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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의 찬양 감사합니다. 늘 평안하리라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이고 또 우리가 서로에게 서로를 향해서 주는 축복의 말이 되기를 바랍니다.
옆에 있는 분들에게 인사할까요? 우리 평화의 인사를 해볼까요? 영어로
평강이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이 우리 모두에게 우리 교회에 가득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20절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시민권 성경에서 딱 한 번 나오는 곳인데 우리가 잘 알죠. 시민권이 무엇인지 또 시민권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압니다.
근데 보통 시민권을 이해하는 것으로 이 본문의 시민권을 이해하기만 하면 부족해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시민권이라면 무엇입니까? 한 나라에 살 수 있고 아니면 두 나라에 살 수 있고 거기서 하는 정치에도 참여할 수 있고 투표도 할 수 있죠. 자유롭게 다닐 수 있고 내가 믿는 것 내가 원하는 것 할 수 있는 이 당연한 권리가 시민권에 들어 있어요.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모든 시민권에는 시민에게는 마땅한 권리도 있지만 또 해야 할 의무도 있고 기대되는 생각과 행동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죠? 로마 시민을 생각해 보세요. 로마 제국의 일원이 된다는 것 엄청난 특권이죠. 권리도 많이 따라옵니다. 무엇 그렇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고 무엇을 하든 그 제국과 그 제국의 법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할 의무도 그리고 기대도 같이 가는 겁니다.
한국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마땅히 주어지는 여러 가지 혜택들이 있지만 또 마땅히 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의무가 있고 기대가 있는 겁니다. 그중에 하나 한국의 모든 남자들은 병역의 의무를 모두 다 군대를 가야 하는 그런 것들이 있는 거죠. 이거는 모든 남자에게 다 적용되는 한국 사람이라면 한국 시민권자라면 다 적용되는 것입니다. 영국 시민권도 그렇습니다.
시민권의 의미가 지금 그런 뜻으로 있다면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이 시민권이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 하는 말이에요. 이 말은 무슨 뜻인가요? 우리가 어느 나라에 소속된 시민처럼 우리는 아니 하늘이라는 나라에 속한 사람이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하늘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 땅 위 위의 하늘 그것을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말씀에서 가르쳐드렸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것으로 우리가 고대하고 기대하고 기다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키는 뜻으로 하늘이에요. 아버지가 계시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하시고 천군 천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 우리도 예수를 믿어서 이미 들어간 그의 나라를 가리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는 이 말은 엄청나게 큰 의미를 지닌 믿음의 고백이에요. 어느 나라에 거하든 내가 하늘나라에 속한 사람으로 살며 그 나라의 법을 따라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 되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따라 행하는 사람이죠.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하늘의 시민권자는 하늘나라의 법을 따라 행하는 사람이 된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일은 행하고 어떤 일은 행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일을 행할 것에 대해서는 노라고 대답을 하고 어떤 일을 행할 것에 대해서는 예스라고 대답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고 말을 했을까요?
이 땅 나라에 속한 시민권이 바울에게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도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시민권으로 누렸던 자유와 권한도 있었고 필요할 때 잘 사용을 했습니다. 로마 사람이라는 그 사실을 잘 사용을 했어요.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 않습니까? 어떤 나라이든 우리가 속한 나라가 있고 그것이 우리를 지켜주고 보호하고 도와줍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든 땅에 속한 이 시민권이 중요해요. 저에게도 그렇고 여러분에게도 몸이 중요한 것과 집이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땅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 또 일을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삶을 누릴 수 있는 것, 자유를 가질 수 있는 것 이 모든 것은 한편으로는 우리가 한국의 시민권자이기 때문이고 또 영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시민권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듣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하늘의 시민권이 있다는 것이고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오늘 본문에서 찾아볼 수가 있는데 첫 번째 이유는 19절에서 18절에서 19절에 있는 내용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꼭 세상에만 있는 게 아니고 교회 안에도 여러 사람이 그렇게 한다는 것이에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이루신 좋은 것들이 많이 있죠. 그중에는 무엇보다도 죄의 용서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죄에 용서가 있어요. 하나님과 화목함이 있고 다른 사람들과 화평함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세상에 그 무엇으로도 돈이든 권력이든 명예든 능력이든 지식이든 이런 것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에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십자가로 이루신 좋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을 거슬러서 예수를 믿은 다음에도 이것들을 거슬러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에요. 여러 사람들이 용서하지 않고 하나님과 다시 멀어지며 다른 사람과 화평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다시 자기가 인생의 주인의 자리에 올라서고 모든 사람의 판단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이루신 그 모든 것들에 반하여 대적하여 생활한다.
이어서 말씀하시듯이 결국 그들은 멸망으로 마치고 자기의 배를 자기의 주로 자기의 하나님으로 섬기며 땅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어요. 땅의 일을 생각한다는 말 무엇인가 땅의 일을 생각한다. 그들의 시민권은 땅에 있다 하는 말과 같아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하는 말이 있었죠.
그러면 그들의 시민권은 땅에 있다고 말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나 예수를 정말 제대로 믿는 사람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하는 것이 우리들에게 지금 주시는 말씀이에요.
우리 청년들은 어제 수련회에서 강사님을 통해서 인간이 본질적으로 위를 바라보며 사는 존재라는 말씀을 들었죠. 위를 바라보며 사는 존재, 그 존재의 목적에 따라 정말로 살 수 있는 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안에서 하늘의 시민권자로 사는 거라고 말씀을 전할 수 있겠습니다.
바울이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말하는 두 번째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모방이에요. 본을 따라가는 모방이 됩니다. 지금 말씀을 듣는 자들 빌립보 교회가 자기를 본받아서 자기가 행한 길로 따라오기를 바라는 것이 바울의 마음입니다. 17절을 한번 볼까요? 여기 앞부분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데, 원어를 직업 지역을 그대로 하면 함께 나라의 모방자가 되어라.
비 이미테이터즈 어브미 두 개 해서 아니면 비 조인트 이미테이터스 어브미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어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모방하라 이미테이션이에요. 이미테이테라는 말이에요.
여러분은 모방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모방에 부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위조 짝퉁이라는 말도 많이 들었죠. 그리고 학교에서는 표절 이런 말들이 있는데 위조나 표절 그런 것들은 출처를 알리지 않는 거고 마치 자신이 만들어낸 것처럼 속이는 것이고, 그렇게 말함으로써 무엇인가 이득을 보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쁘죠. 모방.
하지만 출처가 분명하고 속이려는 의도가 없어요. 그리고 오직 배우려는 뜻에서 하는 모방은 어떻습니까? 그것은 모든 배움에 들어있는 필수 요소가 되죠. 알죠 우리가 아이들이 부모에게서 처음 말을 배울 때부터 모방은 시작됩니다. 듣고 따라하고 배우는 거죠. 특정 기술을 배우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대학 생활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대학생들은 어떻습니까? 자기가 속한 분야에 배움을 갔는데 그 배움의 핵심 연수가 모방이에요. 앞에 간 사람을 잘 보고 잘 따르고 잘 배우고 그다음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나타나는 그런 면에서 모방은 이걸 이미테이션이라고 할 수도 있고 심지어는 카핑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이 모방은 모든 참 배움의 출발이 된다 아닌가요?
이거는 고대로부터 사람들이 안 내옵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은 모방을 통해서 배우고 사람이든 사물이든 자연이든 그것을 모방하려는 경향이 있다. 악한 의도가 없으면 좋다는 것이고, 또 세네카 로마 철학자는 모든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는 말을 했고요. 현대인으로서 일본 사람 히드 카바 아시는 모방은 여러분이 많이 들었듯이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을 했어요.
이 모든 말들은 시나 예술이나 문학이나 운동이나 연기조차도 이런 데만 해당되는 게 아니고 우리 믿음의 인생에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믿음 생활도 정말로 잘하려면 배워야 돼요. 그렇지 않습니까? 배우지 않고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는 큰 착각입니다. 예수님을 배워야 하고, 그를 따라 행한 사도들을 배워야 하고, 그리고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그들이 세워놓은 본을 따라서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보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에요. 함께 보고 함께 행하는 배움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 보고 따라서 행할 수 있는 본이 되는 성도 청년들 인생이 많아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할까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시민권은 하늘에 궁극적으로 하늘에 있어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모방한 보고 따라야 할 것은 무엇인가라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것도 오늘 본문 말씀에 있는데 17절부터 21절보다는 그 앞에 17절에서 바울이 나를 보고 배우라. 나를 본받으라고 말하는데, 그 앞에 주어진 내용에서 우리가 세계를 찾아볼 수가 있어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첫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려는 바울을 모방하는 겁니다. 8절 볼까요? 여기에 보면 우리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사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여기에 그리스도를 정말로 알고 배우려고 하는 한 사람이 있는 겁니다. 바울이라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혈통, 종교, 학문 열심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었던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것들이 정말로 중요한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는 다 바뀌어버린 겁니다. 무엇이든지 이전에는 그에게 유익했다고 생각되는 것은 이제는 다 해로운 것으로 여긴다. 심지어 배설물로 여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이제 가장 고상한 것, 가장 고귀한 것, 가장 존귀한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여러분들 특히 젊은 사람들 이거를 미리 일찍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치부하려고 하는 거, 여러분이 성취하려고 하는 것 많이 있는데 그 모든 것들 바라볼 수 있는 말씀으로 마음에 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각자에게도 정말로 가장 좋은 것이 있을 거예요. 내가 가장 높이 여기는 것, 정말로 좋게 여기는 것, 고상한 것, 고귀한 것, 존귀한 것이라고 표현하는데 그것들이 다 있어요.
그런데 그것들을 무엇인지 잘 생각해 봐야 돼요. 왜냐하면 그것들이 다른 것들의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이에요. 어제 수련의 말씀에도 의미 있는 소명으로 결정된다고 그랬는데 우리가 가장 높게 여기는 것들이 다른 것들의 가치를 결정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높은 것으로 여기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가장 높은 것으로 여기면 거기에 맞춰서 다른 것을 보게 돼 있어요. 사람이든 물건이든 하지만 가장 높은 것이 하나님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 아니고 성공이다 행복이다 나의 자랑할 것이다. 뭐 이런 것들 외모가 되든 명예가 되든 권력이 되든 다른 것들이 거기에 있으면 거기에 맞춰서 다른 사람도 보이고 심지어 하나님도 예수님도 성도도 보게 돼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각자 스스로 잘 생각해 은에게 정말로 가장 존귀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지 바라기는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배우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왜 그렇게 해야 돼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기 때문이다. 하늘은 죽어서만 가는 곳이 아니고 우리에게는 하늘은 벌써 우리가 그 안에 들어가서 살고 있는 아주 실제적인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 믿음이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바울은 그리스도를 따라서 행하려 합니다. 그는 예수를 알려고만 하는 게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따라서 행하려 하는 거예요.
그것이 또 우리가 배워야 할 내용입니다. 10절 11절인데 이 부분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여러분 이 말씀에서 무엇이 보이나요?
제게 보이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걸어가신 그 고난과 부활의 삶을 직접 따라가고자 하는 사람이 보입니다. 바울에게 고유한 말이지만 이것은 예수를 따라가는 모든 사람, 우리를 포함해서 우리도 보고 배워야 할 본인이 되는 겁니다. 모양은 다르죠. 또 우리 각각의 삶에 찾아오는 고난들이 있고 그 고난의 종류도 다 다릅니다.
그런데 고난이라고 어려움이라고 고통이라고 이걸 다 피해야 할 것은 아니다. 바울에게 누구예요? 그중에는 그리스도께서 얻은 그 영광으로 가게 하는 십자가 고난도 있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이 피할 수 없이 마지못해서 받는 고난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속하고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기쁘게 담담히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는 인생입니다. 13절 14절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옆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표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해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취하여 위하여 달려가느라
우리들 중에는 다 이루었다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무엇인가 다 이루었다 생각하기도 쉽습니다. 여러분이 이루려고 하는 목표가 있죠? 그 목표가 이루어지면 그리고 거기에 만족하고 거기에 안주하기도 쉽습니다. 믿음도 그래요. 교회 생활을 오래 하면 특정 시기에 올라가서 나는 이제 내 할 일을 다 했다 이렇게 생각을 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게 맞는 생각이 아닙니다. 적어도 바울을 통해서 볼 때 그렇습니다. 바울이 뭐라고 그래요? 그는 내가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직 한 일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표대를 향하여 달려가노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해서 달려가노라.
이것은 세상을 마칠 때까지 내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계속 이어지는 삶의 신앙의 경주라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많이 배웠다고 가르치는 자가 되었다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만날 때까지 이어지는 경주에요.
세상에서는 멈추면 오케이 할 수 있지만 믿음의 경주에서는 멈추면 큰일 납니다. 썩어요. 냄새가 납니다.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고 십자가의 원수로 행할 수 있습니다. 인생이 경주 라는 뜻이 아니에요. 인생이라는 흐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 위에 가는 경주라고 부르는 이 운동이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피곤할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고 고할 수도 있습니다. 힘들 수도 있고 여러 이유로 복잡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피곤하고 지치고 힘들 수 있는 그 인생을 힘차고 의미롭고 의미 가득하고 기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운동으로서 신앙의 경주를 지금 말로 하고 있는 겁니다. 왜 그런 운동이 있느냐 우리가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시 대답을 하면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국 사람으로만 영국 사람으로만 이 세상에 사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런 말씀을 할 수가 없어요. 그러나 우리는 한국 사람이면서 또 영국 국적의 사람으로서 하늘에 속한 하늘의 나라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에 속한 사람들로 살아가기 때문에 지금 이 운동이 있는 겁니다. 이 경주가 있는 겁니다. 이 믿음이 우리 가운데 확실히 세워지고 여러분 인생 가운데 여러분 마음 안에서 확실히 세워지고, 그래서 우리들의 일상이 오늘 하루 또 이어지는 일주일간의 삶, 우리가 평생을 사는 이 인생을 힘차게 즐겁고 의미롭게 이끌어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