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손님 한 분이 계시니 (有)바닷속에 사시는 분이네.(定是海中人)입에 하늘의 넘치는 물을 머금고()능히 불의 신을 죽이네.(精神)"
통도사 대광명전에 걸린 게송이다. 1756년 화마를 입고 2년에 걸쳐 복구한 뒤 써서 걸어둔 것이다. 손님이 한 분 계시는데, 그분은 다름 아니라 바닷속의 인물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용왕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소금이라고도 한다. 통도사 대광명전에는 소금단지가 모셔져 있는 까닭에 이 귀한 손님을 소금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지만, 용왕이건 소금이건 둘 다 바다에서 유래하는 것이니, 그 어떤 불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굳은 마음이 느껴진다.
옛집들이 다 그렇듯 사찰은 목조건축물이어서 화재가 가장 무서운 적이다. 크고 작은 웬만한 사찰들은 화마의 공격을 받은 적이 있고, 그 일을 겪은 사찰 입장에서는 마음속 번뇌만큼이나 무서운 것이 불의 재난이다. '할 수 있는 한 화재로부터 사찰을 보호하라!' 사찰의 대중이 짊어진 특명이다.
사찰 이곳저곳에 모셔져 있거나 새겨져 있는 장식물 중에는 바다와 관련된 것이 많이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용이 그렇고, 물고기·자라게·거북이가 그렇다
사찰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물고기 장식물이나'해', '수)' 등의 글자는 화재를 막기 위한 비책이다. 백양사 전각에 걸려 있는 잉어 모양의 물고기(위)와 선암사의 옛 이름인 해천사 편액 GettyimagesBank
사찰은 생사의 괴로운 바다를 건너는 반야용선이기 때문에 수중생물을 많이 배치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장식물은 산사에 치명적인 화마를 처음부터 막겠다는 화재방지용 부적이라고 봐도 좋다.
워낙 큰불이 자주 일어난 순천 선암사는 1761년 상월 스님이 아예 절 이름을 해천사로 바꾸기도 했다. 바다와 하천을 이름으로 써서 화마가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대웅전 지붕 서까래마다 해()자를 써넣고, 심검당 연기 구멍 아래에 적어 넣은 해자와 수자 역시 화재로부터 절을 지키려는 마음을 잘 보여준다. 석등을 굳이 가람 바깥에 배치한 것도, 사찰 안팎에 연못을 많이 파놓은 것도 같은 이유다.
수행자는 언제나 제 발아래를 살펴야 하듯 작은 불씨라도 소홀히 하면 안된다. 사찰 곳곳에 형상으로 남겨진 화재 비보(補)은 매 순간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삶의 지혜가 담긴 간절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