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아침 편지]
2024. 10. 14.
한국 가곡
<추심(秋心)>
(정태준 작시, 작곡)
가을이 오는 소리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귀 기울여 들어보니
내 맘에서 오는 소리
아 아 잎은 떨어지는데
귀뚜라미 우는 밤을
어이 새워 보낼까
가을이 오는 소리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귀 기울여 들어보니
풀벌레서 오는 소리
아 아 잎은 떨어지는데
귀뚜라미 우는 밤을
어이 새워 보낼까
지는 잎에 사연 적어
시냇물에 띄워볼까
행여나 내 님이 받아보실까
아 아 기러기는 나는데
깊어가는 가을밤을
어이 새워 보낼까
아 아 어이 새워 보낼까 🎶
<영어 명언>
Keep reading books, but remember that a book is only a book, and you should learn to think for yourself.
Maxim Gorky
(Russian Writer)
It's not those who write the laws that have the greatest impact on society.
It's those who writes the songs.
Blaise Pascal
한강 등단 시
<서울의 겨울>
한강(2024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
어느 날 어느 날이 와서
그 어느날에 네가 온다면
내 가슴 온통 물빛이겠네,
네 사랑
내 가슴에 잠겨
차마 숨 못 쉬겠네
내가 네 호흡이 되어주지,
네 먹장 입술에
벅찬 숨결이 되어주지,
네가 온다면 사랑아,
올 수만 있다면
살 얼음 흐른 내 빰에 너 좋아하던
강물소리,
들려주겠네
(권순자 님께서는 추천해 주셨습니다)
<人生九蹟>
인생엔 아홉 가지
기적(奇蹟)이 있고,
세상은 이를 일러
인생구적(人生九蹟)이라 부릅니다.
🔹️一蹟은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는 것이요,
🔹️二蹟은
좋은 부모형제를
만나는 것입니다.
🔹️三蹟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친구를 얻는 것이요,
🔹️四蹟은
마음을 모두 주고 싶은 진실한 사랑을 만나는 것입니다.
🔹️五蹟은
효성스러운 자식을 얻는 것이요,
🔹️六蹟은
존경스러운 스승을 만나는 것입니다.
🔹️七蹟은
비명횡사하지 않고
천수(天壽)를 누리는 것이요,
🔹️八蹟은
평생 재물에 궁하지 않을 만큼 갖는 것입니다.
🔹️마지막 九蹟은,
죽음에 이르러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나는 것입니다.
(전 교육청 이병옥 교육국장 님께서 추천해 주셨습니다)
<해인사와 추사 김정희 父子>
해인사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팔만대장경과 장경판전 등 국보 3점, 고려각판 등 보물 14점, 대적광전 등 지방문화재 13점을 보유하고 있다. 암자는 사명대사가 입적한 홍제암, 성철 스님이 도를 닦던 백련암, 해인사 창건 때 최초로 세운 원당암을 비롯하여 길상암, 약수암, 지족암, 국일암, 삼선암, 금선암 등이 있다.
해인사는 7번의 크고 작은 화재가 발생했지만, 팔만대장경판이 보존되어 있는 장경판전만은 피해가 없었다.
순조 17년 되던 해 1817년 대화재로 대장경을 모신 판전을 제외하고 수백 칸의 건물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이때 해인사 복원 불사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이가 당시 경상도 관찰사(현 대구 경상감영(監營) 공원에서 근무)인 추사 김정희 아버지인 김노경(金魯敬)이다. 해인사 입구에는 <김노경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김노경이 해인사 복구를 위해 희사한 돈은 일만 냥이 었다. 또 경상도 내 70여 현의 군수들로부터 일만 냥을 모금하고 합천군수 서정보가 일천 냥을 시주하였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해인사 스님들과 신도들의 모금이 모아져 지금과 같은 해인사 모습이 복원되었다. 김노경은 해인사가 다시는 화마의 재앙을 당하지 않게 발원하면서, 1817년 아들 추사 김정희에게 가야산 해인사 복원 상량문을 쓰게 하였다.
당시 추사의 나이는 38세였다. 아직 추사체가 형성되기 전의 추사의 대표적인 해서체 상량문이 세상에 전해지게 된 연유이다. 추사는 불교의 해박한 이해를 바탕으로 상량문을 써 내려갔다.
추사의 상량문이 해인사 대적광전 대들보에 들어간 이후 해인사는 화마를 입지 않았다. 추사 부자의 간절한 염원이 해인사를 지켜온 수호신 역할을 한 것이다.
<가야산 해인사 중건 상량문>은 가로 485센티, 세로 94센티 크기의 감청색 비단에 금니(아교풀에 갠 금박 가루)로 사경 하듯이 해서체로 써 내려갔다. 본문 글씨만 1195자이고, 제목과 연기 부분까지 합치면 금니로 쓰인 총 글자 수는 1215자에 이른다.
1971년 해인사 대적광전 보수공사 때 대들보에서 발견되어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