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나이가 들어 현업에서 물러나면 한적한 시골 어드메쯤에 조그만 집을 짓고 손수 작은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싶다.
원래부터 시골 출신인데다가 농삿일, 산일, 주택 보수나 각종 장비 수리 등에 그닥 문외한은 아니기에 그리 큰 문제는 없지 싶다.
또한 태생적으로 좀 바지런하거니와 이런 저런 일들을 하면서 미더운 땀을 흘리는 것에도 전혀 주저함이 없으니
시골살이에 왕초보는 아니다.
그런 까닭에 그런대로 잘 적응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만약 시골살이가 시작된다면 작은 살림집 옆에 아주 조그만 기구(공구)창고를 가장 먼저 지어 그곳에 시골생활에 꼭 필요한 각종 공구나 농기구들을 잘 정리해 두고 싶다.
아주 전문적인 영역을 제외하고는, 하나부터 열까지 손수 내 손으로 두드리고, 닦고, 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철저한 분업화에 익숙했던 도회지의 삶에서 벗어나면 통섭과 솔선이란 컨셉에 충실해야 한다.
그런 생활방식이 시골살이의 기본조건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노트에 필요한 것들을 적어두고 있다.
물론, 지금 당장 이런 물건들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미래를 생각하며 마음 속으로 작은 창고를 만들고 디자인해 본다.
그 안의 레이아웃을 잡아 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그동안 메모해 두었던 내용을 들춰보니 두서 없는 낱말들이 제법 빼곡하다.
운반카, 분사기, 각종 테이프, 곡괭이, 접이식5단 사다리, 끌, 조줄과 평줄(야쓰리), 부삽, 줄자, 와이어(소프트) 브러쉬, 실리콘건, 글루건, 노끈, 동태끈, 쟈키, 그라인더, 전기인두기, 가스토치, 고지톱, 랜턴, 석유펌프(대형,소형), 전기릴, 살수기, 에어건, 약제 살포 분무기, 숫돌, 호미, 삽, 가래, 쇠스랑, 거름통, 삼태기, 일반낫과 조선낫, 도리깨, 홀테, 멍석, 발, 채, 지게, 각종 광주리, 채반, 갈퀴, 함지, 예초기, 전기톱, 못류, 나사류, 망치, 톱, 대패, 장화, 장갑, 도끼, 각종 호스, 자구, 소형펌프, 사포, 빠루, 린치, 부대, 아크릴커터, 탁카, 드릴, 작은 디바이스, 철제 절단기, 풀과 본드, 마스크, 보안면과 보안경, 페인트 등 가짓수가 제법 많다.
만물상을 차려도 될 정도다.
이런 공구나 기구들이 없다고 해서 시골살이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도구들도 인해 가능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원하는 일들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 든 노년기의 삶이 훨씬 더 매끄럽고 원만할 것 같다.
미래의 일들에 대해 요리조리 궁구해 보는 것이 내겐 또 하나의 활력소가 된다.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맞는 말이다.
먼 미래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 지 나도 잘 모른다.
자신의 운명을 어느 누구가 예단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지속적으로 사고하고 메모하며 차근차근 정리해 나간다면, 각자가 미리 쓰는 '미래 이력서'대로 그 궤적을 따라 달려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백발이 성성한 어느 노인의 미래 일기를 상상해 본다.
미래의 삶의 모습들이 올망졸망하게 담긴 삶의 편린들.
그 상상의 일기를 수 십 년 전에 자신의 인생 노트에 적어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우리들의 삶이 꼭 미래 일기대로 전개되지 않아도 좋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
내가 신봉하는 센텐스다.
장년 시절의 각종 기록들이나 사유의 흔적들이 훗날 노년의 삶을 더욱 윤기있게 데코레이션해줄 것으로 믿는다.
나의 미래 일기, 시골살이.
가끔씩 끄적거리는 것만으로도 매양 흐뭇해 진다.
오늘도 활기차고 은혜로운 하루가 되길 빈다.
사랑과 감사를 전하며.
2010년 9월 9일.
일기.