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친 수보스님의 출생>
나의 조부님은 20대에 혼인을 해서, 슬하에 1남 3녀의 자녀를 두었다.
또 그 아들(나의 백부)은 슬하에는 2남 4녀라는 육남매를 두었다.
조부님은 30대에 독립운동을 하셨고, 나라가 망하자 출가를 하셨다.
60대에는 4.3사건으로 한라산에서 살던 집이 불타서, 마을로 내려왔다. 당시 제주도에는 물허벅을 지고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만큼 식수가 귀했고 먹을 양식도 부족했다. 나의 조부님은 조상님들께 제사를 지내고 기도를 하기 위해, 식수를 구하기 쉬운 천제연 폭포 인근에 다시 새로운 집터를 마련했다.
조부님이 63세 되던 해에 4.3사건으로 미망인이 된 나의 조모가 절에 기도하러 갔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가 태어났다.
당시 나의 조모는 23세로 조부님의 딸이자 나의 의붓고모와 동갑이었다.
그만큼 당시 제주도에는 전쟁과 민란으로 남편과 아들을 잃은 여인네들이 많았다.
나는 우리 아버지가 태어난 터에서 40년을 살았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 생일에서 10달을 뺀 시기...그러니까 당시 제주의 11월의 날씨가 어떠한 지 잘 안다. (우리 조부와 조모가 만난 시기...매서운 찬바람이 몰아치고 운이 안 좋으면 우박이 떨어졌던...)
지금은 그 곳에 심야전기(2006년도)를 틀어놓고, 따뜻한 난방기구가 들어갔지만, 나는 심야전기가 없을 때도 있어봤고, 내가 7살 때 까지만 해도 그 곳은 아궁이에 불을 떼고 솥에다가 밥을 짓는 누추한 곳이었다.
따라서 51년 당시 그 곳의 날씨가 어떠했는 지 잘 알 수 있다.
지금처럼 따뜻한 의복과 점퍼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난방이 잘 될리도 없었다. 전화나 TV같은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또한 마을에서 좀 떨어져 있어서 금방 날이 어두워지면, 쉬이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상황을 좀 더 되짚어 보자면, 전쟁과 민란으로 죽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늘어섰고, 그런 사람들을 49재 지내는 곳이었다. 그래서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 곳을 ‘귀신이 나오는 곳’이라고 생각하면서 무섭게 생각하고 피했다.)
당시 이 곳에, 부처님 모시는 방이 하나 있었을까?(당시 불뗀 흔적과 돌로 지은 집을 생각해 보면 어떤 구조의 집이었는 지 추정해 볼 수 있다.) 이불대신 방석으로...11월즈음 매서운 바람과 추위가 몰아닥치면, 정말 피할 공간이 없었다.
(지금은 롯데호텔이나 신라호텔에 인근에 들어선 발전된 좋은 마을이었지만, 불과 2년 전(2017년) 11월만 해도, 나는 정말 추워서 힘들게 지냈다. )
그런 시기에 63세 할아버지와 23세 젊은 과부가 같은 방에서 함께 잠을 자게 되었고, 그 불쌍한 과부의 몸에서는 아이가 들어섰으며, 그 아이는 훗날 망한(장남이 30대에 요절하고, 그 아들들은 폐인처럼 살아감) 이 집안의 제사를 지내고, 조부의 독립운동사실을 밝혀 독립훈장까지 받게 했으며(1996년)집안을 명예롭게 빛냈다. 또한 남편을 잃고 정신을 놓았던 불쌍한 여인(나의 조모)이 80살까지 살수 있게 만든 은혜로운 아들이 되었다.(우리 조모는 평생 이렇게 낳은 아들(나의 아버지)만을 의지하였으며, 아들이 대장암에 걸려 사망하기 일년 전, 아들이 태어난 생일 전날 돌아가셨다.)
이 분이 나의 아버지이고, 조부님이 딸과 동갑내기 여인과 하룻밤에 만들어졌다 해도 당시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면, 크게 나무랄 일이 없다고 본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들은 이 일에 대해 트집을 잡으려 하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보면서 이해를 바라고, 이 참에 나도 해명할 기회를 얻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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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부와 조모의 상황은 나라를 위해 기도를 했던 특수한 공간에서 이루어졌고, 일반인이 따라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기도’란 사주나 팔자를 떠나서 인간의 초자연적인 힘을 시험하고 신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곳은 나라를 잃은 나의 조부가 나라를 구하기 위해 기도를 하던 곳이었으며, 대를 이어 제사를 모시던 곳이었다. 따라서 이런 속된 사주팔자가 적용될 리 없었기 때문에 우리집안이 망하지 않고, 잘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아무리 잘 사는 집안이라도 이러한 생사문제에 탐진치가 개입되면 잘 될 리 없다.)
이런 앞뒤정황을 이해하지 못한 탐진치 많은 속인들이 따라하다가는 가정이 파탄나고 망하게 된다. 부모를 살해하는 패륜을 저지르고, 부모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일들 모두가 다 이런 정황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에렉트라 콤플렉스’라는 심리학적 용어를 빌려봐도 이해가 된다.
부처님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이모가 부처님을 키웠다. 부처님을 따라하고 싶어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시행착오의 과정을 겪었다.
특히 중국황실에서는 부처님같은 황제를 만들기 위해서 시어머니가 아이를 낳은 친모를 남몰래 죽이고 황실의 다른 여인의 손에서 아이를 키우게 하기도 하였다. (영국황실의 윌리엄의 모친인 다이아나도 지금의 여왕인 ‘퀸 엘리자베스’가 죽였다는 소문이 있다. 필자가 영국에서 유학할 당시 그런 루머가 나라안팎을 시끄럽게 하였다. 다이아나와 마더 테레사가 한날 한시에 죽었다. 또한, 다이아나가 교통사고가 날 당시, 구급차가 신속하게 와서 구출했다면 살 수도 있었는데, 여왕이 구급차의 도착을 막았다는 설이다.
그렇게 해서 석가모니의 탄생신화를 모를 리 없는 영국황실의 왕자 윌리엄은 엄마 없이 자라게 되었다.
우리나라 삼성전자 이재용 역시 와이프 없이 자식들을 키우고 있다.)
부부간의 금슬이 좋으면 아이가 없다. 사주학적으로도 그렇다.
부처님의 부모가 그렇다. 부처님의 부모는 매우 보기 드문 궁합으로 부부간의 금슬이 매우 좋았고, 아이가 태어나니, 다른 배우자가 사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사주학적으로 공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헛된 탐욕심으로 ‘사심’을 품은 중국의 황실은 석가모니의 이런 탄생신화를 따라하다가 폭군을 만드는 불운을 겪기도 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로 과업을 짓고 말았다. 이것은 모두 탐심(의도하는 마음)에 의한 결과이다.
따라서 상식적으로 피해야 할 궁합은 부모와 자식 간의 연령궁합이다. 예를 들어 우리 어머니가 49생인데, 49년생의 남자를 만나게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어렵다.
<참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출생 후 3세에서 6세까지 해당되며 아동이 자신의 성기를 만지고 자극하는 데에서 쾌감을 느끼는 시기이다. 이 시기부터 원초아, 자아, 초자아가 역동적으로 작용하기 시작하며, 이성의 부모에게 성적 동일시를 하므로 남자아이는 남자답게 굴고 여자아이는 여자답게 행동하려 애쓴다. 남근기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아동이 이성의 부모에게 성적 관심을 갖고 접근하는 욕망을 갖는 것인데 남아가 어머니를 애정의 대상으로 느끼고 아버지를 경쟁상대로 느끼는 것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이다. 남아는 어머니에 대해 애정을 느끼면서 아버지에 대해서는 강한 적대감을 느끼는데 자신의 이러한 감정을 아버지가 알아채고 해칠지도 모른다는 거세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그 결과 남아는 아버지에게 느꼈던 적대감을 억압하고 자신을 아버지와 동일시함으로써 경쟁관계를 해소하고 콤플렉스를 극복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초자아가 확립된다.
엘렉트라 콤플렉스
딸이 아버지에게 애정을 품고 어머니를 경쟁자로 인식하여 반감을 갖는 경향을 가리키는 정신분석학 용어. 정신분석학에서 오이디푸스콤플렉스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프로이트가 이론을 세우고 융이 이름을 붙였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3~5세의 남근기(男根期)에 여자아이들은 자신에게는 남동생이나 아버지가 갖고 있는 성기(penis)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남성을 부러워하는 한편 자신에게 남성 성기를 주지 않은 어머니를 원망한다고 한다. 프로이트는 이와 같은 음경선망(penis envy)이 여자아이로 하여금 엘렉트라콤플렉스를 갖게 하는 적극적인 원인으로 보았다. 이러한 욕구는 어머니의 여성적 가치를 자기와 동일시하고 초자아(超自我)가 형성되면서 사라진다. 오이디푸스콤플렉스와 대비되지만 그만큼 중요시되지는 않는데, 이는 최악의 상황이라도 어머니가 딸을 거세(去勢)할 수는 없으므로 남자아이들만큼 거세콤플렉스를 느끼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프로이트는 여성의 초자아가 남성보다 약하다고 믿었다. 명칭은 그리스신화에서 아가멤논의 딸 엘렉트라가 보여 준 아버지에 대한 집념과 어머니에 대한 증오에서 유래하였다. 미케네 왕 아가멤논은 10년 동안의 트로이전쟁을 마치고 귀국한 날 밤에 아내인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간부(姦夫) 아이기스토스에게 살해당하였다. 엘렉트라는 동생인 오레스테스와 힘을 합쳐 어머니와 간부를 죽이고 복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