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시선도 장소도 아랑곳없다. 서슬푸른 분기(憤氣)를 담아 입으로 연방 쏘아 대는 여자, 심성 보드라운 사람이 제정신으로 살기엔 도저히 감당치 못할 충격적인 일을 겪은 것인가. 어디서 정신을 흘려 버린 게 분명하다.
한가한 오후를 달리는 지하철 안은 독서를 즐기기에 맞춤하도록 고요가 흐르는 중이었다. 한데 순식간에 달짝지근한 평화를 깨뜨리는 소리 하나가 차 안을 흔들기 시작한다. ‘거참, 조용조용 얘기를 할 것이지.’ 짜증과는 달리 책갈피에 눈을 꽂은 채 소음이 잦아들기만 기다렸다. 그러다 번쩍 스치는 생각에 고개를 든다. 예상한 대로 한 여자의 혼잣소리다. 얼핏 보아 오십 초반쯤인 조신한 주부의 모습인데 혼사서 떠드는 말이 기가 차다.
“현실을 처리하는 꼬라지 좀 봐라 미쳤나?”
“그게 사람이가 또라이가?”
녹음테이프의 되감기 기능이 작동한 듯 같은 어휘들이 포개고 포개어진다. 허공으로 분주히 움직이는 눈동자에 표정마저 결연하다. 저 여자, 얼마나 아픈 것일까. 어떤 뼈가 가슴속에 박혔기에 저토록 팍팍한 것들을 뿜어내고 있는가. 산뜻한 연초록빛이 마음 까지 흔들어 깨우며 봄이 오는 길목, 햇살조차 환한 이런 날에.
황당한 언행과 딴판인 그녀의 매무새가 또 의외다. 갈색 톤의 바지와 니트 윗옷에 조끼를 덧입은 모습이 차분하고 깔끔하여서다. 하지만 요즘 날씨의 외출 차림으론 아무래도 좀 부실해 보인다. 짧은 카트 머리인 그녀의 용모는 전체적으로 세련된 도시 여자로, 자세히 보니 옅은 화장도 했다. 희고 갸름한 손이며 보기 좋게 정리한 손톱을 보면 경제생활에서는 그다지 거친 세파를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거칠게 쏟아내는 소리만 봉하고 있다면, 두 손을 깍지끼고 앉은 꼿꼿한 자태에서 지성적인 모습이 엿보이건만 어쩌다가…. 정체 모를 그녀가 무단히 마음을 헤집는다.
내가 그 병의 원인을 안다한들 해답이 있을 리 없는데도 눈길이 비켜가지 못한다. 그건 아마도 내 안에 내장되어 있을 오래된 풍경 속 기억 때문일 수도 있다. 기억이란 까마득히 지난 일과, 어느 장면에 닿으면 단박 재생한다.
내가 막 초등학생이 되었을 무렵이다. 동네 교회에서 정순 언니를 만났다. 그때 여중생이었던 그녀는 내게 해준 것들이 참 많다. 처음 받아 본 크리스마스 카드, 처음 해본 연극놀이, 처음 따라가 본 만화방, 순정만화 줄거리에 홀랑 빠져 속편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것도 정순 언니 덕분이었다. 언니네 집 대청마루에 횃댓보로 무대 장치를 하고 그녀의 각본과 연출로 해 봤던 연극놀이가 생각난다. 어리벙벙한 꼬마들에게 어색한 분장을 시켜놓고는 혼자 신바람을 내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만약 정순 언니가 없었다면 내 유년의 한 페이지는 영 심심하고 무미했을지도 모른다.
정순이가 미쳤다’는 소문은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동네에서 드물게 그녀가 갈래머리 여고생이 되었던 그해 겨울 방학 때다. 절대로 믿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주일 아침 예배를 마치고 오는 길에 정순 언니를 봤다. 밤새 꽁꽁 얼어붙은 돌담 옆에 쪼그려 앉아 있는 그녀를 보자 ‘언니’~‘하며 막 튀어나오려던 소리가 한순간 꿀꺽 넘어가 버렸다. 심심풀이인지 무연히 던지고 있는 표적도 아리송한 돌팔매질 때문이었을까. 머리에 아무렇게나 둘러쓴 그 나일론 보자기인지 모를 스카프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조금 슬펐다.
내 눈엔 혼자 놀이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여태까지의 정순 언니와는 느낌이 달랐다. 어쩐지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눈길이 마주치기만 애타게 기다리며 서 있는 나를 끝내 봐 주지 않아 얼마나 안타깝던지. 얼마 후 언니네 집은 이사를, 가 버려 더이상 그녀를 볼 수 없게 되었다. 훗날 풍문에 들으니 그녀는 병이 다 나아 결혼도 하였고 잘 산다고 했다. ’그럼 그렇지!‘ 내 속마음이 기뻐하던 소리다. 사실 처음부터 나는 정순 언니가 본모습으로 돌아올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연 놀이가 끝나고 무대에서 사뿐 내려왔듯이, 왠지 몰라도 그랬다.
정신만큼 하루아침에 사람을 싹 바꿔 놓는 것이 있으랴. 연극보다 더 연극 같은 이즈음의 세상이지만 우연찮게도 요 며칠 연거푸 정신이 아픈 사람들을 본다. 그것도 분노가 솟구쳐 마음의 피를 철철 흘리며 다니는 여자들이다. 세상 탓인지 사람 때문인지, 정신은 대체 어디를 가려는 걸까.
이즈음엔 내 머리도 혼란스럽다. 조카들 이름도 헷갈리고, 수시로 안경을 찾느라 집 안을 헤매는 건 예삿일이다. 딱히 어딘가에 마음이 팔린 것도 아닌데 냉장고 문을 열자마자 목적이 감감하여 서 있기 일쑤다. 종종 하는 짓들을 누가 드려다 본다면 어이없는 혼자 놀이일게다. 어느 날엔 자신마저 깜빡해 버리면 어쩌나, 오싹해지기도 한다. 하긴 어질어질한 이 시대의 생(生) 놀이에서 온전한 정신인 자가 있기나 한지.
정신을 흘려 버린 사람은 흡사 혼자 놀이를 하는 듯하다. 스스로도 모르는 혼자 놀이란 황당하고 안타까운 놀음 아닌가. 누구나 가끔은 자신이 처한 환경을 벗어나 홀로의 시간을 꿈꾸거나 가져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삶을 더욱 사랑하려는 의지이기도 하다. 복잡한 세상에서 마음 추스림일 테니까. 외진 마음으로 스스로를 돌아봄일 거니까. 만약 정신을 놓친 병이라면…….
환승역에 내려서니 공기가 싸하다. 만만찮은 냉기가 다가온 봄을 자칫 밀어낼 기세다. 조금 전, 전차 안에서 시퍼렇게 분기탱천하던 여자도 벌써 내려 저만치 가고 있다. 혼돈 속을 걷고 있는 그녀, 온몸에 한기를 품은 여자, 저리 시린 가슴에 봄은 올는지. 다른 건 내려놓고 정신 줄 하나 꼭 붙들었으면 싶다. 자신만은 놓지 말아야 할 텐데, 정 안된다면 그녀의 혼자 놀이가 슬프지는 않아야 할 터인데.
새봄의 들목이 자꾸 시리다. 겨울 끝자락이 한동안 더 내 속에 남을 것 같다.
첫댓글 요즘 세상. 그렇죠 어지러운 세상이죠! 하늘이 뱅뱅 돌고 내 정신도 뱅뱅 도네요, 하룻밤 자고나면 터져나오는 이야기들에 머리가 빙빙돌아갑니다. 이러다간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레 이상해 지겠어요. 어느 종교의 광신도도 아니건만 어떤때엔 지구가 종말이 오려나 하는 생각도 든답니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여자가 남자를 사기치고 또는 남자가 여자 특히 반항하지 못할 어린이나 노인들을 폭행하고 .......이것이 사람사는 세상인지 짐승들이 사는 세상인지 헷갈립니다.
서글픈얘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