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왜 백약이 무효인가》
예전엔 아이가 너무 많아 산아제한 정책을 폈다. 지금은 저출생으로 인구 절벽이니 격세지감이 든다. 50년 뒤엔 소멸되는 지방이 나오고 나라가 사라질 위기를 맞는다. 대한가족협회 홍보부장을 맡아 산아제한 캠페인을 펼쳤던 언론계 선배를 12년 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기자와 교수, 가족협회 임원을 거쳐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발족의 산파역을 맡은 여성사회지도자다.
“1970년대 중반 가족계획협회 업무 대부분은 아이 덜 낳게 하자는 것과 남아선호관을 없애자는 대국민 홍보였다”고 회고한다.
60년대 들어 정부에서 인구 억제 정책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가족계획협회가 발족되고 피임법이 보급됐다. 콘돔이라는 생경한 피임 도구가 등장해 감췄던 성(性)이 드러나는 등 사회적 파장도 컸다.
60년대 초에는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표어와 더불어 ‘3-3-35 운동(세 자녀를 3년 터울로 낳아 35세에 단산)’을 펼쳐 10년 뒤 가임(可妊) 여성의 평균 출산율은 4.5명으로 떨어졌다.
70년대 들어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를 채택, 두 자녀 갖기 캠페인을 실시하면서 남성들에게 정관(精管) 수술을 권장했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시술 희망자에게 훈련을 면제해 주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 결과 한 가정의 자녀수는 평균 2.8명으로 줄어드는 성과를 거뒀다.
80년대 초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표어를 채택했다. 90년대 중반까지 '사랑 모아 하나 낳고 정성 모아 잘 키우자'는 '한 자녀 갖기 운동'을 펼친 결과 1986년엔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이 1.5명으로 급격히 떨어졌다.
인터뷰를 계기로 필자는 공영방송 라디오에 출연하여 산아제한 표어를 중심으로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했다.
지금은 합계출산율이 0.6명대로 추락하여 심각하다. 최근 여야는 같은 날 저출생 대책을 발표했다. 총선을 앞두고 상호비방이 아닌 공약 경쟁에 나선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제까지 사용하던 ‘저출산’ 용어 대신 ‘저출생’ 대책이라 발표한 것이 눈에 띈다. ‘저출산은 낮은 출산율의 책임을 여성으로 돌린다’는 뉘앙스가 풍긴다는 시민사회단체의 지적이 반영됐다.
여당은 출산휴가 신청 시 육아휴직도 자동 개시되도록 하고, 육아휴직 급여를 올리는 방안이 골자다. 야당은 두 자녀 이상 부부에게 공공임대 아파트 우선 분양, 신혼부부에게 1억원 대출 및 자녀 수에 따른 원리금 탕감 방안 등이다. 예산 확보가 안 되면 공수표에 그친다.
젊은 부부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출산ㆍ육아휴직을 확대한다지만 회사 눈치가 보이고, 소득이 줄며 경력 단절 우려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 현금성 복지 확대로 출산을 유도하는 것도 효과가 일시적이라는 평가다. 그동안 유연근무제 도입, 아빠 육아휴직 의무화, 주택자금 지원, 비혼 및 이민자 가정 차별화 없애기 등 외국의 성공사례를 도입하여 잇달아 발표했으나 백약이 무효였다. 기업의 적극 참여 등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시스템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청년의 삶이 나아지도록 환경이 바뀌어야 결혼을 하고, 출산도 할 것이 아닌가.
[글쓴이 : 이규섭/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