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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곡(江南曲)
- 장적(張籍)
江南人家多橘樹(강남인가다귤수) : 강남에는 집집마다 귤나무가 많은데
吳姬舟上織白紵(오희주상직백저) : 오나라 땅 여인들은 배 위에서 흰 모시 짠다.
土地卑濕饒蟲蛇(토지비습요충사) : 토지가 낮고 습하여 벌레와 뱀이 많아
連木爲牌入江住(련목위패입강주) : 나무를 이어 뗏목 만들어 강 속에 들어 산다.
江村亥日常爲市(강촌해일상위시) : 강 마을에는 언제나 해일에 시장이 서니
落帆渡橋來浦裡(낙범도교내포리) : 닻 내리고 다리 건너 포구 안으로 들어온다.
靑莎覆城竹爲屋(청사복성죽위옥) : 향부자풀 가득한 성에 대나무로 집 짓고
無井家家飮潮水(무정가가음조수) : 우물이 없어 집집마다 강물을 마신다.
長干午日沽春酒(장간오일고춘주) : 장간 지방엔 대낮에 봄 술을 파는지라
高高酒旗懸江口(고고주기현강구) : 높게도 주막 깃발 강어귀에 내걸렸어라.
倡樓兩岸臨水柵(창누량안림수책) : 기생집은 양 언덕에 물 속 울타리에 닿아있어
夜唱竹枝留北客(야창죽지류배객) : 밤이면 죽지사 불러 북방 나그네 붙들어라.
江南風土歡樂多(강남풍토환낙다) : 강남 지방의 풍토는 즐길 일이 많으니
悠悠處處盡經過(유유처처진경과) : 오래도록 곳곳을 돌아다녀 보리라.
오궁원(吳宮怨)
오날라 궁궐의 원망
- 장적(張籍)
吳宮四面秋江水(오궁사면추강수) : 오궁 사면에 가을 강 물
江清露白芙蓉死(강청로백부용사) : 강은 맑고 이슬 희어서 부용이 죽었다.
吳王醉後欲更衣(오왕취후욕경의) : 오왕은 취한 후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座上美人嬌不起(좌상미인교불기) : 자리 위의 미인은 교태부리며 일어나지 않는다.
宮中千門復萬戶(궁중천문부만호) : 궁 안에 천개의 문과 다시 만호가 있으니
君恩反覆誰能數(군은반복수능수) : 임금의 은혜가 반복되는 것을 누가 셀 수 있을까.
君心與妾既不同(군심여첩기불동) : 임금의 마음이 첩과 이미 같지 않으니
徒向君前作歌舞(도향군전작가무) : 다만 임금 향하여 노래와 춤을 짓는다.
茱萸滿宮紅實垂(수유만궁홍실수) : 수유는 궁에 가득하여 붉은 열매 드리우고
秋風裊梟生繁枝(추풍뇨효생번지) : 가을바람은 요요히 번화한 가지를 자라게 한다.
姑蘇臺上夕燕罷(고소대상석연파) : 고소대 위에 저녁 잔치 그치니
他人侍寢還獨歸(타인시침환독귀) : 남들은 침상에서 모시는데 도리어 홀로 돌아온다.
白日在天光在地(백일재천광재지) : 밝은 해는 하늘에 있고 빛은 땅에 있으니
君今詎得長相棄(군금거득장상기) : 임금이 어찌 오랫동안 서로 버렸음을 알겠소.
산금(山禽)
산새
- 장적(張籍)
山禽毛如白練帶(산금모여백련대) : 산새의 털이 흰 비단 띠 같은데
棲我庭前栗樹枝(서아정전율수지) : 우리 뜰 앞 밤나무 가지에 깃들었다.
獼猴半夜來取栗(미후반야래취률) : 원숭이가 한밤에 와서 밤을 따가는데
一雙中林向月飛(일쌍중림향월비) : 한 쌍이 숲 속에서 달을 향해 날아간다.
한당곡(寒塘曲)
- 장적(張籍)
寒塘沈沈柳葉疎(한당침침유엽소) : 차가운 못은 깊숙하고 버들잎은 성근데
水暗人語驚棲鳧(수암인어경서부) : 못물은 어둑한데 말소리에 깃든 오리 놀란다.
舟中少年醉不起(주중소년취불기) : 배 안의 소년들은 취하여 일어나지 않는데
持燭照水射游魚(지촉조수사유어) : 촛불을 잡고 물 비춰, 헤엄치는 물고기 잡는다.
성도곡(成都曲)
성도의 노래
- 장적(張籍)
錦江近西春水綠(금강근서춘수록) : 금강 서쪽 가까이 봄물은 푸르고
新雨山頭茘枝熟(신우산두려지숙) : 비 내린 산마루에 여지 열매 익었다.
萬里橋邊多酒家(만리교변다주가) : 만리교 주변에는 술집도 많으니
遊人愛向誰家宿(유인애향수가숙) : 낭인들은 뉘 집에서 자기를 원할까.
춘별곡(春別曲)
봄날 이별의 노래
- 장적(張籍)
長江春水綠堪染(장강춘수록감염) : 양자강 봄물은 물들인 듯 푸르고
荷葉出水大如錢(하엽출수대여전) : 물에서 나온 연잎은 크기가 동전 같구나.
江頭橋樹君自種(강두교수군자종) : 강가 다리에 있는 나무 그대가 심은 것
那不長繫木蘭船(나부장계목란선) : 어찌하여 목란선을 길게 매어두지 않았나.
한행(閑行)-장적(張籍)
한가히 걸으며-장적(張籍)
老身不許人間事(노신불허인간사) : 늙은 몸이라, 인간사 허락지 않아
野寺秋晴每獨過(야사추청매독과) : 들판 절간의 맑은 하늘을 혼자서 걷는다.
病眼較來猶斷酒(병안교래유단주) : 병든 눈을 생각하여 여전히 술을 끊으니
却嫌行處菊花多(각혐행처국화다) : 지난 곳마다 국화 많음이 도리어 싫어진다.
만중(蠻中)
만중에서
- 장적(張籍)
瘴水蠻中入洞流(장수만중입동류) : 장수의 물은 만중에서 합쳐 흐르고
人家多住竹棚頭(인가다주죽붕두) : 인가는 대나무 건축물에 많이 몰려있구나.
一山海上無城郭(일산해상무성곽) : 일산의 바닷가에는 성곽이 하나 없고
惟見松牌記象州(유견송패기상주) : 상주라고 기록 된 소나무 팻말만 보인다.
기이발(寄李渤)
이발에게 부치다
- 장적(張籍)
五度溪頭躑躅紅(오도계두척촉홍) : 오도계 어구에 철쭉꽃 붉고
嵩陽寺裏講時鐘(숭양사리강시종) : 숭양사 안에서, 강설할 때 종소리 들린다.
春山處處行應好(춘산처처행응호) : 봄산 여기저기를 걸으니 좋았을 것이니
一月看花到機峰(일월간화도기봉) : 한 달 동안 꽃 보며 몇 봉우리나 다녔는가.
여가도한유(與賈島閒遊)
가도와 한가이 놀다
- 장적(張籍)
水北原南草色新(수북원남초색신) : 물 북쪽과 원남에 풀빛이 새로운데
雪消風暖不生塵(설소풍난불생진) : 눈 녹고 바람 따뜻하여 먼지도 일지 않는다.
城中車馬應無數(성중거마응무수) : 성안에는 거마들이 무수히 많지만
能解閑行有幾人(능해한행유기인) : 한가롭게 걷는 멋 아는 사람 몇이나 있을까.
송촉도(送蜀道)
촉도로 송별하며
- 장적(張籍)
蜀客南行聽碧鷄(촉객남행청벽계) : 촉객이 남으로 가니 닭소리 들리고
木綿花發錦江西(목면화발금강서) : 금강의 서쪽에 목면화가 피었으리라.
山頭日晩行人少(산두일만행인소) : 산머리에 해지고 행인이 적으니
時見猩猩樹上啼(시견성성수상제) : 때때로 나무 위 성성이 우는 것도 보리라.
봉가도(逢賈島)
가도를 만나
- 장적(張籍)
僧房逢着款冬花(승방봉착관동화) : 승방에서 관동화를 만나고
山寺行吟日已斜(산사행음일이사) : 산사 걸으며 시 읊는데 해가 기울었다.
二十街中春色徧(이십가중춘색편) : 열두 거리에 봄빛은 가득하고
馬蹄今去入誰家(마제금거입수가) : 말발굽이 이제 떠나면 뉘 집에 들까.
감춘(感春)
봄날에 느껴서
- 장적(張籍)
遠客悠悠任病身(원객유유임병신) : 먼 곳에서 온 나그네 병든 몸에 맡겨
誰家池上又逢春(수가지상우봉춘) : 누구네 집 연못에서 또 봄을 맞는구나
明年各自東西去(명년각자동서거) : 명년에는 각자가 동서로 떠나게 되리니
此地看花是別人(차지간화시별인) : 이 땅에서 꽃 볼 사람은 다른 사람이리라
폐택행(廢宅行)
허물어진 집의 노래
- 장적(張籍)
胡馬崩騰滿阡陌(호마붕등만천맥) : 오랑캐 말 거리를 날뛰고
都人避亂唯空宅(도인피난유공택) : 도읍 사람들 난리를 피해 오직 빈 집들
澤邊靑桑垂宛宛(택변청상수완완) : 못가에 푸른 버들 힘없이 늘어지고
野蠶食葉還成繭(야잠식엽환성견) : 들판 누에 잎 먹어치우니 또한 고치라
黃雀銜草入燕窠(황작함초입연과) : 꾀꼬리 풀을 물고 제비집에 날아들어
嘖嘖啾啾白日晩(책책추추백일만) : 꾀꼴꾀골 지저귀며 날이 지는구나
去時禾黍埋地中(거시화서매지중) : 떠날 때, 땅 속에 묻은 곡식
飢兵掘地飜重重(기병굴지번중중) : 주린 병사 온통 땅를 파서 뒤집는다
鴟梟養子庭樹上(치효양자정수상) : 부엉이는 뜨락 나무 위에 새끼를 치고
曲牆空屋多旋風(곡장공옥다선풍) : 궁그런 담, 빈 집에 회오리 바람
亂後幾人還本土(난후기인환본토) : 난리 뒤, 몇 사람이나 제 고향땅 돌아왔나
唯有官家重作主(유유관가중작주) : 관가만 다시와서 주인노릇하는구나
기원곡(寄遠曲)
멀리 부치는 노래
- 장적(張籍)
美人來去春江暖(미인내거춘강난) : 님이 오고 간 봄날 강남은 따스한데
江頭無人湘水滿(강두무인상수만) : 강 가에 님은 없고 상수 물만 가득하다
浣絲石上水禽棲(완사석상수금서) : 비단옷 빨던 바위엔 물새만 날아들고
江南路長春日短(강남노장춘일단) : 강남 길은 멀고 긴데 봄날은 짧기만 하다
蘭舟桂楫常渡江(난주계즙상도강) : 화려한 배 타고 계수나무 노 저어 강을 건너도
無因重寄雙瓊당(무인중기쌍경당) : 이 마음 쌍경당에 다시 부칠 길이 없구나
기서봉승(寄西峰僧)
서봉의 중에게
- 장적(張籍)
松暗水涓涓(송암수연연) : 소나무 숲 어둑하고 물은 맑게 흐르는데
夜凉人未眠(야량인미면) : 밤이 차가워 아직 잠 못 이룬다
西峰月猶在(서봉월유재) : 서쪽 봉우리엔 아직도 달 떠 있고
遙憶草堂前(요억초당전) : 아득히 초당 앞에 있을 그대를 생각한다
행로난(行路難)
가는 길이 험하구나
- 장적(張籍)
湘東行人長歎息(상동행인장탄식) : 상수 동쪽 걷는 사람 길게 한숨 짓노리
十年離家歸未得(십년리가귀미득) : 십년 동안 집을 떠나 아직 돌아가지 못하네
弊裘羸馬苦難行(폐구리마고난행) : 떨어진 갖옷과 여윈 말이라 걷기 어렵고 고통스러워
僮僕飢寒少筋力(동복기한소근력) : 따르는 종들도 춥고 배고파 근력이 없다네
君不見牀頭黃金盡(군불견상두황금진) : 그대는 못 보았는가, 머리맡에 황금이 다하면
壯士無顏色(장사무안색) : 장사도 얼굴빛을 잃는다네
龍蟠泥中未有雲(룡반니중미유운) : 용도 진흙 속에 있으면서 구름 타지 못하면
不能生彼升天翼(불능생피승천익) : 승천의 날개가 생길 수 없다네
江南行(강남행)
- 張籍(장적)
江南人家多橘樹(강남인가다귤수) : 감남의 인가에는 귤 나무가 많아
吳姬舟上織白苧(오희주상직백저) : 오 나라 배 위에서 아가씨들 백저를 짜네.
土地卑濕饒蟲蛇(토지비습요충사) : 토지가 낮고 습하여 벌레와 뱀이 많아
連木爲牌入江住(연목위패입강주) : 나무를 잇대어 방패 만들어 강에 들어사네.
江村亥日長爲市(강촌해일장위시) : 강촌은 해일에 길게 시장터를 이루니
落帆度橋來浦裏(낙범도교래포리) : 돛대를 내려 다리를 건너 포구 안으로 오네.
淸莎覆城竹爲屋(청사복성죽위옥) : 푸른 부들은 성을 덮고 대는 집을 만드니
無井家家陰潮水(무정가가음조수) : 우물 없어 집집마다 조수를 마시네.
長干午日沽春酒(장간오일고춘주) : 장간에 정오에 봄 술을 사와서
高高酒旗懸江口(고고주기현강구) : 높고 높은 술집 기가 강 입구에 달려 있네.
娼樓兩岸臨水柵(창루양안임수책) : 양 언덕의 기녀의 누가은 물가 울타리에 임해있으니
夜唱竹枝留北客(야창죽지유북객) : 밤에 죽지사 불러 북쪽 손님 묵게 하네.
江南風土歡樂多(강남풍토환락다) : 강남 풍토에 환락의 일이 많으나
悠悠處處盡經過(유유처처진경과) : 유유히 곳곳에 다 지나다닌다네.
節婦吟(절부음)
- 張籍(장적)
君知妾有夫(군지첩유부) : 그대는 저에 남편이 있음을 알고도
贈妾雙鏡珠(증첩쌍경주) : 첩에게 쌍명주를 보내셨는지요
感君纏綿意(감군전면의) : 그대의 애타는 마음에 감격하여
繫在紅羅襦(계재홍나유) : 붉은 비단치마에 달고 지냈었지요
妾家高樓連苑起(첩가고루연원기) : 첩의집 높은 누대는 대궐동산에 이어 올라가고
良人執戟明光裏(양인집극명광리) : 낭군은 명광궁 속에서 창을 들고 있었지요
知君用心如日月(지군용심여일월) : 그대의 마음 씀은 일월과 같이 밝음을 알고 있으니
事夫誓擬同生死(사부서의동생사) : 지아비 섬김에 생사를 함께 하자 맹세했지요
還君明珠雙淚水(환군명주쌍누수) : 그대에게 이 구슬을 돌려줄 때 양 볼에 눈물이 흘렀어요
何不相逢未嫁時(하부상봉미가시) : 어찌 시집가기전에 만나지 못했을까요
추사(秋思)
가을 심사
- 張籍(장적)
洛陽城裏見秋風(낙양성이견추풍) : 낙양성 안에 가을바람 불어와
欲作家書意萬重(욕작가서의만중) : 집에 보낼 편지를 쓰려니 온갖 생각 다 들어라
復恐悤悤說不盡(복공총총설부진) : 너무 바빠 할 말을 다 쓰지 못 한 것 같아
行人臨發又開封(행인임발우개봉) : 가는 사람 떠나려 함에, 다시 또 뜯어본다.
몰번고인(沒蕃故人)
몰번에서 죽은 친구여
- 장적(張籍)
前年伐月支,(전년벌월지), 지난 해 월지국을 치다가
城下沒全師.(성하몰전사). 성 아래에서 전 군사가 전멸당했소
蕃漢斷消息,(번한단소식), 번과 중국과는 소식 끊어지고
死生長別離.(사생장별리). 죽은 사람과 산 사람 긴 이별 하였다네
無人收廢帳,(무인수폐장), 부서진 휘막 거두는 이 아무도 없고
歸馬識殘旗.(귀마식잔기). 돌아온 말만이 남아 있는 깃발의 주인 안다네
欲祭疑君在,(욕제의군재), 제사를 지내고 싶어도 그대 살아있는 것 같아
天涯哭此時.(천애곡차시). 이 시간 먼하늘 향하여 통곡하노라
장적(張籍) 766? ~ 830?
장쑤성[江蘇省] 쑤저우[蘇州] 사람으로 자는 문창(文昌)이다. 시의 발전과정에서 볼 때 두보(杜甫)와 백거이(白居易)의 연계적인 위치에 있는 시인이다. 곤궁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높은 벼슬에 오르지도 못했다. 한유(韓愈)의 추천으로 국자박사(國子博士)가 되었으나, 눈이 멀어 태상시태축(太常侍太祝)이라는 낮은 벼슬로 가난 속에 살았다. 눈먼 그는 자기 속의 불만을 시로 표현하면서, 두보를 좋아하여 그를 배우려고 노력하였다. 특히 전쟁의 비정함과 전란 속에 겪는 백성들의 고난을 사실적으로 잘 그렸다. 악부체의 시를 썼으나 5언 율시도 잘 지었다.
지금 전해지는 시 418수 중 7,80수가 악부시여서 서사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지만 악부시가 아닌 것도 대부분 민간의 고통을 반영하는 데 성공하였다. 《정부원(征婦怨)》 《축성사(築城詞)》 《야로가(野老歌)》 《이부(離婦)》 《성도곡(成都曲)》 《서주(西州)》 《산농사(山農詞)》 《가악부(賈樂府)》 《장군행(將軍行)》 《목동사(牧童詞)》 《정서장(征西將)》 등의 작품을 통해 봉건 통치계급들이 농민에게 가져다 준 고통을 폭로하고 고난에 허덕이는 농민들에게 동정을 나타내고 있다.
시의 소재는 대개 전란 속에서 서민들의 고통과 관리들의 횡포, 부녀의 비극 등이 그 근간을 이루는데, 소시(小詩)로서 자연을 읊거나 우정을 기념하는 것들도 보여 그의 시 역량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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