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28] 임규문(林奎汶) - 나의 지주되신 하나님 2. 통일교회와의 묘한 인연 - 2
10 그 당시 나의 입에서는 성가 ‘동산의 노래’가 그치질 않았다. 혼자 중얼거리고 혹은 콧노래를 불렀고, 원리 책을 보다가는 나도 모르게 생긋 웃는 버릇까지 생겼다. 동료들은 나를 보고 ‘정신이상자가 아닌가’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11 그러던 늦은 가을 어느 날 우산동 뒷산 능선의 잔디밭에서 원리 책을 보다가 책을 덮고 기도하느라 잠깐 눈을 감는 순간에 하늘에서 오색 찬란한 빛이 땅으로 내리비치면서 그 빛 사이로 흰 천이 펼쳐지는데 ‘정도령(正道令)’이라는 세 글자가 스크린에 비치듯이 확실하게 박혀 있었다.
12 나는 이런 일을 처음 당하였으므로 몹시 신비스러웠다. 이러한 환상을 보면서 나는 원리 말씀이 참진리이며, 통일교회의 길이 참길이라는 확신을 더욱 가지게 되었다.
13 이듬해 봄에 휴가를 얻어서 고향인 내덕리(內德里)에 갔다. 그곳에는 나의 조상들이 대대로 묻혀 있는 묘지가 있는 곳이다. 하루는 조상들의 묘지 가운데 앉아서 원리 책을 보고 있노라니 갓을 쓰고 흰 두루마기를 입은 할아버지 세 분이 나타나더니 “내가 너의 할아버지다”라고 하면서 “네가 지금 가고 있는 그 길을 끝까지 가라”라고 세 분이 똑같은 말을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14 1959년 1월 10일부터 40일간 협회 제1차 수련회가 시작되었다. 이 수련회는 그간 전국에서 개척 전도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참석하였는데 나는 군에서 바로 제대를 하여서 참석할 자격이 없었으나 특별히 은혜를 받아서 참석하게 되었다. 폐회식 후에 협회에서 강원도 영월로 임지를 정해 주었다.
15 수련회 때 정리한 원리 노트와 원리 책 등을 넣은 가방과 준비한 차비만을 갖고 임지를 향해 떠났다. 3개월 동안 남의 집에서 고용살이를 하면서 밤이면 중•고등학생들을 모아 영어와 수학과 한문을 가르치면서 두터운 정을 맺어 나갔고, 때로는 그들의 벗이 되어 등산도 가고 각종 운동도 하였다.
16 차차 인정(人淸)을 넘어서서 천정(天情)으로 이어지게 되자 예배 볼 수 있는 집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낮으로는 동강(東江) 쪽 건설장에 나가서 일을 하면서 모은 돈과 사재를 보태서 30평의 2층 마루를 전세로 얻어 교회 간판을 달고 본격적인 전도에 들어갔는데, 얼마 후 40명의 예배 식구를 확보하였다.
17 가정방문을 할 때는 꿈속에서 전도한 사람을 만나기도 했고, 그럴 때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말씀을 전하다가 저녁밥을 얻어먹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