세속적인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학문 그 자체와 인격 수양에 집중해야 함을 강조한다. 마음에 사사로운 욕심이나 잡념이 끼어드는 것을 늘 경계(戒)하고, 매일매일 스스로를 돌아보는 사성(思省)의 자세가 중요함을 역설했다. 매일(日日新 又日新) 단 한 가지의 진리라도 올바르게 깨닫고 실천한다면(一日知得), 그것이 쌓여 결국 거대한 덕과 선(萬善)을 이루게 된다는 유학자의 점진적인 수양관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우음(偶吟)」 ‘우연히 읊다’** / 정황(丁熿 1512~1560) 평기식.
夫人學已三年後 대저 사람이 학문을 닦은 지 이미 삼 년이 지난 뒤에
志穀何人更念他 녹봉(벼슬과 재물)에 뜻을 두며 어찌 다시 딴 생각을 품겠는가.
戒之在是當思省 경계해야 할 바가 바로 여기에 있으니 마땅히 깊이 반성해야 하리,
一日知得萬善加 하루라도 깨달아 얻는 것이 있다면 온갖 선함이 더해지리라.
[주1] 부인(夫人) : 보통 사람이 학문을 닦을 때(대저 사람이 배움에 있어).
[주2] 지곡(志穀) : 논어(論語) 태백(泰伯) 편의 '지곡(志穀)'에서 유래한 말로, '녹봉(벼슬이나 재물)에 뜻을 두다'라는 의미다. 즉, 학문을 출세나 이익의 수단으로 삼는 것을 뜻함.
[주3] 념타(念他) : 다른 것(잡념이나 사리사욕)을 생각하다.
[주4] 계지재시(戒之在是) : 경계해야 할 바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주5] 사성(思省) : 생각하고 반성하다(깊이 살피다).
[주6] 만선가(萬善加) : 수많은 선행과 덕이 더해지다.
5) 다음 ‘文’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춘모(春暮) 1549년(己酉)」 ‘봄은 저물고’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의 거제도 유배 작품으로, 그의 문집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을사사화(1545년)로 인해 유배된 처지에서 임금(명종)을 향한 그리움과 충정을 애절하게 표현한 거제도 유배시다.
○ 내용인즉, 작가 정황은 1545년 을사사화 때 소윤 일파에 의해 파직당하고 거제로 유배되었다. 시의 제목에 나타난 '기유(己酉)'년은 1549년으로, 그가 유배 생활을 하던 깊은 고독의 시기다. 주제로는 저무는 봄날(춘모)의 쓸쓸한 분위기 속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임금의 소식을 간절히 기다리는 충군(忠君)의 정을 담고 있다. 무정한 봄바람을 원망하면서도, 그 바람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하는 애틋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춘모(春暮) 己酉」** / 정황(丁熿 1512~1560) 측기식.
北望山河隔暮雲 북쪽의 산하를 바라보니 저무는 구름에 가로막혀 있고
美人消息幾時聞 그리운 미인(임금)의 소식은 어느 때나 들을 수 있으려나.
春風莫自無情極 봄바람아, 홀로 너무 무정하게만 굴지 말고
千里辭歸寄尺文 천리 밖으로 떠나 돌아올 때 편지 한 장 전해주려무나.
[주1] 북망(北望) : 북쪽을 바라봄. 유배지(남쪽)에서 임금이 계신 한양(북쪽)을 바라보는 행위다.
[주2] 모운(暮雲) : 저무는 구름. 임금과 시인 사이를 가로막는 현실적 장벽이나 거리감을 상징한다.
[주3] 미인(美人) : 아름다운 사람. 전통 시가(충신연주지사)에서 임금을 비유한다.
[주4] 춘풍(春風) : 봄바람. 소식을 전해줄 수 있는 매개체이자, 무심하게 지나가 버리는 야속한 존재다.
[주5] 척문(尺文) : 한 자 길이의 글. 즉, 임금에게 보내는 편지(상소문)를 뜻함.
6) 다음 ‘陽’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제월(霽月)」 ‘비 갠 뒤의 밝은 달’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의 거제도 유배 작품으로, 그의 문집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비가 개인 후 밤하늘에 떠오른 맑고 깨끗한 초승달을 바라보며 느낀 감흥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는 궂은 비가 내린 뒤 세상의 혼탁함이 모두 씻겨 내려간 순간, 산속 고요한 처소(山堂)를 비추는 초승달의 청초함을 극찬하고 있다. 변하지 않는 달의 청량함을 통해 시인 자신이 지향하는 맑고 고결한 정신세계를 투영한 명시다.
**「제월(霽月)」 ‘비 갠 뒤의 밝은 달’** / 정황(丁熿) 평기식.
雨洗腥煙玉宇光 비가 비린 연기와 안개를 씻어내니 온 하늘이 빛나는데
最憐新月到山堂 산속 집으로 찾아온 저 초승달이 가장 사랑스럽구나.
古來誰得如渠者 예부터 그 누가 저 달처럼 맑고 깨끗할 수 있었으랴,
千載令人一望蒼 천 년 세월 동안 사람들은 먼 푸른 하늘만 바라보게 하네.
[주1] 제월(霽月) : 비가 갠 뒤의 밝고 깨끗한 달을 뜻하며, 흔히 집착이 없고 맑은 선비의 인품을 비유한다.
[주2] 성연(腥煙) : 비린내 나는 연기나 자욱한 안개로, 세속의 혼탁함이나 마음에 낀 번뇌를 상징한다.
[주3] 옥우(玉宇) : 옥으로 지은 집이라는 뜻으로, 여기선 아름답고 깨끗한 밤하늘.
[주4] 거(渠) : 제3자를 가리키는 대명사로, 이 시에서는 '저 달'을 뜻한다.
[주5] 일망창(一望蒼) : 한눈에 바라보는 푸른 하늘, 혹은 아득히 멀리 바라봄을 의미.
7) 다음 ‘尤’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해산월가(亥山月歌) 차적선운(次謫仙韻)」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의 거제도 유배 작품으로, 그의 문집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정황(丁熿) 선생이 당나라의 시인 이백(李謫仙)의 압운자 秋, 流, 州 를 빌려 지은 한시다. 이 시는 유배지 또는 은거지(해산)에서 밝은 달을 바라보며, 자신의 처지와 임금(한양)을 향한 그리움을 담담하면서도 애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 내용인즉, 이 시는 가을밤의 장엄하고 아름다운 자연 풍경(둥근 달과 넓은 바다)과 시인 자신의 초라하고 쓸쓸한 현실(병들어 누워 있는 유배객)을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다. 하늘에 높이 떠서 온 세상을 비추는 밝은 달을 보며 묶여 있는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고, 멀리 보이지 않는 '장안(한양)'을 바라보며 임금과 조정에 대한 변함없는 충정과 연군지정(戀君之情)을 노래한 수작이다.
**「해산월가(亥山月歌) 차적선운(次謫仙韻)」** / 정황(丁熿) 평기식.
滿輪明月亥山秋 둥글게 가득 찬 밝은 달이 해산(亥山)의 가을을 비추는데
影入東洋萬頃流 달그림자는 넓고 푸른 동해바다의 만 이랑 물결 속으로 흘러드네.
多病杜門北窓臥 병이 많아 문을 닫아걸고 북쪽 창가에 누워 있으니
長安不見在他州 한양은 보이지 않고 나는 타지의 고을에 와 있네.
[주1] 차적선운(次謫仙韻) : '적선(謫仙)'은 하늘에서 유배 온 신선이라는 뜻으로 이백(이태백)을 뜻한다. 이백이 지은 시의 운자(韻字)를 그대로 가져와 시를 지었다는 뜻이다.(이 시의 압운자는 秋, 流, 州 이다.)
[주2] 해산(亥山) : 작가가 머물고 있는 지명 또는 산 이름이다. 정황 선생은 을사사화, 양재역 벽서 사건 등에 연루되어 곤양, 거제 등지로 유배 생활을 겪었다.
[주3] 동양(東洋) : 여기서는 동쪽의 넓은 바다를 의미한다.
[주4] 만경(萬頃) : 만 개의 이랑이라는 뜻으로, 끝없이 넓게 펼쳐진 바다나 호수의 수면을 비유한다.
[주5] 두문(杜門) : 문을 닫아걸고 바깥출입을 끊음(두문불출)을 뜻함.
[주6] 북창(北窓) : 북쪽으로 난 창문. 도연명이 북쪽 창가에서 바람을 맞으며 자신을 복희씨 이전의 평화로운 사람(북창고우)이라 칭한 고사에서 유래하여, 주로 선비들의 유유자적함이나 은거를 상징한다. 여기서는 유배객의 쓸쓸한 처지도 함께 나타내었다.
[주7] 장안(長安) : 원래 당나라의 수도이나, 한시에서는 대개 임금이 계신 곳(한양)을 상징한다.
8) 다음 ‘陽’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견가서(見家書)」 ‘집에서 온 편지를 보고’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의 거제도 유배 작품으로, 그의 문집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견가서(見家書)」는 유배지에서 가족의 편지를 받고 느끼는 서글픔과 그리움을 노래한 작품이다.
이 시는 그가 오랜 유배 생활 동안 고향의 소식을 접하며 느꼈던 절절한 혈육의 정과, 밤이면 찾아오는 외로움을 솔바람 소리와 별빛이라는 자연 배경(松風星夜)을 통해 극대화하여 표현한 명작이다.
**「견가서(見家書)」 ‘집에서 온 편지를 보고’** / 정황(丁熿) 평기식.
家書一見淚成行 집 편지 한 번 보니 눈물이 줄줄 흐르는데
海闊山長隔渺茫 바다는 넓고 산은 멀어 아득히 떨어져 있구나.
最是腐心無語地 가장 가슴 미어지고 말문이 막히는 때는
松風星夜坐孤堂 솔바람 불고 별빛 가득한 밤, 홀로 빈방에 앉아 있을 때라네.
[주1] 가서(家書) : 고향의 가족이 보낸 편지. 유배객에게 가장 반가우면서도 슬픔을 고조시키는 매개체다.
[주2] 해활산장(海闊山長) : 유배지와 고향 집 사이에 놓인 물리적 거리감을 뜻한다. 작가가 바다 건너 섬(거제도 등)이나 먼 변방에 격리되어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주3] 부심(腐心) : 몹시 고뇌하고 마음을 썩인다는 뜻으로, 억울한 유배 생활과 가족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집약한 표현이다.
[주4] 고당(孤堂) : 외딴 집 또는 홀로 있는 방으로, 시인이 처한 극도의 고독감과 적막함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9) 다음 ‘灰’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영매(詠梅)」 ‘매화를 읊다’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의 거제도 유배 작품으로, 그의 문집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은 거친 들판에 홀로 피어난 매화의 고결함을 노래하며, 유배 중인 자신의 처지와 지조를 투영한 작품이다. ○ 내용인즉, 자신의 처지와 지조를 투영했고 고독과 알아주는 이 없는 슬픔을 묘사했다. 명성을 얻은 임포의 고산의 매화와 달리, 자신은 거친 황원에 피어난 초라한 매화 같다고 낮추어 말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진정(盡情)'을 다해 피어난 매화를 통해, 유배지에서도 변치 않는 자신의 충절과 지조를 드러냈다. 또한 아이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매화 가지를 꺾어 향기를 맡아줄 '그 누구(지음, 知音)'를 기다리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조정에서 천 리 멀리 떨어져 외롭게 지내는 유배객의 쓸쓸한 심경을 담았다.
**「영매(詠梅)」 ‘매화를 읊다’** / 정황(丁熿) 측기식.
不及孤山處士栽 고산 처사(임포)가 심은 매화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荒原何事盡情開 거친 들판에서 무슨 일로 이토록 정성을 다해 피었는가
樵童牧豎尋常見 나무하는 아이와 소 먹이는 목동들이 늘 예사로 보거늘
誰折瓊梢獨嗅回 그 누가 옥 같은 가지 꺾어 홀로 향기 맡으며 돌아가리.
[주1] 고산처사(孤山處士) : 중국 송나라의 시인 임포(林逋)를 뜻함. 그는 고산(孤山)에 은거하며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았다는 ‘매처학자(梅妻鶴子)’의 고사로 유명하다.
[주2] 황원(荒原) : 거친 들판을 의미하며, 시인이 처한 쓸쓸한 유배지 환경을 비유함.
[주3] 초동목수(樵童牧豎) : 땔나무 하는 아이와 소를 기르는 사내아이로, 매화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평범한 세상 사람들을 뜻한다.
[주4] 경초(瓊梢) : 옥처럼 아름다운 매화 나뭇가지를 뜻함.
10) 다음 ‘支’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매화를 옮겨 심고’ 이매(移梅)」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의 거제도 유배 작품으로, 그의 문집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유배객 신세인 자신과 고향을 떠나 옮겨 심어진 매화의 처지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지조를 노래한 명시다.
○ 내용인즉, 유배지의 외로움과 옮겨 심은 매화에 자신을 투영하곤 도리(桃李)와 매화(梅花)를 대비시켜 충절의 결의와 유배의 위로를 하였다. 선생은 을사사화 이후 유배 생활을 하다가 거제도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 시는 고향 땅(조정)을 떠나 먼 변방까지 밀려난 자신의 처지를 '실지(失地)'하여 옮겨진 매화에 투영하고 있다. 봄날에 일시적으로 화려하게 피어 웃는 복숭아·오얏꽃은 '권력에 아부하는 세속의 무리'를 뜻한다. 반면, 차가운 서리와 눈 속에서도 지조를 지키는 '옥수(玉樹)'인 매화는 고결한 선비의 지조와 굳은 절개를 상징한다. 지금은 비록 유배지에 홀로 있지만, 시련의 계절(霜雪)이 오면 진정한 충절과 가치가 드러날 것이라는 확신을 담아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매화를 옮겨 심고(移梅)」** / 정황(丁熿) 측기식
失地君移異我移 제 땅 잃고 그대 옮겨온 것 내 처지와 다르지만
天涯相得亦云奇 하늘가 외딴곳에서 서로 만났으니 이 또한 기이하구나.
春深桃李方姸笑 봄 깊어 복사꽃 자두꽃 온통 화사하게 웃어대도
霜雪應尋玉樹知 서리 눈 몰아칠 때면 응당 옥 같은 매화 나무를 찾으리.
11) 다음 ‘魚’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비 온뒤 봄날을 기다리며(雨後春望)」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의 거제도 유배 작품으로, 그의 문집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선생이 1551년 거제도 유배 시절에 지은 한시 「우후춘망(雨後春望)」은 을사사화(1545년)로 인해 외딴섬으로 유배를 와 겪었던 쓸쓸함과 봄날의 아름다운 풍경을 대조하여 표현한 작품이다.
○ 내용인즉, 정황 선생은 1548년 거제도로 유배를 왔으며, 이 시를 지은 1551년은 유배 생활이 4년째 접어들던 해다. 비가 내린 뒤 눈부시게 피어난 봄꽃과 버들의 아름다움(花柳濃光)을 바라보며 깊은 감탄을 자아내면서도, 동시에 고향과 가족을 떠나 외딴섬에 갇혀 지내야 하는 유배객의 쓸쓸함과 외로움(索居)이 짙게 배어 있다. 화자는 역설적으로 이 아름다운 봄 풍경만이 자신의 유일한 위로가 되어주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비 온뒤 봄날을 기다리며(雨後春望)」** / 1551년 정황(丁熿) 측기식
花柳濃光小雨餘 꽃과 버들 가랑비 내린 뒤 짙게 빛나니
東君心事婦人如 봄(春) 신(神)의 심사가 부인과 같구나.
四年住得天涯客 4년을 먼 변방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非此將何慰索居 이런 봄날 홀로 살면서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주1] 동군(東君) : 동쪽을 관장하는 신으로, 계절적으로는 봄의 신을 뜻함.
[주2] 부인여(婦人如) : 여인의 마음처럼 봄날의 날씨가 변화무쌍하고 다정다감함을 비유한 표현. 가랑비가 내렸다가 이내 맑아져 빛나는 봄 풍경을 묘사했다.
[주3] 천애객(天涯客) : '하늘의 끝에 사는 나그네'라는 뜻으로,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거제도에서 유배 중인 자신의 처지를 나타낸다.
[주4] 색거(索居) : 외롭게 혼자 떨어져 사는 생활, 즉 적막한 귀양살이를 뜻함.
[주5] 비차막가(非此莫可) : 없어서는 안 될, 꼭 그것이라야만 될 것.
12) 다음 ‘灰’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우음(偶吟)」 ‘우연히 읊다’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의 거제도 유배 작품으로, 그의 문집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은 당시 을사사화와 정미사화(양재역 벽서 사건)에 연루된 정황 선생이 거제도로 유배되었을 때, 자신의 고달픈 처지와 변치 않는 지조를 읊은 작품이다. 또 이 시는 벼슬길에서 물러나 먼 바닷가 외딴곳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도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자세를 유지하며, 과거 뜻을 같이했던 이들의 변절에 대한 씁쓸함과 자신만의 독야청청한 지조를 대비하여 표현하고 있다.
○ 내용인즉, 구사일생의 고독한 처지이나 안빈낙도(安貧樂道)의 다짐과 세태에 대한 씁쓸함과 지조를 드러냈다. 첫 구의 '만사여신(萬死餘身)'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저자는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져 거제도라는 절해고도(絶海孤島)에 갇혔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원망보다는 스스로를 낮추고 있다. 또한 가난 속에서도 학문과 지조를 지켰던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를 언급하며(불위회), 유배지의 궁핍한 삶을 달게 받아들이고 도리를 지키겠다는 선비의 곧은 기개를 보여준다. 이어 과거에는 정의와 대의를 위해 뜻을 같이했던 동료들이 권력과 핍박 앞에 타협하고 변절해 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 속에서 타협하지 않고 홀로 유배의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의 처지(독이재)를 보며 밀려오는 쓸쓸함과, 동시에 '나는 끝까지 내 길을 가겠다'는 묵직한 결의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우음(偶吟)」 ‘우연히 읊다’** / 정황(丁熿) 측기식.
萬死餘身海一隈 만 번 죽을 고비 넘기고 남은 이 몸, 바다 한 모퉁이에 흘러와
簞瓢濫竊不違回 소박한 밥과 물분수 넘치게 취하며 안회의 청빈한 삶을 따르네.
從來怪底同心地 예전부터 마음을 같이 했던 이들을 도대체 왜 괴이하게 여기는가,
進退如何獨異哉 출세와 은퇴의 갈림길에서 처신함이 어찌 나 홀로 이다지도 다른가!
[주1] 만사여신(萬死餘身) : 만 번 죽을 고비(萬死)를 넘기고 남은 목숨(餘身). 사화의 칼날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았음을 뜻한다.
[주2] 해일외(海一隈) : 바다(海)의 한 모퉁이(一隈). 저자가 유배되어 있던 먼 바닷가 외딴섬(거제도)을 가리킨다.
[주3] 단표(簞瓢) : 대바구니의 밥과 표주박의 물. 안회(顔回)의 '단표누항(簞瓢陋巷)'에서 유래한 말로, 청빈한 선비의 생활을 상징함.
[주4] 남절(濫竊) : 분수에 넘치게 훔치다(또는 누리다). 여기서는 유배지에서 비록 소박한 음식이지만 감지덕지하며 취한다는 겸손의 표현이다.
[주5] 불위회(不違回) : 공자의 수제자인 안회(顔回)의 삶을 어기지(違) 않는다. 즉, 가난하지만 도를 즐겼던 안회의 정신을 따르겠다는 다짐이다.
[주6] 괴저(怪底) : 어찌하여 괴이하게 여기는가, 도대체 왜 이상하게 생각하는가.
[주7] 동심지(同心地) : 마음을 같이 하던 처지. 또는 마음을 같이 했던 옛 동료들.
[주8] 진퇴여하(進退如何)는 ‘나아가고 물러남(처신)이 어찌하여’. 독이재(獨異哉)는 ‘홀로(獨) 이토록 다른가(異哉)!’이다.
13) 다음 ‘先’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우연히 짓다. 우성(偶成)」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의 거제도 유배 작품으로, 그의 문집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운명과 천명(天命)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모함한 세상의 소인배들에게 의연 대처하려는 선비의 숭고한 기개를 담고 있다.
이 시의 후반부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는 《맹자(孟子)》 〈양혜왕 하〉에 나오는 고사다. 맹자가 도(道)를 펴기 위해 노나라의 평공(平公)을 만나려 가려 했다. 그러나 평공이 총애하던 간신 장창(臧倉)이 맹자를 모함하여 이 만남을 전면 무산시켰다. 제자가 이 사실을 분해하며 알리자, 맹자는 장창을 원망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이 세상에 나아가고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하늘에 달린 것이다. 나를 노나라 임금과 만나지 못하게 한 것은 장창 따위의 소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非臧倉之所能爲也)." 이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과 천명은 소인배 한 명의 간계로 좌우되는 것이 아님을 선언한 것이다.
○ 내용인즉, [1구]에선 인간 세상의 성공(得)과 실패(失), 더 나아가 생(生)과 사(死)라는 궁극적인 영역은 인간이 얄팍한 계산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정한 거대한 명(命)에 속해 있다는 유학적 세계관을 제시한다. [2구]에선 눈앞의 길흉화복이 그저 사람의 인위적인 조작(人事)이나 힘으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어리석은 세태를 비판했다. '어찌 거(詎)' 자를 사용하여, 그런 얕은 시야로는 심오한 하늘의 섭리(天)를 결코 헤아릴 수 없음을 강조했다. [3구]에 간신 장창은 천명의 이치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未悟), 자기가 계략을 꾸며 성인을 곤경에 빠뜨리고 앞길을 막았다고 착각하며 도리어 스스로 번민과 악업의 굴레에 빠졌음을 꼬집는다. [4구]에 '추대현(鄒大賢)'은 추나라 출신의 성인 맹자를 뜻한다. 장창이 온 정신을 쏟아(一意) 성인의 행보를 저지(沮)하려 날뛰었지만, 맹자가 역사에 남긴 위대한 도리와 정신은 소인배의 방해 따위로 꺾이지 않고 당당히 살아남았음을 역설한다.
○ 정황 선생은 1545년 을사사화(乙巳士禍) 때 권신들의 모함을 받아 유배되어 1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가혹한 유배 생활을 겪었다. 시인은 자신을 모함하고 조정에서 쫓아낸 당대의 권력자들을 고사 속 '장창(臧倉)'에 비유하고, 온갖 핍박 속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 자신의 처지를 '맹자(추대현)'에 투영하고 있다. 즉, 이 시는 단순한 운명론이 아니라 "너희 소인배들이 아무리 나를 모함하고 방해할지라도, 내가 걷는 올바른 선비의 길과 천명은 감히 꺾을 수 없다"는 강력한 자기 확신과 초연한 기개를 '우연히 지은 시(偶成)'라는 형식을 빌려 엄숙하게 노래한 명작이다.
**「우연히 지은 시(偶成)」** / 정황(丁熿) 측기식
得失死生皆有命 얻고 잃음과 삶과 죽음은 모두 운명(천명)에 달려 있으니
謂之人事詎知天 이를 한낱 인간의 일이라 말하는 이가 어찌 하늘의 뜻을 알겠는가.
臧倉未悟被他惱 장창(臧倉)은 깨닫지 못하고 그(맹자)를 괴롭히며 방해했으나
一意沮夫鄒大賢 온통 마음을 쓴들 추나라의 대현인(大賢)을 어찌 막을 수 있었으랴.
[주1] 장창(臧倉) : 중국 전국시대 노(魯)나라의 인물로, 역사서 속에서는 성인(聖人)의 행보를 방해한 대표적인 ‘소인배(小人輩)’이자 ‘간신(奸臣)’으로 기록된 인물이다.
[주2] 추대현(鄒大賢) : 추나라의 위대한 대인. 중국 전국시대의 위대한 유학자이자 성인인 맹자(孟子, 기원전 372년경 ~ 기원전 289년경)를 높여 부르는 별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