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6:12-22 / 2022년 9월 21일 수요일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잠시 살다가는 믿음의 나그네는 세상의 일에 매이거나 골몰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가는 믿음의 나그네입니다.
세상이 살 때에는 인생이 긴 것도 같지만 영원한 세계와 비교하면 사람은 정말 잠시 살다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잠시 살지만 영원히 살 것처럼 세상을 사랑합니다.
세상에 있는 재물과 힘과 영광을 다른 사람보다 더 가지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육체의 즐거움과 기쁨과 만족과 쾌락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는 믿음의 나그네는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뭘 더 가지려고 경쟁할 것도 없습니다,
세상의 것을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이삭이 사는 모습을 보면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는 믿음의 나그네의 삶이 보입니다.
이삭은 부자가 되려고 목표를 두지 않았습니다.
단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물질의 복을 받았을 뿐입니다.
그러니 물질을 의지하거나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우물을 빼앗으면 말없이 양보합니다.
당시에 우물은 굉장히 중요한 재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우물을 빼앗겨도 조용히 다른 곳으로 옮겨 우물을 팝니다.
다시 따라와 우물을 빼앗자 그때도 자신이 다른 곳으로 피합니다.
어쩌면 바보 같은 모습처럼 보입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양보만 하는 모습이 바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바보가 아닙니다.
이삭은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둔 나그네의 믿음으로 산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오른 뺨을 맞을 때 왼 편을 돌려대는 것입니다.
속옷을 빼앗으려는 자에게 겉옷을 벗어주고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할 때 십 리를 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나그네의 믿음은 십자가에 자신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나를 부인하는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세상에 매이고 골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그저 잠시 스쳐지나가는 곳임을 알면 십자가에 나를 부인하며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내하고 용서하며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쉽지 않지만 이삭처럼 세상의 일에 매이거나 골몰하지 말고 유유자적하며 삽시다.
내려놓고 삽시다.
물이 길을 따라 흘러가듯이 물처럼 주님의 뜻을 따라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