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이 고부 계헌(李古阜季獻)의 죽음을 애도하며
나와 율곡 공의 교분으로 말한다면 余於栗谷公
그야말로 형제나 다름이 없었는데 交義實弟兄
계헌은 바로 공의 막내 동생이라 季獻其少弟
어린아이 때부터 돌보아 주었다오 撫視自孩嬰
수려한 그 용모 얼마나 멋있었던가 眉眼瑩可念
예에 노닐며 글씨로 이름 날렸나니 游藝以書鳴
장인 어르신은 바로 매학 노인장 作贅梅鶴翁
초성의 명성과 거의 비등하였다네 草聖幾齊名
우리 율곡 공이 세상을 등진 뒤론 一自公亡後
사학의 성취를 한참 보지 못했는데 阻觀仕學成
마침 내가 남쪽 고을 맡고 있던 날 適余南州日
계헌은 병산의 청렴한 원님이었다오 作縣屛山淸
시관(試官)으로 여유가 많았던 그때 試圍屬多暇
나를 대접하느라고 성의를 다했는데 爲余愜將迎
삼상처럼 몇 해 동안 떨어져 있던 중에 參商積幾霜
결국은 이승 저승 나뉘고 말았구려 竟爾判幽明
나이도 그런대로 칠십 세에 가까웠고 猶自近稀年
군수 벼슬이면 미미한 것도 아니오만 郡守官匪輕
돌아보면 추억 어린 구곡의 못가 回頭九曲潭
술잔 들며 노래할 날 영영 사라졌네 觴詠隔平生
어진 이는 수한다는 말씀도 안 맞나 봐 仁者未必壽
이런 생각 하노라면 왜 그리도 허전한지 念此獨銜惸
나는야 모진 목숨 아직 죽지 않았소만 余頑尙後死
이 세상 살아갈 날 얼마나 또 남았겠소 於世豈餘程
한평생 영고성쇠 골고루 겪고 나서 榮落汔相當
서경에다 몸 붙이고 밭 일구며 산다오 農圃寓西京
그대의 딸은 빼어난 자질의 규수로서 子有閨房秀
영광스럽게도 방백의 부실이 되었는데 藩維副室榮
재행이 아름답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每聆才行美
가문의 이름에 걸맞다고 새삼 느꼈지요 信其稱家聲
멀건 가깝건 경조(慶弔)가 있을 때면 近遠欣戚及
한집안 사람처럼 정을 나누곤 하였소만 有如通家情
이것이 웬 말이요 불과 순월 사이에 奈何旬月間
아비와 딸의 만사 잇따라 짓게 되다니 挽爲父子呈
지금 천리 밖까지 전해진 이 슬픔이여 傳哀千里外
끝까지 우리 우정 다 기울여 주셨구려 終是分義傾
남쪽의 부음(訃音)과 서쪽의 초상 소식이 불과 순월(旬月) 사이에 전해졌다
[주1] 예(藝)에 …… 날렸나니 : 군자가 닦아야 할 육예(六藝) 중에서도 특히 서예에 뛰어났다는 말이다. 《논어(論語)》 술이(述而)에 “도에 뜻을 두고, 덕을 굳게 지키며, 인에 의지하고, 예의 세계에서 노닐어야 한다.[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游於藝]”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주2] 장인 …… 비등하였다네 : 계헌, 즉 옥산(玉山) 이우(李瑀)의 장인은 호가 매학정(梅鶴亭)인 황기로(黃耆老)로서, 한(漢)나라의 장지(張芝)와 당(唐)나라의 장욱(張旭)과 같은 초성(草聖)과 어깨를 겨룰 정도로 초서를 잘 썼다고 전해진다.
[주3] 사학(仕學)의 성취 : 학문이 이루어져서 벼슬길에 오르는 것을 말한다. 《논어》 자장(子張)의 “학문을 하고서 여유가 있으면 벼슬을 한다.[學而優則仕]”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4] 삼상(參商) :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삼성(參星)은 동쪽 하늘에 있고 상성(商星)은 서쪽 하늘에 있어서, 각각 뜨고 지는 시각이 틀리는 관계로 영원히 서로 만날 수가 없는 데에서 유래된 것이다. 《春秋左傳 昭公元年》
[주5] 구곡(九曲)의 못가 : 율곡이 거처하던 해주(海州)의 고산 구곡담(高山九曲潭)을 말하는데, 《간이집》 제9권 〈고산구곡담기(高山九曲潭記)〉에 그 유래와 형승이 자세히 나온다.
[주6] 어진 이는 수(壽)한다 : 《논어》 옹야(雍也)에 “지자는 즐기고 인자는 수를 누린다.[知者樂 仁者壽]”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 출전 : 간이집 8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